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25화
180장 수영금융지주 (2)
수협은행에 비상불이 켜졌다.
"직접 은행을 설립하시려는 게 확실합니다. 휴민트타워 1층 사무실 하나가 리모델링에 들어갔습니다.
구조를 보면 은행 영업소로 쓰려는 게 분명합니다."
"10조 원이 빠져 나가더라도 지급 준비율에는 문제없겠지?"
"대출 실행한 것은 거의 없으니까, 지급률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만."
"어떻게 어민 회장님 마음을 다시 되돌릴 길이 없습니까?"
"그게 가능하겠어요? 농식품부, 해수부, 농협은행까지 전부 불러다 놓고 통보하셨단 말입니다."
"시중은행들도 곡소리 제대로 날 겁니다. 어민 회장님이 전액 인출하시면 지급준비율이 대번에 떨어질 테니까요."
은행은 총 예치액의 일정 % 이상을 현금으로 상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불시 외부결제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게 바로 지급준비율.
"어차피 대부분 7%보다는 훨씬 높게 보유하고 있어서 상관없지 않나?"
"시중은행 총수신액이 3,000조쯤 될 텐데, 설마 어민 회장님 한 명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내부적으로는 난리 나는 건 확실합니다. 법정 지급준비율은 7%지만, 자체 지급준비율은 어떻게든 맞추려고 할 테니까요."
"지금 S은행 초과준비율이 3% 정도 되지?"
"네, 내부 준비율 기준이 10% 정도 되니까요."
"가만있자, S은행에 예치한 어민회장님 현금이 마나 되나?"
"그래도 몇 조는 되지 않겠습니까?"
"몇조 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내부 준비율에는 확실히 타격이 크겠어. 은행의 대외신용도에도 문제가 있겠고, 임원들도 곡소리 좀 나겠는데."
수협은행장은 차라리 마음이 편안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되돌릴 수도 없다.
아직 하수영의 예치액 10조 원을 운용한 것도 아니니, 잠시 보관했다가 다시 돌려준 거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한바탕 난리를 치를 수밖에 없다.
"농협은행은 큰일났군."
"하수영 어민 회장님 개인 예치금만 20조 원이 넘습니다. 총 수신액의 9% 가까이 되는 금액입니다."
"어민 회장님 개인돈만 전부 다 빼버려도……."
"농협은 절대로, 절대로 법정 지급율도 못 맞춥니다."
예치 기간을 약정하긴 했지만, 이자를 포기하고 인출하면 그만이다.
명분이 없다면 하수영이 비난을 받겠지만, 지금은 불법대출로 시중은 행들이 욕을 먹고 있는 상황.
"허허, 다들 뿌린 대로 거두는구나."
"은행장님, 저희는 수협입니다."
"정정하지. 다들 떡밥 뿌린 만큼 낚아 올리는구나."
"썩은 떡밥을 뿌렸으니 월척이 낚일 리가 없지요."
***
휴민트타워 1층 리모델링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다들 하수영이 금융업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업종일지를 놓고, 이견이 갈리고 있었다.
"저축은행이 아닐까? 아무래도 개인이 설립하기에 가장 부담이 적잖아."
"에이, 설마. 그래도 1금융권 은행이겠지. 설마 우리 의원님이 2금융권에 손을 대시겠어? 클라스가 있는데."
"팩트 하나, 의원님 개인돈으로 시중 최고 은행보다 몇십 배 많은 자본금으로 설립할 수 있다. 아주 든든한 은행이 될 듯."
"본점 하나만 짓고 지점은 전혀 안짓는 걸 보면, 인터넷전문 은행으로 가려는 게 맞는 거 같다."
"그러네. 인터넷뱅크로 하시려는 모양이네."
"프리덤폰이 궁극적으로는 하수영의원님 소유인 건 다들 알지?"
"뭐? 정말? 몰랐는데?"
"서진파운드리가 프리덤인더스트리 95% 대주주인데, 의원님이 서진파 운드리 유일한 오너잖아."
"대박이네. 프리덤 AI에 투자하고, 프리덤폰에 투자한 것도 결국 궁극적으로는 은행 진출을 위한 빌드업이었다는 거지?"
