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58화
164장 추진 샤프트가 무릎 꿇었던건 (3)
미군은 운이 좋았다.
마침 일본 동쪽 해역 바깥에서 포드 1번함 항모전단이 해상훈련 중이었으니.
미 국방부는 혹시라도 계약을 무를까 싶어 부랴부랴 항모 교체를 진행했다.
백악관 승인으로 먼저 진행하고, 차후에 의회의 사후승인을 얻기로 했다.
'지금 빨리 바꿔야 한다!'
긴급 상황이라는 명분 아래, 모든 절차가 간소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수영병원 의료진도 그 이야기를 듣고, 지금 모두 갑판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미 항모함대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거네요? 근데 항모 말고 다른 전함들은 왜 안 보이는 거죠?"
지금 나미호 우측에는 포드 항모 1번함이 혼자서 평행으로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수십 척의 호위함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촬영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밀집 진형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게 정상적인 진행입니다."
"아, 그런가요?"
"여기 망원경을 쓰고 보시죠. 저쪽에 호위함들이 보일 겁니다."
"아, 그렇네요!"
두 항모의 갑판 위에서는 함재기들이 이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나미호의 비전투목적 함재기들은 1번함으로 건너가고, 1번함에 있던 함재기들은 나미호로 넘어온다.
포드급 1번함은 한국 조선소의 도크에서 미국 건조사의 통제 아래 인테리어 및 개조를 거치게 될 것이다.
미군 입장에서는 이미 팔았던 항모를 다시 돌려받는 상황이니, '교환용' 항모를 즉시 내줘야 한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내부공사 다시 하려면 또 한세월 걸리겠습니다."
"그래도 한 번 했던 노하우가 있으니까 시간을 더 절약할 수 있을 거야."
"미국 기술자들은 출발했대요?"
"어, 벌써 장비 챙겨서 한국 조선 소로 출발했다고 하더군. 아마 입항하자마자 곧바로 인테리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시설은 한국 조선소의 것을 빌리지만, 인력은 미국 엔지니어들이 담당한다.
그 비용은 물론 미 해군이 부담하게 되고,
"그냥 1번함도 못 쓸 정도는 아닌데 대충 쓰지, 45노트 나온다고 눈이 뒤집어져서는……."
여기저기서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나왔다.
최대한 빨리 병원선의 활약을 보고 싶었는데, 그 시기가 늦춰졌으니.
"인테리어 기껏 해놓은 거 너무 아까운데, 그냥 추진 샤프트만 교체하면 안 되나."
"그게 안 되니까 애초에 폐선까지 고려를 했던 거겠죠."
함재기들이 부지런하게 날아오르면서 이사를 시작했다.
1번함이 함재기를 가득 싣지 않고 있어서 이사가 수월했다.
탑재 함재기 일부는 주일미군기지에 출발시켜 버린 것이다.
"그럼 함장님, 다음에 뵙죠."
"네,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하수영은 짧은 시간 동안 친해진 함장 및 승조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함재기는 바꾼다지만, 두 항모의 승조원 자체를 항해 중에 교체할 수는 없었다.
1번함 인테리어를 마치고 난 뒤에야 다시 그들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비록 전투함으로 돌아간다 해도, 이 배의 이름은 영원한 나미호일 것입니다."
굳게 악수를 나누고, 하수영은 1번 함으로 건너왔다.
1번함 갑판에 나와 있던 함장이 하수영을 향해 경례했다.
"함장 앤디 대령입니다. 제럴드 포드함에 잘 오셨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한국까지 항해하는 데 전혀 문제없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왠지 오래오래 볼 것 같지 않아요? 전 감이 딱 그런데."
"비록 최고 속력이 나미호에 비하면 느리지만, 그리 긴 항해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앤디 대령은 하수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1+1 병원선 프로젝트를 알 리가 없으니.
'포드 항모를 한국에 옮겨주고 나면, 우리 배 승조원은 전원 나미호로 재배치가 되겠지.'
앤디 함장은 45노트의 항모 함장이 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한 번 정해진 배 이름은 바꾸지 말아야겠지만, 포드 항모는 전투함에서 병원선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그에 걸맞은 별칭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그럼 앞으로 이 1번함이 나미호가 되는 겁니까?"
"아뇨, 1번함은 앞으로 나디아호라고 부르겠습니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이름 같습니다."
"그냥 옛날에 키우던 애완괴…… 아니, 펫 이름이에요."
"그, 그러시군요."
***
그렇게 약 열흘 남짓한 항해를 마치고, 하수영 일행은 마침내 한국에 입항했다.
