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61화
165장 수영의과대학이 필요해 (1)
항해 코스는 남해를 통해 일본을 우회하여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길을 선택했다.
동해 기동함대는 혹시라도 주변에 일본, 중국의 잠수함이 있지 않을까 극도로 경계했다.
훈련을 시작한 지 몇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동함대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고서야 언제 '아군 항모'를 실제 호위하는 훈련을 해볼수 있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태평양을 함께 건너고 싶지만…… 동해바다를 비워둘수는 없으니."
이수호 제독은 못내 아쉬운 눈으로 항모를 쳐다보았다.
"작전 한계선까지 얼마 남았나?"
"이제 300km 남았습니다."
"몇 시간 후면 이제 항모와 헤어져야 하는군……."
장교들의 눈에도 아쉬움이 가득했다.
언제 우리 기동함대가 또 이렇게 아군 항모를 실질적으로 호위해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언젠가 우리 해군도 항모를 보유하게 될 테지요. 그때를 위한 예행연습으로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쉽지만 이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나미호의 무사항해를 빌어줘야 할 거 같습니다."
"함장님! 함장님!"
그때 전탐실에서 놀라서 함장을 찾았다.
"무슨 일인가?"
"나미호의 속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28노트를 돌파했습니다!"
"뭐? 24노트가 최고 속력이라고 하지 않았나?"
나미호는 여러 가지 사연이 많다.
24노트란 낮은 출력 때문에 전투 부적격 판정을 받고 병원 항모로 팔려서 폐선을 면했다.
인테리어를 마치고 태평양을 건너다가 45노트란 말도 안 되는 속도를 찍는 바람에, 다시 미 해군이 굽실굽실하면서 1번함과 바꿔서 가져갔다.
그랬는데 45노트가 알고 보니 파도와 바람 탓이라고 밝혀졌고, 미 해군은 굽실굽실 하수영한테 다시 넘겨서 병원 항모로 복귀했는데…….
"35노트를 돌파했습니다!"
"이런 미친!"
"이 속도라면 우리 기동함대가 따라잡지 못합니다!"
동해 기동함대의 최고 속력은 30노트가 약간 넘는 수준.
나미호는 크고 무거운 항모 주제에 동해 기동함대의 최고속력을 가뿐히 넘어서 버렸다.
쌍안경을 든 이수호 제독은 과연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 나미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36노트! 37노트! 38노트!"
"추진력이 계속!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40노트를 돌파했습니다!"
"기동함대와 거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이대로는 호위작전 한계선에 이르기도 전에 진형에서 완전히 이탈하게 됩니다!"
"이런 미친! 40노트라고!"
"이제 45노트입니다!"
기동함대는 뒤집어질 듯이 놀랐다.
필사적으로 기관전속해서 따라붙으려고 했지만,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최대속력 30노트(55.56km/h)와 45노트(83.34km/h)의 차이.
고작 30km/h도 안 나는 속도 차이지만, 바다에서는 엄청난 기동력 차이다.
***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함 2척으로 구성된 미 원양기동함대는 조기경보기가 전해주는 실시간 정보를 받으며, 패닉에 빠져 있었다.
"미친! 45노트라고?"
"분명히 파도와 바람 때문에 우연히 난 속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파도바람빨이라고 밝혀진 속도가, 지금 다시 재현되었다.
문제는 항공관측 정보로 볼 때, 해당 해역은 무척 잔잔하다는 것이다.
"파도 영향이 아니었단 말인가? 온전한 항모 추진 샤프트의 출력 덕분이었단 말인가?"
함장은 레이더 화면을 확인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한국 기동함대가 기를 다해서 따라 잡고 있지만, 간격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함장님! 사령부 지시입니다! 지금 즉시 나미호에 바짝 따라붙어서 근접 기동을 하라고 합니다!"
현재 함은 나미호의 전진 방향에 있었다.
지금부터 방향을 돌리면 1시간 안에 충분히 간격을 좁힐 수 있다.
함장은 사령부의 의도를 이해했다.
"정말 파도바람 때문인지 바로 붙어서 확인을 하라는 뜻이군."
"네, 그런 거 같습니다."
"좋다. 우현 전타!"
"우현 전타!"
두 척의 이지스함 중 한 척이 크게 방향을 돌리며, 나미호를 따라붙을 준비를 했다.
미군 이지스함은 나미호와 동일한 방향을 향해 나란히 앞서서 달리고 있었다.
