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29화
181장 금융의 종착역 (2)
수영사채는 무서운 속도로 영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에 시중은행은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가 가시질 않았다.
원래 시중은행 총예금이 약 3,000조 원이었는데, 거기에서 430조 원이 한순간에 수영사채로 넘어가 버렸으니.
당장 법정 지급준비율은 문제없다.
하지만 은행들은 신용도 유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그간 7%보다는 더 높은 준비율을 유지해 왔다.
자체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은행들은 정신없이 대출자들을 쥐어짜내고 있는 중이었다.
"더 이상은 대출 연장이 어렵습니다. 이번 만기일에는 전액 상환을 해주십시오."
특히 기업 대상 대출이 우선대상이었다.
적어도 수십억에서 수백억 이상 대출을 하는 기업 상품을 회수해야, 곳간을 넉넉하게 채울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기업 담당자들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그러지 말고 아예 오늘 당장 대출상환하는 것으로 하십시다."
"예? 아, 오늘 당장 상환 가능하신가요?"
"그럼요. 프리덤?"
-네, 고객님. 상환 계좌만 확인되면 지금 즉시 입금 가능합니다.
"상환 계좌번호 확인하고, 바로 처리해."
-확인되었습니다. 지금 처리했습니다. 대환대출 작업 완료되었습니다.
"그래."
그 자리에서 120억 원대 대출을 즉시 상환해 버린 기업 담당자는 미련 없다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은행원은 숨을 죽인 채, 옆자리의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일단 지금 또 120억짜리 한 방에 처리했으니까 이번 주 우리 영업 목표치는 전부 달성했긴 한데……."
"보통 만기연장 안 된다고 하면 고객들 다 뒤집어지는데, 대부분 너무 쿨하게 상환하고 있어."
"수영사채 때문이지. 거기서 대환대출 그 자리에서 바로 해주니까."
"방금 한화정밀 같은 회사는 1등급의 알짜배기 우량기업인데, 아무리 수신액 맞춘다고 하지만 그런 우량고객을 잃어도 되는 걸까?"
그게 은행원들의 걱정이었다.
자체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무작정대출을 쥐어짜 내기만 하는 게, 정말 올바른 걸까?
기업이 대출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담보와 신용, 그리고 상환능력이 확실하다는 뜻이다.
즉 우량고객이다.
금고를 채우기 위해서 우량대출 위주로 회수를 하고 있다 보니, 정작 좋은 고객들을 떠나 보내고 있지 않은가.
"본점에서는 지금 무조건 15% 이상 맞추라고 혈안이 되어 있다나 봐."
"은행 신용도 다시 올리겠다고 우량 고객들을 쫓아 보내는 건, 아무리 봐도 잘하는 짓이 아닌 거 같은데."
"어쩌겠어. 지금 높으신 분들이 다들 15%에만 미쳐 있는데,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야."
"올해 보너스는 물 건너갔구나."
"보너스가 문제야? 이러다가 영업소 또 줄줄이 폐쇄 들어갈 거 같은데."
***
430조 원의 시중 예치금이 일시에 빠져나갔다는 것은, 그만큼 시중은 행들이 430조 원의 여유 현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야 자체 기준을 맞출 수 있으니.
우량 기업, 우량 개인들을 대상으로 무지막지하게 쥐어짰고, 그로 인해 수영사채로의 탈출 러시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폭풍 같은 대탈출 러시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때에야, 시중은행들은 깨달았다.
"우리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니, 우량고객들을 이렇게 날려 보내면 대체 어떻게 하나?"
"아무리 위장이 텅 비어서 배가 고프다고 해도, 팔다리를 물어뜯어서 채우는 게 말이 되냐고!"
물론 밑의 직원들은 그런 높으신 분들의 질책에 억울할 뿐이었다.
'우린 그저 무조건 15%를 맞추라고만 해서 거기에 따랐을 뿐인데.'
'왜 이제 와서 우리한테 떠넘기기를 하는 건지.'
'아, 나도 수영사채 가고 싶다. 다음 공채는 언제 하려나?'
현재 수영사채의 수신액은 430조원.
은행 중 가장 높은 S은행의 350조원보다 80조 원 가까이 많다.
그것도 전부 사실상 개인 돈이나 마찬가지.
