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91화 (691/1,270)

프랜차이즈 갓 691화

173장 대왕님의 다이어리 (3)

훈민정음 창제일지를 감정했던 학자들은 휴민트타워 1층 로비에 아예 상주하다시피 했다.

그들은 눈에 집어넣을 듯이 창제일 지를 살피면서, 달라진 점들을 낱낱이 찾아냈다.

감정 당시 미리 촬영해 둔 사진과 비교까지 해가면서.

"이걸 보십시오. 색 자체가 누렇게 변했습니다. 우리가 전에 찍었던 사진들은 만든 지 얼마 안 된 새 책느낌이 강하게 나지 않습니까?"

"반면 지금 이 서책은 세월의 풍파를 거쳐 온 느낌이 물씬 묻어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만들어진 지 500년은 된 서책이에요."

"관리와 보존이 대단히 세심하게 잘 이뤄진 그런 느낌이 납니다."

"틀림없어요. 만약에 원본이 존재한다면, 이것이 바로 창제일지 원본일 겁니다."

"하수영 의원님은 창제일지 진품과 위작을 둘 다 발굴했었던 겁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위작만 우리에게 먼저 감정을 제시했던 거고요."

"맞습니다. 이게 어떤 문화재이고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게 틀림없습니다."

학자 중 한 명이 듣다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발굴 현장에서 의원님이 먼저 훈민정음 창제일지라고 문화재청 직원들한테 고지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이건 어떻게 설명을 하실 겁니까?"

이게 무슨 문화재인지 알고 싶어서 위작만 제출했다는 추정을 정면에서 깨뜨리는 지적이다.

"아무튼! 지금 이게 진품임이 틀림없습니다! 당장 꺼내서 탄소연대측정을 다시 해야 합니다!"

며칠 동안 방폭유리 너머로 서책을 분석한 학자들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문화재청에서 문화재보존국장이 직접 하수영을 찾아왔다.

십여 명이 넘어가는 인원들을 대표하여, 국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의원님, 지금 로비에 전시 중이신 저 서책의 탄소연대를 측정해 보고 싶습니다."

"그걸 또 한다고요?"

"또라니요. 저 서책의 탄소연대측정은 아직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속지 낱장 하나하나까지 한 땀 한 땀 열심히 측정하셨잖아요?"

"예?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작이고, 저것은 진품……."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훈민정음창제일지를 단 1권만 발굴했습니다. 문화재청에 제출하지 않고 숨겨 둔 서책 따위는 없어요."

"예?"

"이게 그 증거입니다. 프리덤."

-예, 마스터. 바로 영상 띄우겠습니다.

"자, TV를 보시죠."

하수영은 의원사무실 벽면 한쪽을 차지한 110인치 초대형 TV를 가리켰다.

프리덤, 셋탑박스, 3대 콘솔게임기, TV와 연동된 TV가 곧바로 영상을 재생했다.

바디캠으로 촬영한 1인칭 시점 영상이었다.

"어, 저기는 문화재청 아닙니까?"

"의원님이 위작 서책을 돌려받으신 그때입니다!"

국장 이하 직원, 학자들은 바로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았다.

하수영이 서책을 돌려받고 나온다.

차를 타고 휴민트타워로 곧바로 돌아온다.

바디캠은 단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은 채, 서책을 촬영하고 있었다.

서책이 담긴 투명상자 옆에는 태블릿 화면에서 생방송 지상파가 송출되고 있었다.

영상에 조작이 없음을, 영상 모든 프레임의 촬영 시각을 증빙하기 위해서 생방송 화면을 한 샷에 잡고 함께 찍은 것이다.

서책이 휴민트타워 전시관에 들어가고, 방폭유리가 단단히 잠긴다.

바디캠은 촬영구도를 옮겨 한쪽에 자리를 잡고, 화면은 이제 완전히 고정된다.

재생 속도가 빠르게 감기고, 많은 사람들이 눈에 비치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오고 가며 서책을 관람한다.

그리고 방폭유리 속의 서책의 모습이 조금씩 변해간다.

빠르게 재생을 감다 보니, 변해가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다.

그 긴 시간 동안, 화면은 단 한 컷도 끊어짐이 없었다.

"……."

"……"

"원하신다면 영상 원본을 얼마든지드릴 수 있습니다. 용량은 꽤 되겠지만요."

두 말할 것도 없는 완패였다.

굳이 영상 원본을 가져가서 위조여부를 분석할 필요도 없는.

