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59화
164장 추진 샤프트가 무릎 꿇었던건 (4)
불타는 행복회로,
펜타곤 관계자들은 열심히 현실을 회피하며, 진실을 외면했고, 행복회로를 돌리고 또 돌렸다.
"1번함 솔직히 구렸어."
"초도함이니 어쩔 수 없지. 원래 신형함은 운용 정보 축적하려고 쓰는 테스트 몰모트 신세지."
"생각해 보니 1번함은 잔고장도 많이 나고 그랬지."
"아니, 항공모함이 캐터펄트 사출정상률이 99.5%라는 게 말이 돼?"
"당연히 100%는 기본으로 깔고 가야지!"
"맞습니다."
"속력만 괜찮았지, 나머지는 완전히 별로였습니다."
펜타곤을 덮친 행복회로, 이것은 절대로 수영의료재단에서 내놓은 최후통첩 때문이 아니다.
그냥 1번함이 원래 구렸다.
따라서 항모 건조비를 건지고, 그 돈으로 새 항모를 만들어서 실패 노하우를 개선하는 게 백배 이득이다.
펜타곤 관계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미군에 이익이라고.
행복회로는 펜타곤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백악관에도 전염되었고, 의회에도 퍼져 나갔다.
"상원의원님, 1번함은 원래 구렸습니다."
"음…… 사실 나도 초도함은 결국 실패 노하우를 축적하기 위한 베이스 재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네."
"역시, 해군 출신이라서 의원님은 단번에 이해를 해주시는군요."
"결국 우리는 130억 달러짜리 항모 2척을 남의 돈으로 건조해서 운영, 설계, 실패 노하우는 공짜로 챙기는 셈이 아닌가?"
"맞습니다. 바로 그게 핵심이죠."
"손해 본 건 전혀 없어. 오히려 항모 2척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를 양성했고, 이제 무결점 항모를 추가로 건조하면 그만이야."
"바로 그겁니다."
"분명히 우리 미국, 미 해군의 이익인데도 이걸 가지고 행복회로니 뭐니 하는 어리석은 놈들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군."
"이번 의회승인, 잘 좀 부탁드립니다."
"염려하지 말게. 국익을 위한 일이니 우리 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걸세."
***
협상팀이 다시 재단을 찾아왔다.
"재단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왕세경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확인했다.
"그럼 나디아호, 나미호를 둘 다 우리 재단에 병원 항모로 넘기겠다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한테 한 번 가져갔던 나미호만 다시 130억 달러에 판매하면 깔끔하겠군."
"네, 그렇습니다."
"수영농장 군납식품 가격 20% 우대, 10년간 무상 호위서비스 조건은 유지해야 하오."
"당연하지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함재기도 원래 조건대로 동일하게 판매해서 운영하게끔 해줘야 합니다."
"그야 이를 말이겠습니까."
"좋소. 그럼 지금 바로 나미호를 다시 우리한테 보내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의회승인이야 형식적인 절차였고, 이제 하수영의료재단은 포드급 항모병원선을 두 척이나 운용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병원 항모를 어떤 식으로운용하시려는지…… 이건 그냥 단순한 궁금증입니다."
"개인적인 거요, 아니면 미국의 궁금증이요?"
"펜타곤과 복지부의 궁금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단 한 척은 모든 세팅을 마친 후, 미국 해역으로 보낼 거요."
"미국 해역이요?"
"비즈니스 같은 사정 때문에 몇 개 월 이상 아메리카에 장기간 체류하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거요."
미국으로 귀화한 자, 영주권자는 제외다.
장기 출장 발령 같은, 어디까지나 미국에 당분간 머물러야 하는 한국인만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를 말했다.
"미국의 의료비는 너무 비싼데, 그 사람들이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정말 좋은 사회지원입니다. 하긴, 미국 의료비는 너무 심하게 비싸긴 합니다."
치과 치료를 빨리 받아야 하는데 해외 발령 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이들.
잠시 미국에 여행을 왔는데 당장 돈 많이 나가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이들.
삶의 기반을 한국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미국에서 체류중인 이들에게 한국식 청담동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물론 여건이 되면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남미에 체류 중인 국민들을 상대로도 서비스를 확장할 수 있을 거요."
"항모는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맞소만."
"심지어 함재기를 이용해서, 환자를 간편하게 실어 나를 수도 있겠군요."
"바로 그거요."
데이비드 국방 부장관은 미국의 살인적인 의료비용을 잠시 떠올렸다가, 불현듯 놓치고 있던 사실에 주목했다.
"그런데 부이사장님, 병원 항모의 의료비가 원가로 치면, 미국 병원보다 비싼 거 아닙니까?"
"원가로 계산하면…… 미국 의료비따위는 감히 상대도 안 될 겁니다."
움직이는 130억 달러짜리 병원.
구급차 대신 환자를 실어 나르게 될 닥터헬기.
병원 항모가 필요로 하는 물자를 들여오는 데 들어가는 운송비용.
장기간 항모에 체류해야 하는 의료진에게 지급해야 할 특별 수당.
그리고 최고의 의료서비스.
그런 것들을 모두 고려하면, 미국의료비 정도는 우스워 보이지 않을까?
"원가로 따지면…… 사실 간단한 맹장 수술 같은 것도 100만 불은 받아야 겨우 적자를 면할 정도일 겁니다."
"……그렇겠지요. 항모를 굴리는 게 어디 보통 규모입니까."
"우리 재단은 돈 벌려고 병원 장사하는 게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병원에 고용된 이들은 돈을 많이 번다.
의사, 간호사, 각종 의료보조인력, 행정인력 등등 가리지 않고, 하지만 정작 재단은 돈을 못 번다.
