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28화
181장 금융의 종착역 (1)
수영사채는 기업과 개인을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끌었다.
430조 원이 넘는 예치금은 전 국민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여의도에서도 수영사채의 규모를 보고 잔뜩 흥분했다.
국회, 증권가를 가리지 않았다.
"운용 현금만 430조 원이라니…… 이게 설립한 지 2년밖에 안 됐다는 그룹이라면 누가 믿겠어?"
"수영사채에서 그중 여신업에 활용 할 수 있는 비율은 얼마나 되지? 지급준비율을 떠나서, 계열사들이 상시 거래에 쓰려면 남겨놔야 하는 돈이 상당할 텐데?"
청담수영병원의 경우는 1조 2,000억 원을 예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병원이 '그룹 외부와 상시 거래하는 금액이 만약 3,000억원이라면?
수영사채도 그중 3,000억 원은 대출로 활용할 수 없다. 남겨놔야 한다.
"저거 근데 거의 다 그룹 내부 거래라서 상관없을 걸요?"
"그래? 거의 내부 거래야?"
"예를 들면 프라임컴퍼니 식재료는 거의 다 수영농장에서 매입하잖습니까."
프라임컴퍼니가 식재료 대금으로 몇천억을 지불하든, 전부 수영사채 내부 안에서만 이동한다.
수영농장 역시 수영사채에 계좌를 틀었으니.
타은행 송금 자체가 없다.
"프라임오일은? 프라임오일은 내부 거래라고 할 만한 게 있나?"
"프라임오일은 외부 정유사들이 주거래 기업이긴 한데, 돈을 주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이죠. 기껏해야 직원들 월급 정도나 외부 송금 대상이 되겠습니다."
"……."
"프라임오일이 가장 크게 돈 나가는 곳이 수영병원인데, 병원도 수영사채 울타리 안이고요."
"그럼 서진파운드리는?"
"서진파운드리는 돈 나갈 곳이 없습니다. 직원 월급이라고 해봤자 정서진 사장 한 명인데, 그 양반도 당연히 수영사채에 자기 모든 계좌 거래 돌렸고요."
서진파운드리 역시 반도체 회사들로부터 돈을 받는 쪽이지, 주는 쪽이 아니다.
"심지어 서진파운드리 예치금은 거의 대부분이 달러입니다. 외환 보유면에서도 수영사채는 정말 대단하죠."
"우리나라 외환 보유액이 지금 4,500억 달러 정도인데……."
"서진파운드리 혼자서 2,100억 달러를 예치했습니다. 아, 중국 황비버섯 농장에서 들어오는 돈도 달러라는 점을 빼먹으면 섭섭합니다."
"눈 찡긋거리지 말고, 보기 안 좋아."
"지금 현금 증가량이 살짝 주춤한 상태이긴 한데, 황비버섯 농장에서만 그래도 한 달에 100억 달러 넘게 들어올 겁니다. 14억 소비자들이 하루도 빼먹지 않고 황비버섯을 요리에 넣고 있으니까요."
"연기금이 지금 800조 원이 살짝 넘지? 농담 아니라 몇 년 안에 연기금 넘어서겠는데?"
"국회 영감님들이 군침 흘릴 만합니다. 재벌가 한 명만 당에 있어도 얼마나 살림이 펴는데, 이건 뭐 걸어 다니는 조폐제조기 아닙니까?"
"구의원으로만 머물기에는 모든 게 너무 아까운데. 구정 업무 처리하는거 보면 행정정치 감각도 뛰어난 거 같고."
"평범한 청년이 2년 만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는 없겠죠."
금융 관련 주가는 떨어질 만큼 떨어진 뒤, 이제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수영사채가 존재하는 한, 다시 상승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국내 은행들은 수영사채가 설립되면서 막대한 예치액이 빠져나갔다.
총 예치액 규모가 10년 전보다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 버린 셈이다.
"은행들 수난이 이게 끝은 아니겠지?"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지금 수영사채로 개인채무자들의 대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대환대출자들은 대부분 1% 미만의 이율을 적용받고 있었다.
