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67화
167장 농업과 수산업 사이 (1)
"고등어 모방 사료라니."
박영식 전무는 신기한 듯이 고등어 모양의 사료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대충 보면 진짜 고등어로 착각할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생선 특유의 비린내는 전혀 없지만, 곡물이 가지는 독특하고 고소한 냄새가 난다.
'근데 참치들이 이 냄새를 좋아하려나?'
"본사에서는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다 하셨대?"
-참치 양식을 대량으로 확장해야 하는데, 결국 먹이에서 자유롭지 않으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긴, 고등어 가격이 비싸긴 하지. 어선 들어오는 날하고 안 맞으면 공치기도 하고."
-그리고 고등어 씨종이 마르는 경우도 대비해야겠지요.
"에이, 바다가 얼마나 넓은데 고등어 좀 잡아들인다고 그게 씨가 마르겠어? 물고기는 무한으로 많이 있다고."
-글쎄요. 마스터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바다에 의존하지 않고 먹이를 공급할 수 있어야, 진정한 100% 양식이 된다고 생각하십니다.
"음, 먹이를 바다에 의존하지 않아야 진정한 양식이다……."
박영식 전무는 왠지 그 말이 입에 착 감겨서, 몇 번이고 혼잣말로 반복해보았다.
"식용비닐은 재질이 뭐지?"
-단백질을 합성해서 만든 겁니다. 당연히 사람이 먹어도 안전합니다.
"그럼 꽤 비싸겠는데."
-오히려 고등어를 먹여서 키우는 것보다는 참치 단가가 더 낮아질 겁니다.
곡물 사료를 식용비닐로 감싸서 고등어처럼 보이게 만든 인공생선이라.
박영식은 인공생선을 한 박스 들고 다리를 가로질러 한 가두리그물을 향해 다가갔다.
"좋은 먹이이긴 한데, 참다랑어들이 쳐다도 안 보면 말짱 도루묵인데."
-그러니 시험을 해야지요. 마스터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만.
"좋아, 한번 줘보자."
박영식은 인공생선 몇 마리를 들어서 바다로 훌쩍 던졌다.
첨벙, 하고 인공생선이 물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참다랑어들이 수면 쪽으로 부상하며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박영식은 조마조마한 기분을 안고 지켜봤다.
바로 그 순간, 참다랑어 한 마리가 인공생선을 덥석 삼켰다.
"오, 일단 하나 먹었어."
맛이 괜찮았나 보다.
참다랑어는 곧바로 입을 덥석 벌리고는 다른 인공생선도 먹어치웠다.
1차로 던져 넣은 인공생선들이 순식간에 동나자, 박영식 전무는 아예 박스를 잡고 힘껏 팔을 휘둘렀다.
후두두둑, 하고 열 개가 넘는 인공생선이 바다에 떨어졌다.
참다랑어들은 경쟁하듯이 첨벙거리며, 한 개라도 더 인공생선을 많이 먹으려고 애를 썼다.
"이야, 이거 잘 먹는데? 이 정도면 이제 고등어 먹이 안 사와도 될 거 같다."
-성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이거 얼마나 공급받을 수 있는 거냐?"
-얼마든지요. 참치 100만 마리를 키운다고 해도 지속적인 먹이 공급이 가능합니다.
박영식은 속으로 감탄했다.
한국 최고의 농민 재벌이라더니, 과연 농장 생산량이 무시무시하다.
다음 날부터 곧바로 인공생선 배송이 시작되었다.
컨테이너를 3칸씩 매단 볼보 트레일러 수십 대가 줄을 이어서 양식장으로 들어왔다.
중형 크레인카가 아예 상주하며, 볼보 트레일러 부대가 싣고 온 컨테이너를 하역했다.
넓은 공터에는 컨테이너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차근차근 자리를 잡았다.
"건조 곡물이라서 실온에서도 장기 보존이 가능합니다. 여름에도 부패할 염려가 거의 없어요."
양식장 직원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다.
"와, 전무님, 이거 장난 아닌데요?"
"고등어 먹이 상하지 말라고 얼음섞어서 보관하고 그랬는데, 이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잖습니까?"
"근데 저 볼보 트레일러들, 왠지 탐나는데?"
"저 트레일러들, 죄다 우리 회장님 거라고 하잖아."
