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709화 (709/1,270)

프랜차이즈 갓 709화

177장 물과 반도체 (3)

대만의 TSMC는 한때 전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 업체였다.

그러나 대만 해협에서 벌어진 중국군의 기습과 핀포인트 폭격 때문에 주요 공장들이 날아갔고, 서진파운드리의 저력을 깨달은 뒤에는, 아예 숙이고 밑으로 들어왔다.

자회사로 편입된 것은 아니지만, 서진파운드리 하청업체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서진파운드리는 세계 1위의 파운드리 업체로 우뚝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전 세계 모바일 강자, 래플이 서해전자에 위탁생산을 맡기면서, 서진 VS 서해의 양자 구도가 형성되었다.

"서해전자 반도체, 언젠가는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숙적."

같은 하늘 아래 두 군주가 존재할 수 없듯이.

저쪽은 필히 사라져줘야만 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웃으면서 악수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고객이기를."

정서진은 벤틀리에서 내려 당당하게 가슴을 치켜세웠다.

프리덤이 자율주행으로 차를 움직여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서진파운드리 대표이사 정서진입니다."

"예?"

서글서글하게 웃던 데스크 여직원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었다.

동료 직원이 급히 어딘가로 연락을 했고, 여직원은 얼른 앞으로 나와서 정서진을 에스코트하며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동종업계 최고업체의 대표가 수행원도 없이 혼자서 왔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반도체사업부 사장 이문석이 정서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정 대표님. 이문석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문석 사장님."

악수와 가벼운 신변잡담, 탐색전을 나눈 뒤 본론이 시작되었다.

"차세대 디램 제품을 생산하려는데, 우리 캐파가 그리 넉넉하지가 않아서요. 그래서 일부 물량을 서진 파운드리에 위탁하고 싶습니다."

"그러시군요."

"아실지 모르지만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디램은 단 한 번도 외부 업체에 생산을 맡겨본적이 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품질과 납기는 보장합니다."

"300m 웨이퍼 90만 장을 일단 주문하고 싶습니다."

서진파운드리 입장에서 충분히 군침을 흘릴 만한 주문량이다.

"예? 웨이퍼 형태로 납품을 원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웨이퍼로 납품을 하시면 그 뒤 공정은 우리가 진행할 겁니다."

정서진의 안색이 흐려졌다.

입자집합명령 시스템은 일정한 크기를 넘어서는 부품은 만들지 못한다.

크기 출력에 상한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웨이퍼에 칩을 인쇄해서 각자 잘라내는 기존 방식과 달리.

아예 입자를 차곡차곡 쌓아서 허공에 완성된 칩 형태로 만들어낸다.

"저희는 웨이퍼 형태로 제공하지 않습니다. 완성된 칩 부품 형태로만 판매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포토 공정설비를 마냥 놀릴 수만은 없어서요. 지금 부족한 것은 웨이퍼 생산량이지, 그 외는 아닙니다."

"음……."

정서진은 속으로 고민했다.

'아까운 기회인데.'

서해전자의 반도체 사업부를 집어삼킬 수 있는 첫걸음 아닌가.

그것도 상대방이 거저 갖다 준 기회인데, 그냥 날려 버리기에는 아쉽다.

"웨이퍼 형태로 제공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전체 공정 자체가 웨이퍼만 따로 빼낼 수 있는 형태가 아닙니다. 귀사의 요구대로 하려면 대대적인 공정 개조가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생산이 멈추게 되지요."

"흠,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그럼 우리가 혹시 공장 생산 라인을 한번 볼 수 있습니까?"

"아, 물론이지요."

정서진이 흔쾌히 승낙하자, 이문식 사장의 머릿속에 오히려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렇게 쉽게 공개한다고?'

그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몇몇 임원들과 수행원을 데리고 서진파운드리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에 도착한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과연 어디에도 물탱크 시설, 그리고 공업용수 정화 및 방출 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정서진은 이문석 사장 일행을 최종라인으로 안내했다.

완전히 격리된 유리벽 너머를 가리키며, 정서진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지금 보시는 저것들은 윈텔이 주문한 옵테인 메모리 완제품입니다. 소프트웨어만 설치하면 곧바로 PC에 꽂아서 사용할 수 있는 상태죠."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우리 공장은 완벽한 무인자동화가 되어 있습니다. 회사 직원은 오직 저 한 명뿐입니다. 진정한 1인 기업이죠."

인원이라고는 이사이자 대표이자 직원인 정서진 1인뿐.

물론 이문석 사장 일행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 공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정비가 필요할 때마다 외주를 맡기는 겁니까?"

"아닙니다. 자체적으로 처리합니다."

"네? 설마 정 대표님 혼자서 직접 처리를 하신단 말씀입니까?"

"비슷합니다."

정서진은 의연하게 대답했다.

이들은 로봇들을 보지 못했으니, 충분히 저런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정서진 역시 굳이 로봇들을 공개할 마음까지는 없었다.

'발주 계약서에 서명을 한 뒤라면 모를까.'

"그런데 완성 마지막 단계만 봐서는 잘 감이 오지 않습니다. 전 과정을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아, 죄송하지만 그건 곤란합니다. 저희 회사가 특허로 내지 않은 기밀들이 워낙 많아서요."

"미특허 기밀? 그걸 이렇게 말씀하셔도 됩니까?"

"하하, 공개하지만 않았으니 상관없지요."

이문석 사장은 목소리에 살짝 힘을 주고 조용히 떠보았다.

"보니까 물탱크 시설이 없던데, 혹시 그것과 관련된 기밀입니까?"

