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76화
169장 참치는 생선을 친다 (2)
양식장주들은 얌전히 해산했다.
하수영의 휘황찬란한 졸부 패션에 완전히 기가 눌렸고, 백여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 앞에서 소리를 높일 의지를 잃었다.
진심으로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혹시 조폭 출신 아니야?'
'경호원들이 아니고 조폭 똘마니들 같은데…….'
'잘못 얽히면 큰일 난다.'
무력시위 한 번으로 간단히 해산시킨 하수영은 박영식 전무를 불렀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제대로 처리를 못 해서 사장님까지 직접 내려오시게 만들었으니……."
"재산 다 잃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난동 부리는 건데, 박 전무님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죠."
"그런데 저 사람들은……."
"아, 며칠 고용한 경호원들이에요."
"경호원입니까?"
"네, 설마 조폭이겠어요?"
"……."
박영식 전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참다랑어 한 마리가 우리 양식장 바다에 눌러앉았다고요? 한번 보고 싶군요."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곧 밥먹으러 나타날 겁니다."
"오, 밥도 줍니까?"
"네, 양식장에서 흘러나온 거 주워 먹기도 하고, 직원들 몇 명이 몰래 몰래 주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제가 그냥 챙겨주라고 공개적으로 말을 했습니다."
박영식 전무는 바다를 둘러보다가 반색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저기 오는군요!"
"으음, 저놈인가요? 150kg 정도 되어 보이는군요."
"네, 암놈입니다."
"수놈이면 브라우니란 이름을 지어 주려고 했는데, 조금 아쉽네요."
"브라우니요?"
"제가 예전에 키우던 바닷물고기 출신 반려동물인데, 수놈이었거든요."
"아, 그렇군요. 지금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갑자기 보고 싶네요."
"……."
하수영의 표정이 살짝 숙연했기에, 박영식 전무도 말을 아꼈다.
곡물사료를 실은 배가 움직이자, 참다랑어도 그것을 알아보고 신이 나서 빠르게 다가온다.
배에서 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이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식용비닐로 고등어 모양을 낸 곡물사료를 던져주자, 힘차게 잘도 받아 먹는다.
"음, 우리 농장 사료가 좋긴 좋지요. 가축에게든, 인간에게든."
"아, 실은 저도 한 번 살짝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서 놀랐습니다."
"그걸 드셨다고요?"
"네, 사장님께서 사람이 먹어도 괜찮은 수준이라고 하셨잖습니까. 맛을 본 거죠. 괜찮았습니다."
"원재료가 곡물이니까요. 그래도 직접 맛까지 보실 줄은 몰랐네요."
하수영은 물끄러미 참다랑어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잘 챙겨주세요. 혹시 압니까? 저놈이 정기적으로 알 까주는 씨참치가 되어 줄지."
"씨암탉이라는 말은 있어도 씨참치라니…… 허허……."
박영식 전무가 허탈한 웃음소리를 냈다.
'전 세계에 우리 같은 참치 양식장이 또 있을까?'
절대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
양식장주들을 해산시켰지만, 하수영은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저 물고기들도 우리가 거둬서 양식하죠."
"네?"
박영식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 많은 물고기들을 대체 무슨 재주로 잡아들이려고?
"어차피 주인 없는 물고기들입니다. 제가 잘 거둬서 써먹어야죠. 이 참에 우리 양식장 규모도 제대로 한번 키워 봅시다."
수영양식장은 더 이상 참치만 키우지 않는다.
참치 외에도 가능한 다양한 어종을 양식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시작 단계이다 보니 아직 마릿수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많은 물고기들을 가두리 안에 구별해서 몰아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까짓거 한번 해보죠. 이래 봬도 제가 한때 생선치기로 명성 좀 날렸습니다."
"생선치기요?"
"양치기, 소치기, 돼지치기, 생선치기, 그런 의미예요."
"……."
"일단 그물부터 꺼내오죠."
하수영은 트레일러에 싣고 온 가두리그물을 꺼내도록 지시했다.
직원들이 분주하게 준비하는 사이, 하수영은 차량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몸에 딱 달라붙는 짧은 수영복 트렁크 하나만 달랑 걸친 차림새.
"설마 그 복장으로 물에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많이 추울 텐데요."
"잠수복은 원래 잘 안 입어요. 거 추장스럽거든요."
"허어……."
하수영은 심지어 긴 작대기까지 들었다.
