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66화 (666/1,270)

프랜차이즈 갓 666화

166장 노트에 쓰여진 것 (3)

"나도 압니다. 날 시기하는 놈들이 많은 거."

하수영이 먼 산을 바라보며, 빈 커피캔을 가볍게 손으로 구겼다.

측면을 찌그러뜨린 게 아니라, 상하를 눌러서 납작한 원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엄청난 악력에, 송현성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해는 돼요. 욕심이 인간의 본능 아닙니까. 본능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하수영은 옆을 돌아보며 눈을 마주쳤다.

송현성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려고 했으나, 몸이 굳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언론사에서 기레기들을 내세워서 내 사업체를 놓고 패악질을 하는 것도 다 압니다. 하지만 그냥 놔두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송현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 집 울타리 밖에서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떠드는 거니까, 그냥 놔두는 겁니다. 그거 어느 세월에 일일이 찾아가서 입을 찢어놓고 쇠말뚝을 성대에 쑤셔 넣겠어요?"

입을 찢고 쇠말뚝을 쑤셔 넣는다고?

"칼춤 진득하게 벌여봤는데 내 힘만 빠지고 귀찮음만 쌓이더군요. 그래서 이번 생은 내 눈앞에서만 안그러면 놔두는 겁니다."

눈앞에서 지랄을 하는 게 아닌 이상.

그게 지독하게 심하지 않은 이상, 굳이 찾아가서 손을 보지는 않는다.

전역을 30분 정도 앞둔 말년병장의 귀찮음보다 더 진득한 나태함이다.

"근데 협회장님은 기어이 날 찾아와서 내 눈앞에 그 모습을 보이고 말았군요."

송현성 협회장은 등줄기가 섬뜩함으로 뒤덮는 걸 느꼈다.

오지 말아야 했다. 라는 후회가 미칠 듯이 가슴에 맴돌고 있었다.

"심연을 들여다보셨을 땐, 그 심연이 본인을 돌아보게 될 것도 각오하셨겠지요?"

송현성은 대낮인데도, 이상하게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 끝없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끈적끈적한 암흑이 온몸을 휘감아오는 것만 같은 갑갑함이 느껴졌다.

하수영의 눈동자 깊은 곳.

송현성은 그 안에 자리 잡은, 끝없이 거대한 심연을 볼 수 있었다.

얼굴 없는 심연이 그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인다.

송현성은 정신이 빨려 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혼절했다.

***

"프리덤."

-예, 마스터.

"의사협회 털어라."

-어느 선까지 털어봅니까?

"전부 다, 끝까지 조져."

-알겠습니다. 회계 위주로 비위 내 역을 조사해서 검찰과 정부에 제보하겠습니다.

"검찰도 부패한 패거리 많으니까 제보 상대를 잘 골라야 할 거야. 조성만 검사 쪽으로 제보해."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작정하고 비위 내역을 털어댄다면, 과연 협회가 남아날 수 있을까?

"원래 협회란 것의 99%는 잣대를 조금만 공정하게 적용해서 장렬히 붕괴하기 마련이지."

혼절한 송현성은 어느덧 119구급 차에 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수영은 멀어지는 구급차를 가만히 쳐다봤다.

"가만히 농사만 지으면서 휴양하려 했는데… 왜 아득바득 찾아와서 밟아달라고 하는 건지."

실명 환자와 가족들을 부추겨서 얼토당토않은 시위를 하게 만들었을 때도 넘어갔다.

왜냐?

송현성이 자신의 눈앞에서 지랄을 한 것은 아니니까.

울타리 밖에서 날갯짓하는 벌레를 굳이 쫓아가서 밟아 죽이기에는 너무 귀찮으니까.

하지만 벌레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면?

내 얼굴을 스치고 날아다닌다면?

"송현성…… 당신의 이름 세 글자, 영원히 기억하겠다."

***

프리덤은 곧바로 의사협회 자금집행 내역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공표된 집행 내역만 자세히 검토해도 충분한 비위 혐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프리덤이 짚어낸, 굵직한 비위 내역만 무려 수백 가지.

프리덤은 그 자료들을 잘 정리해서 조성만 검사에게 넘겼다.

물론 하수영의 이름으로,

-의원님, 제보 내역은 제가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궁금하고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프리덤이 제어하는 로봇 하수영은 본인인 것처럼 완벽하게 똑같은 표정과 눈빛, 몸짓으로 조성만 검사를 상대했다.

"제보한 목적이 궁금하신 거군요. 맞습니까?"

-네, 구체적으로 협회를 어떻게 해주시길 바라는 건지 알아야…….

"성역 없는 수사, 완벽한 법 기준 적용, 그것 외에 검찰에 바라는 게 있을 수가 있을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수사하겠습니다.

