프랜차이즈 갓 738화
184장 작은 변화의 바람 (1)
랩터, 일명 장수말벌.
곤충계의 최강 스텔스 전투기 F-22의 애칭을 딴 이 무자비한 폭군은 한때 꿀벌들을 깡그리 말리면서 아몬드&양파 쇼크를 일으켰다.
아몬드는 당장 올해의 수확량이 폭망했었다.
기타 충매화는 내년에 쓸 종자 부족으로 시장에 쇼크를 주었다.
아몬드, 당근, 양파 등의 가격이 무지막지하게 폭등했고, 곳곳에서 씨종자 확보 전쟁이 벌어졌다.
"내년 농사에 쓸 씨종자 수가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올해 같은 일이 두어 번만 더 반복된다면, 농작물 가격 폭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양파가 10배 이상으로 치솟았던 지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문가들의 경고 속에서, 미 농무부는 꾸준히 장수말벌 표적살충제를 보급했다.
오직 장수말벌에만 반응한다는 이 표적살충제는 효과가 좋았다.
살아남은 양봉 농가들도 안심하고 다시금 생업 활동에 집중했다.
하지만 나노소프트와 계약한 농가 들은 꿋꿋하게 표적살충제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개당 수백만 달러가 넘어가는 랩터 킬러, 레이저 드론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다른 농가들은 돈지랄을 한다며 비웃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군용 무기를 개조해서 살충 장비로 쓴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야?"
"저거 한 개당 수백만 달러가 넘는다고? 흐꼭! 그 돈이면 표적살충제 몇백년 어치는 사겠네."
"그냥 약 한 번 치는 게 낫다니까. 무슨 레이저 드론이야, 레이저 드론은."
"아무튼 내년 농사는 이제 희망이 보이는군."
"씨종자 값이 너무 비싸서 출혈이 컸지만, 그래도 다행이야."
북미에서 아몬드, 양파, 당근 등 충매화 작물 농가는 이전보다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들은 상당수가 농사를 아예 접거나, 아니면 꽃가루 수분에 꿀벌이 필요 없는, 옥수수, 벼, 밀 등으로 갈아탔다.
미 농무부는 표적살충제의 효과가 매우 크다는 것을 확인하고, 충매화작물 농가를 늘리기 위해 여러 가지 유인책을 내놓았다.
농업 관련 주가지수도 안정세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희망찬 내일을 그리고 있을 때.
[속보! 표적살충제 내성 지닌 랩터말벌 발견!]
[약을 뒤집어쓰고도 유유자적하게 날며 꿀벌들을 사냥해!]
[겨우 5마리의 랩터 말벌이 꿀벌 수천 마리를 학살한 장면!]
내성종의 등장.
늘 그렇듯이, 자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하수영은 기사를 보며 혀를 찼다.
"그러게 처음부터 포크레인으로 막으면 됐는데, 호미로 어찌어찌 막아보겠다고 하다가 결국 다시 포크레인 도움을 요청하게 생겼잖아."
전성렬도 안타까워하면서 말을 받았다.
"미 증시 투자자들 눈에서 핏물이 뚝뚝 쏟아지겠는데."
"이래서야 내년에도 양팟값이 안정되긴 글렀네요."
"우리나라는 걱정 없겠지? 수영농장이 있잖나."
"그럼요. 우리 꿀벌 호텔은 랩터킬러들이 24시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장수말벌과 미국에 건너간 장수말벌들은 피지컬 자체가 달라요."
"어느 정도인가?"
"이쪽이 유치원생과 격투기 챔피언이라면, 저쪽은 유치원생과 총 든 강도죠."
"어이쿠, 그래서야 전혀 상대도 안되겠는데."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꿀벌들이 사투 끝에 장수말벌을 일부 죽이기라도 하는데, 미국 꿀벌들은 공략법을 몰라서 아예 엄두도 못 낸다네요"
"일방적인 학살이겠어."
"그렇죠."
"바다도 생선 씨가 말라서 가격 폭등했는데, 미국 농장까지 난리라니. 이러다가 정말 굶어 죽는 사람 나오는 거 아니야?"
세계 최대의 농업국도 말썽이고, 바다도 빈곤한 상황.
