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74화
168장 로열 통조림 (4)
적조 현상.
해수어 양식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연재해.
특히 바다에 가두리그물을 치고 물고기를 키우는 곳에서는 더욱 막막하다.
엄청나게 증식한 플랑크톤 사체 떼가 아가미에 끼어 호흡을 막고, 그 플랑크톤 사체 떼를 분해하라고 미생물이 엄청나게 번식하며, 물속산소량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 때문에 물고기들이 집단으로 폐사하는 것이다.
"아니, 작은 양식장도 아니고 산소발생기 몇 개 가지고 저 넓은 가두리를 어떻게 커버 칩니까! 우리 양식장 규모를 생각하셔야죠!"
"그렇다고 가만히 구경만 할 거야!! 그물 교체한 지 아직 하루밖에 안됐다고! 사장님 왔다 갔다 하자마자 죄다 폐사하는 걸 볼 거냐고!"
직원들은 황급히 배에 황토를 싣고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바다에 황토를 뿌려서 플랑크톤을 밑으로 가라앉히려는 것이다.
그래 봐야 배 몇 척이 과연 얼마나 커버할 수 있겠느냐면은.
해수부에서 긴급 재난 문자가 날아왔다.
통영 해안에 적조가 발생했으니, 양식장주들은 이에 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씨발! 대비만 하라고 하지 말고 뭔가 대책을 해줘야지! 맨날 세금만 뜯어가면서 해주는 건 하나도 없고!"
"농부들은 세금 한 푼도 안 낸다는데!"
황토를 실은 배들이 가두리 그물을 넓게 에워쌌다.
적조가 가두리그물에 가까이 다가오면 황토를 살포해서 가라앉히려는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적조에 비해서, 몇 척의 배의 방어 지형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
"전무님, 그냥 그물 엽시다."
"뭐? 그물을 열자고?"
"저거 덮치면 어차피 물고기 전부 다 죽어요! 그거 일일이 다 치우는 게 더 돈이고, 더 시간 잡아먹어요!"
"……."
"풀어서 자기들끼리 살라고 보내고, 양식장 다시 키워야 됩니다. 가두리 안에서 물고기 다 죽으면 그물째로 전부 폐기해야 하는데, 그걸 어느 세월에 다 해요?"
맞는 말이다.
또한 적조에 대비하는 소극적 수단 이기도 했다.
폐사를 막을 수 없으니, 차라리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보라고 풀어주는것.
적어도 양식장에 물고기 시체가 쌓이는 것은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좋아. 그러는 게 낫겠다. 그럼 바로 가두리그물을 풀어서……."
-안 됩니다.
"뭐?"
프리덤이 갑자기 끼어들자 박영식 전무는 당황해서 폰을 쳐다봤다.
-본사 프리덤의 연락입니다. 모든 대응을 철수하고, 그저 관망만 하라는 내용입니다.
"뭐? 본사에서 그렇게 연락이 왔다고?"
-네, 그렇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사장님이 여기 사정을 잘 모르시는 게 틀림없어! 내가 직접 설명할 테니까 전화 걸어!"
하수영과 바로 전화 연결이 되었고, 박영식 전무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이거 놔두면 가두리 안에서 참치들 폐사합니다! 그럼 기껏 설치한 그물째로 전부 다 폐기해야 됩니다! 지금이라도 가두리 열어서 참치들 다 풀어주는 게……!"
-제가 해양과학기술원에 지인이 있어서 들었는데, 그 적조가 우리 양식장까지 덮치진 않을 거랍니다.
"네?"
박영식 전무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해양과학기술원에서 그런 것까지 예측했다고?
언제나 뒷북만 치는 그 세금 낭비머저리들이 대체 무슨 재주로?
-확실한 정보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우리 양식장이 피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하, 하지만……."
-해양과학기술원뿐만 아니라 미항공우주국에서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해줬습니다. 저도 여기저기서 교차 검증한 정보니까 괜찮아요.
"그, 그렇습니까?"
미 항공우주국이 끼어드니까 뭔가 그럴싸한 예측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미 항공우주국이라면, 바다가 아니라 화성 전문 아닙니까?"
