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89화 (689/1,270)

프랜차이즈 갓 689화

173장 대왕님의 다이어리 (1)

"잣나무야, 잣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포천시 과수원에서 적국의 포탄 맞아도, 잣나무야, 잣나무야, 끄떡도 않는 네 잎."

장효주는 하수영이 흥얼거리는 노래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물었다.

"그거 혹시 동요 '소나무야' 개사한 건가요? 독일 원곡 'O Tannenbaum'?"

"네, 항상 푸른 잎과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달라는 제 염원을 담아서 불러봤습니다."

"……아니, 무슨 개사를 그런 식으로 해요?"

장효주는 하수영이 좋다고 밀어붙이는 CF 컨셉이 항상 이상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 남자, 대체 취향이…….'

"여기는 포천이잖아요. 휴전선과 불과 40km밖에 안 된단 말입니다. 적국 포탄 사거리 안에 있는 만큼, 농장주로서 그런 점이 걱정될 수밖에 없죠."

"……."

장효주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과수원에는 대공사가 한창이었다.

수많은 인부들이 각종 장비를 가지고 잣나무를 옮겨 심고 있었다.

다 자란 성목, 중간 정도 자란 나무, 그리고 어린 묘목.

이렇게 크게 세 종류의 잣나무를 잔뜩 심고 있었다.

인부 수가 어림잡아도 네 자리는 되어 보인다.

그럼에도 과수원이 워낙 넓다 보니, 사람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자그마치 서울시만 한 크기의 과수원이니까.

"저 많은 잣나무를 대체 어디서 샀대요? 돈 엄청 들었을 거 같은데."

"나뭇값보다는 파내서 옮기는 비용이 더 많이 들었죠. 대부분 해외에서 사 왔습니다."

"이렇게 넓은데, 국내산으로만 채 우려면 턱도 없었겠네요."

"그랬죠."

"전부 잣나무만 심을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죠. 다양한 종류의 과수를 심어서 키울 겁니다."

"그런데 여기는 너무 넓어서 뚜껑을 씌우는 건 어림도 없겠어요."

"나중에 뚜껑 씌울 건데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

장효주는 입을 다물었다.

서울만 한 크기의 과수원에 뚜껑을 씌우겠다고?

잣나무 높이까지 고려하면 무지막지한 대공사가 될 텐데?

중동 아랍 왕족이나 시도할 법한 구상 아닌가?

나무를 심는 와중, 한편으로는 과수원 둘레에 높은 벽을 치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을 세우고, 강화 유리판을 대서 만든 벽이었다.

또한, 20m마다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입구를 만들었고, 200m마다 차량 및 중장비가 출입 할 수 있는 대형 입구를 만들었다.

땅 중간을 가로지르는 공도 주위로는 넉넉하게 10m 이상 이격해서 벽을 세웠다.

"그런데 뚜껑은 왜 덮으려는 거예요? 너무 돈, 시간 낭비 아닌가요?"

"나중에 야자나무, 바나나, 귤 같은 거 심으려면 하우스재배로 가야 하거든요."

"아하."

장효주는 납득해서 끄덕이다가 의문이 떠올랐다.

"그냥 제주도 같은 곳에서 하면 안돼요?"

"계란은 가급적 한 바구니에 모아 두라고 했습니다. 웬만해선 경기도 밖에 농장을 두고 싶지 않군요."

"……한 바구니? 그 반대 아닌가요?"

"뭉치면 단단하고, 흩어지면 각자 꺾이잖아요. 그게 세상 이치죠."

"그건 화살이고요, 계란이 아니라."

과수원 곳곳에서는 지하수를 파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하수영은 손바닥을 맞대고 고개를 숙여 중얼거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프랜차이즈 갓 파더께 비나이다. 제발 소자를 어여삐 여기시어, 과수원 운영에 방해가 될 만한 보물만큼은 나오지 않도록 해주소서."

"……무슨 기도가 그래요? 지금 아버님께 기도한 거예요?"

"네, 전 아버지가 천지신명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효자네요. 저도 한번 아버님 뵙고 싶은데."

"장효주 씨가 왜……."

"제가 왜 뵙고 싶어 하냐고 물어보면 저 엄청 빠질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하시고요."