'수영사채가 대출뿐만 아니라 예금까지 받기 시작하면 정말 답이 없다.'
'그나마 자가예치율이 80%라는 게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시중은행들 전부 망했을 거야.'
'자기 예치금이 430조 원이니까… 수영사채는 일반예치금을 107조 원까지는 더 받을 수 있어.'
18개 은행의 총 예치금인 2,570조원에서, 앞으로 107조 원이 더 빠져나갈 수 있다는 소리다.
굳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할 필요도 없으리라.
프라임컴퍼니 직원 수천 명.
6만 명이 넘는 가맹점주.
의사 등 고소득층 직원이 3만 명 가까이 되는 청담수영병원.
그 밖에 수십만 명이 훌쩍 넘는 전국의 농민, 어민들.
그들이 앞을 다투어 주거래 은행을 옮기려고 할 테니까.
'IMF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은행업계에 다시없을 대위기다.'
***
-마스터, 병원 직원들이 수영사채로 모든 예금을 옮기고 싶어 합니다.
"굳이 이사장한테 잘 보이려고 개인 금융거래까지 제한받을 필요는 없다고 해."
-모두 자발적으로 거래 이전을 원하고 있습니다. 단체로 들어온 청원이 아니라, 개개인이 저를 통해서 수영사채로 옮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조직적인 독려가 없는 건 확실해?"
-네, 그렇습니다.
"흠, 왜 그러지?"
-국내에서 가장 훌륭한 직장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직원들은 어떤 식으로든 회사에 도움을 얹고 싶어 합니다.
한때 1위였던 서해서울병원과 청담수영병원은, 경운기와 페라리 정도의 차이가 난다.
누구라도 페라리를 타다가 경운기로 바꾸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주거래은행을 옮기지 않았다가 재단 눈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면?
직원들은 그런 불안함 자체를 없애고 싶어 했다.
장효주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병원 직원들이 전부 옮기면, 그럼 그 예치금이 얼마나 돼요?"
-약 5조 4,500억 원 정도입니다.
장효주가 놀라서 물었다.
"뭐? 병원 직원들 예금이 그 정도나 된다고?"
-총직원 수가 약 3만 명 가까이 됩니다. 본원, 분원, 그리고 병원선까지 다 합친 숫자입니다.
"그럼 한 명당 1.8억 이상씩 예금하고 있다는 말이야?"
-상위 500명은 평균 30억 원의 예금을 갖고 있습니다. 중위 2,500명은 평균 5억, 그리고 하위 90%는 평균 1억이죠.
하수영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자는 많이 못 주는데. 예대마진을 생각하면 말이지."
대출이자가 낮다는 것은, 그만큼 예금이자가 낮을 수밖에 없다.
"이사장한테 자발적으로 잘 보이고 싶은 거겠죠. 다른 병원하고는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나잖아요."
"프리덤, 그냥 다 받아 줘."
-네, 알겠습니다.
"이자는 많이 못 준다는 점 확실하게 못 박고, 그래도 예대마진은 챙겨야 할 거 아냐?"
-거의 0%에 수렴하는 이율을 책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게 싫으면 알아서 이사 자제하겠지."
그리고 결과는 생각 이상이었다.
직원들 99% 이상이 수영사채로 주거래은행을 바꾼 것이다.
사실 정식은행은 아니다. 은행 못지않은 금융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서, 언뜻 보기에는 은행으로 착각을 할 정도일 뿐.
물론 프리덤은 사금융업체임과 부도 위험성을 분명하게 공시했다.
하지만 교수들은 쿨했다.
-수영사채가 망해서 예금 지급보증을 못 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아니, 우리 정부는 뭐 멀쩡할 거 같아?
-전쟁 나서 한국 전체가 쫄딱 망해도 수영사채는 멀쩡할 텐데. 미국에 깔아놓은 기반도 엄청나잖아. 복구도 순식간에 가능할 거고,
-걱정 마, 걱정 마. 프리덤, 내 예금은 전액 수영사채로 옮긴다.
-수영사채가 망하는 상황이면 지구 전체가 대공황 이상일 거다. 확신한다.
청담에서 일하는 의사, 의료인력, 일반 직원들은 정보 습득과 판단, 행동력이 가장 빨랐다.
