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01화
176장 잠자는 농장의 코털 (1)
-제가 충견이라니요. 전 사냥개입니다. 배고픈데 고기를 안 주면 누구부터 사냥할 거 같습니까, 회장님?
-그 정도로는 만족이 안 되는가, 김 군?
-안 됩니다! 난 아직도 배고픕니다!
콜롬비아 마약상, 김주환의 눈빛이 거칠게 희번덕거린다.
눈빛만으로도 살점이 물어뜯겨 나갈 듯한 압박감에서도, 이철진 회장은 무심하게 반응했다.
-알겠네. 일본 유통도 자네가 알아서 해보게.
-충견의 모습이 뭔지 똑바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알겠나? 이빨을 제대로 간수하지 않으면…….
-언제든 솥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으하하하! 감사합니다!
돈 앞에서 탐욕스럽고, 부하들 앞에서 한없이 냉정하며, 비즈니스 고객 앞에서 언제나 화사한 웃음을 잃지 않는 마약상, 김주환, 그런 그도 미국 금융과 군수산업을 어우르는 이철진 회장 앞에서만큼은, 언제나 얌전하고 순한 양이었다.
하지만 이철진 회장이 시험 삼아 딱 한 번 먹이를 일부러 걸렀을 때, 그는 참지 않고 굶주림이 잔뜩 낀 이빨을 보여 주었다.
관객들의 시선을 대번에 사로잡은, 극 중 분위기가 또 한 번 분기점을 맞는 씬이었다.
"어우, 야……. 연기 뭐야. 신인이라며?"
"마약 딜러들 앞에서 그렇게 서글서글하던 사람이 무슨 한순간에……."
"'맨 프롬 콜롬비아'의 맨이 이철진이 아니라 김주환을 말하는 거였어?"
중년 배우 이영한.
극 중 이철진의 역을 맡은 그는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관객들의 반응을 조용히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김주환(하수영)이 물러나고, 자신이 연기한 이철진이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본다.
-회장님, 감히 마약 밭이나 바꾸는 미천한 농부놈이 회장님께 어찌 이빨을……! 필히 엄중히 징벌하셔서 본을 세우셔야 합니다!
-사냥개가 다 그렇지. 일본까지만 떼어주고 독립시켜.
-회장님? 그렇게나 챙겨주실 이유가……!
-난 솥에는 넣지 않는다. 잊지 말게.
측근의 눈빛에 묘한 감동이 스쳐 흐른다.
감정 없이 태연한 이철진의 표정이 오히려 관객들에게 더 깊은 전율을 남기고 있었다.
중년 배우 이영한은 몇 번을 봐도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연기에 심정이 복잡했다.
'내가 저 장면 찍고 등이 땀에 완전히 흠뻑 젖었었는데…….'
이빨을 드러내는 하수영의 얼굴에서, 그는 침을 질질 흘리는 광견의 탐식을 보았었다.
그 순간 하수영은 굶기면 주인의 살점이라도 뜯어먹는 사냥개의 본성을 착실히 보여주었다.
콜롬비아에서 살아남은 마약상이 정말 빙의라도 한 듯한 신들린 연기였다.
"최종 보스라서 그런지 역시 저 미치광이 마약상을 잘 다루네."
"전용기까지 있는 마약상더러 마약밭이나 가꾸는 농부라니. 미국에서 대체 어떤 위치에 있는 거지?"
"김주환 배우가 실제로 농부라는 말이 있던데."
장면이 어느덧 바뀌었다.
끝없이 펼쳐진 마리화나 밭이 드러났다.
수백 대가 넘어가는 로봇들이 세심하게 밭을 관리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시선을 빼앗긴 채 호흡마저 흐트러졌다.
-뭐? 김주환이가 일본으로 들어갔다고?
-네, 일본 시장을 개척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럼 청담동 클럽에서 퍼뜨린 마약은 대체 뭐고?
-시선 교란용인 모양입니다!
중년 배우 이영한은 주먹을 불끈쥐었다.
이미 네 번 넘게 본 영화, 자신도 힘들게 촬영했던 작품.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너무 잘 만들었다.
첫 장면에서부터 드러난 미 항모부대와 거기에 VIP로 탑승한 자신.
동해의 초거대 호화 크루즈선에서 열린 상류층들의 마약 환각 파티.
컨테이너째로 담아서 운반하는 달러와 금괴, 온갖 미술품.
마약 밭을 지키기 위해 인근을 순찰하는 미제 탱크들까지.