전성렬은 식량 위기라는 말이 요즘처럼 피부에 다가온 적이 없었다.
"날씨는 또 왜 이래? 이놈의 비는 대체 언제 그치는 거지?"
"이상기후는 이제 우리 일상으로 파고든 지 오래됐죠. 올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하 사장 자네가 그렇게 폐쇄형 농장에 열을 올린 이유가 있었어."
"개방형 농장은 날씨 같은 자연환경에 너무 좌지우지되는 영향이 크죠. 아, 잠시만요. 나노소프트가 연락 왔네요."
발신인은 발머 스틴이었다.
영상통화로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그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농무부에서 랩터 킬러 임시 대여 서비스가 가능한지 물었지만 거절했습니다. 우리도 순찰 루트가 꼬인다는 이유로요.
"그냥 새 걸 사는 게 나을 텐데."
-지금 당장 내성종 때문에 농가가 패닉 상태에 빠져 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예비 기체라도 빌려달라고 사정사정하고 있습니다.
"안 되죠. 예비 기체를 왜 운용하는데."
-그렇습니다. 안 되죠.
예비 기체들을 빌려주었다가 막상 투입해야 할 때에 바로 투입을 하지 못하면?
순찰방어망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랩터 킬러를 좀 더 확보하는 게 어떻습니까? 내성종이 생긴 지금, 농가들은 표적살충제에 대한 신뢰를 잃었습니다.
"나중에 수요가 늘긴 하겠네요."
-네, 그렇게 확신합니다.
"그런데 저 지금 돈 없는데."
-…….
"앞으로 미국에서 돈 나올 곳이라고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월세, 코류드사가 가져가는 육류, 수영레스토랑 영업이익 정도네요."
나노소프트로 하수영이 버는 돈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식재료 공급비, 다른 하나는 라면 판매금 분배.
그중에서 식재료 판매로는 이제 당분간 돈을 못 번다.
약 20년 치를 한꺼번에 선불로 받은 덕분.
그것들은 고스란히 수영사채 미국환계좌 자산으로 들어가 있다.
"그럼 일단 라면 판매금으로라도 한 번 진행을 해볼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충분히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노소프트 요식사업부도 랩터 킬러를 도입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발머 스틴은 철저한 사업가.
그런 초고가의 살충 드론을 보유해서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 남는 게 전혀 없이 손해다.
개당 수백만 달러가 넘어가는 살충드론을 수십, 수백 대 도입한다면?
당장 이사진에서 들고 일어날 것이다.
오직 하수영만이 과감하게 저지를 수 있는 쇼핑이었다.
돈 많은 미 행정부도 의회가 무서워서 감히 말도 못 꺼내는 주제인데.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쌓이는 '라면 판 돈'은 당분간 랩터 킬러도입으로 돌릴게요."
-우리 회사 몫도 당분간 채권 형태로 본사에 돌리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이거 원, 돈 좀 버는가 싶으면 여기저기 족족 나가는 데가 많네요."
-그만큼 거시경제 활황을 위해서 큰 노력을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십시오.
원래 식재료값은 한국에서 받고, 영업이익 분배는 미국 계좌에 두어왔다.
프리덤 새 본체 제작을 위해서, 미국에서 반도체 등 전자부품을 대거주문했다.
그러느라고 미국에서 라면 팔아서 번 돈을 다 써버렸다.
-그리고 비프스 캘론 회장 라인으로 육류 수출을 하시지 않습니까?!
"네, 그렇죠."
-저희 나노소프트를 통해서 미국에 양식장 진출을 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음, 양식장이라."
-생선 파동이 장기화될 거 같은데, 지금부터 준비를 해두고 싶습니다.
"그럼 수영레스토랑과 같은 조건으로?"
-네, 모든 시설투자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본사의 상표를 쓰고 사료를 공급받는 조건으로, 판매 수익의 절 반을 나누겠습니다.
사료도 사줘, 판매금도 나눠줘.
사업은 자기들이 알아서 다해.
'나노소프트는 진짜 최상급 오토라니까. 다른 오토들도 분발했으면 좋겠다.'
***
중국에서 류이엔 회장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언론의 눈을 피해 조용히 입국한 류이엔은 곧장 청담동을 찾았다.