함장이 물었다.
"지금 함의 속력은?"
"30노트, 최고 속력입니다! 나미호는 여전히 45노트입니다!"
나미호의 모습이 육안으로 보일 만큼 가까워졌다.
함교 밖을 나온 함장은 주변 해역을 둘러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잔잔해."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바다다.
파도와 바람빨로 20노트 이상의 추가 속력이 붙을 만한 환경은 절대 아니다.
"나미호! 우리 항로를 근접해서 지나갑니다!"
이미 나미호 함교와 이야기가 되어 있기에, 나미호는 불과 측면으로 40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진격했다.
평행항해이기에 가능한 진형이지,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거라면 충돌판정이나 다름없는 거리였다.
"나미호! 본함과 완전한 수평!"
"나미호! 앞서갑니다!"
"조타실! 키를 꺾어! 나미호의 뒤에 바짝 따라붙는다!"
"하, 하지만!"
다른 배의 뒤를 바짝 쫓는 것은 자칫 충돌의 위험을 불러올 수 있하지만 함정은 지시를 철회하지 않았다.
"앞뒤 거리는 500 이상 유지한다! 딱 2분만 추적 항진하고 방향을 돌린다!"
"Yes, sir!"
나미호가 앞서나가자 이지스함은 방향을 살짝 꺾어서 나미호가 남긴 항적에 올라탔다.
즉 나미호의 뒤에 바짝 붙어서(거리 500 이상) 전진하게 된 것이다.
장교들이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간격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나미호는 45노트의 속력을 마음껏 자랑하며, 유유히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굳이 방향을 돌릴 필요는 없겠군. 계속 멀어지고 있으니."
"……."
"우리 배의 속력은?"
"최대 30노트에서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습니다!"
"좋아, 그럼 확실하게 증명됐다. 그렇지 않나, 제군들?"
파도와 바람이 운 좋게 밀어줘서 나미호가 빨라진 것은 아니다.
나미호는 지금 순수하게 본체 추진력으로 저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함장이 크크큭 하며 웃기 시작했다.
"함장님?"
"크흐흐……. 아니, 웃기지 않나?"
"……."
"미해군은 저질 속력 때문에 나미호를 팔았다가, 돌려받았다가, 다시 또 내줬어. 그런데 지금 나미호가 또 45노트를 내고 있군?"
"……."
"심지어 나미호 때문에 1번함인 제럴드 포드호까지 넘겨줬는데 말이야."
미 해군 사령부의 입장이 확실히 우습게 됐다.
차라리 나미호가 지금 같은 속도를 보이지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텐데.
"사령부가 염치가 있다면, 설마 이제 와서 또 나미호를 달라고 하진 않겠지?"
"설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줬다 뺏었다 줬으면 그만이지, 또 뺏는 것은 미 해군, 아니, 미군 전체의 자존심을 바닥으로 내팽개치는 꼴입니다."
***
펜타곤은 한껏 행복회로를 돌림으로써 현실을 회피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하얗게 불타버린 행복회로는 그래도 펜타곤 전문가들에게 '정신승리'란 네 글자를 안겨 주었다.
"저 포드는 신맛이 날 겁니다. 아니아니, 느린 맛이 날 겁니다."
여우와 신 포도라는 이솝우화를 알고 있는가?
높은 곳에 달린 포도를 따먹지 못한 여우는 신맛이 날 거라고 투덜거리며 자신을 위로했다.
근래 펜타곤이 딱 그랬듯이.
"파도빨 받아서 운 좋게 45노트찍은 것뿐이에요. 원래 시험항해 중에서 단 한 번도 24노트 이상을 찍은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미 해군은 유이한 2척의 포드 항모를 모두 잃었지만, 괜찮습니다. 공짜로 포드급 항모 2척을 운용 하면서 온갖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 3번함을 도입해서 제대로 된 포드급 항모 전력을 갖추기만 하면 됩니다!"
"나미호, 나디아호도 어차피 우리 해군 관할에 있으니까 저렴한 비용으로 승조원들의 운용경험을 지속적으로 축적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포드 항모 2척을 하수영한테 판매한 것은, 미 해군에 있어서 재정적인 이익이었다.
남의 돈으로 귀중한 운용경험을 쌓은 것이니.
행복회로를 돌린 건 맞지만, 무식한 정신승리는 아니다.