-화성 전문은 헤슬라죠. 나사는 바다 전문이에요. 유로파의 얼음도 관측하는 친구들인데 남해 적조쯤이야 별거 아니죠.
"……."
-아무튼 확실한 정보니 믿어보세요. 걱정할 거 전혀 없습니다.
박영식 전무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직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직원들도 쉽게 믿지는 못했다.
"해양기술원이 언제부터 그런 믿음직스러운 예측을 했다고요? 양식하는 데 하나도 도움 안 되는 세금도둑들인데."
"근데 나사도 같은 말을 했다고 하니 신뢰가 갑니다."
"우리 사장님이 나사에도 친분이 있었습니까?"
"저번에 뉴욕의 명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구매하셨다잖아. 미국에도 상당한 인맥이 있지 않겠어?"
"나노소프트가 북미 라면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으니, 나사하고 인연이 있을 수도 있겠네."
"그런데 나사는 우주 탐사하는 친구들이잖아?"
다들 미심쩍어하면서도, 하수영의 결정에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황토를 실은 배들을 그대로 놔두었다.
또 언제든 가두리그물을 열어서 참치들을 방류할 준비도 해두었다.
"오, 저거 봐. 신기한데?"
"와, 정말이네."
"대박. 해양기술원 친구들이 웬일로 옳은 예측을 했대?"
놀랍게도 가두리그물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해안에서 적조의 확장이 멈췄다.
적조는 더 이상 가두리그물 쪽으로 다가오지 않은 채, 다른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감탄하며 지켜보던 어느 양식장 직원이 문득 중얼거렸다.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아니, 적조 이동하는 게 꼭 무슨… 우리 가두리그물만 피해서 가는 느낌이야."
"아,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모양새인데?"
"꼭 가두리그물이 적조를 물리치는 형세 같지 않아요?"
듣고 보니 그럴싸해서 박영식 전무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박영식 전무가 급히 외쳤다.
"혹시 모르니 배 몇 척은 대기하고, 나머지 배들은 다른 양식장 도우러 가줘!"
"네! 알겠습니다!"
여기 통영에는 수영양식장만 있는 게 아니다.
참돔, 광어, 우럭 등 다양한 어종을 키우는 동료 양식장들이 다수 있었다.
우리 양식장은 적조가 피해갔다고 가만히 놀고만 있을 수는 없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주변 양식장들을 도와줘야 한다.
"아이고! 아이고!"
가장 가까운 참돔 양식장주는 울상이 돼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적조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열심히 황토를 뿌리면서 최대한 가라앉혀 보려 하지만, 작은 양식장이 할 수 있는 대처는 한계가 있었다.
"김 사장님, 지금이라도 열어서 전부 방류해야 합니다. 이러다가 장안에서 다 죽으면 폐기하는 돈만 더 나가요!"
"아까워서 그러지, 아까워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김 사장은 이미 부지런히 양식장을 개방하고 있었다.
피 같은 재산이 날아가는 결정이다 보니,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예전에도 적조 피해를 몇 번 겪어봤기에, 지금 이게 가장 최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폐사할 거라면 차라리 알아서 살아남게 놔주는 것.
양식장 치우는 노력과 비용만큼은 아낄 수 있으리라.
참돔 양식장을 따라 다른 양식장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물고기들을 방류하고 있었다.
"위성사진이에요! 지금 적조 실시간 이동 현황이랍니다!"
"뭐 이렇게 커? 이래서 물고기들이 어디로 도망치라고?"
"이 정도면 50km 이상은 되겠는데?"
큰 초승달 모양을 한 적조 띠가 통영을 감싸듯이 에워싸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조만간 해안까지 완벽하게 덮칠 것 같았다.
이러면 물고기들이 도망칠 곳이 없어져 버린다.
통영 해안은 죽은 물고기들이 대량으로 떠밀려 올 것이다.
양식어뿐만 아니라, 근처 바다에서 서식하는 자연어들까지도 전부 폐사할 것이다.
"아이고야, 올해 양식은 망했네. 망했어."
여기저기서 체념한 양식장주들의 넋을 잃은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수면 위로 엄청난 숫자의 물고기 떼가 모습을 보였다.
양식어, 자연어 등 가릴 것 없이 모두 한데 섞인 채 헤엄을 친다.