"아, 보셨군요. 맞습니다. 우리 공장에는 초순수 세척 과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장 밖으로 배출하는 오염물질이 매우 적습니다."

"오…… 그런 기술이라면 환경오염에 민감한 나라들이 두 팔을 들어 환영하겠군요. 혹시 그 부분에 한해서 기술 교류를 하실 의향은 없으신지?"

"우리 회사의 핵심 기술이기 때문에 기술 교류는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어쩐다. 그렇다면 다른 공정 과정은 전혀 견학이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임원들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보통 발주를 맡기면, 협력업체에서는 공장의 모든 핵심 시설은 물론이고, 몇 년 치 장부까지 전부 까발린다.

말 그대로 발가벗고 서서 간택을 기다린다.

그런 경험에 익숙한 임원들은, 웃으면서 '더 이상은 안 된다'라는 반응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서진파운드리는 충분히 그럴 만한 기업이라는 것은 알지만…….

"근데 이런 식이면 웨이퍼 형태의 납품은 어렵다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군요."

"그렇다면 공정 과정의 일부를 영상으로 조금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정서진이 말을 하자 대형 디스플레이에 영상이 재생되었다.

네모반듯한 CPU 칩들이 질서정연하게 나오는 모습이었다.

"이걸 보여주시는 이유가……."

"음, 저희는 웨이퍼 형태로 만들지 않고 처음부터 칩 형태로 반도체를 만듭니다. 그래서 웨이퍼 납품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입으로 들으니 충격이었다.

임원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술렁거리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합니까?"

"핵심 기밀이기 때문에 더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염물질 배출이 매우 적다고 하신 것도……."

"예, 버려지는 웨이퍼 가장자리 칩들이 없지요. 재료비 절약도 되고 좋습니다."

정서진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내내 유지했다.

이문석은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꽉쥐었다.

공정 과정에 물을 전혀 쓰지 않는 다기에 획기적인 기술을 도입했다는 것은 짐작했다.

하지만 웨이퍼에 인쇄해서 잘라내는 방식이 아니라니.

처음부터 칩 형태로 만든다니.

'어떻게?'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가 가진 모든 반도체 기술을 총 망라해도, 저 뒤에 어떤 공정설비들이 있을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200만 장."

"예?"

"웨이퍼 200만 장에서 나오는 수율만큼의 제품을 주문하겠습니다. 단, 모든 공정 과정을 지금 견학시켜준다는 조건입니다."

정서진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고, 이문석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넘어왔구나.'

"우리로서는 웨이퍼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개별 칩들을 찍어낸다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군요. 그러니 공정 과정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믿고 발주를 하지요."

"……."

정서진은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프린터가 저절로 작동하며, 1장의 인쇄용지를 뱉어냈다.

[반도체 위탁생산 표준계약서]

정서진은 거기에 먼저 서명을 한 뒤, 이문석 사장에게 보여주었다.

이문석 사장은 '300㎜웨이퍼 200만 장, 수율 98% 기준의 칩 생산량'이라고 적힌 부분을 보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러다가 순간 특약조항을 보고 멈칫했다.

"정 대표님, 이 특약은 뭡니까?"

"공정 과정에 관해서 일체의 참견, 견학, 정보공개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200만 장 상당의 물량을 발주한다고 한 것은 어디까지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지를 드리는 겁니다."

정서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서해전자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그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고객님이 되시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쪽."

정서진은 정중하게 두 팔을 나란히 뻗어, 출구를 가리켰다.

"진상의 길입니다."

"……."

"……."

"……."

"고객의 길과 진상의 길, 어느 쪽이든 편하신 대로 선택하십시오."

이문석 사장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안색이 차갑게 굳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고객이 되든가.

서명을 거부하고 진상이 되어 바로 공장에서 나가든가.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화를 버럭 내고 이 자리를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서진파운드리와 영영 끝.

공존이 힘든 경쟁자이지만, 원래 적은 친구보다 더 가까이 두라고 하지 않던가.

'No웨이퍼 기술의 실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어째서 물이 전혀 필요 없는지도……!'

그러기 위해서는 인연을 이어나갈 미끼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시간을 끄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그의 오랜 경험이 알려주고 있었다.

"고객이 되겠소. 단, 조건 변경이 필요합니다."

"말씀하시지요, 고객님."

그제야 정서진이 활짝 웃으면서 정중하게 반응했다.

그 태도가 더욱 이문석의 배알을 뒤틀리게 했다.

하지만 그는 꾹 참고 말했다.

"전 공정 과정을 보여줄 수 없다고 하니, 원래대로 90만 장에 상당하는 물량만을 주문하겠습니다."

"네, 그건 당연하겠군요."

그리고 정서진은 즉석에서 수정된 계약서를 출력해서 다시 내밀었다.

"총 가격은 12조 9,600억 원입니다."

"웨이퍼로 치면 장당 1,440만 원인 셈이군요."

"다른 파운드리에서 사오는 것보다는 10% 이상 저렴하지요? 우리 서진파운드리가 이렇게 좋습니다."

"파운드리라고 해봤자 귀사와 우리 서해전자가 합쳐서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문석 사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목적을 이루기는커녕, 경쟁자에게 13조 원 가까운 매출만 안겨 주었다.

하지만 손해만은 아니다.

'어차피 수원시가 물을 제대로 공급 못 해줘서 당장 디램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었으니까.'

즉 이 거래는 서해전자 입장에서도 꼭 필요했다는 뜻이다.

물론 입맛이 조금 쓰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