할 수야 있겠지만, 그리하면 하수영은 앞으로 문화재청은 달갑게 보지 않을 것이다.

그의 땅에서 새로운 문화재가 나오더라도 그냥 귀찮아서 숨겨 버릴지도 모른다.

'왜 의원님 땅에서 유물이 나오는 것을 당연한 듯이 생각하고 있는 거지? 아…….'

국장은 아찔해지는 정신을 얼른 떨쳐냈다.

"그럼 서책의 겉표면 색깔이 왜 며칠 만에 저렇게 몇백 년 묵은 것처럼 변한 겁니까?"

"그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뭐, 햇빛에 노출돼서 색 변형이라도 왔나 보죠.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위작인데."

"의원님은 위작이 아니라고 생각하신다고……."

"문화재청은 위작이라고 단정 지었잖아요. 그 이야기는 더 말죠."

하수영은 손을 내저으며 대화를 주도했다.

"아무튼 제가 문화재청에서 돌려받은 바로 그 서책입니다. 다른 걸 감추고 있거나 바꿔치기했거나 그런건 없어요."

"……."

"더 이상의 추가 감정, 탄소연대측정은 이제 사양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공권력 횡포예요, 횡포, 사소한 의아함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100번이고 200번이고 뒤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미 탄소연대측정은 몇 번이고 반복했다.

모든 속지 낱장 하나하나까지 전부.

인증 영상은 하수영이 서책을 바꿔치기 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장 일행들은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학자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분명히, 적어도 지금의 저 서책은 진품이 틀림없는데……."

"아아! 확인을 할 수가 없다니."

공권력을 강력하게 동원하면 강제로 감정을 할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상대는 힘없는 개인이 아니다.

"이거 가져가세요. 잊지 마시고, 영상 원본입니다."

"괘, 괜찮습니다. 의원님."

"나중에 또 딴 말 할까 봐 제가 억지로 안겨드리는 겁니다. 얼른 가져가세요. 이거 가지고 뭐라고는 안할 테니까요."

결국 국장은 억지로 메모리 장치를 챙겨야 했다.

***

전시관 디스플레이에 새로운 홍보영상이 추가되었다.

바로 의원사무실에서 벌어진, 문화재청 일행과 하수영의 진품 논쟁이다.

-의원님, 탄소연대를 측정해 보고 싶습니다.

-그걸 또 한다고요?

-저 서책의 탄소연대측정은 아직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훈민정음창제일지를 단 1권만 발굴했습니다.

-…….

-문화재청에 제출하지 않고 숨겨 둔 서책 따위는 없어요.

-이게 그 증거입니다. 프리덤.

-하지만 저건 틀림없는 진품으로 보입니다!

-그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아무튼 제가 다른 걸 감추고 있거나 바꿔치기 했거나 그런 건 없어요.

-…….

-더 이상의 추가 감정, 탄소연대측정은 이제 사양하겠습니다.

물론 얼굴과 목소리는 적절하게 편집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인물 한 명 한 명마다 대략적인 직함을 써서 권위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추가 영상을 보고 관람객들이 의아했다.

"뭐야, 그럼 이게 진품이라는 거야?"

"문화재청에서는 자기들이 잘못 감정한 거 같다고, 진품 같으니까 다시 해보자고 하는 거 같은데?"

"헐! 진품이구나! 어쩐지, 아무리봐도 위작품 같지가 않았어!"

"하수영 의원님도 위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여기 떡하니 박아놓으셨잖아요."

"문화재청 등신 같은 놈들, 아니 버젓한 진품을 대체 왜 위작으로 감정한 거야?"

"탄소연대측정에서 만들어진 지 수십 년밖에 안 됐다고 나왔다던데."

"이게 어딜 봐서 만들어진 지 수십년 밖에 안 된 서책이야? 딱 봐도 500년은 묵었구만."

"역시 진품이었어."

"훈민정음 해례본과는 비교도 안되는 가치가 있는 문화재구나."

겉지부터 속지까지, 모든 서체 하나하나가 모두 세종대왕이 친필로 쓴 메모.

훈민정음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디어의 향연..

그것들을 시간순서대로 정리해서 엮어낸 다음, 세종대왕의 친필사인과 옥새까지 찍어서 한 권의 책으로 반듯하게 엮어낸 유물이다.

"겉지 펴자마자 나오는 저 서문은 창제 중에 쓴 구상 아이디어가 아니라지?"

