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711화 (711/1,270)

프랜차이즈 갓 711화

177장 물과 반도체 (5)

"저도 샀어요. 프리덤폰."

장효주가 자랑스럽게 새 폰을 이리 저리 들어 보였다.

"진짜 마음에 들어요. 래플폰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거 같아요. 디자인만 조금 더 다듬었으면 좋을 텐데."

"디자인이 약간 별로인가요?"

"네, 조금. 아, 그래도 이것도 예뻐요. 래플폰의 감성에는 조금 부족할 뿐이죠."

장효주는 새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오늘 막 도착해서 이제 뜯은 따끈따끈한 신상이에요."

"원래 신상은 좋은 거죠. 저도 신상 좋아합니다."

"수영 씨가 건물 말고 뭘 좋아하는 건 딱히 못 봤는데요. 차도 별로 안좋아하시잖아요."

"제가 퍼포먼스 캠핑카를 얼마나 아끼는데요."

"그냥 쓸 만하니까 타고 다니는 느낌이지, 애착을 가진 것 같진 않아 보이던데요."

장효주는 폰을 잠시 내려 두고 하수영의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사업 벌이는 건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것저것 계속 문어발처럼 잔뜩 벌이는 거 아니에요?"

"이것저것 벌이는 게 아니라, 음식점을 하다 보니 부수 사업에 자꾸 손을 뻗게 되더군요."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음식점이 여간 힘들고 복잡한 게 아니네요."

"어떤 점에서요?"

"나중에 건물주한테 가게 안 뺏기려면 내 건물이 있어야지, 경쟁력 갖추려면 나만의 식재료를 키울 농장과 양식장, 목장이 있어야지……."

"……."

"유통 업체한테 갑질 안 당하려면 자가 유통망도 있어야지, 혹시라도 영업 중에 손님이 쓰러질 경우 생각해서 곧바로 이용할 수 있는 내 병원도 있어야지."

"잠깐만요. 병원이 왜 거기서 나와요?"

"그뿐인 줄 아세요? 예전에는 음식점 하다가 기자하고 시비붙으면 장사 접어야 했어요. 기자가 앙심 품고 나쁜 기사 쓰면 억울하게 손님 다 떠나보내야 했거든요."

"……그건 저도 들었지만,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

"요즘에는 자칭 파워 블로거니 스트리머니 하는 사람들한테 잘못 보이면 훅 가요. 내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없거든요."

하수영은 정색을 하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프리덤 덕분에 억울한 일을 당해도 소비자에게 목소리를 낼수 있죠."

수영식품그룹에 대한 선동, 루머, 날조가 퍼져도 프리덤을 통해서 바로 잡을 수 있다.

언론사들이 되도 않는 헛소리 기사를 죽어라 내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이유다.

"……프리덤 출시한 게 그거 때문이었어요?"

"원래는 매장 결제용으로 도입을 했는데, 막상 서비스 확장을 해보니 좋더라고요."

"……."

"근데 프리덤이 오픈 마켓 앱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또 견제가 잔뜩 들어와요. 할 수 없이 프리덤 전용 폰 출시를 해야 했죠."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모바일 사업까지 하게 됐잖습니까. 한국에서 음식점 운영하는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

"그냥 건강에 좋고 맛있고 값싼 음식을 널리 팔려고 했을 뿐인데, 챙겨야 할 밑 작업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수영라면이 싸지는 않…… 하긴, 그 구성에 35,000원이면 엄청 싼거긴 하네요."

"폰 하나 만들려니 부품 가지고 여기저기서 하도 갑질을 해대니, 결국 반도체까지 손을 뻗을 수밖에 없더군요."

"그러니까 지금 수영그룹이 문어발이 된 것은 음식점을 잘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이런 말이에요?"

"바로 그렇습니다."

빌딩, 프리덤, 스마트폰, 반도체, 병원.

그 모든 게 음식 장사를 잘해보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거다?

"가급적 국가 간 이익이 부딪치는 첨단 기술 산업에는 손을 안 뻗으려고 했지만, 현대 문명에서는 음식 장사도 잘하려고 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얽히게 되는 거 같습니다."

"전 수영 씨 의식의 흐름이 더 대단한데요. 그럼 드라마하고 영화는요?"

"미디어를 지배하면 광고 노출이 막히는 것을 예방할 수 있죠."

"광고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광고 노출이 막히는 것을 예방한다고요?"

"경쟁자들이 미디어 먹고 광고 노출 자체를 막아버릴 수도 있잖습니까."

"그, 그러네요."

"음식 장사와 전혀 연관이 없다면 저도 미디어 쪽에는 손을 안 뻗었을 겁니다. 지금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건데요."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그 정도면, 제대로 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예요?"

하수영은 대답 대신 어깨를 천천히 으쓱했다.

마치 정말 알고 싶냐고, 몸짓으로 물어보는 듯하다.

장효주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냥 말 안 해도 뭔지 알 거 같아요."

