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10화
177장 물과 반도체 (4)
[서진파운드리, 서해전자 차세대 D 램 생산에 돌입하다!]
[서해전자, 부족한 생산 캐파 부담덜기 위해 위탁 생산 발주! 전례가 없는 일!]
[서진파운드리, 서해전자의 을이 되다!]
[서해전자, 서진파운드리의 고객사되다?]
12조 9,600억 원에 달하는 파운드리 계약.
어디에 소식을 흘리지도 않았는데, 계약을 하자마자 곧바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서진은 온도가 180도 달라진 언론의 찬양 분위기에 정신이 얼떨떨했다.
"이것들,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죽으라고 우리 회사 까놓고는."
-우리 회사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서해전자를 위해 재롱을 부리는 겁니다.
[서진파운드리, 같은 한국 기업인데 그래도 가격에서 조금이라도 편의를 봐줄 수는 없었을까?]
[차라리 남보다 못한 한국 기업.]
[서해전자, 너그러이 계약 조건을 수락하다.]
[서해전자는 지금 물 부족 사태로 인해 반도체 공장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 문제에 처했다.
반도체 공정에는 대량의 물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략.
익명의 업계 종사자의 말에 따르면, 서해전자 반도체 공장이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100만 톤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서해전자는 하루에 50만 톤에도 미치지 못하는 물을 공급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원시와의 갈등 역시…… 중략…….
서진파운드리는 이런 서해전자의상황을 이용해 파운드리 계약에서 유리한 조건을 거침없이 밀어붙일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기사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주인님.
"그렇군. 우리를 찬양하는 게 아니었어. 기자들이 그럼 그렇지, 뭐."
-신문사에 광고를 집행하면 그때부터는 찬양 모드로 돌변할 겁니다만,
"괘씸해서라도 절대로 그놈들하고는 타협하지 않겠다. 아니, 무슨 100만 톤이나 필요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물이 많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100만 톤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다.
-당연합니다. 그게 마스터가 세운 그룹의 중심 전략이니까요.
정서진은 기사 논조들을 훑어보면서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빨을 보인 개한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먹이를 준다면 그건 독을 발랐을 때뿐이다. 이게 마스터의 생각입니다.
"좋은 말씀이시군. 우리 회장님, 보기와는 다르게 정말 독심이 있는 분인 거 같아. 그룹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
-전형적인 전제군주 스타일인데, 이상하게 사람들 대부분이 그걸 눈치채지 못합니다.
"항상 밝게 웃고만 다니셔서 다들 착각하는 거지. 그 웃음이 언제든 모든 걸 밟을 수 있기 때문에 나오는 여유라는 것을 몰라."
정서진은 하수영 자산의 실체를 가장 근접하게 꿰고 있는 인물이다.
입자 집합 명령 장치를 알고 있는 유일한 측근이었으니까.
'청담 부동산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 수영농장, 프리덤, 서진파운드리……. 이 세 개만 해도 한국 정도는 한입에 싸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언론들을 보면 저것들이 정말 생각이 있기는 한가 싶을 정도다.
다른 건 몰라도, 서진파운드리가 하수영 소유라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입자 집합 명령 장치는 몰라도, 서진파운드리가 국제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한 위상이 어떤지 인지를 못 하는 건가?
"프리덤."
-예, 주인님.
"새 고객님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드려야 하는지, 말 안 해도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모니터 화면을 돌리자, 공장 내부 전경이 나타난다.
견학자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회사 최대의 기밀 시설.
바로 입자 집합 명령 장치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반도체와, 쉴 새 없이 부지런히 일하는 무인 로봇들의 교집합.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장면이다.
로봇 공학자들이 저 장면을 봤다면, 아마 머리를 쥐어뜯고 절규하며 절망했을 것이다.
센서가 아닌, 영상 정보를 통해 사물과 풍경을 파악하는 로봇.
두 팔과 두 발로 인간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정교한 움직임을 보이는 로봇.
그런 로봇들이 24시간 쉬지 않고, 아무런 지연이나 사고 없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광경.