"음, 이게 500억 위안짜리라는 조선시대 유물이로군."
휴민트타워 1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훈민정음 창제일지 전시관이 보인다.
이 빌딩보다 저 책 한 벌이 10배가까이 비싸다고 하면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네, 즈쉬앤 회장님께서 100억 달러를 부르셨지만, 팔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본사 오너께서 그깟 현금 때문에 세계문화재급 유산을 팔 이유가 없지."
"그런데 한국 문화재청은 처음에는 모작으로 감정했다가, 뒤늦게 재감정을 요구하면서 매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네, 하수영 회장님께서 모작으로 감정을 받고, 그 다음에 진품을 진열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도는 상황이죠."
문화재청에서 인수를 받은 뒤 진열장에 넣기까지 끊김이 없는 영상.
그 완벽한 증거 때문에 문화재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호가 100억 달러짜리 문화재를 감상한 후, 류이엔은 의원사무실에 들어섰다.
후원회 노인들은 한가로운 표정으로 류이엔 회장을 지켜보았다.
"뭐야, 류이엔 회장이잖아?"
"마음에 들어. 여기 하수영 의원사무실에서 저렇게 당당한 사람은 오랜만이야. 사나이답군."
"중국에서 사업할 때 잠깐 술 한 잔 한 적 있는데, 참으로 호탕하고 의리 있는 남자였지."
"우리 하 의원을 쉽게 보던 여의도 뱃지들도 막상 여기 사무실에 오면 굳어버리곤 했는데 말이야."
"우리, 류이엔 회장에게도 명예 후원회 멤버십을 주는 게 어떨까?"
"좋은 생각인데. 이따가 끝나고 한번 넌지시 물어보자고."
***
류이엔이 말을 꺼냈다.
"제가 본국에서 자그맣게 돼지축산사업을 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오, 돼지축산도 하셨군요. 언뜻 들은 거 같습니다."
"수영목장에서는 사람이 먹는 쌀과 콩으로 돼지 사료를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이 먹어도 문제없을 품질의 재료로 만들고 있는 거지요. 원래 돼지는 사람과 먹거리를 공유하잖습니까."
"양식장에 쓰이는 사료도 같은 종류입니까?"
"기본 베이스는 같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축산사료는 우리가 원재료만 공급해서 다른 사료업체들이 만들고, 양식사료는 직접 만들거든요."
"돼지사료 공급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요즘 세계 농업판 돌아가는 것을 보니 영 불안해서요. 대두 값도 꾸준히 오르고 있고요."
"흠, 그러시면 다른 사료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제게 돼지사료를 구매하고 싶으시다는 건가요?"
"한국에 사료공장을 세우고 사료를 생산하겠습니다. 물론 해당사료는 국내에 유통하지 않고, 전량 본국으로 가져갈 겁니다. 명시해도 좋습니다."
류이엔은 자신 있게 말했다.
"지분은 제가 51, 회장님이 49로 하시죠. 초기자본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소소하지만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거고, 회장님 정치 지지도에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중국 오토…… 아니, 파트너가 이런 종합선물세트를 가져오면 제가 거부를 할 수가 없잖아요."
"하하, 그럼 받아주시는 겁니까?"
"네, 당연히 해야죠."
둘은 앉은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를 썼다.
"자본금은 얼마로 할까요?"
"2,000억 원 정도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어깨너머로 들은 한 후원회 노인 한 명이 슬쩍 웃었다.
"무슨 사료공장 하나에 2,000억이나 부어? 하여간 류이엔 회장 스케일도 대단해."
"과연, 우리 하수영후원회 명예 회원이 될 만한 자격과 배포가 있는 남자야."
"그런데 류이엔 회장이 돼지축산업도 했었나?"
"친척 중에 한 명이 중국 돼지축산계에서 2위인가 한다던데."
"중국 2위가 소소한 거로군."
***
기분 좋게 계약서에 서명도 했겠다, 다 같이 한잔하려고 움직이려는 때였다.
-마스터, 일본에서 온 급보입니다.
"일본?"
-도우야 초밥의 도우야 회장이 사경을 헤매는 중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