"저는 음식집 주인 겸 자영농이라는 초심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요, 초심."

항공모함 2척과 반도체 회사를 거느린 식품 재벌.

이쯤 되면 주객이 전도된 게 아닌가 싶지만.

그때 주효정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나타났다.

"어머, 수영 씨.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닙니다. 드라마 촬영은 잘 되시나요?"

"그럼요. 지금 시청률 고공 뚫고 있죠. '맨 프롬 콜롬비아' 만큼은 아니지만."

태왕 담덕.

중국 자본의 동북아공정 드라마를 박차고 나온 주효정은 고구려 사극을 통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하수영의 투자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우리 드라마도 엄청 잘 빠진 건데, 그래도 수영 씨 주연 카드에는 못 당하네요. '맨 프롬 콜롬비아', 지금 2천만 관객 돌파했다고 들었어요."

"손익분기점에는 한참 멀었습니다."

"그것도 들었어요. 배급사와 극장만 배를 불려 주고 있는 상황이라면서요."

3,000억 원이 넘는 영화 매출이 나왔지만, 배급사와 극장만 돈을 벌고 있었다.

투자자인 하수영은 여전히 적자 상황.

"다음에는 저하고도 같이 영화 찍어요. 드라마가 장편이라서 부담스럽다면요."

"글쎄요. 제가 원래 뭔가를 한 번하고 나면 다른 데 눈이 돌아가는 타입이라……."

"사랑도 그래요?"

"노 코멘트하지요."

주효정까지 온 터라 메뉴를 주문했다.

휴민트타워 레스토랑은 이제 셋이 모이는 고정 포인트였다.

"수영 씨, 근데 1층에 있는 훈민정음 창제 일지 그거 진짜인가요? 다들 진짜라고 하던데."

"에이, 만들어진 지 백 년도 안 된 모조품이에요. 원본은 다른 곳에 있죠."

"그건 문화재청의 삽질이라면서요. 아무리 봐도 저게 원본이라고 다들 그러던데."

"저도 원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탄소 연대 측정에서 그리 나왔으니까요."

"만약 저게 원본이라면 가치는 어느 정도나 할까요?"

"얼마 전에 중국인 한 명이 100억달러를 부르더군요."

"100억 달러!"

주효정은 물론이고 장효주도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숫자로 들으니 실감이 나는 모양이었다.

"효주야, 우리 우정 평생 가는 거다?"

"왜 설레발이야. 언니는."

"그래도 이번에 둘이 키스도 했잖아."

"그건 영화고."

"아무튼, 평생 가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설마 팔 건 아니죠?"

"안 팝니다. 파는 물건이 아니에요."

"그렇게 큰돈을 부른 걸 보면 정말 원본이 맞긴 한가 봐요? 문화재청도 그거 알아요? 거기는 뭐라고 해요?"

"감정 다시 받아보자고 요즘 애걸 복걸하는데, 제가 다 쳐내고 있습니다."

수프 요리가 먼저 나왔다.

10개의 수프 접시가 각자의 앞에 놓였다.

물론 하수영은 8개였다.

"어디서 100억 달러 호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또 들어가지고, 하여튼 공무원들은 사람 귀찮게 하는 뭔가가 있어요."

"설마 이제 와서 뺏기지는 않겠죠? 저번에 서락산에서 출토됐던 유물들은 전부 나라가 뺏어갔잖아요."

"보상금을 받았으니 괜찮습니다. 원래 국고 귀속이기도 했고요."

"아, 맞다. 저도 프리덤폰 샀어요.

이거도 수영 씨가 투자했다면서요?"

"네, 감사합니다. 주변에도 적극 권유해 주세요. 톱스타들이 많이 써야 잘 팔리죠."

"네, 인스타에도 많이 노출할게요."

식사를 하면서, 두 여자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빨리 말해. 어서.'

'언니가 말 안 하고? 내가 해?'

'그럼 내가 하리? 네가 해야지.'

'알았어. 일단 밥은 먹고.'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자, 장효주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말을 꺼냈다.

"수영 씨, 이번 금요일 저녁에 혹시 스케줄 있어요?"

"스케줄이야 항상 있죠."

"그럼 시간 좀 낼 수 있어요? 연예계 동료들끼리 모여서 파티하기로 했는데, 수영 씨도 와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면 다들 불편해하지 않을까요?"

주효정이 큰일 날 소리라는 듯이 과한 동작으로 손사래를 쳤다.

"불편하다! 수영 씨 온다고 하면 다들 꽃단장하고 몰려들 거예요. 남자고 여자고 간에."

"음, 조건이 있습니다."

"뭔데요?"

"요리 제가 준비하게 해주시죠. 낯선 사람들한테 요리 대접하는 게 취미라서요. 연예계 동료들이면 홍보도 되고."

살짝 긴장했던 장효주가 배시시 웃으며 끄덕였다.