적어도 수십만, 수백만 마리 이상은 되어 보이는 엄청난 물고기 떼의 집단 이동이었다.
"물고기 떼들이 이동한다!"
"어떻게든 살려고 도망치는 거야. 아이고, 불쌍한 것들."
"어어? 근데 쟤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여?"
"수영양식장 쪽으로 가는 거 같은데?"
놀랍게도 물고기 떼는 수영양식장방향을 향해 일제히 이동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선두에서 거대한 물고기의 그림자가 보인다.
"저건 참다랑어잖아!"
"물고기들이 참다랑어를 따라가고 있어!"
어림잡아도 150kg 이상은 되어 보이는 성체 참다랑어 한 마리.
크기로 보면, 수영양식장에서 탈출한 게 아니라 자연에서 살던 놈이다.
박영식 전무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놈 저거, 혹시 우리 양식장에서 알 깐 그놈 아니여?"
"맞는 거 같은데요. 크기가 얼추비슷합니다."
암컷 참다랑어의 인솔을 따라, 수백만 마리가 넘는 물고기들이 양식어, 자연어 가리지 않고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
그물.
본래는 동족을 해하고 위협하는 존재.
하지만 참다랑어는 어느 날 특별한 그물을 발견했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오히려 따스하고 포근한 보호감을 안겨주는 그물이었다.
-이곳은 신성한 곳, 잡스러운 것들은 다가오지 못한다.
그물은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자연 그 자체를 뛰어넘은, 주신의 권능이 깃든 신성한 힘이었기에, 자연의 권속인 생명체가 안락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
그래서 참다랑어는 알을 낳았다.
알만 낳고 떠나려고 했는데, 그물주변에는 맛있는 먹이도 많이 있었다.
그것을 주워 먹다 보니 어느덧 참다랑어는 통영 바다에 눌러앉았다.
통영의 석양과 여수 밤바다를 번갈아 가로지르며 양식장 곡물사료를 얻어먹고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재해를 만났다.
인간이 바로 적조라 부르는 것이지만, 참다랑어가 그 명칭을 알 리가 없었다.
다만 참다랑어는 경험을 통해, 제것에 갇히면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참다랑어는 적조를 피해서 미친 듯이 헤엄을 쳤다.
하지만 적조는 어디에도 있었다.
이렇게나 넓은 바다인데, 도망칠 곳이 보이지 않았다.
한쪽은 육지요, 한쪽은 적조의 띠가 크게 번지고 있으니, 도망칠 곳이 없었던 것이다.
참다랑어뿐만 아니라 다른 물고기들도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숨 막히는 띠가 천천히 조여 오는 데, 도망칠 곳이 없다니!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물고기 떼에 섞여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던 참다랑어는 불현듯 그 신성한 그물을 떠올렸다.
왠지 그 주변이라면 안전할 것 같았다.
아니, 그런 확신이 들었다.
참다랑어는 자세와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아가미와 비늘, 지느러미의 강렬한 떨림을 통해 물에 파동을 일으켰다.
다른 물고기들에게 보내는 소통의 신호였다.
나를 따르라! 라는.
사람들은 물고기가 뇌가 작아서 감정과 고통을 느끼지 못할 만큼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물고기도 감정을 느끼고, 상호 간의 소통을 한다.
인간과는 소통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문어 한 마리가 빠르게 날아와서 참다랑어의 배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줘! 라는듯이.
개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닌 문어는 참다랑어 코인에 탑승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참다랑어의 의사가 전체 어류 군중에 퍼졌고, 패닉에 빠져 있던 수백만 마리의 물고기들은 참다랑어의 인솔을 따라 대이동을 시작했다.
***
"……."
"……."
"우리 가두리그물에서 오늘 물고기들 정모하기로 했냐?"
"워매, 저 물고기 떼 좀 보소."
"통영바다 물고기란 물고기는 전부 다 모인 거 같은데요……."
통영 바다는 적조로 완전히 물들었다.
해안까지 붉은 바닷물이 가득 찰정도였으니.
하지만 수영양식장이 있는 지역만큼은 적조가 침투하지 않았다.
"사장님이 그랬었지? 용한 박수무당이 굿해서 영험함이 깃든 그물이라고."
"정말 신통합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