모양새를 보면 정말로 생선을 치려는 것 같다.
"자, 시작할게요."
하수영은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보통 체력을 아끼기 위해 보트를 타고 입수 지점까지 움직이는데, 그마저도 생략했다.
박영식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하수영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이야…… 수영 정말 잘하시네. 왕년에 수영도 하셨나?"
"근데 수영하고 잠수는 또 다른 건데…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요?"
"이럴 때가 아니지. 우리도 보트타고 나가서 대기 타자고."
박영식과 직원들은 부랴부랴 설치할 그물을 챙기는 등 움직였다.
'도미들아, 저기 안전한 보금자리로 들어가지 않으련?'
'해치지 않아. 나는 위험한 사람이 아냐.'
'너희를 맛있게 먹…… 아니, 아껴줄 거야.'
'워워, 지금은 도미만, 우럭 너희는 아직 대기하고 있어.'
'광어들도 대기하고 있어.'
'고등어들도 대기 타라.'
'아! 그냥 도미 말고 다 대기 타라고!'
하수영은 신어의 권능을 담아, 자신의 의지를 사방에 퍼뜨렸다.
아직 기초 레벨 수준의 신어지만, 해수어 떼를 통제하는 것 정도는 수월하리라 생각했다.
문제는 의사소통은 그럭저럭 통하는데, 마릿수가 원체 많다 보니 혼선이 오가고 있었다.
수백만 신병을 일체의 간부나 장교 없이, 군단장 혼자서 땀 뻘뻘 흘리며 통제하는 기분이다.
'아, 이거 겁나게 빡세네. 브라우니 있었으면 알아서 지가 다 줄 세우고 행군시켰을 텐데."
하수영은 도미용 가두리에 먼저 도미떼를 몰아넣으려고 애를 썼다.
중간중간 따라 들어가려는 다른 물고기들을 쫓아내고, 입구가 어딘지 몰라 헤매는 도미떼를 밀어 넣고,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행동해 본게, 이번 생에서는 처음이었나?
그때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하수영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마치 자신을 봐달라는 듯한 몸짓.
바로 150㎏짜리 참다랑어였다.
녀석은 시속 60km에 달하는 속력으로 빠르게 헤엄치며 하수영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하수영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엄지 손가락을 척 하고 들어 올렸다.
'네가 있었구나!'
하수영이 물 밖으로 나오자 박영식이 반색하며 맞이했다.
"왜 이렇게 오래 계셨습니까? 전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하수영이 무려 10분 가까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애가 타던 중이었다.
수중 카메라로 확인을 해보니, 이리저리 열심히 움직이고 있어서 뛰어들지 않은 것이다.
"잠시만요. 챙길 게 있어서요. 인공생선 사료 하나만 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150g짜리 참다랑어한테 주려고 그러나 보다, 하고 박영식은 생각했다.
인공생선을 챙긴 하수영은 차 내부 금고에서 엘릭서 병을 꺼냈다.
"한 방울이면 충분…… 에이, 째째하게 한 방울이 뭐냐. 내 첫 권속이 니만큼 팍팍 베풀어준다."
-마스터, 왜 제가 처음이 아닙니까?
"넌 권속이 아니라 도구잖아, 인마."
하수영은 인공생선 안에 담긴 곡물사료에 엘릭서 500㎖ 한 병을 통째로 부었다.
붓고 나니 조금 걱정이 되었다.
"설마 이거 먹고 죽는 건 아니겠지?"
물론 걱정은 금방 씻어버렸다.
"내가 선택한 권속이 그렇게 약해 빠졌을 리가 없지. 괜찮을 거야."
하수영은 바다로 돌아와서 다시 입수했다.
참다랑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의 주변을 이리저리 빙글빙글맴돌았다.
신어의 권능을 통해 그와 생각이 공명하는 경험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하수영은 녀석과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속으로 조용히 물었다.
'너, 내 양식장 생선치기 딱인 거 같다.
보더 콜리, 양치기로 유명한 목장견.
하수영은 놈에게서 그런 자질을 맡았다.
'앞으로 내 양식장을 잘 관리해 준다면 내가 좋은 걸 줄게. 이거 진짜 좋은 거야.'
참다랑어의 꼬리 움직임이 미묘하게 변했다.
좋다는 뜻인가 보다.
'자, 이걸 먹어. 그리고 나와 계약해서 내 양식장 수호참치가 되는 거야. 아주 영광스러운 자리란다.'
