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72화 (672/1,270)

프랜차이즈 갓 672화

168장 로열 통조림(2)

남원그룹 후계자, 전형기 상무는 정서희한테 잘 보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적대적 인수를 노린다는 상상은 조금도 품지 않았다.

청담동 VIP들을 위한 프리미엄 참다랑어 통조림을 만드는 거라고 하지 않는가.

"그럼 몇 개 정도 찍어낼 생각이야?"

프리미엄 한정판이라고 했다.

아마 소소하게 1만 캔 정도 찍어 내지 않을까, 하고 전형기는 생각했다.

"응, 일단은 5억 캔 정도 찍어두려고."

"5, 5억 캔이라고?"

"응. 왜?"

"아니, 너무 많은 거 아냐?"

5억 캔이나 되는데 그게 무슨 프리미엄 한정판이라고?

"명품백도 아니고 먹는 거잖아. 나중에 고객들께서 찾는데 물량이 부족하면 어떡해. 그러니 미리미리 많이 찍어둬야지."

"그, 그래도…… 5억 캔이면 너무 많은데. 우리 남원참치 2년치 판매량이 넘는다고."

"그랬어?"

"그래, 해마다 2억 캔 이상 팔리고 있다고."

뭔가 '그거 밖에 안 돼?'라는 듯한 표정에 전형기는 살짝 발끈했다.

호감 있는 여자 앞에서 작아 보이고 싶지 않은 남자의 본능이다.

"오빠, 그래도 한 번에 많이 찍어두는 게 낫지. 어차피 참치캔은 몇 년이고 오래 가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5억 캔은 좀……."

"우리 마트 VIP들을 우습게 보지 마. 숫자도 상당하고, 구매력도 꽤 돼."

"음……."

"그리고 물량 떨어질 때마다 캔 찍어달라고 OEM 발주 넣는 것도 귀찮아. 한 번에 팍 찍어두는 게 낫지."

"알았다. 나중에 물량 소화 안 된다고 원망하면 안 된다."

"설마 통조림 5억 캔 쌓아둘 공간도 없을까 봐. 우리 회사 돈 많아."

"요즘도 프라임컴퍼니 엄청 잘나가지? 신두도 불티나게 팔린다고 들었어. 잘됐구나."

'이 오빠가 제정신이야?'

정서희는 속으로 조금 어이가 없었다.

에너지바나 간편죽만큼은 아니어도, 남원참치캔도 신두 때문에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먼저 신두 이야기를 꺼내다니.

"신두가 잘나가긴 하는데, 우리 회사 영역은 아니야."

"뭐야, 프라임컴퍼니 상표 붙이고 팔던데?"

"근데 우리 회사에서는 전혀 관여 안 해. 생산도 JM식품에서 하고 있고."

신두 공장을 한창 짓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아직 만들지는 않고 있으니 거짓은 아니다.

"JM식품에서? 잘됐네. 아, 그러고 보니 나중에 네가 JM식품까지 물려받으면……. 어휴, 장난 아니겠다. 너도 프라임컴퍼니 지분 5%인가 갖고 있지 않아?"

"응, 사업 초기에 100억 투자하고 5% 받았으니까. 지금은 100억으로 5%가 뭐야, 0.5%도 못 사."

"지금 회사 가치가……."

"16조 원은 옛날에 돌파했어."

"상장은 안 할 거지?"

"오빠 같으면 상장할 거야?"

"아니, 절대 안 하지."

"우리도 상장 안 해."

전형기는 우리라는 말이 괜히 거슬렸다.

최대주주인 하수영과 그만큼 친밀하다는 뜻으로 느껴져서였다.

"오너하고는 요즘 어때?"

"어떻고 말고가 뭐 있어. 늘 똑같지. 회사 경영에 신경 안 써."

"으음, 그래도 오너 입장에서 새삼 지분 15%가 아까울 만도 할 텐데……."

"초반 시드머니 덕분에 지렛대 크게 굴려서 시간 엄청 아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들어갈 때, 나올 때 기분 다른 사람 아냐."

더 물어보고는 싶지만, 그랬다가는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다.

"알았어, 5억 캔 찍으면 된다. 이거지?"

"응, 1차로 5억 캔."

"5억 캔이나 찍는데 2차가 또 있어?"

"나중에 다 소모하면 그때 또 발주한다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니야, 오빠?"

"아, 그렇지. 다 소모하면 다시 찍어야지."

전형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설마 5억 캔이나 되는 물량인데, 1%만큼이라도 소모할 수 있을까 하고,

'참다랑어 통조림이면 90g당 만 원훨씬 넘게 받아도 부족할 텐데, 그게 얼마나 팔리겠어?'