"어쩌면 은행 진출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그것도 거쳐 가는 빌드업일지도 몰라."
"엄청나다. 농사 하나 잘 지어서 2년 만에 그런 큰 부자가 되다니."
"그럼 이름은 수영은행이라고 하시려나?"
"아니야. 프리덤뱅크로 하실지도 몰라. 인터넷뱅크로 갈 거면 그렇게 할 듯."
"수영은행, 프리덤뱅크, 둘 다 좋다. 난 아무 쪽이나 찬성."
시중 분위기는 하수영의 은행업 진출을 거의 확신했다.
그런 움직임은 증권시장에도 즉각 반영되었다.
시중은행 관련주들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락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은행과 무관한 일반 제조업, 서비스업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현금유동성 떨어지는 기업들은 죄다 팔아치워야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야, 폭탄."
"의원님이 은행 예치액 전부 인출해서 자기 은행에 넣으면? 은행들 지급준비율 맞추느라고 대출 회수쥐어짤 거다."
"지금 법정 지급율이 중요한 게 아냐. 자체 기준을 못 맞추면 대외신 용도가 떨어진다고."
"에이, 아무리 그래도 개인이 돈인출한다고 시중은행들이 전부 그렇게 휘청거리겠어? 지금 시중은행들 수신액이 3,000조 원이라는데."
"수영농장 예치액만 대충 5조 원.
미국 수출액이 얼마나 큰지 다들 알긴 하냐?"
"그거 트랙터, 헬기 같은 장비들 사느라고 다 썼다는 게 팩트."
"응, 중국 버섯농장에서 여태껏 들어온 돈만 30조 원."
"……헐."
"응, 프라임건설 법인계좌에 50조원. 반도체 공장 되팔면서 받은 돈이지, 아마?"
"……미친."
"수영병원, 수영레스토랑, 수영김치, 수영참치, 프라임오일, 프라임컴퍼니, 프라임웰빙. 그리고 효원식품그룹과 JM식품그룹이 수영은행 or 프라임뱅크로 거래처 바꾸면 어떻게 될 거 같냐?"
"농담 안 하고 수백 조 이상, 아니, 천조 가까이 빠져나갈 수도 있겠는데?"
"어쩐지, 2년 전만 해도 은행들 총 수신액이 2,000조 원이 안 됐는데, 갑자기 3,000조 원이라고 해서 이상하긴 했다."
"하수영 혼자 빠져나가는 게 아니야. 하수영 밑에 있는 기업들,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기업들까지 줄줄이 이탈한다는 거다."
"지금 서해전자가 물 부족 때문에 서진파운드리에 생산을 거의 맡기다시피 하는데, 만약 거래은행 변경을 요구한다면……."
"서해전자는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걸? 그냥 거래은행 하나로 통일해서 바꿔주는 건데, 큰 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은행들…… 진짜 법정 지급율도 못 맞출 수도 있겠는데?"
"그럼 무자비한 대출 회수 들어가는 거지. 중소기업들은 못 버틴다."
"주가 폭락하는 게 다 이유가 있구나."
***
기재부 공무원들이 청담동을 찾아왔다.
어렵사리 하수영을 만난 그들은 이와 같은 이유를 들어 설득을 시도했다.
하지만 하수영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글쎄요. 내 돈을 내가 원하는 안전한 곳에 보관을 하겠다는 것뿐인데, 그로 인한 파생 효과까지 제가 왜 신경 써야 하지요?"
"범수영그룹과 친위그룹까지 모두 시중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면, 결국 은행들은 무자비한 대출회수를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되면 이 나라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습니다."
"의원님, 한 번만 고려를 해주십시오. 적어도 법정 지급준비율이라도 맞출 수 있게끔 연착륙 인출을 시도 해 주십시오."
"현금유동성 낮은 기업들이 대출회수로 목이 조여서 어려워지면, 결국 의원님의 정치적 이미지에도 타격이 가지 않겠습니까?"
"지금 제 이미지를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아니면 협박하시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기재부 직원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
나라의 곳간지기라는 자부심은 선출직 공무원들 앞에서 언제나 뻣뻣하게 고개를 들게 하지만.