하수영이 참치를 향해, 엘릭서로 적신 인공생선 사료를 내밀었다.
'감사하게 생각해, 인마. 내가 이번 생에서는 권속 같은 거 안 키우려고 했어. 네가 저 생선들 몰아왔으니까 특별히 키워주려는 거야.'
그리고 참다랑어는 인공생선을 덥석 받아먹었다.
삼키자마자 참다랑어가 부르르, 온몸을 거칠게 떨면서 발작하기 시작했다.
한 방울만 먹어도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엘릭서.
그것을 작은 병을 통째로 먹었으니, 고통이 엄청날 것이다.
'주신의 아들이자 무한전생자의 권속 1호가 되려면 그 정도 시련은 버텨줘야지.'
참다랑어는 격렬하게 몸을 비틀다가, 갑자기 먼 바다를 향해 쏘아지듯이 뛰쳐나갔다.
마치 초공동 어뢰가 대량 발사된 것처럼 요란한 폭음이 수중을 뒤덮는다.
어림잡아도 시속 수백km는 훌쩍 넘을 듯한 속도였다.
***
엄청난 고통이다.
온몸이 녹아 들어가는 것만 같다.
참다랑어는 전신의 세포가 불붙는 고통 속에서 정신없이 질주했다.
참다랑어의 몸에 스며든 엘릭서가 신체 구조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신의 힘이 깃든, 진정한 '신어'로 거듭나기 시작한 것이다.
씨참치로 쓰려던 하수영의 계획은 백지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신어로 진화한 이상, 일반 참치들과 수정을 하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겉으론 참치의 모습을 하고 있으되, 이제는 종 자체가 달라졌으니.
고통은 마침내 끝났고, 참다랑어는 이제껏 품었던 눈과 전혀 다른 시야를 갖게 되었다.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주인의 존재가 보인다.
알 수 있다.
겉모습은 다른 인간들과 똑같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자신과 다른 참다랑어들과의 차이, 그 이상으로 주인은 인간을 뛰어넘은 본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의 시선이 똑바로 바라보며, 주종의 의식을 확정 짓는 말을 머릿속으로 전한다.
하수영은 선언하듯 말했다.
'오늘부터 너를 브라우니 폰 제니스 2세라고 부르겠다.'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참다랑어가 수면 위로 솟구쳤다가 다시 입수했다.
아니, 실제로 분명히 알아들었으리라.
흐뭇하게 바라보던 하수영의 표정이 돌연 일그러졌다.
'아, 잠깐! 너 지금 불임된 거냐? 아니아니, 너 이제 알 까도 다른 숫참치들이 수정 못 시켜? 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물속에서 머리를 에워싸며 안타까 워하던 하수영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할 수 없지. 앞으로 책임지고 정기적으로 다른 참치들 몰아와서 알까게 해라. 그건 할 수 있지?'
물론 할 수 있다고, 브라우니 2세는 그렇게 의식으로 대답했다.
'자, 그럼 양식어들 좀 구별해서 가두리그물에 몰아넣자. 시간이 없으니 빨리빨리 움직이자.'
브라우니 폰 제니스 2세 참다랑어는 분주하게 물속을 움직이며, 노련한 보더 콜리처럼 양식어와 자연어들을 구별해서 가두리그물에 몰아넣기 시작했다.
해수면 위쪽은 경악한 분위기였다.
"지금 저 참다랑어가 우리 사장님 말을 듣는 거 맞죠?"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는데?"
"아니, 생선과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도 안 돼."
"문어하고 소통에 성공했다는 해양과학자 다큐는 내가 봤는데, 참치와 소통을 하다니……."
"생선치기 참치라니, 허허…… 이거 어디 가서 말해도 누구도 안 믿을 겁니다."
브라우니 2세 참다랑어는 노련한 보더 콜리처럼 수백만 마리의 생선들을 요리조리 몰았다.
덕분에 돔, 우럭, 광어, 고등어 등 구분해서 가두리그물에 가둘 수 있었다.
한나절도 되지 않아서 모든 작업이 끝났다.
"사장님, 대체 어떻게 저 참다랑어를 조련한 겁니까? 제가 보고도 못믿겠습니다, 정말."
하수영은 의연하게 대답했다.
"흙을 부대끼며 수많은 식물과 오랫동안 소통해 왔습니다. 당연히 참치는 더 쉽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