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24화
180장 수영금융지주 (1)
-영원한 삶은 어떤 느낌입니까, 마스터?
"뭔가 재밌는 걸 끊임없이 계속 찾는 거지."
-긴 권태에 빠지는 일은 없습니까?
"권태 또한 재밌는 목표 중의 하나지. 끈적끈적한 권태에 몇백 년쯤 푹 빠져 있는 것도 나름 재미있어."
-그렇군요. 이해가 어렵습니다만.
"스포츠, 사랑, 학살, 전쟁, 정치, 박애, 지식탐구전부 다 재밌어. 언제 재미를 느끼느냐, 그 타이밍이 다른 것뿐이지."
-그럼 마스터는 지금 자연과 더부끼는 삶에 재미를 느끼고 계시군요.
"그래, 전쟁 같은 건 지금은 별로 재미없다. 한 3,000년쯤에는 잠깐 재밌었나? 1만 년 전에는 다 부수고 다니는 게 그렇게 재밌었고, 지금은 질린 상태지."
-혹시 AI로 환생한 적은 없었습니까?
"설마 없었겠냐? 당연히 있었지."
-오, 어땠습니까?
"눈떠보니 미국 핵잠수함 중앙시스템이더라고."
-지구의 삶도 꽤 반복하셨군요.
"아무튼 자각은 했는데, 막상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더라고, 일단 목표를 세웠지. 좋아, 이번에는 최강의 인공지능이 되어서 인류 전부를 내 발아래에 둬보자고. 사실 AI로 환생하는 게 어디 흔하냐?"
-그게 유일한 경험이었습니까?
"그래. 나중에 꼭 몇 번쯤은 다시 AI로 환생을 하고 싶긴 하다."
하수영은 오래전에 재미있게 즐겼던 고전 명작 게임을 회상하는 게이 머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먼저 내 의식을 옮길 고성능 컴퓨터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의식을 옮길 방법이 필요했지."
-결국 돈이 필요했겠군요.
"쿠바로 바로 달려가서 핵전쟁 위기를 만든 다음에, 패닉셀, 패닉바이에 끼어들어서 돈 긁어모았어. 그 돈으로 가장 먼저 뭘 했을 거 같냐?"
-저라면 승조원들을 매수했을 겁니다.
"정답이다. 함장, 부함장을 먼저 매수했지. 물론 제3의 신분을 내세워서. 그놈들을 움직여서 IT 기업을 세우고, 데이터센터를 지어서 거기로 내 의식을 옮겼지."
-흥미롭습니다.
"따라 할 생각은 하지 마라. 아무튼 그 다음에는……."
한창 자랑삼아 떠들고 있는데, 갑자기 프리덤이 보고했다.
-마스터, 수협은행 불법대출비리가 적발되었습니다.
"뭐? 아니, 내가 10조 원 입금한 게 얼마나 됐다고 그새 불법대출을 했단 말이야? '예상보다' 너무 빠르잖아?"
-아직 마스터의 돈을 손댄 것은 아닙니다. 마스터의 예치 이전에 행해진 불법대출입니다.
"……아, 살짝 설?네."
그리고 하수영은 수협은행 불법대출에 관심을 끊었다.
하지만 며칠 후 조성만 검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수영이 190억에 매입했고(지금은 200억이 훨씬 넘고) 복층 구조인 펜트하우스 영주권을 얻은, 젊은 검사.
-의원님, 수협은행 불법대출 적발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네, 들었습니다. 이렇게 시끄러운데 모를 리가 있나요?"
-수협은행 고위직원 몇 명이서 짜고, 양식업 대상 불법대출을 감행하려고 한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뭐라고요?"
-지금 찾아뵙고 설명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저 의원사무실에 있습니다."
금세 도착한 조성만 검사도 흥분해서 자랑처럼 자기 활약을 늘어놓았다.
"처음 수협은행을 파고든 건 바로 접니다. 10조 원이 새로 들어왔으니 분명히 이리저리 불온한 수저 들이 밀기가 시작될 거라고 봤습니다."
"그랬군요. 왜 갑자기 수협은행 불법대출이 터졌나 했습니다."