남원 캔참치 90g의 경우, 소비자가로 1,500원 정도를 받고 있다.

어쩌면 몇 만 원 이상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윤을 남기려면 10만 원을 넘겨야 할 수도 있으리라.

과연 그런 참치캔이 얼마나 팔릴까?

전형기는 그 점에 있어서 무척 회의적이었다.

'90g 기준으로 개당 2,900원 정도 받으면 그럭저럭 충분하겠지? 일단 참다랑어잖아."

정서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면, 그는 기겁을 했을 것이다.

***

프라임컴퍼니는 남원그룹과 정식으로 OEM 계약을 맺었다.

총 5억 캔, 납품기간, 위약금 등 정확한 조항들을 삽입했다.

"상무님, 이거 위약금이 너무 센거 아닙니까?"

"이 정도가 뭐가 세다고? 계약 기간 지키기 빡센 조건도 아닌데."

"그래도 통상 기준보다는 위약금이 센 거 같아서요."

"걱정 마. 우리가 중간에 안 하겠다고 엎을까 봐 안전장치로 넣어둔 것뿐이니까."

납품기간 등 이행 조건 자체는 무리될 게 없었다.

남원그룹이 위약금을 지불하게 되는 상황 자체는 생길 수 없다.

"우리가 계약 위반하려면 대한민국에 전쟁이 났거나 지진 나서 공장이 못 쓰게 됐거나, 그 정도는 되어야 해."

그리고 그런 상황은 당연히 면책조항이 있었다.

즉 전형기가 보기에 위약금을 지불할 만한 상황은…….

"우리가 고의로 뻗대는 경우밖에 없지. 안 그런가?"

"네, 알겠습니다."

부하 직원도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는 다만 위약금이 통상적인 기준보다 너무 높은 까닭에 의아함을 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추가 생산 조건? 이건 또 뭐죠? 5억 캔이나 찍었는데 나중에 또 찍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캔 재고량이 10%씩 줄어들 때마다 남원그룹은 그만큼 채워줘야 할 의무가 생긴다.

"이 조항이 발동할 일은 어차피 없어. 참다랑어 참치캔이 얼마나 팔린다고."

"그럼 왜 굳이 이런 조항을 ……."

"아랍 큰손이 혹시라도 크게 쓸어갈 경우를 대비해서 넣은 거라던데.

뭐, 그렇게 큰손이 나타나서 팔아주면 프라임컴퍼니도, 우리 남원그룹도 좋은 일 아닌가?"

"그렇군요."

그렇게 참다랑어 통조림 OEM 계약은 별 탈 없이 체결되었다.

어차피 5억 캔을 찍어내려면 상당 한 시간이 걸린다.

"틈틈이 남는 라인 돌려주면서 짭짤한 알바 하나 뛴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맞습니다."

남원그룹 내 어느 누구도 그 안에 감춰진 함정카드를 눈치채지 못했다.

***

"전무님, 우리 참다랑어로 통조림을 만든다는 게 사실이에요?"

벌써 몇 번째 듣는 질문인지 모른다.

박영식 전무는 조금 짜증이 나서 대답했다.

"아, 사실이야."

"아니, 비싼 참다랑어로 겨우 참치 캔이나 만든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무슨 상관이야. 우리 월급 깎이는 것도 아닌데. 사장님이 참치를 어디에 내다 파는지는 모두 사장님 마음이지."

"그래도 좀 아까워서. 우리 참다랑어들이 이렇게 쑥쑥 잘 크는데, 횟감으로 못 쓰이고 캔참치로 전락한다는 게 불쌍합니다."

"인마, 참치 입장에선 이래나 저래나 먹히는 건 똑같은 거야. 상품한테 감정 이입하지 말라고, 양식장하는 놈이…… 쯧."

"아니, 나는 기왕이면 우리 귀염둥이 참치들이 값비싼 고급회로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바람인 거죠. 그래야 내가 보람이 있지. 정작 감정 이 입은 전무님이 하는 거 아니에요?"

"시끄럽고, 오늘부터 바쁘니까 단단히 각오해. 50kg 이상 참치들은 무조건 전부 출하한다."

박영식 전무는 아침부터 참치 출하를 위해 서둘렀다.

가두리그물은 상당히 크다.

물론 참치 입장에서는 무척 좁은 케이지나 다름없겠지만, 인간 입장에서는 엄청난 크기다.

참치를 대거 출하하려면 해야 할 일이 많다.

"근데 전무님, 우리 참치들 이상하게 성장 속도가 빠른 거 같지 않수?"