"뭐,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네. 이번에 수십 대 넘게 미국에서 사오셨다고 들었어."
"대박이네. 저거 대당 몇억씩은 할 텐데."
"트레일러 한 대에 6억이라고 하더라고."
"아니, 그런 차를 수십 대씩이나 주문을 하셨단 말이야? 정말 대박이네."
"농가용 람보르기니 트랙터도 5,000대인가 주문하셨다고 들었어."
"진짜 대박이네. 우리 회장님, 대체 돈이 얼마나 많으신 거지?"
"청담동 부동산 재벌이니 어련하시겠어. 강남에 땅 빌딩 가지신 것만 다 합쳐도 10조 원이 넘어간다던데."
"10조 원이라니. 뭔가 상상이 안갑니다."
양식장 직원들은 대부분 이곳 토박이다.
서울을 한 번도 방문해 본 적 없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울이나 강남 쪽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먼 외국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근데 듣기로는 강남 부동산은 회장님 재산 중에서 극히 일부래요."
"뭐? 10조 원이 넘는데?"
"네, 그렇답니다. 미국 라면 레스토랑, 중국 버섯 농장에 비하면 국내재산은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헐…… 대체 어느 정도인데?"
"중국 농장에서 버는 돈만 하루에 수천억 원인가 된다고 하던데요? 연기대 수익이 180조 원가량 된다고……."
"역시 중국 시장이 무시무시하긴 하구나."
"중국 시장이 큰 것도 있고, 우리 회장님이 독점 식자재를 단단히 쥐고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황비버섯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물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황제 식재료잖아."
어느 직원이 묘한 눈으로 인공생선 컨테이너를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혹시 저 먹이 안에 황비버섯도 갈아서 넣은 것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황비버섯은 원래 국물요리에 넣어야 제맛이지, 그냥 생이나 구워서 먹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
국물요리 맛을 돋워주는 식재료를 갈아서 넣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
수영양식장에서 양식되는 참치는 일부는 수영오세안에 공급되고, 대부분은 일본의 도우야 초밥에서 구매해간다.
도우야 초밥은 '중금속 제로 참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무서운 속도로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일본 소비자들은 자기들이 먹는 참치가 한국에서 양식되었다는 것을 모른다.
"사장님, 수영농장에서 구매해 온 쌀 말인데요. 고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그래?"
"네, 쌀 맛이 다르다는 게 혀끝으로 확 느껴진다고 다들 그러시네요."
"일본 전 매장의 쌀을 바꾸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결과가 생각 이상이군."
도우야 히데키는 나날이 늘어만 가는 매출이 만족스러웠다.
얼마 전 세관의 방해 때문에 곤혹을 치를 뻔했지만, 그 일도 무사히 잘 해결되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붉은불개미를 고의로 심어서 음해를 하려고 하다니. 하여튼 간에 정부 놈들이 하는 짓이란…….'
원래 도우야 초밥은 2위와의 격차가 무의미할 정도로 압도적인 1등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시장 점유율과 매출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올해 치바와 이바라키 지역에서 곡물 수확량이 별로 좋지 않을 거라고 하던데요."
"그래? 무슨 악재라도 있었나?"
"병충해가 좀 심했나 봅니다. 작년보다 15% 이상 생산량이 떨어질 거라고……."
"안 그래도 작년, 재작년에 물난리 때문에 연속 흉작이 들었는데, 올해는 또 병충해라니."
도우야 히데키는 농림수산성에서 하수영의 벌크선에 장난을 친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닌가 하고, 속으로 혼자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사흘 뒤, 서울에서 수영참치 관련 중대한 발표가 있답니다."
"뭐? 그걸 왜 이제야 말하나!"
도우야 히데키는 내심 서운했다.
그래도 가장 큰 고객인데, 자신한테는 초대장도 안 보낸 것인가?
하지만 듣고 보니 오해였다.
"우리 도우야 초밥은 하수영 사장이 나중에 직접 방문해서 브리핑을 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아, 역시 그랬군. 그래도 티켓은 끊어."
"네?"
"나중에 일본 들어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내가 직접 서울 방문해서 발표회에 참가해야겠어."
참치 관련 중대 발표라니.
이번엔 또 무슨 대단한 준비를 했을까?
도우야 히데키는 벌써부터 사흘 뒤가 기다려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사흘이 지났다.