"알았어요. 뷔페는 그럼 취소하고, 수영 씨한테 부탁드릴게요."

***

-조만간 천만 고객을 돌파할 예정입니다. 이 기세라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좋았어."

정서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출시하자마자 천만 유저 달성이라니.

기세가 아주 좋다.

"이대로라면 내년 안에는 확실하게 우리나라 시장은 장악하겠는데.

-이제 저렴한 보급형 모델도 슬슬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델지… 아니, 모바일 개발팀은 아직 멀었지?"

프리덤 인더스트리의 인력은 전부 델지전자 모바일 사업부를 인수했다.

-경영진이 방향성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어서 문제는 없을 거 같습니다. 개발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델지그룹 임원진이 문제였던 거 같습니다.

"크로스로 돌아가는 이중 화면 폰이나 만들라고 하는 사람들이 뭘 안다고, 대가리들 다 쳐내니까 확실히 제대로 돌아가는구나."

-그리고 쿠글이 CMS 라이선스 인증 비용을 75센트에서 2달러로 올렸습니다. 다른 안드로이드 업체는 여전히 동일합니다.

"뭐? 우리만 2배 넘게 올린 거야?"

CMS 라이선스.

폰 단말기 단위로 쿠글에 비용을 지불하고 얻는 라이선스로, 인증을 받아야 쿠글 앱마켓과 쿠글맵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운영체제는 프리덤이 맡아서 한다지만, 저 둘이 있어야 폰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다.

"왜 우리만 콕 집어서 2달러로 올린 거지?"

-안드로이드폰의 경쟁자가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차라리 CMS 라이선스를 포기하면……."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서 지도 정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OS와 단말기를 해결했다고 끝이 아니군."

-네,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입니다.

마켓에서 파는 앱 대부분은 프리덤이 스스로 대체할 수 있다.

캘린더라든가, 가계부라든가.

하지만 UCC앱, 지도앱, 특정 이용자들이 몰리는 커뮤니티앱은 안 된다.

그 앱을 통해서 앱 사용자들과 소통을 하는 게 본질이기 때문이다.

"누적 컨텐츠는 기술과 돈만으로는 대체가 안 되는구나."

-대부분의 앱은 마켓 외 시장에서 제가 따로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UCC와 지도는 라이선스를 받아야 합니다.

"해킹으로 뚫을 순 없나?"

-가능합니다만, 할까요?

"농담이다. 절도는 안 되지. 쇠고랑 찰 것도 아니고."

인증 비용 상승. 그것도 콕 집어서.

분명한 저격이다.

-주인님, 모바일 사업이 성공하려면 결국 쿠글을 넘어서야 합니다. 쿠글은 이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쓰러뜨려야 할 보스 중 하나입니다.

"다른 보스들은 또 뭐가 있는데?"

-다른 보스들은…… 아, 지금 쫄보스 하나가 연락을 했습니다. 만나자고 합니다.

"쫄보스?"

-서해전자 반도체 사업부입니다.

***

정서진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이문석 사장은 서론을 금방 끝내고, 잔뜩 굳은 표정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 반도체 공정 기술, 아직 특허를 내지 않았다고 했지요?"

"네, 그렇습니다만……."

"우리 회사에 주십시오. 그럼 기술 매입비로 2,000억 원, 로열티로는 매출의 15%와 순이익의 30% 중 더 높은 금액, 이와 별도로 매년 500억 원을 추가로 드리겠습니다."

이문석은 당연히 정서진이 기술권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파격적인 조건이라면 절대로 넘어오지 않을 수……!'

"오, '서해전자치고는' 정말 세게 불렀군요. 하루 만에 납품을 완료한 것이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고객님."

"그렇습니다.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술은 팔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부족합니까? 매입비로 3,000억원, 로열티로……."

"유감입니다. 저는 서진파운드리에 뼈를 묻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서해물산이 준공한 고급 빌라 단지도 통으로 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런 말씀을 아무리 하셔도……."

그때 스마트폰 액정에서 프리덤이 요란하게 손짓을 했다.

정서진은 얼른 폰을 들었고, 프리 덤은 그만 볼 수 있게끔 글자를 만들었다.

[청담동 빌라 단지입니다.]

그는 얼른 타이핑을 했다.

[그래서? 겨우 그거에 입자 집합명령 장치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라고? 말이 안 되잖아.]

[물론 말이 안 되죠. 하지만 청담동 건물이 화제로 나온 이상 마스터에게 반드시 보고는 드려야 합니다. 선보고 후조치해야 합니다.]

[알았어, 보고해.]

[네, 보고했습니다.]

거짓말 않고, 3초도 지나지 않아서 하수영한테서 답변이 왔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정서진은 얼떨떨했다.

당연히 기술을 팔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서해전자를 무너뜨리려고 서진파운드리를 세운 것이니.

그 부분은 염려가 안 된다.

하지만 곧장 달려온다는 것을 보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청담동 부동산은 진짜 못 참으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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