미군은 충분한 이익을 맛봤다.
포드 항모 2척은 여전히 미 해군의 통제하에 있다.
그랬는데…….
"부장관님, 나미호가 최고 속력 50노트를 돌파했습니다."
"뭐? 50노트라고?"
펜타곤을 놀라게 했던 45노트에서 오히려 한 발짝 더 나아가버렸다.
"네, 50노트입니다. 파도의 영향은 아닌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알레이버크급 이지스함 한 척이 뒤에서 바짝 따라붙으며 확인까지 했습니다."
데이비드 국방 부장관은 무슨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몰랐다.
'설마 이제 와서 또 내놓으라고 하진 않겠지?'
이미 3번이나 주고, 받고, 주고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것을 4번으로 늘리자고?
"장관님께서 혹시 재협상이 가능한 지 가능성을……."
"절대 안 되지! 항모 두 척 전부 다 토해내기라도 할 셈인가!"
왕세경 부이사장은 분명히 경고했다.
최후의 배려이며, 선택은 미군의 몫이고, 또다시 말을 바꿀 경우는 일체 거래가 없을 것이라고,
"이미 밀가루가 부풀어서 빵이 됐어. 더 이상 물고 늘어질 이야기가 아니야. 예산이라도 세이브 했으니, 그 돈으로 포드 항모를 새로 건조하면 그만이라고."
"그런데 50노트라고 하니까 일선 함장들이 탐을 내는 모양입니다."
"안 돼. 꿈도 꾸지 말라고 해. 어림도 없다."
데이비드 부장관은 자신의 자리를 걸고서라도 미 해군이 헛소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
나미호는 5일도 안 걸려서 태평양을 주파했다.
50노트(시속 92.6m)라는 말도 안되는 사기적인 속도 덕분이었다.
함장 스콧 대령은 되찾은 병원 항모 함장의 자리에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심정이었다.
'하필 50노트를 돌파하다니…….'
대체 엔지니어들은 항모를 만들 때 기관에 무슨 짓을 한 건가?
왜 병원선 타이틀을 달면 속도가 빨라지고, 전투함 타이틀을 달면 속도가 느려지는가?
'설마 정말로 이사장님의 그 바다 제사 의식 때문에?'
제사를 칠 때 갑자기 마른하늘에 쳤던 날벼락이 지금도 기억난다.
마치 하수영의 제사에 바다와 하늘이 응하기라도 한 듯했던 갑작스러운 기상변화.
'그리고 배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었지…….'
그도 뱃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미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해군 사령부가 이상한 욕심을 부리지는 말아야 할 텐데.'
또다시 나미호를 탐내는 것은 아닌지, 스콧 함장은 그 점이 염려스러웠다.
부디 해군 사령부가 더 이상의 욕심을 포기하고, 두 척의 포드 항모가 평화롭게 병원선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면 했다.
"함장님, 국방부 장관기가 지금 출발했다는 소식입니다."
"뭐?"
저번에는 부장관이 오더니, 이번에는 장관이 손수 온다고?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얼마 후, 장관이 탄 수송기가 항모갑판에 착륙했다.
그는 내리자마자 하수영을 찾았다.
"이 사장님은 어디 계신가?"
"이사장실에 계십니다."
"안내해 주게."
진짜 하수영이 항모에 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한국에 있다.
이 배에 타고 있는 것은 바로 로봇 하수영이었다.
네필드 국방장관은 음성통화가 아닌, 하수영과 얼굴을 직접 맞대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나미호까지 찾아온 것이다.
로봇 하수영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네필드 장관님, 어서 오세요. 수영의료재단 이사장 하수영입니다.
헤드 모니터에 떠오른 하수영의 표정은 반가운 기색이 가득했다.
네필드 장관은 헛기침을 하고는, 하수영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담소는, 과연 모니터 너머에 하수영이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나미호가 이번에는 최고 속력을 50노트로 갱신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음, 그 부분에 관해서 제가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이제부터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하세요.
"……."
-이미 '펜타곤'은 같은 거래를 두번 연속으로 엎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펜타곤을 생각해서 말씀드리는데, 세 번 엎으시면, 그거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월등한 기동력을 갖추었으니 미 서부 해안뿐만 아니라 동부해안도 주기적으로 왕복하시면서 활약해 주십사,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네필드 장관은 꼬리를 내렸다.
손해 볼 거 없으니 한 번 더 찔러 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바로 구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