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75화
169장 참치는 생선을 친다 (1)
-이곳 통영 바다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적조가 해안 일대를 덮쳤는데, 놀랍게도 참치 양식장 한 곳만 침투하지 않은 것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보십시오. 양식장에서 방류된 물고기들이 수영양식장 가두리그물 주변에 옹기종기 몰려있습니다.
-어떻게 적조가 수영양식장만 절묘하게 피해 가는 것일까요? 저 가두리그물에 무슨 특별한 영험함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이상, CBS 특파원이었습니다.
적조현상은 대다수 군중한테 그리 특별한 흥밋거리는 아니었다.
먼바다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든 말든, 신경 안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하지만 적조마저 피해간 수영양식장의 기적에는 많은 이들이 흥미를 가졌다.
-와, 지린다. 위성 사진 보고 쌀뻔;;
-진짜 통영에서 여수까지 해안가가 전부 빨갛게 변했는데, 참치 양식장만 핀포인트로 적조가 빗나갔다.
-이게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임?
-해류 흐름에 따라 불가능하진 않은데, 근데 저렇게 핀포인트로 저기만 딱 빗나간다고?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수영양식장을 압수수색해야 한다. 분명히 인세에 강림한 신이라는 증거가 나올 거다.
-하수영 어민회장님은 진짜 난 분이구나. 용왕님이 아주 그냥 애를 쓰고 티 나게 도와주시네.
-하수영 농민회장님인데?
-무슨 소리야. 하수영 축산회장님이시지.
-댓글에 어부, 농부, 축산업자 패키지 세트로 출동하셨네.
-다 틀렸다. 하수영 임대회장님이라고 해야 맞다. 우리나라 제일가는 개인 임대사업자인데 당연히 그리 불러야지.
***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부랴부랴 수영양식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지만, 여전히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적조가 정말 여기만 덮치지 않았군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직 적조는 소멸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백만 마리가 넘는 물고기들은 참치 가두리그물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유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덩치를 지닌 참다랑어 한 마리가 보였다.
150g이 넘는 참다랑어는, 이곳 바다에서 가장 크고 압도적인 몸집을 자랑했다.
양식장 직원이 입에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저 참치, 저게 아주 요물입니다. 요물. 저놈이 주변 바다에서 생선들을 죄다 인솔해서 여기로 데려왔어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우리가 영상도 찍어 놨습니다. 한 번 보실래요?"
그리고 영상을 확인한 해양과학기술원 직원들은 벌어지는 입을 막을 수 없었다.
선두에서 참다랑어가 수면에 가깝게 빠르게 헤엄을 치며 길을 안내하고,언뜻 보기에도 수백만 마리가 넘는 어류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그 뒤를 따른다.
도미, 우럭, 광어, 가오리, 고등어, 문어, 심지어 거북이까지…….
평생 바다 연구에 몸을 바친 그들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설명하기 힘든 벅찬 감동이 있었다.
"혹시 양식장에서 탈출한 참치입니까?"
"아니에요. 원래 먼 바다에 살던 놈인데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와서 알을 깠습니다."
"알을 까요?"
"네, 그래서 지금 우리 가두리그물에는 참다랑어 치어가 몇천만 마리 넘게 있어요. 저놈 말고도 몇 마리가 더 알을 깠거든요."
양식장 직원은 아주 신이 났다.
"그리고 다른 놈들은 다 떠났는데, 저놈만 이곳에 눌러앉았습니다."
"신기하군요. 보통 참다랑어들은 집단생활을 하지, 단독 생활은 거의 안 하는데."
"우리 양식장에서 먹이를 얻어먹거든요. 양식장 먹이가 마음에 드는가 봅니다. 사냥을 하러 다니는 건 못봤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하루에도 여러 번씩 먹이를 먹으려고 나타나더라고요. 그 외는 남해 바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시간 보내는 거 같더라고요."
"꼭 자기 영역을 순찰하는 거 같군요."
"영역 순찰? 오, 그거 말이 되네요. 뭔가 그럴듯합니다."
양식장 직원은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아참, 덕분에 방류 안 하고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해양과학기술원에서 적조가 우리 양식장은 피해갈 거라고 미리 알려 주셨잖습니까."
"예?"
기술원 직원은 황당해서 반문했다.