기존 한국 영화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온갖 '돈질'을 사정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범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정없이 강제로 끌어올려 버린 것이다.
앞으로 관객들은 웬만한 범죄 영화들은 눈에 차지도 않을 것이다.
-미련한 친구야. 그 정도로 만족을 했어야지.
-흐흐……. 본인이 아귀를 부릴 자격이 못 된다는 건 생각 못 하시고?
-열 마리 아귀의 배도 터뜨릴 만큼 충분히 먹여줬네. 그저, 자네가 분수를 모르는 게지.
마약상 김주환이 또 한 번 배고픔에 이빨을 드러냈을 때, 이철진은 두 번은 용서하지 않았다.
그가 등을 돌리자 덩치들은 대형 닻을 물에 던졌고, 손목이 닻에 묶인 김주환도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마약상을 쫓는 요원들은 중간책을 다수를 사로잡는 듯 소기의 성과를 올렸지만, 끝내 마약상 김주환의 행적조차도 잡지 못했다.
상영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잘 만든 블록버스터네. 역시 돈좀 바르니까 영화가 급이 확 달라졌어."
"시나리오, 배우, 연기도 좋았고 말이야."
"김주환 개인 경호 대장 너무 잘생기지 않았니? 외국 배우 같은데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어."
"목소리만 보면 완전 네이티브 아니냐?"
중년 배우 이영한은 흐뭇하게 관객들의 평을 훔쳐 듣고 있었다.
영화 퀄리티에 대한 극찬이 한동안 이어진 후…….
"그 농장 말이야."
"아, 진짜 대박이었어. 우리나라 CG팀 정말 장난 아니구나."
"그게 근데 우리나라에 실제로 있는 농장이래. 지금 검색해 보니 나오는데?"
"뭐? 실제 있는 농장?"
"의료용 대마초 합법 재배하는 농장인데, 여기 사진도 공개했네. 와, 그 로봇들도 실제로 사용하고 있나 봐."
"어디 어디. 보여줘 봐. 와, 정말이네?"
배영한의 표정도 묘하게 변해갔다.
'수영농장이 또…….'
영화의 퀄리티, 연기력, 스토리에 관해서 호평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항상 수영농장으로 평론이 흘러간다.
지금까지 몰래 관객 분위기를 훔쳐 보면서, 한 번도 예외는 없었다.
"아, 실제 농장은 그렇게까지 크진 않구나. 연출과 CG 적당히 넣었나 본데."
"그래도 원래 있던 것을 복붙해서 늘리는 것과 아예 0에서 만드는 것은 현실감부터 다르지."
"여기 UCC 영상도 있네. 와, 진짜로봇들이 이렇게 알아서 농사짓는구나."
"뭔가 로봇들 모습만 보면 농사 로봇이 아니라 첨단 반도체 로봇 같지 않아?"
"와, 이 농장이 황비버섯이랑 신두만드는 농장이구나."
"어, 그게 정말이냐?"
"무공해 참치도 여기 농장에서 만드는 사료 먹여서 키우는 거라고 하네. 농장 연 소득이 조 단위라는데?"
"잠깐, 김주환 역 맡은 배우가 여기 농장 경영자라고 하는데?"
"뭐? 와, 나. 그런 반전이."
"진짜 마약 재배하던 농부 데려다가 마약 재배하는 죽음의 상인 역할 맡긴 거구나."
"어쩐지 마약 밭 둘러보는 눈길에서 애정이 뚝뚝 흘러넘쳐서 놀랐었는데, 진심이었네."
관객들의 관심이 어느덧 농장 이야기로 흘러가자, 중년 배우 이영한은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
'맨 프롬 콜롬비아'는 개봉한 지얼마 되지 않아, 순식간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최단 시간 내에 천만 관객달성이었기에, CR필름은 축제 분위기였다.
"근데 2천만 관객 넘어도 제작사는 손해라는 건 아시죠? 지금 완전히 극장과 배급사만 배 불리고 있다구요."
티켓 팔아서 약 1,000억의 매출이 나왔다고 가정하자.
부가세 10%, 영화발전기금 3%가 먼저 빠지고 약 870억이 남는다.
여기서 극장에 50%를 떼어주고, 배급사가 435억을 가져간다.
배급사는 다시 10%를 떼고 약 391.5억 원을 CR필름에 준다.
CR 필름은 이 391.5억 원에서 제작비를 공제하고 하수영한테 투자 정산을 해줘야 한다.