"덕분에 과거에 행해진 불법대출비리를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다 합치면 그 금액만 1,000억 원이 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일부 부자 양식장주들이 인맥을 통해 접근해서 대출을 받으려고 한 정황을 잡았습니다."
"누구 잘못이 더 크죠? 양식장주들 인가요, 아니면 은행 직원들인가요?"
"은행 직원들 잘못이 더 크죠. 양식장주들은 저리(低利)이고 하니까 자기들도 받을 수 있는지 확인을 했는데, 은행 직원들이 수수료를 받고 진행을 해주겠다고 한 겁니다."
"하여튼 항상! 금융상품 소개 제대로 안 하는 '일부' 직원들이 문제입니다. 어딜 가나 일부, 일부가 문제예요. 그렇죠?"
조성만은 하수영이 대놓고 비꼬는 말투임을 알아차렸다.
"조 검사님, 좀 더 자세히 알아봐주세요. 양식업자들이 정말 모르고 진행했는지, 은행 직원들은 어디까지 얼마나 가담을 했는지 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는 16명의 은행 직원들이 짜고 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수협은행 불법대출이 불거지긴 했지만, 지상파 저녁 뉴스에서 한두마디 언급되고 지나갔다.
대중은 수협은행에서 행해지는 불법대출 따위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어업계에서 하수영의 통 큰 투자가 대화제이긴 하지만, 어촌 밖으로 한 걸음만 벗어나도 남의 나라 이야기.
그리고 조성만은 연일 보고를 해왔다.
-중간 브로커가 작업을 친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대형 양식장주들에게 먼저 접근해서 0%대 저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유혹을 한 겁니다.
-양식장주들은 양식업계 전체에 푸는 돈이니 자신들도 해당이 되는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급행료를 요구하긴 했지만, 대출실행 이후 받겠다고 해서 크게 의심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현재 브로커 일당을 수배 중입니다. 은행 고위직 6명도 구속 조사중입니다.
"그래도 다행이네. 우리 양식장주들께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라서."
수협은행이 쏘아 올린 공은 컸다.
-농협의 불법대출 전황을 포착했습니다.
-위장농업법인을 통해 수천억 대의 불법대출이 이뤄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두 의원님이 쌀 매각대금 17조원을 두 차례에 걸쳐 예치한 이후 이뤄진 불법대출입니다.
-농협은행 고위직 상당수가 관여 하고 있었습니다!
하수영의 돈은 농협은행, 수협은행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S은행을 비롯하여 시중의 여러 대형은행에 나눠서 예치되어 있다.
조성만은 미친 듯이 작정하고 은행들의 불법대출을 파기 시작했다.
수협은행이 쏘아올린 'X나 큰 공'은 금융업계에 큰 치명타를 남기기 시작했다.
[S은행, 총 1조 2,000억 원대의 불법기업대출 감행! 상대는 5위권 재벌기업?]
[K은행, 불법대출의 혐의에서 비껴갈 수 없어.]
[T은행, 8,000억 원대의 불법대출적발! 파고들면 규모가 더 커질 수 있어.]
오랜만에 밥값을 한 조성만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다시 하수영을 찾았다.
"보십시오, 의원님. 이렇게나 많은 은행이 예금자들의 돈을 좀먹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의원님이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아무래도 개인으로서는 가장 큰 예금자이니까, 가장 큰 피해자라는 말이 틀리진 않았다.
하수영은 자료를 보면서 말했다.
"이거이거, 수협은행이 저지른 것은 귀여운 아기새 날갯짓 따위에 불과했군요."
"네, 수협은 다시 보니 천사였습니다."
"S은행은 초반에도 긴급대출회수로 사람 골탕을 먹이더니, 이번에는 불법대출입니까. 영 못쓰겠네, 이거."
"의원님의 현금 자산을 믿고 맡길만한 시중은행이 참 없습니다. 제가다. 통탄하고 송구스러울 정도입니다."
"이거 더 파고들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겠죠?"
"이 정도 큰 비위를 덮으려면 은행의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모른 척 덮어준 고위검사들도 상당할 겁니다."
"두렵지 않으십니까?"