때문에 대출상품 판매가 중단되기 전에, 너도나도 대출을 갈아타기 위해서 아우성이었다.
대출 자체도 매우 간단했다.
영업점을 방문할 필요 없이, 프리덤을 통해서 대출을 진행하면 된다.
그럼 프리덤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아서 처리해줬으니.
사용자 입장에서는 말 한 마디로 초저리의 대출을 받거나, 갈아탈 수 있는 것이다.
"수영사채에서 주택대출은 취급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인가?"
"네, 충분히 주택대출까지 취급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그 부분은 손을 대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주택대출을 초저리로 주면 집값상승할까 봐 그렇겠지. 강남 땅값뛰면 청담동 부동산 수집에 지장이 갈 테니까."
"아, 그렇네요. 하수영 의원이 청담동 부동산 수집가였죠, 참."
"그나저나 은행들은 큰일이군. 수영사채는 24시간 모든 업무가 가능한데, 심지어 창구 방문도 필요가 없는데."
"은행들은 창구 업무는 4시면 땡이니까요. 공휴일도 칼같이 쉬고요."
"은행 방문 쉽지 않은 직장인들은 이러다가 전부 수영사채로 갈아타는거 아닌지 모르겠어."
***
수영사채는 24시간 모든 업무가 가능하다.
프리덤이 전부 처리하기 때문이다.
본점 직원들은 출근해서 프리덤이 처리한 내역을 파악하는 게 업무의 대부분이었다.
금융 경력자들은 프리덤의 일 처리 내역을 보고 좌절에 빠지기도 했다.
"프리덤 엔터프라이즈 버전, 너무 말도 안 되게 업무를 잘하는데? 자기가 알아서 전부 다 하잖아?"
"이래서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본점 청소밖에 없겠어."
"이러다가 우리 전부 일자리 잃는거 아니야?"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들은 일자리 상실을 걱정했다.
그러나 프리덤이 그 걱정을 상쇄해 주었다.
-안심하십시오. 하수영 회장님은 사람의 일을 보조하기 위해 저를 투입한 것이지, 사람의 일자리를 뺏으려고 투입한 게 아닙니다.
"그, 그래?"
-일자리 상실이 걱정되신다면 고개를 들어 수영병원을 보십시오. 환자 반, 의료진 반인 곳이 바로 수영병원입니다.
"인턴의 하루 수면 8시간 이상을 보장하는 유일한 대형병원이라는 말은 들었어."
-실업자가 늘어나면 결국 수영농장산 농작물을 소비해줄 고객들의 구매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누구보다 하수영 회장님이 가장 깊이 이해 하고 있습니다.
"그 말 들으니까 조금 안심인데."
-1차적 이익만 생각했으면 국내농가들은 진작 전부 망했을 겁니다. 하지만 수영그룹에서는 유류와 비료, 트랙터와 담수헬기를 제공하는 등, 농가 보호에 정부보다 더욱 적극적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수영사채는 영업소 직원이 거의 필요 없다.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업무 영역을 위해, 5인 이하만 유지해도 된다.
하지만 하수영은 일정 규모 이상의 인력풀은 반드시 유지하고자 했다.
완벽한 무인화를 추구하는 것은 농장, 공장 정도.
그 외에는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기회를 굳이 뺏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
모든 수영사채 고객들이 0%대 이율을 적용받는 것은 아니었다.
"뭐? 3.25%라고?"
-네, 그렇습니다. 주인님.
"아니, 프리덤. 내 친구들은 죄다 0.8%, 0.7% 이런 이율이 나왔는데 왜 나는 3.25%야?"
-주인님은 우대이율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대이율? 그게 뭔데?"
-내부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입니다. 비공개 내역이기 때문에 저도 알려 드릴 순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3.25%도 타은행보다 0.2% 정도 낮습니다.
주변 지인들보다는 월등히 높은 이율이지만, 타은행에서 받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
그러나 0%대 이율을 기대했던 이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치였다.
"그러니까 그 우대이율 조건이 대체 뭐냐고!"
-수영사채에서 제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제가 알려드릴 순 없습니다. 다만 저 혼자서 추정을 해봤습니다.