"저희는 왜 여기만 적조가 피해갔는지 그 이유를 조사하러 왔는데요?"
"네? 제가 듣기로는 기술원에서 미리 알려줬다고……."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우리 양식장 사장님이 그러셨습니다. 기술원에 지인이 있어서 귀띔으로 들었다고요."
"그 직원이 대체 누굽니까? 알려주십시오."
"그거야 저희도 모르죠. 사장님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기술원 직원들은 박영식 전무까지 찾아가서 간곡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박영식의 태도는 단호했다.
난 모른다. 사장님한테 가서 들어라.
내가 중간에 연결을 왜 해주냐.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맨날 세금만 뜯어가면서 적조 피해 방지 대책도 제대로 못 하고, 뭘 그렇게 알려고 하는 욕심은 또 목구멍까지 차 있는지."
박영식은 다른 양식장주들이 그러하듯, 해양과학기술원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가득했다.
기술원 직원들은 결국 어렵사리 하수영한테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통화는 불가능했고, 대신 간단한 답장만 받아볼 수 있었다.
-한국이 아니고 미국 쪽 해양과학자인데 양식장 직원들이 잘못 들은 거 같다.
-누구인지는 안 알려줌.
결국 해양과학기술원은 적조의 경로를 예측한 이가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
적조가 마침내 소멸했다.
붉게 물든 바다가 본래의 푸른색을 되찾았다.
그러나 통영에서 여수 일대의 양식장주들이 입은 타격은 컸다.
하루아침에 모든 물고기를 방류했으니.
"그래도 양식장 안에서 집단 폐사한 것보다는 낫지……."
수천, 수만 마리가 넘는 물고기들이 양식장 안에서 전부 죽는다면?
그걸 다 처리하는 것도 일이요, 고생이요, 돈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마음 편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 양식장주들은 수영양식장을 찾아와서 소동을 피웠다.
"돌려줘요, 내 물고기들. 제발 돌려 줘요."
"아니, 저걸 우리가 어떻게 돌려드려요?"
"내 전 재산이란 말입니다. 저것들 없으면 난 망해요, 망해. 제발 돌려주세요."
"누가 주기 싫어서 뻗대는 줄 아세요? 뻔히 보시면서 그런 말씀 하시면 어떡합니까."
물고기들을 돌려달라고 떼를 쓰는 양식장주들 때문에 박영식 전무는 어이가 없었다.
적조를 피해 참치 가두리그물 주변에 몰린 물고기들은 갇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물 주변을 둥지로 여기듯이 유영하며 눌러 붙어 있을 뿐이다.
그걸 돌려달라고 하니, 기가 찰 수밖에.
"사장님 물고기 있으면 알아서 잡아가세요. 단, 우리 참치들한테 스트레스는 주지 말고."
"그러지 말고, 좀 잡아서 돌려줘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우리가 왜 잡아서까지 돌려줘야 합니까?"
모두 억지를 부린 것은 아니었다.
양식장 측에 양해를 구하고, 스스로 물고기 회수를 시도하는 양식장주들이 오히려 많았다.
하지만 허공을 향한 헛손질이었다.
그물을 크게 쳐서 잡으려고 해도, 가두리그물이 워낙 큰 탓에 제대로 포위망을 형성할 수가 없었다.
또 양식장주들끼리 서로 부딪치다 보니 활동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박영식 전무는 참치 양식에 방해되는 것은 칼같이 제재했다.
"우리 양식장에 방해는 주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우리 직원들이 참치 밥 줘야 하는데, 이렇게 길을 막으시면 이동을 못 해요!"
"아니, 잠깐 그물만 좀 치고……."
"비켜요, 어서!"
적조가 닥쳤을 때는 동업자의 마음으로 두 팔 걷고 도왔다.
그것이 어민의 마음.
하지만 이제 상황은 끝났고, 참치를 굶기면서까지 그들을 배려할 의무는 없었다.
"그냥 포기하지. 양식업이나 하던 양반들이 무슨 도망친 물고기들을 잡겠다고."
"차라리 어선 타고 나가서 잡아 오는 게 훨씬 나을 텐데 말입니다."
"심정은 이해가 가는데, 그렇다고 우리 양식장에 방해를 주면 안 되지.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그러나 양식장주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갈등은 점점 심해졌다.