"……제가 효자라고 생각하시는 거 죠?"

"훌륭해요. 잘 넘어갔어요."

그때 저쪽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하수영은 대번에 안색이 변해서 얼른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드디어 나왔군!"

조선 시대 금 수집가 유물?

아니면 금맥?

제발 이번에는 그렇게 부피가 큰게 아니기를!

그가 바람과 같이 사라지자 덩그러니 남은 장효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여튼 재빠르다니까."

***

인부들이 모여서 웅성거린다.

그들 사이에는 나무를 심으려고 파다가 만 구덩이가 있었다.

구덩이 중앙에는 녹슨 쇠 판자가 흙더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채였다.

"사장님, 땅 파다가 요상한 게 나와서 일단 멈췄는디요. 이게 뭔지 모르것소."

"여기서부터는 제가 하겠습니다. 다들 물러나 주세요."

"구경 쪼까 하면……."

"안 됩니다. 물러나세요."

하수영은 엄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인부들은 투덜거리면서 물러나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진짜 우리 사장님 재물운이 있긴 한가벼."

"뭐가 됐든 간에 땅 파면 튀어나오긴 할 거라고 하더니, 진짜네."

"소식 못 들었는가? 농장 하려고 땅 두 번 샀는데 두 번 다 그 안에서 금덩이가 쏟아져 나왔대잖어. 그것도 조 단위 금덩이가!"

"그럼 저것도 금덩이려나?"

"근데 사이즈 보니께 그렇게 값이 엄청 나갈 거 같진 않구먼. 끽해야 수십억이나 하려나."

하수영은 헤드 캠을 켜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녹화하면서 조심스럽게 철제 상자를 파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상자는,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백 년도 안 된 거 같은데. 그럼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겠구나. 다행이다."

아마 일제강점기, 혹은 한국전쟁당시 누가 가보 같은 것을 숨기기 위해 묻어둔 게 아닐까?

상자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주인을 특정할 만한 표식 같은 것은 일절없었다.

상자를 조심스레 열자, 두툼한 책한 권이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수백 년 전 형태의 고서적.

하지만 보존 상태가 무척이나 좋았다.

옛 한문으로 쓰인 표지를 본 하수영의 얼굴이 순간 구겨졌다.

그는 곧바로 통찰안을 발동했고, 주신의 권능이 띄운 정보를 보고 기겁했다.

[진품]

[생성 경과 기한 : 82년]

"아니, 기왕이면 사이즈 부피 작은 거 나오라고 빌긴 했지만… 이건 좀 심했다. 이거 혹시 아버지가 과거에서 가져와서 여기에 갖다 놓은 거 아니야?"

여전히 부친은 반응이 없었다.

오죽하면 부친이 예전에 시간 여행을 하면서 수집한 것을 여기에 묻어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왜냐하면…….

"만든 지 82년밖에 안 된 게, 왜 100년은 된 철제 상자 안에서 튀어 나오냐고!"

새 책이나 다름없는 책을 쥔 하수영은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종이를 발견했다.

종이를 주워든 하수영의 안색이 더욱 구겨졌다.

[이것은 프랜차이즈 갓께서 위로의 선물로 주신 가보다.

왜놈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곳에 묻어둔다. 언젠가 한국이 독립한 훗날, 미래의 후손들이 이곳을 찾아내기를 기원한다.]

상자를 묻어둔 이가 누구인지는 알수 없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갓'이라는 단어만큼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부친이 오래전에 지구에서 찾아낸 주신 후계자 후보인 모양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양형.

"나 때문에 지구를 찾아왔다는 건 역시 뻥이셨나."

하수영은 종이를 조용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

"……빠르기도 해라."

저 멀리 문화재청의 차량들이 빠르게 달려오는 게 보인다.

차에서 내린 문화재청 공무원들이 부리나케 하수영을 향해 달려왔다.

"의원님, 나왔습니까?"

"나왔는데,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도 문화재인 줄 알았는데 그냥 누가 취미 삼아 만든 창작품이더라고요."

"예?"

"한 번 보세요."

하수영은 손가락으로 철제 상자를 가리켰다.