"송현성 협회장의 개인 비위도 상당한 거 같더군요. 그 부분도 중점적으로 파헤쳐 보십시오."

-알겠습니다.

영상통화를 마친 조성만 검사는 넥타이를 풀며 호흡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던 선배 검사들이 바짝 다가왔다.

"조검, 의원님이 뭐라고 하시나?"

"의사협회에서 밥그릇 좀 나눠달라고 병원까지 찾아가서 땡깡 부렸다며?"

"그거 때문에 의원님이 지금 많이 불쾌한 거지?"

선배 검사들은 하수영을 후원자로 두고 있는 조성만을 평소에도 몹시 부러워했다.

하수영이 의사협회 비리 내역을 대량으로 제보했을 땐, 이거다 하는 마음으로 조성만을 찾아왔다.

"수영병원 전용 의대 설립 때문에 의사협회가 지금 안팎으로 들떠 있다던데."

"분명히 티오 가지고 뭐라고 압박을 했겠지. 자기들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송현성 협회장이 저번에 청담스코프 건으로 실명 환자들 시위 사주한 거, 내가 관련 자료들 캐비닛에 보관 중인데. 어때, 이참에 한 번 꺼낼까?"

조성만은 그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배님. 그 자료 이참에 한번 꺼내 쓰면 좋겠습니다."

"좋아. 그럼 칼은 어느 선까지?"

"선은 없습니다."

"선이 없다고?"

"네, 불법이 있으면 끝까지 파헤치는 게 올바른 법치주의 아닌가, 그게 의원님 생각이신 거 같습니다."

"음…… 송 협회장이 이번에 제대로 큰 실수를 했어."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기어이 찾아가다니. 쯧쯧……."

"알았네, 우리도 최대한 협조하지."

"한 번 협회를 제대로 파보자고."

이번 수사를 통해 국내 유일한 농업 재벌과 친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수고를 감수할 마음이었다.

***

병원에서 의식을 차린 송현성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검찰이 협회를 압수수색했다고?"

"네, 컴퓨터고 서류고 뭐고 죄다 싹 쓸어서 들고 나갔습니다. 지금 협회는 업무 불가능 상태입니다."

"백업 자료도 없어?"

"그것도 전부 다 들고 나갔습니다!"

송현성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검찰이 작정하고 파고들기 시작하면, 협회는 버틸 재간이 없다.

그렇게 깨끗하게만 운영한 것은 아니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지만, 협회는 이곳저곳에 석회화가 된 먼지뭉치가 잔뜩 끼어 있는 조직이었다.

"안 되지, 안 돼. 내가 이럴 때가 아니야. 나성준 의원님을 지금 당장 뵈러 가야……!"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발신인이 자신의 개인병원 부원장인 것을 확인하자, 송현성은 뭔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어, 나야."

-원장님, 지금 보건부에서 조사가 나왔어요.

"보건부에서?"

-네, 과잉진료 혐의로 고발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지금 컴퓨터 차지하고 자기들끼리 자료 대조하고 있습니다. 일단 병원에 오셔야 할 거 같은데요?

"망할, 알았어."

협회에는 검찰이, 개인 병원에는 보건부가.

양쪽에서 동시에 얻어맞은 송현성은 정신이 얼얼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러나 병원으로 향하는 도중, 협회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회장님, 큰일입니다.

"압수수색보다 더한 큰일이 뭐가 있다고?"

-김창식 부회장이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번 압수수색을 협회장님 책임으로 물어서 탄핵을 추진하려는 모양입니다.

"뭐야, 김창식이가? 아니, 다른 놈도 아니고 어떻게 그놈이 그럴 수가 있어!"

송현성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의 든든한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이가 이런 위급한 상황에 비수를 꽂으려고 하다니.

-더 중요한 건, 김창식 부회장이 세경그룹 기조실장을 만났다는 겁니다.

"세경그룹 기조실장?"

뜬금없는 재벌 기업 이름에 멈칫했던 송현성은, 불현듯 둔탁한 충격을 느꼈다.

'왕세경 전 회장!'

그러고 보니 세경그룹 창업주가 지금 수영병원 부이사장이지 않은가?

기조실장이 만났다는 것은, 수영병원에서 움직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이게 무슨……."

그때였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불길한 예감에 그는 잠시 통화를 돌리고, 아내의 연락을 받았다.

-여보! 국세청에서 통지서가 왔어요!

"국세청에서? 웬 통지서?"

-첫째 이름으로 해준 아파트요. 그거 증여세 탈세했다고 추징금 물리고 고발조치 하겠다는 통지서예요! 빨리 지금 와봐야 할 거 같아요!

"아니, 그거 첫째한테 해준 게 언젠데 이제 와서 통지서가 온다는 거야?"