인류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의 모습이, 이 반도체 공장 안에서 흐르고 있었으니까.
-출고합니다.
***
"뭐? 벌써 다 만들었다고?"
이문석 사장은 황당해서 그만 벌떡 일어났다.
지금 임원이 자신을 놀리나 싶었다.
하지만 임원은 쩔쩔매면서도 말을 고치지 않았다.
"네, 벌써 다 만들었다고 가져왔습니다."
"임 이사, 우리가 위탁 생산 발주계약을 맺은 게 언젠지 기억하나?"
"어제…… 입니다."
"하루 만에, 그러니까 24시간도 안걸려서 그걸 다 만들어서 가져오는 게 가능하다고?
서해전자는 하루 최대 11만 장의 웨이퍼까지 찍어내 본 적이 있다.
단순 계산으로 90만 장 상당이니까 8, 9일은 족히 걸린다.
물론 웨이퍼만 찍어낸다고 끝이 아니라, 새 설계도를 적용하고 테스트하는 등 초반에 기초 세팅 시간이 필요하다.
"혹시 웨이퍼 형태로 가져왔나?"
"아닙니다. 완성품으로 가져왔습니다. 프로토콜 세팅만 마치면 곧바로 판매를 개시해도 되는 수준입니다."
서진파운드리가 애초에 웨이퍼 형태로는 팔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계약 조건도 바로 그것이었고, 그런데 패키징(웨이퍼를 잘라서 개별 칩으로 만드는 과정)까지 한 게 아니라, 아예 시판 직전의 완성품으로 가져왔다.
"그게 말이 될 리가 없잖나! 안 되겠어!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
"사, 사장님!"
이문석 사장은 만류를 뿌리치고 직접 경기도 공장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물류 창고에 그득하게 쌓인 D램 박스가 테스트와 초기 세팅을 위해 줄줄이 해체되는 것을 보고, 그만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분명히 전부 다 불량품일 거야. 아니, 우리가 어제 계약하고 설계도를 줬는데 그걸 하루 만에 다 찍어 낸다는 게 말이 되나?"
"현재까지 약 2만 개 이상 테스트했습니다. 모두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전부 최상등품입니다. 기본 동작클럭을 표준 수치보다 조금 더 상승해서 팔아도 무방할 거 같습니다."
CPU나 D램, GPU 등에는 보통 성능 제한을 건다.
이론상 한계 속도가 100%라고 가정하면, 일부러 50~70% 사이로 잠가 버리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지만, 칩마다 성능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표준화하는 것.
그것을 사용자가 임의로 해제하는 게 오버클럭이고, 서진파운드리에서 만들어 온 제품들은…….
"하나같이 이론상 성능 한계치의 98% 이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98%라고?"
"네, 그렇습니다."
"전부 예외 없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
그러고 보니 최초로 위탁 생산을 맡긴 마이크론의 그래픽 램도 그랬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당시에는 말이 안 된다고, 일부러 허위 마케팅을 한 것이라고 웃어넘겼는데, 직접 겪고 보니…….
"자, 장난 아닌데?"
"……."
"……."
***
이현덕 부회장도 보고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도체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이다.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당연히 안다.
"웨이퍼 90만 개 물량을 하루 만에 갖다 줬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웨이퍼가 아니라 패키징을 포함해서 최종 처리까지 모두 마친 완성품입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우리 회사는 불가능합니다. 웨이퍼를 찍어내는 시간만 8, 9일은 걸립니다. 그것도 새 설계 적용을 위한 초기 세팅을 모두 마친 이후의 일입니다."
"얼마의 기간이 걸리는 게 정상입니까?"
"저희는 적어도 두 달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달……. 그런데 그걸 하루 만에 갖다 줬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현덕은 헛웃음을 지었다.
"놈들이 미리 찍어두고 쌓아둔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이게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반박거리 역시 넘쳐난다.
"설계도는 계약 당일, 그러니까 물품을 받기 전날에 줬습니다."
"……."
이현덕은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반도체 신공장 짓는 데 얼마를 썼더라?