정서진과 정서희, 전성렬 등 경영진 다음으로 우르르 수영사채로 이동을 한 것이다.
그 다음은 프라임컴퍼니 직원들이 우르르 이동했다.
이들은 적금은 옮기지 않았지만, 일반 입출금 계좌는 수영사채로 전부 갈아탔다.
프라임웰빙, 프라임오일 등 다른 계열사 직원들의 이사 러시도 줄을 이었고, 농민, 어민들도 그 뒤를 이어 수영사채로 우르르 이동했다.
"하수영 농민 회장님이 개인은행을 설립하셨다고?"
-개인은행이 아니라 사채업입니다. 물론 일반 금융업무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자산 규모도 S은행보다 더 많고 재정도 탄탄합니다.
"아, 그런 복잡한 건 됐고, 아무튼 우리 농민 회장님이 은행 설립하셨으면 나도 그쪽으로 가야지."
"암, 그동안 받은 은혜가 얼마인데."
"지금까지 트랙터, 기름, 물탱크 헬기, 비료 지원 날름 잘도 받아먹어 놓고 은행은 안 옮기면 금수만도 못한 거여."
"수협 놈들 꼬라지 봐라. 저놈들을 어떻게 믿어? 이참에 우리도 수영사채로 모두 옮기자."
***
시중은행 중 농협과 수협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전국의 농어민들 대다수가 수영사채로 예치금을 옮겨 버렸기 때문이다.
농협과 수협은 파산을 하네 마네하는 정도 수준까지 내몰렸고, 정부에서도 두 은행을 살리기 위해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정말 두 은행이 망할 정도입니까?"
"다행히 마지막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자가예치율 80% 이상을 유지 해야 한다는 조항 말입니다."
430조 원 기준으로, 수영사채는 일반예치금을 107.5조 원까지만 받을 수 있다.
"농협과 수협에서만 50조 원 이상이 빠져나갔습니다. 수영사채는 더 이상 일반 예치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지금은 일반 예치를 계속 거절하고 있습니다."
"수영사채의 현재 일반 예치금은 86조 원 정도라고 합니다."
"왜죠? 107.5조 원까지는 받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내부적으로 예치준비율을 20% 정도로 잡았다고 합니다."
"예치준비율? 그건 또 뭡니까?"
"지급준비율의 대응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예치를 대비해서 총 수신가능한도의 20% 정도는 비워두는 거지요."
"……."
"……."
"총한도가 107.5조 원이니, 20%인 21.5조 원은 비워두는 거라고 보시면……."
금감원 임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부원장이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여러모로…… 수영사채는 우리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시중은행을 능가하는 사채업자라는 존재 자체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청담동 현금왕…… 정말 기세가 대단합니다."
누군가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러다가 나중에 국가예산도 넘어서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설마요. 아무리 그래도 개인 이 국가예산을 넘어서는 게 말이 됩니까?"
"에이, 말도 안 돼요."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뒤로 갈수록 다들 목소리에서 조금씩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
-마스터, 예치준비율이 현재 20.352%입니다. 농어민들은 물론이고, 우리 그룹 직원들이 더 이상 예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그들의 예치금을 받으려면 예치 준비율을 더 줄여야 합니다. 아니면 마스터의 예금을 늘려야 합니다.
80:20의 비율은 유지해야 하니까.
"아, 조만간 매물 또 몇 개 떨어질 거 같은데 그거 사면 그럼 예치준비율 더 깎아 먹겠네."
-네, 그렇습니다.
하수영 개인 돈이거나.
하수영이 지분 80% 이상을 가진 회사의 돈이어야만 한다.
그 외는 전부 외부 예치금으로 본다.
"어디 현금 찬스 좀 쓸 만한 거 없나?"
-일본과 중국에 버섯 포함 농작물밀어내기 좀 하시죠. 단기간에 어느 정도 현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해야겠네."
-그리고 이제부터는 돈을 아끼셔야 합니다. 그래야 일반 예치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더 많은 양식장, 농장, 식품업 창업준비인들에게 대출을 해줄 수 있습니다.
"밥장사 한 번 참 어렵다, 어려워. 우주전쟁보다 훨씬 더 난이도 높은 거 같네."
-때려 부수기만 하면 다 끝나는 우주전쟁과는 차원이 다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