-하여튼 이거 빨리 해결해 봐요!

"알았어, 알았다고."

송현성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사방에서 쉬지 않고 공격이 들어왔다.

그렇다고 없는 죄를 지어내서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같이 모두가 실제 행했던 혐의만을 가지고 들쑤시고 있었다.

실제 혐의만을 공격당하는 데도, 송현성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사회는 긴급총회를 열고, 회장의 권한을 정지시켰다.

비리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회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명분이었다.

송현성은 일주일에 두 차례씩 검찰에 소환돼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틈틈이 세무서도 방문해서 아들 증여 아파트에 관한 소명도 해야 했다.

병원은 2주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그는 병원 정문에 그 치욕스러운 사실을 낱낱이 적시해야만 했다.

이사회는 회장직 탄핵 및 새 회장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고, 협회 내에서 그를 따랐던 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그와 함께하려는 이들은 없었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오른팔들은 자신과 비슷한 신세가 되어 조사를 받거나.

혹은 김창식 부회장처럼 아예 등에 칼을 꽂고 있었다.

이래서 믿었던 이가 배신하면 더욱 독하다고 하는가 싶었다.

회장직을 정식으로 박탈당한 날.

송현성은 미친 듯이 후회했다.

왜 그날 모교로 하수영을 찾아갔을까?

어차피 캠퍼스도 다른데,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을까?

-심연을 들여다보셨을 땐, 그 심연이 본인을 돌아보게 될 것도 각오하셨겠지요?

송현성은 이제라도 하수영을 찾아가서 납작 엎드려 빌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 말이 저주처럼 떠올라서 발걸음을 막았다.

왠지 다시 찾아갔다가는 오히려 더 나쁜 결과만 뒤집어쓸 것 같았다.

과징금까지 포함한 증여세를 토해낸 날.

송현성은 초점이 사라진 눈빛으로 노트북 화면을 훑었다.

포털사이트를 도배한, 수영병원 의대 기사들을 보던 중, 그는 실성한듯이 키득키득 웃었다.

***

경남 통영, 수영양식장.

박영식 전무는 오늘도 해안을 따라 가두리그물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커져가는 양식장 규모를 볼 때마다 그는 가슴이 뿌듯했다.

수영양식은 이제 참치만 양식하지 않는다.

광어, 우럭, 숭어, 참돔, 고등어 등 양식 가능한 어종은 전부 취급하고 있었다.

작은 어종들은 수영농장에서 곡물가루로 만든 사료먹이를 주면서 키운다.

"전무님, 이걸 좀 더 고급화한 게 지금 한창 불티나게 팔리는 신두라는 말이 있던데요?"

"에이, 그래도 사람이 먹는 것과 물고기가 먹는 게 어디 같을 수가 있나."

고등어를 잔뜩 실은 트럭들이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가두리그물에서 자라는 참치들에게 줄 식량이다.

-주인님, 서울 참치본사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그래? 뭐라고 온 거냐?"

-우리 양식장에서 키우는 양식 고등어로 참치 먹이 공급이 100% 가능할지 묻고 있습니다.

현재 참치들은 돈 주고 사온 고등어들을 먹이로 주고 있다.

양식 고등어는 어디까지나 일반 소비시장을 고려해서 키우는 것이다.

지금은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수영펜션에만 나가고 있는 중이다.

"불가능하지. 지금도 참치 개체 수 팍팍 늘리고 있는데, 그 참치들한테 먹일 고등어를 전부 양식한다고? 그러려면 고등어 양식장만 수백 제곱킬로미터는 되어야 할 거야."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 돼버린다.

"그냥 지금처럼 어선들이 잡아온 고등어 사서 먹이는 게 최선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인조사료로 참치 먹이를 바꿔보겠다고 합니다.

박영식 전무는 허허 웃었다.

"참치한테 사료를 먹이겠다고? 고등어 정어리 아니면 거들떠도 안 보는 녀석들을 무슨 재주로? 양식업자들이 뭘 몰라서 참치한테 사료를 안먹이는 게 아니라고."

-40분 안에 인조사료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뭐? 벌써 출발했어?"

얼마 후, 정말 예고대로 서울에서 출발한 헬기가 참치 사료를 싣고 왔다.

'도대체 어떤 돌팔이가 우리 회장님한테 이상한 걸 주입한 거야? 참치한테 사료를 먹이겠다니, 애초에 말이 되어야 말이지.'

떨떠름하게 사료를 열어본 박영식 전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고등어잖……! 아니, 잠깐만? 진짜 고등어가 아니네?"

-소화흡수되는 식용비닐 안에 사료를 채워 넣고 고등어처럼 껍질을 꾸민 먹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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