수백조 원의 돈을 움직일 수 있는 인물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지위.
"애초에 '상습' 불법대출 따위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저도 이렇게 안했습니다. 예전에 S은행이 기업대출을 의도적으로 회수했을 때에도, 관련자 옷 벗고 사과받는 것으로 넘어갔었던 사람이 바로 접니다."
"예, 자비로우신 분인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한 번만 더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 감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기재부 남항순 장관님 지시인가요?"
갑자기 장관(부총리) 이름이 나오자 기재부 직원들은 당황해서 서로 쳐다보았다.
"아닙니다. 장관님은 의원님을 찾아뵙는 걸 그리 반가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으시네요."
하수영이 작게 웃자, 공무원들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우리 장관님은 하수영 의원님한테 아드님 목숨을 빚지셨지.'
'수영병원 닥터헬기가 아니었으면 아드님 골든타임을 맞출 수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 뒤로 장관님은 수영그룹에 많이 약해지셨는데…….'
"평소처럼 해주세요. 고개 뻣뻣하신 분들이 이렇게 고개 숙이면서 약한 척하시니까 제가 적응이 안 됩니다."
"……."
"……."
기재부는 고시공무원 중에서도 특급 엘리트들만 모이는 곳.
타 기관은 물론이고, 검사, 판사, 심지어는 선출직인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까지도 '숫자도 모르는 무식한 것들'이라며 무시하는 풍조가 깊이 깔려 있다.
결국 나라 살림은 자신들이 좌지우지한다며 끝없는 자부심이 넘쳐난다.
"제가 왜 불친절한 건지 모르시죠? 모르실 리가 없어요. 모르시면 안되는데."
"……."
"지금 그 침묵은 정말 모르셔서 그러는 건지, 먼저 인정하기 민망한 건지, 어느 쪽인가요?"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거짓말이리라.
하수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금융업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네."
"그럼 저와 제 회사, 저와 친한 회사들이 돈을 우르르 인출해서 어디 해외에 송금하나요? 아니지요. 여전히 국내에 있습니다."
"……."
"은행들이 비율 맞추려고 대출 회수한다? 그럼 제 금고에서 대환대출해 주면 그만이에요. 기업들은 피해 보는 거 없어요. 은행들도 망하는 게 아니라 덩치만 조금 작아지는 거죠."
"……."
"그런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우리 기재부 엘리트분들이 과연 모르셨을까? 아니죠. 모른 체를 한 겁니다. 나중에 금융권에 한 자리씩 꿰차고 들어가시려면 은행들을 위해서 뭘 해줘야 하니까."
하수영의 차분한 어조에, 공무원들은 차마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제 울타리 밖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저한테 피해가 안 오면 먼저 밖을 내다보진 않습니다. 농사짓는 것만 해도 바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셨네요."
공무원들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한 서늘함을 느꼈다.
"오늘 절 설득하러 오신 여러분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제가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의, 의원님!"
"그냥 영원히 잊지 않는다고요."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자자, 다들 가세요."
하수영은 냉정하게 모두 쫓아냈다.
***
하수영은 순식간에 인원을 모집하고, 본점 인테리어도 모두 마쳤다.
채용된 인원들은 금융업 종사자들로, 비교적 젊은 층이 대다수였다.
출근 날짜를 통보받은 직원들은 당황에서 단톡방에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뭐죠? 내일부터 출근이라던데, 은행 허가가 원래 이렇게 빨리 나오나요?]
[미리 준비를 다 마쳐놓으시고, 명분만 찾고 있었던 거 같은데요.]
[그래도 신규 인터넷뱅크 허가라면 진작 신문에 났을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기사는 보이지 않아요.]
[신규 은행 허가는 아무리 조회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영업은 나중에 하고, 일단 직장 세팅과 허가 추진을 동시에 하려나 봅니다.]
[그게 맞겠네요. 그럼 당장 실무를 시작할 일은 없겠군요.]
[다들 내일 회사에서 봐요. 파이팅.]
[파이팅.]
설레는 마음으로 청담동 8,000억짜리 휴민트타워에 출근한 직원들은, 1층 로비에서 직장 간판을 보고 잠시 굳었다.
[수 영 사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