"나도 그렇게 느끼긴 해. 체감상 20% 정도는 더 빠르게 몸집이 커지는 거 같아."

"곡물사료로 바꿔서 그럴까나요?"

"에이, 곡물사료로 바꾼 지 얼마나 됐다고, 내 생각에는 사장님이 양식 장 인수하고부터 그렇게 된 거 같은데……."

박영식은 턱을 쓰다듬으며 덧붙였다.

"뭐, 우리 참치들이 그만큼 스트레스 안 받고 잘 크는 유전자 타고난 거겠지."

말도 안 될 정도까진 아니지만, 수영양식장 참치들은 유독 몸집 커지는 속도가 빠르다.

"자자! 다들 치어들 안 다치게 조심하는 거 잊지 말고!"

"네, 치어들 도망갈 시간은 주고 있습니다."

현재 가두리그물은 2중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기존의 1차 가두리그물.

다른 하나는 1차 가두리그물을 더 넓은 폭으로 감싼, 촘촘한 그물코의 2차 가두리그물.

2차는 치어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둬두는 용도다.

물론 임시방편이다.

"우리 곡물사료가 정말 맛있긴 한가 보네. 치어들이 도망갈 생각을 안 하고 눌러앉은 거 보면."

"근데 빨리 제대로 된 2차 그물만들어서 새로 깔아야 할 텐데요. 치어들 성장하기 시작하면 지금 이 면적으로는 답도 없습니다."

치어 숫자는 대충 수천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된다.

가능한 많은 머릿수를 확보하고 싶다면, 아주 넓은 2차 가두리그물을 새로 설치해야 한다.

지금 면적으로는 턱도 없다.

단칸방에서 8촌 대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열악하다.

***

참다랑어들이 남원식품 공장에 속속들이 도착했다.

공장장은 값비싼 볼보 트레일러들이 줄을 지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수영농장에서 비싼 볼보 트레일러를 잔뜩 샀다고 하더니, 저놈들이 그 놈들이구만."

냉동 컨테이너에서 참다랑어들이 차례차례 내려서 공장으로 옮겨졌다.

즉시 가공에 들어갈 수 있도록, 완전 냉동이 아니라 냉장 온도가 유지된 상태.

"원형 보존된 참치를 보는 건 처음인데. 우린 맨날 염장된 원어로만 받아왔잖아."

"이 맛있는 걸 겨우 참치캔으로 만들다니."

"근데 염장처리 안 한 거니까, 기존 참치캔하고는 확실히 다른 맛이 나겠네."

"그러니까 프리미엄 통조림이겠지. 강남 VIP 노리고 기획한 이벤트성상품이라던데."

"이벤트성 상품인데 무슨 5억 캔이나 찍는다는 거야?"

그렇게 고급회로 쓰여야 할 참다랑어들은 통조림으로 가공되기 시작했다.

***

참다랑어 통조림 런칭 준비를 하던 정서희는 수영리에서 온 연락을 받았다.

안살린 왕자의 수행비서, 지하크는 능숙한 한국어로 말했다.

-왕자님께서 참다랑어 통조림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첫 구매자가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100만 캔 정도 주문을 하고 싶은데요.

"영광입니다. 100만 캔 주문, 알겠습니다. 첫 제품이 나오는 대로 바로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안살린 시티로 거듭난 수영리는 현재 상주인구, 유동 인구수가 상당하다.

안살린은 당연히 그들을 위해서 대량으로 통조림을 구매하는 것이리라.

"가격은 29억 원입니다. 하지만 첫 고객이고 대량주문이니…… 28억원에 해드리겠습니다."

-네? 28억 원이라고 하셨습니까?

지하크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1,000억 원이 아니라요?

"네? 1,000억 원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소비자가격은 개당 2,900원입니다."

-개당 10만 원이 아닙니까? 참다랑어 통조림이잖습니까.

"……."

정서희는 잠시 호흡을 고른 뒤, 안살린이 있는 수영리 방향으로 정중히 목례를 했다.

'죄송해요, 왕자님. 제가 감히 왕자님의 통장을 신성모독했습니다.'

-설마 참다랑어 등급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급 횟감으로 팔아도 전혀 문제가 없는 최상등품들입니다. 다만 통조림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일반 소비자들이 마음 놓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으로 '손해 보고' 파는 거예요."

-소비자들을 위해 손해 보고 판다고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대번에 납득하는 걸 보고, 정서희는 다시 한번 안살린의 스케일과 스타일을 깨달았다.

-우리는 1,000억 원어치를 일단 구매하려고 생각했으니, 거기에 맞춰서 배송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서희는 전화를 끊고 밝아진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출발이 괜찮네. 느낌 아주 좋은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