전날 일찍 도착한 도우야 히데키는 서해호텔 연회장을 찾았다.
도우야 히데키가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그를 알아보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 일본의 도우야 히데키 사장이다."
"뭐? 그 일본 최고의 스시 재벌?"
"이번에 수영참치 일본 독점 유통권도 따냈다는데."
"대단하네. 일본 전역에 수영참치를 유통하면 대체 얼마나 이익이 많이 남는 거야?"
수영오세안 가맹점주들이 도우야 히데키를 알아보고 수군거렸다.
도우야 히데키도 통역을 통해 그런 분위기를 전달받았다.
발표회는 자유 참가 방식이었기에, 도우야 히데키는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았군."
"하수영 회장도 그렇게 널리 홍보하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중대한 발표라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그런데 홍보를 제대로 안 하는 이유가…… 아, 저기 오는군."
마침 하수영이 강단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손수 작은 카트를 싣고 있었는데, 카트 위에는 노란빛이 감도는 곡물가루와 생선처럼 보이는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수영참치 가맹점주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저는 수영참치 본사 오너인 하수영입니다."
열 명도 안 되는 가맹점주들이 밝은 얼굴로 박수를 쳤다.
"먼저 우리 수영참치 양식장 현황과 비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발언과 동시에 뒤쪽 대형 스크린에 브리핑 화면이 떠올랐다.
"현재 우리 양식장에서 사육하는 참치는 어언 2만 마리가 넘었습니다. 앞으로도 거듭 양식장을 확장하여, 상시 10만 마리 이상의 참치를 사육하는 양식장으로 거듭날 계획입니다."
짝짝짝.
"그동안 우리 양식장은 특별한 중 금속 해독 방법을 적용해서, 중금속함유량이 0인 참치를 육성해서 시중에 공급해 왔습니다."
임산부가 하루 3끼를 먹어도 중금속에서 안전한 참치.
자연산 참다랑어는 도저히 능가할 수 없는 메리트였다.
"그 덕분에 서울에서는 자연산 참치 기피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죠."
도우야 히데키는 저도 모르게 끄덕였다.
일본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중금속 덩어리인 자연산 참치보다, 안전한 무공해 양식 참치를 먹는 게 낫다는 풍조가 소비자들 사이에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수영양식장은 중금속 제로라는 것에만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좀 더 건강에 이로운 그런 참치를 육성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가맹점주들 사이에 의문이 떠올랐다.
여기서 어떻게 더 안전한 참치를 키운다는 거지?
이미 중금속은 제로인데?
"그간 우리는 어획 고등어를 대량으로 사와서 참치들에게 먹이로 공급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100%곡물로만 만든 사료를 참치에게 급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수영이 인공생선을 들어 올리자, 스크린에도 확대된 인공생선의 모습이 자세히 떠올랐다.
"끈기를 낸 곡물가루를 뭉쳐서 식용비닐로 감싸서 고등어 모양으로 만든 사료입니다. 다행히 참치들이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 정말 맛있게 먹어주더군요."
가벼운 웃음이 터진 가운데, 화면에는 참치들이 인공생선을 앞다투어 먹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도우야 히데키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곡물 사료 참치 급여에 성공하다니…… 놀랍긴 한데, 설마 이게 중대한 발표라고?'
그의 눈에는 그렇게 대단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수영이 일부러 자신에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은 건가 싶었다.
"음,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다들 아직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
"작은 생선은 플랑크톤을 먹고, 큰 생선이 다시 그 작은 생선을 먹고, 더 큰 생선이 다시 그 큰 생선을 먹고, 마지막으로 참치가 그 큰 생선을 먹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그 참치를 먹고, 참치 안에 농축된 오염물질을 함께 먹는 거지요."
"중금속은 해결된 게 아닌가요?"
어느 누가 묻자 하수영이 흔쾌히 대답했다.
"중금속은 해결했지요. 하지만 미세 플라스틱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바다에 버려진 그 무수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잘게 부서지면서 퍼지는 미세 플라스틱 입자들 말입니다."
순간 도우야 히데키는 눈을 부릅떴다.
"양식 참치들에게 미세플라스틱 범벅인 고등어 대신 이 곡물사료를 먹인다면, 소비자들은 더 이상 생선살에 든 플라스틱을 먹지 않아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