VIP병실 운영으로 적자는 면했지만,작정하고 돈귀신에 몰입했다면, 더욱더 많은 돈을 긁어 담을 수 있었으리라.
[속보! 수영의료재단, 병원 항모 2척 운용하기로 결정!]
[한국군도 없는 초대형 항모를 2척이나 지닌 병원 재단, 판타지가 아닌 현실!]
[한국 해군, 병원 항모 호위함대 편성을 진지하게 고려 중.]
[역사적으로 이런 개인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개인이 초대형 항모 2척을 거느리는 게 가능한 일인가?]
[항모의 모든 운영관리통제는 미해군이 전담하기로, 군사기술 유출위협은 없다.]
[병원 항모 지원 경쟁, 불붙듯이 이어져.]
[국내대형병원들, 인력 수급에 큰 위기감을 느끼다.]
[식품 프랜차이즈 재벌로 알려진 하수영 회장이 마침내 해냈다. 세계 최강의 항공모함 포드급 2척을 병원 항모로 구매한 것이다.
……중략……
병원 항모는 해외에서 체류 중인 '한국인'을 대상으로 저렴하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의 제공을 주로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략……
물론 한국인이 아닌 이들, 미 영주권자들도 병원 항모를 이용할 수는 있으나, 그 경우에는 의료비 비보장 대상이 되어, 천문학적인 의료비를 감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략……
농사가 돈 안 된다던 시절은 갔다.
이제 겨우 22세인 하수영 회장은 맨손에서 땅을 일궈내어 전 세계에 손꼽히는 식품 재벌로 우뚝 거듭나……]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했다.
수영의료재단은 빗발치는 지원서를 검토하면서 병원 항모 인원들을 편성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건복지부 허준혁 의료정책실장이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병원 항모 때문에 국내 대형병원이 인력 수급에 차질을 겪고 있습니다."
"음, 우리 병원이 사람을 많이 고용하긴 하지."
"불필요할 만큼 과다하게 인원을 운용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허준혁 실장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왕세경은 부이사장이면서, 한때 이 나라를 풍미했던 자수성가 대재벌회장이기도 했으니.
"필요해서 고용을 하는 건데, 그걸 가지고 우리한테 찾아와서 뭐라고 하면 어쩌자는 건가?"
"티오를 조금만 낮춰 주십시오. 이대로는 다른 대형병원들이 제대로 운영을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의사들을 좀 넉넉하게 많이 뽑아두지 그랬나."
"그것은……."
"우리 병원은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냈어. 앞으로 인원을 많이 고용할 거라고, 그럼 당연히 복지부에서 그걸 반영해서 의료종사자들 수급에 나섰어야지."
나무라는 듯한 말에 허준혁 실장은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 역시 왕세경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장관을 대신해서 얻어터지고 있어야 하는가?
"다른 병원은 어쩔 수 없지. 인원뺏기기 싫으면 근무 조건 올려주고 잡아두면 되잖나."
"수영병원과 치킨레이스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치킨레이스도 자본주의의 일부분이야. 우리나라, 자본주의 나라 아니었나?"
"……."
"이렇게 보건복지부나 움직여서 경쟁병원 압박하는 것 자체가 비겁한 짓이라고 전하시게."
허준혁은 왕세경의 조용한 압박 속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말이야.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하시면……?"
"아, 의대 정원 늘려야지!"
"그, 그건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갈등이 많아서 당장 추진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나도 다른 의대 상황은 알 바 아닐세. 하지만 우리 병원이 필요로 하는 인력은 자체적으로 수급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
허준혁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자체 의대를 설립하려고 하네."
"의대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우리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인원은 우리 손으로 직접 키워야겠어. 정원 늘려달라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일세."
허준혁은 깨달았다.
이건 자신의 선에서 대답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다.
장관조차도 섣불리 나서서 조율을 할 수 없는 그런 스케일이다.
"우리 수영병원은 기존 한국의료생태계와는 전혀 궤가 맞지 않아. 돈이든, 운영 신념이든, 스케일이든, 뭐든 간에 말이야."
"……동의합니다."
1,400억 원짜리 닥터헬기를 수십기를 굴리고, 13조 원짜리 병원 항모를 2척이나 굴리는 병원이다.
"기존의 의료법이든, 의대법이든, 보험법이든, 뭐든 간에 우리 병원에 맞는 게 단 하나도 없어, 단 하나도!"
"……."
"키 2미터 20센티미터짜리 농구선수더러 초등부 농구팀에 맞춰서 게임을 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억지 아닌가?"
"그, 그렇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서주게. 우리 병원에 자율권을 보장해 줘. 나라 지원은 받지도 않을 거고, 근로기준법이나 의료사고배상 같은 것은 무조건 기준 이상으로 할 테니까."
왕세경은 잠시 말을 끊고 조용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발목만 잡지 말아 달라고, 그냥 규제만 풀어달라고 말이야."
"……."
"다음부터는 이런 건수 들고 찾아 오지 말게. 돈으로 직원을 쓸어담았더니, 다른 경쟁사가 일할 사람이 없어서 난감하다고? 내가 우스워서 참나."
"반드시 오해 없도록 제가 잘 전달하겠습니다."
"의대든 의전원이든, 아무튼 우리 병원에서 일할 의사와 간호사는 우리 손으로 직접 키워내야겠으니까 그 부분은 꼭 진지하게 논의하게."
"예, 회장님."
"나 부이사장이야. 회장은 언제적 직함인가."
"죄, 죄송합니다. 부이사장님."
허준혁 실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왕세경이 어딘가로 전화했다.
"응, 고 전무. 난데 말이야. 청담동에 의대 건물로 쓸 만한 빌딩이나 나대지 없나?"
-삼성동에 하나 있습니다. 청담동은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매물 특성자체가…….
"삼성동? 그게 최선인가?"
-예, 그게 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