'원래 100조 원 예정이던 것을 총 130조 원이 들었으니…….'
신공장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건설 비용으로 80조 원이 나간 상황에서 서해건설(현 프라임건설)을 손절하며 공장을 같이 포기했었다.
그런데 중국이 TSMC 공장을 폭격하면서 국제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고, 서해전자는 재빠르게 짓다 만 공장을 다시 인수했다.
50조 원에 준공해서 넘겨주는 조건으로, 결과적으로는 130조 원이라는 비용이 들어간 셈이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어느 정도 점유율을 차지하고, 또 자사 반도체를 생산하면서 이익을 만든다는 것이 서해그룹의 큰 그림.
'이거 우리 파운드리 사업이……. 아니, 반도체 사업이…….'
이현덕 부회장은 머릿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서진파운드리의 반도체 공정 기술이 이렇게나 차이가 납니까?"
"획기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은……."
이문석 사장이 말을 흐리자 이현덕은 답답해서 가슴을 쳤다.
"제대로 말을 하세요. 얼버무리지 마시고."
"마법이라도 본 기분입니다. 제 지식 안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이 필요하지 않고.
설계도를 주고 하루 만에 이만한 물량을 찍어냈으며.
제품들은 모두 이론상 성능 한계치에 근접하는 성능을 낸다.
솔직히 이문석 사장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회사도 TSMC처럼 반도체 공정을 하루빨리 접어야 한다.'
마이크론 등 서진파운드리 미국 반도체 고객사들이 보험으로서 최소한의 공장만 남기고, 생산에서 철수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먼저 그 말을 할 수는 없다.
이미 신공장에 130조 원이나 꼬라 박은 상황에서, 팹리스(설계만 하는)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은…….
"위기입니까?"
"네, 위기입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신공장을 기어이 인수한 것이 악수가 됐습니까?"
악수가 정도가 아니라 그룹 일생일대의 패착이다.
130조 원이라는 돈을 불태웠으니.
"매우 좋지 않은 수가 됐습니다."
"이문석 사장님이 이 그룹의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솔직하게, 기탄없이 말해주십시오. 그래야 내가 결정을 할 거 아닙니까?"
생산은 접고, 전부 서진파운드리에 맡긴다.
그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호 관계를 설립해 나간다.
하지만 이문석은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라고 했다고 정말 솔직하게 말했다가는 내 목이 날아 가겠지.'
회사 생활 어디 1, 2년 해보는가?
제아무리 회사를 위한 충언이라 해도, 오너 일가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고 해도, 결국 오너가 스스로 깨닫고 인지해야 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다른 쥐들은 좋겠지만, 자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
"설계 부문을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회사의 강점인 메모리 설계를 더욱 투자하고, 모바일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육성해야 합니다."
이문석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 현덕이 좋아할 만한 말들만 주워섬겼다.
"다행히 프리덤폰 출시가 반도체 사업부에는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어째서요? 프리덤폰 때문에 겔드폰 국내 점유율에 타격을 입게 생겼는데."
"대신 래플이라는 우군을 얻었습니다. 래플은 프리덤폰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서진파운드리와 손을 잡지 못할 겁니다."
"아!"
그제야 이현덕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이문석은 자신이 옳은 카드를 꺼냈다고 내심 흐뭇해했다.
'그래, 반도체 사업을 얼마나 애지 중지 여기시는데 생산만 접자고 내가 어떻게 말을 해.'
"이 사장님."
"네, 부회장님."
"정서진 대표, 그 친구를 회유할 수는 없겠습니까?"
"네?"
"아무래도 그 공정 기술을 우리가 가져와야 할 거 같습니다. 그룹의미래가 달린 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신공장에 130조 원이나……."
"그딴 불량품에 130조 원이나 날려 먹었는데, 여기서 더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문석의 속마음이 낭패감으로 일그러졌다.
"왜 대답이 없습니까, 이 사장님?"
"최선을 다해서 회유하겠습니다. 부회장님."
"최선으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성공시키십시오."
"……."
"사장님?"
"네,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