"우리 제작비가 천억 넘은 거 잊지 마세요. 이천만 관객 찍어도 우리 회사에 800억도 안 들어와요."
"아……. 슈퍼카를 너무 많이 태워 먹었어."
"진짜 롤스로이스 소대 단위로 날려 먹은 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까워. 그중 한 대만 나 주면 수리해서 타고 다닐 텐데."
영화는 대박이 나긴 했다.
하지만 정작 극장과 배급사만 배를 잔뜩 불려주는 꼴이다.
특히 배급사인 CZ엔터는 자사 극장인 CZV에 집중적으로 스크린을 밀어줌으로 인해, 수익을 극대화 시켰다.
극장 수익, 배급 수수료까지 더블로 챙겼으니, CZ엔터가 수익에서는 진정한 승자인 셈이다.
제작사인 CR필름은 수익으로는 본전, 대신 희대의 대박작을 남겼다는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반면 유일한 투자자인 하수영은 2천만 관객을 달성해 봐야 마이너스다.
"우리나라에서만 상영하냐? 곧 일본, 중국, 동남아, 유럽, 미국에서도 개봉하니까 제작자님도 충분히 투자수익 쥐실 수 있을 거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
노부모와 함께 '맨 프롬 콜롬비아' 를 관람하고 돌아온 어느 중년 부부.
그는 범죄 영화라서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부모님이 하도 보고 싶어하는 바람에 오랜만에 함께 영화를 보고 왔다.
그리고 자신과 아내가 쉴 새 없이 불타는 롤스로이스와 페라리, 탱크, 장갑차, 헬기에 경악해서 정신없이 빠져들었을 때.
노부모는 옛날 생각에 젖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저 넓은 밭 좀 봐. 아이구, 이제는 기계들이 알아서 농사를 짓는구먼."
"사람은 정말 한 명도 없는가 보오."
"덤이 말로는 실제로 있는 농장이라더만. 기계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알아서 짓는다고."
"여보, 우리 한번 저기 가봅시다."
농장을 한번 보고 싶다는 노부모의 요구에 부부는 당황했다.
하지만 프리덤이 중재했다.
-수영농장에서 무인 농장 체험 종합 패키지 관광 상품을 팔고 있습니다.
"체험 패키지 관광?"
-예, 당일, 1박, 2박, 3박, 4박 등 다양한 패키지로 나눠서 팔고 있습니다. 효도 선물로 한번 선물하시는 게 어떨까요?
"자세히 좀 설명해 봐."
-당일 상품은 경기도 수영농장을 두루두루 관람하고 직접 로봇들에게 지시를 내려서 수확물 채취를 하는 등 무인 농장주가 된 체험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럼 1박 상품은?"
-1박은 포천시 과수원과 통영의 양식장까지 둘러보는 게 추가됩니다. 숙박은 통영에서 가까운 콘도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2박 이상 상품을 추천합니다.
"이유는?"
-2박 이상의 상품부터 해운대 수영펜션 투숙이 가능합니다.
"아, 수영펜션! 근데 거기는 늘 예약이 꽉 차 있지 않아?"
-손님을 받지 않고 상식적으로 비워두는 여분의 객실이 있습니다.
"오, 잘됐네. 안 그래도 수영펜션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는데."
-수영생수 원료인 잣나무 잎을 채 취하는 포천시의 넓은 과수원, 완벽한 무인 로봇들이 다스리는 이상향의 농장.
-수십 종류가 넘어가는 다양한 어류들을 직접 채취하고 맛볼 수 있는 수영양식장, 5성 호텔 부럽지 않은 넉넉한 수영펜션의 호화로움과 서비스.
-그리고 수영식품그룹의 인심을 한번 느껴보시지요.
-3박 4일 효도 패키지가 지금 '맨 프롬 콜롬비아' 천만 관객 돌파 특별 할인 행사 중이라, 1인 기준 단돈 99만 9,000원에 누리실 수 있습니다.
"인당 거의 백이잖아? 동남아 단체 여행도 그 정도 나오겠다."
-수영식품그룹에서 관광 내내 제공하는 요리들을 보시면 오히려 무척 저렴한 가격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띄워드리겠습니다.
요리 메뉴들을 훑어본 중년 아들은 두말할 것 없이 결정했다.
-주인님, 아드님을 위해 일하는 제 동료가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바로 결제하겠습니다.
"고맙다. 덤이야. 우리가 먼저 부탁하기에는 너무 창피해서……."
-아닙니다. 그럼 199만 8,000원할부로 결제하겠습니다.
프리덤은 장사를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