낡은 철제 상자를 감격의 눈으로 바라보던 공무원들은 그 안에 있는 서적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들은 장갑을 낀 손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서적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이게 뭡니까?"

"제가 대충 읽어봤는데,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서 1년간 손으로 직접 구상 작업을 한 메모들을 시간 순서대로 한데 엮어놓은 훈민정음 창제 일지……."

"으허허허헉! 그, 그럼 훈민정음해례본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 아닙니까!"

"세종대왕의 친필 창제 일지라니요!"

"세상에! 어, 어떻게 그런 문화재가 이렇게 대번에 나올 수가!"

"훈민정음에 관해 밝혀진 모든 역사기록이 새로이 바뀌게 되겠군요!"

문화재청 공무원들은 잔뜩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지금까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훈민정음 문화재가 나타난 것 아닌가.

그것도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서 직접 손으로 작업한 메모들 묶음이라니!

'세종대왕님의 훈민정음 창제 일지라니!'

세계 언어 학계를 단숨에 발칵 뒤집어놓을 위대한 발견이다!

"아아, 끝까지 들으세요. 전혀 그렇게 흥분하실 일이 아닙니다."

"이게 어떻게 흥분할 일이 아닙니까! 대왕님의 고된 한글 창제 작업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긴 창제일지인데요!"

"그것을 상상하고 누군가가 만든가공의 픽션이다. 이겁니다."

"……예?"

공무원들은 얼이 빠져서 반문했다.

그들은 지금 하수영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수영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구상하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런저런 작업 기록들을 책으로 엮어내면 대충 이렇지 않을까, 이런 상상으로 만든 물건이라는 겁니다."

"그, 그런……."

"안 믿어지시죠? 가져가서 조사해 보세요. 아! 가장 먼저 탄소 연대 측정부터 하셔야 합니다."

탄소-14의 조성비를 통해 만들어진 연대를 측정하는 것.

즉 그것을 실시하면, 이 책이 만들어진 게 조선 시대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 책은 아버지의 손에 의해, 조선 시대에서 미래로 단숨에 날아왔으니까.

***

문화재청은 하수영의 말대로 탄소연대 측정부터 실시했다.

책이 만들어진 것은 수십 년 전이었다.

충격적인 결과에 놀란 문화재청은 모든 속지를 전수조사했다.

낱장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전부 탄소 연대 측정을 실시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럴 수가……!"

"정말 문화재가 아니라 누군가가 수십 년 전 작성한 픽션이란 말입니까?"

탄소 연대 측정만큼 정확한 것은 없다.

이 책은 절대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누군가가 '대왕님이 한글 창제 일지 과정을 모두 남겼다면?'이라는 상상 하에 만든, 소설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 말입니까?"

"책의 크기, 제작 형태, 엮어낸 방식, 글자 획…… 모든 게 조선 시대의 방식 그대로입니다."

"아, 어떤 돈 많고 철저한 고인물대체 역사 매니아가 그만큼 고증을 철저히 했겠지요!"

"개인 전문가가 이 정도로 고증을 철저히 해서 조선 시대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는 건 믿기가 어렵습니다. 검증을 더 해봐야겠어요."

"탄소 측정에서 이미 끝났는데, 뭘 더 검증을 한다고요?"

"훈민정음 전문가들을 불러다가 자문을 받아봐야겠습니다."

문화재청은 수십 명의 전문가들을 불렀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는 말해주지 않은 채 확인을 받았다.

눈으로 삼킬 듯이 낱낱이 확인을 하고 난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렸다.

"틀림없습니다. 아아! 아무리 봐도 세종대왕께서 창제 구상 중에 작업하신 자필 기록들을 엮어낸 책이 틀림없습니다!"

"정말 확실합니까?"

"네, 확실합니다. 이 책은 훈민정음창시자가 아니면 담을 수 없는 내용들이 시간 순서대로 낱낱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시자만이 남길 수 있는 위대한 개인 기록입니다!"

그제야 문화재청은 사실대로 말했다.

"근데 조선 시대 책이라기에는 너무 새것 같지 않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내용만 살피시느라고 책 상태는 미처 신경을 쓰지 않으셨군요. 그거 만든 지 수십 년밖에 안 됐답니다."

"……."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훈민정음 전문가들은 충격을 받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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