"그래. 네 생각이라도 한 번 들어 보자."
-주인님은 수영식품그룹 상품을 평소 거의 이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뭐?"
-주인님은 수영농장산 생산물을 드시지 않으셨죠.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추정을 해봅니다.
"수영농장 식품을 애용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차별을 한다고?"
-차별은 아닙니다. 여전히 시중은 행들보다는 좋은 조건이니까요. 하지만 '추정' 우대 조건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
-하지만 주인님, 걱정하지 마시죠. 이율 조항을 보면 우대이율 적용자는 매달 갱신됩니다.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수영그룹 관련 상품 위주로 애용하시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너도 알잖아. 내가 건강 때문에 라면하고 참치 캔 같은 것은 안 먹는 거. 나도 라면하고 참치, 고기 같은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신두는 어떨까요?
"야, 신두는 급할 때 끼니 때우려고나 먹는 거지. 안 그래도 좋아하는 거 못 먹는데 삼시 세끼까지 신두로 때우는 것은 너무 살 맛이 안날 거 같은데?"
-그렇다면 엘릭서 드링크를 한 번 애용해 보시죠.
"엘릭서 드링크? 그게 뭐가 좋은데?"
-건강보조식품인데, 섭취자 전원이 100% 효능을 보았습니다. 특히 당뇨 환자들 같은 경우는 장기 복용 끝에 인슐린을 끊은 경우도 있고, 고지혈증 환자들도 혈액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진짜야?"
-네, 제가 확인했습니다. 진작 권해드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사용자가 먼저 '해결책'을 물었기 때문에, 떳떳하게 광고를 해도 된다.
하수영이 설정한 규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주인님, 라면과 고기, 참치도 좋아하시잖아요? 그렇죠?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냐? 하지만 내가 성인병 때문에 식단 조절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엘릭서 드링크를 주에 1, 2병씩만 복용해 보시죠. 그럼 주에 라면 3개, 고기 1.9kg 이상은 섭취하셔도 오히려 건강이 더 좋아지실 겁니다.
"……확실해? 그래 봤자 건강보조식품이잖아?"
-건강보조식품이니까 지금부터 꾸준히 드셔주셔야 더 큰 병을 방지할 수 있죠. 수영병원이 아무리 의료수준이 높아도, 병원은 멀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좋아. 그럼 지금 당장 황비버섯라 면과 참다랑어 캔, 그리고 엘릭서 드링크를 주문해, 예산은…… 20만 원 안에서 네가 적당하게 비율 조절해봐."
-알겠습니다. 최상의 효율로 구성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주문 완료했습니다.
그날 저녁 배송이 완료되었고, 프리덤이 다시 물었다.
-주인님, 구매 확정 처리할까요?
"그렇게 해. 근데 웬일로 구매 확정 여부를 물어보고 그러냐?"
-감사합니다. 구매 확정 완료했습니다. 아! 주인님! 수영사채에서 알림이 왔습니다! 주인님이 기다리시던 소식입니다!
"뭔데?"
-오늘부로 주인님한테 추가 우대 이율 0.1%가 적용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뭐? 그럼 내가 수영식품을 주문한 것을 보고 적용을 해준 건가? 아니, 그럼 수영사채는 내가 뭘 샀는지 훤히 보고 있단 말이야?"
-주인님, 제가 설명드렸잖아요. 금융거래와 우대조건에 필요한 모든 신용거래정보를 제공한다는 약관에 동의하셨다고요.
"아, 그랬긴 한데…… 그래도 이건……."
-그래서 제가 주인님의 뜻에 따라 오늘 구매한 내역을 수영사채에 전달해서 우대이율이 가능한지 확인을 했고, 그 대답이 온 겁니다.
그 말에 사용자는 안심했다.
수영사채가 동의 없이 무단으로 자기 카드 내역을 들여다본 게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오해를 한 것.
"아, 그래서 구매 확정 처리하냐고 물어본 거구나. 잘했다. 근데 이렇게 빨리 승인이 난다고?"
-수영사채는 프리덤 엔터프라이즈를 시스템 운영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와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게 빠르게 이뤄지죠.
"야, 그건 진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