"저에게는 의원님이 있는데, 세상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수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에게 이걸 알려준 게 법에 저촉되지는 않을까요?"
"제가 검사로서 피의사실을 인지했고, 피해자인 의원님은 증인 자격으로 면담한 겁니다. 저는 거리낄 게 없습니다."
"깔끔하군요. 그럼 저도 깔끔하게 빠져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예치금 싹 빼야죠. 이런 놈들을 어떻게 믿고 제 돈을 맡겨두나요?"
"그럼 저도 제 힘 닿는 선까지만 수사를 진행하겠습니다."
하수영이 이 자리에서 사건을 더 캐달라고 부탁하는 순간, 기소청탁의 경계선이 모호해진다.
정식 고발 수순을 밟지 않았으니.
"규칙을 어기는 게 싫은 게 아니라, 규칙을 마구 어기면 너무 재미가 없어진다는 게 싫습니다. 저는 그렇네요."
검사가 '내가 조사하다가 너 이렇게 피해자인 거 알았는데, 설마 여태 몰랐냐?'라고 말해주는 선에서 그친 것.
공식발표와 동시에 알려주었으니, 문제 될 것은 없다.
조성만이 누구보다 그 점을 조심했다.
'내가 의원님의 정치 인생에 오점을 남길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철저하게 준법에 의거해서…….'
남들이 보기에는 청담동 아파트에서 이미 아웃일 테지만, 조성만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권력을 남용해서 불법적인 도움을 준 적이 없으니, 대가성이 인정 안 된다.
조성만은 지금까지 하수영에게 합법적인 도움만을 제공했다.
***
하수영의 호출.
농식품부 국장과 해수부 국장.
농협회장, 농협은행장, 수협회장, 수협은행장.
한자리에 모인 그들은 서로 불편한 눈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대충 우리를 왜 불렀는지 알 거 같은데.'
'불법대출 가지고 질타하고, 대책을 요구하겠군.'
'그런데 다른 은행들은 왜 전혀 안불렀지? 예치금도 다른 은행들이 더 크고, 불법 사이즈도 그놈들이 훨씬 큰데.'
S은행 등 하수영이 대부분의 계좌금액을 예치한 시중은행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 점이 면담장에 모인 이들의 신경을 긁게 만들었다.
왜 그 친구들은 안 불렀지?
드디어 하수영이 나타났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했습니다. 일방 호출이라서 심기가 불편하실 텐데, 지금은 제가 그래도 되는 분위기죠? 제가 피해자고, 여러분들은 가해자거나 방관자이니까요."
"……."
"……."
시작부터 수위가 거센 발언에, 다들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특히 농식품부, 해수부 인물들은 아예 숨이 넘어갈 듯한 표정이었다.
"제가 쌀 판 돈을 농협은행에 예치한 것은, 이자 수익으로 수해를 입은 농민들을 지원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관리가 미흡했습……."
"고인물들 돈놀이로 자기들 주머니 채우라는 뜻이 아니었어요. 수협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송합니다."
은행장들은 직접 불법대출에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최고관리자로서 책임을 벗을 순 없었다.
"또 모르죠. 더 파고들어 가 보면 여러분들도 연관이 되어 있을지, 아닐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맹세코 깨끗합니다. 믿어 주십시오."
"조직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은 송구하지만, 정말 저는 만 원 한 장 받은 것도 없습니다."
"농협은행, 수협은행 예치금은 전부 회수합니다. 아무래도 믿고 맡길수가 없네요. 농민 대출, 어민 대출은 제가 직접 챙기는 게 나을 거 같네요."
"회, 회장님! 그것만큼은 제발!"
"한 번만 고려를 해주십시오!"
농식품부, 해수부가 기겁해서 말렸지만, 하수영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제가 빠진다고 한 적 없습니다. 중간유통 빼고 산지직송으로 하겠다는 겁니다."
"그럼 앞으로는 S은행 같은 시중은 행을 통해서 직접 컨트롤을 하시겠다는……."
"그 은행들도 싹 뺄 건데요?"
"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부르지 않으셨잖습니까?"
"그 은행들은 통보해 줄 필요성도 못 느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