"응, 이 책을 엮어내게 된 이유라고 하던데. 있어 봐. 여기 이것을 터치하면 원문과 해석본이 함께 나오는데…… 아! 여기 나온다."

패널을 터치하자 곧바로 화면에는 서문의 원문과 번역본이 함께 떠올랐다.

-……이런 까닭에 나 이도는 천지 신명께 감사의 뜻을 담아 이 서책을 정식으로 엮어내 제단에 고치 바치기로 하였음을…….

"봐봐, 여기 분명하게 문구가 있네. 한글을 만든 것을 천지신명께 고하고 감사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말이야."

"그래서 옥새까지 찍었구나."

"서명 멋들어진 거 봐라. 아주 그냥 시대를 뛰어넘는 멋이 있으시다."

창제일지가 진품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나갔다.

이에 고무된 관람객들이 휴민트타워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관람자체는 무료였고, 오히려 휴민트타워에서 수영레스토랑 1회 식사이용권까지 줬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했으니,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해서 보낸다는 의도였다.

식사권만을 노리는 얌체족들을 막기 위해, 식사권 지급은 주1회라는 제한도 걸었다.

"그럼 이 창제일지를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할까?"

"금전으로 환산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 문화재지만, 굳이 돈으로 환산한다면……."

"3조 원 정도 될 거라고 문화재청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어, 정말?"

"진품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그리고 상태가 좋다면 3조 원 예상한다고 했었지."

"이야, 유물 도둑들이 엄청 노리는거 아니야? 이거는 너무 개방돼 있어서 위험한 거 같은데."

"저게 방폭유리래. 자동소총으로는 어림도 없고 폭탄에도 끄떡없대."

"두께만 봐도 무시무시하다. 진짜."

서책을 가로막는 방폭유리는 두께만 50㎝가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누가 탈취 시도를 하면 곧바로 벽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

"근데 사람들이 막 만지고 실수로 부딪치고 그래도 아무 일 없던데?"

"그냥 단순하게 충격 센서로 감지하는 게 아니라, 프리덤이 매의 눈으로 지켜본대. 이게 관람하다가 부딪친 건지 탈취하려고 시도하는 건지 눈으로 보면 딱 알잖아."

"오, 그렇군. 대단하네."

***

훈민정음 창제일지는 유물 시장에서 제대로 인지도를 쌓았다.

해외의 유명한 문화재 큰손들이 은근하게 구매 의사를 전해오기도 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 같은 국제 경매회사에서 경매의사가 없는지 넌지시 물어오기도 했다.

"최고의 조건으로 낙찰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하수영은 그 모든 제안을 단칼에 거부했다.

"한글로 읽고, 말하고, 쓰는 입장에서 어떻게 이런 귀중한 국보급 문화재를 팝니까? 훈민정음 창제일지는 청담동에 오시면 누구나 언제든지 관람할 수 있으니, 소유를 희망하는 분들은 주저 없이 오라고 하세요."

"……."

"오시는 분들은 모두 차별 없이 제가 식사도 제공하니까 빈속으로 오셔도 됩니다."

***

"수영 씨, 큰손들이 얼마까지 부르던가요?"

궁금증 가득한 장효주의 물음에 하수영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무슨 소용입니까. 어차피 안 팔건데."

"그냥 궁금하잖아요. 해외 큰손들이 창제일지를 얼마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100억 불까지 부르더군요."

"100억 불…… 10조 원……."

장효주는 큰 충격에 빠져서 비틀거렸다.

서책 한 권에 10조 원을 부르다니.

"누구에요? 누가 그렇게 큰돈을 불렀어요?"

"중국이요."

"자기나라 문화재도 아닌데 무슨 그렇게까지 큰돈을……."

"그쪽은 반대라고 생각한 거 같은데요. 그게 더 괘씸하더군요."

"……아, 그런가요. 그래도 안 팔거죠?"

"100억 불이라고 해봐야 '0.5병원선'인데 뭐하러 팔아요."

포드항모 배 가격은 130억 불이지만, 안에 들어가는 각종 함재기와 의료설비 등을 전부 포함하면, 1척당 200억 불은 들어간다.

"문화재청에서는 요즘 뭐라고 해요?"

"대여라도 해달라고 징징거리죠."

"절대 하면 안 돼요. 진품은 한 번주면 못 돌려받아요. 저의 할아버지도 가보 감정 한 번 맡겼다가 국보라면서 끝내 못 돌려받고 돌아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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