양식장에서는 매일같이 고성이 오고갔다.
결국 하수영이 서울에서 내려올 정도로,
***
끽!
거친 타이어 마찰음이 울렸다.
얼굴을 붉히며 드잡이질을 하고 있던 양식장주들과 수영양식 직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박영식 전무는 그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사, 사장님?"
소식을 들은 하수영이 직접 내려온 것이다.
게다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언뜻 보기에도 100명은 넘어 보이는, 덩치 좋은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이 그의 뒤를 우르르 따르고 있었다.
박영식이 입을 틀어막은 것은, 다름 아닌 하수영의 복장 때문이었다.
하수영은 매우 두꺼운 장식이 달린긴 코트를 입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 엄청 비싸다는 티를 내고 있는 코트였다.
심지어 코트는 황금색.
안의 상·하의 역시 황금색으로 받쳐 입었으며, 날카로운 코를 자랑하는 구두도 황금색.
심지어 손가락 열 개에도 모두 두꺼운 순금 반지 10개를 끼고 있었고,왼손에는 두툼하고 큼지막한 황금롤렉스 시계가 번쩍거렸다.
'청담동 부자들은 요즘 저렇게 입고 다니는 게 유행인가?'
사람에 따라서는 촌스럽고 유치하고 못 봐줄 만한 졸부 패션.
하지만 이곳 양식장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제대로 먹혔다.
하수영이 온몸에 두른 금칠이 뿜어내는 아우라.
그리고 백 명이 넘는 덩치 좋은 경호원들의 눈을 부릅뜬 태세.
소동을 피우던 양식장주들은 한순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수영은 살짝 거만한 걸음걸이로 다가와서 양식장주들 앞에서 멈췄다.
"남의 귀한 양식장에서 이게 무슨 영업 방해입니까? 다들 1심, 2심, 3심, 파기환송2심, 다시 3심, 또 파기 환송2심, 3심, 그리고 재심 테크트리 싸이클 반복 찍고 싶으세요?"
"……."
"……."
"저게 뭔 소리래요?"
"나, 나도 잘 모르겠어. 우리 사장님이시지만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실 때가 종종……."
"소송으로 인생 날리고 싶냐, 그걸 청담동 스타일로 말씀하신 거잖아요."
"아, 그런 거였다고?"
하수영은 거만한 가득한 눈빛으로 안경 쓴 변호사를 돌아보았다.
"김 변."
"네, 회장님."
"저 물고기들,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죠?"
"바다에 방류를 했으니 사실상 소유권 포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물고기들이 원래 누구 소유였는지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요. 거의 무주물로 보는 게 합리적일 듯 합니다."
"들었죠? 저 물고기 중 이게 자연어가 아니다, 다른 양식장 게 아니라 내 양식장 거다. 이거 입증 가능하신 분?"
"……."
그런 게 입증 가능할 리가 없다.
하수영은 느긋하게 태블릿을 펼쳐들었다.
"지금부터 성함을 불러드리는 분은 바로 양식장으로 돌아가셔서 좋은 소식을 기다리시면 됩니다. 제가 중앙정부와 지자체와 협의해서 구제책을 제공해 드릴 겁니다."
"정말입니까?"
"호명이 안 된 분들도 얌전히 떠나 주시고, 알아서 해결책을 찾아보세요. 오늘 이후로 우리 양식장을 찾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자, 그럼……."
하수영은 차례차례 이름을 불렀다.
박영식 전무는 그 이름을 하나하나 듣고 불현듯 깨달았다.
양식장에 떼를 쓰지 않은 사람.
자기 물고기만 어떻게든 건져 가보려고, 피해 안 끼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수영양식장에 책임을 지우고 소란을 피우고 시비를 걸었던 양식장주들은 한 명도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자, 끝났습니다."
"……."
"이름 불린 분들은 돌아가셔서 좋은 소식 기다리시고, 안 불린 분들도 빨리 돌아가세요."
하수영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백여 명의 경호원들이 눈을 부라리며 앞으로 척척 다가왔다.
양식장의 젊은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우리 사장님, 분위기가 꼭 조폭기업 사장 같지 않아?"
"그보다는 졸부 조폭 두목이 애지 중지하는 2세 후계자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