나디아호는 부산항이 아닌, 거제도의 어느 조선소 도크로 바로 향했다.
조선소 인근의 언덕에는 적게 잡아도 수백 명은 보이는 사람들이 대포만 한 카메라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이사장님, 항모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있습니다."
최윤석은 상당히 감격한 듯이 보였다.
"항모 한 번 보겠다고 이 불편한 거제까지 내려오다니요."
심지어 곳곳에는 눈에 잘 띄라고 큼지막한 플래카드도 보였다.
[우리도 이제 항모보유국!]
[청담수영병원 만세!]
[포드 병원선 만세!]
기사도 병원 항모 출발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아직 정보 업데이트가 느린 기사들이 상당수였다.
속도 때문에 항해 도중 미군이 급히 항모를 서로 맞바꿨다는 기사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수영도 심드렁하게 말했다.
"굳이 친절하게 다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까. 일단 바로 내부 인테리어 시작하죠."
"네, 시간을 많이 잡아먹긴 했습니다."
"병원장님, 그리고 함에 탑승할 의료진을 예정했던 것보다 두 배로 확보하세요."
"네? 승선 인력을 두 배로요?"
"네, 그리고 병원 항모에 세팅할 의료장비들도 두 배로 확보량을 늘 리세요."
"아, 보조 자원을 미리 넉넉하게 확보해 두시려는 겁니까?"
최윤석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항모가 1+1이 될 거라는 상상 자체를 할 수가 없었으니까.
"아뇨, 조만간 병원선이 한 대 더 늘어날 예정이라서 그렇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새 또 발주를 하셨나 봅니다."
이번에는 대형 크루즈 선박을 발주했겠지?
그런데 그렇게 되면 병원 항모와 병원 크루즈 발령을 놓고 의료진 간에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그 이야기를 들은 하수영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그런 갈등은 아마 없을 겁니다."
***
하수영 일행을 이함시킨 나미호는 방향을 돌려 다시 미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속력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뭐? 기관 출력은?"
"최대치입니다! 그런데 속력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관추진력 등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배의 속력만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황한 함장은 직접 배의 추진부를 살피고 다녔지만, 특별한 이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지금 속력은 얼마인가?"
"23노트입니다!"
"이런……."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초도항해 때 전투부적격 판정을 끌어낸 바로 그 속력 아닌가.
함장은 몇 시간을 더 살펴본 끝에 결국 사령부에 보고했다.
당연히 펜타곤은 뒤집어졌다.
-무슨 소리인가? 최고 속력이 24노트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네, 지금 23에서 24노트를 왔다 갔다 하는 수준입니다."
-아니, 힘들게 항모를 바꿨는데 이제 와서 원래 속력으로 돌아가면 어쩌자는 건가?
함장은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걸 제게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하고.
-이대로는 안 되네. 뭔가 일시적인 문제일 거야. 항에 복귀하지 말고 바다에서 테스트 항해를 계속 진행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전문가와 기술자들이 항공기를 타고 나미호에 파견되었다.
그들은 기관장치에 추가 이상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모든 게 정상이고, 변한 것은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에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그럼 배가 왜 45노트를 찍었다가 다시 24노트 이하로 돌아온 거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
"45노트 찍었을 때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도 알지 못하는데요. 부품교체나 수리 같은 것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만 들었습니다."
"그건 맞소만."
"아무튼 추진 장치에 설계 결함이 있으니, 그 부분은 차후 3번함에 적용해서 반영이 될 겁니다. 2번함은 글렀어요. 그냥 병원선으로나 써야 했는데, 멀쩡한 1번함을 다시 내주고 받아오다니."
전문가라는 이들은 혀를 차며 국방부의 속을 북북 긁었다.
"그냥 일시적으로 파도와 바람을 잘 타서 속력이 잘 나온 걸 가지고, 기관 문제가 해결된 거니 뭐니 호들갑을 떨었으니. 이 손실을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그래도 다시 봐주시오. 분명히 45노트까지 찍었단 말이오. 그게 어디 바람과 파도를 잘 탄다고 해서 나오는 속력입니까?"
"45노트 찍었을 때, 주변에 비교할만한 다른 함은 없었지요?"
"그랬소만."
호위함은 수백km 밖에서 원거리 감시경호를 했기에, 나미호 항모는 당시 혼자였다.
"그럼 백퍼네요. 그냥 파도, 바람 잘 타서 일시적으로 그렇게 나온 겁니다."
"……."
"난리네요, 난리. 고철 될 뻔한 거 힘들게 팔아놓고 멀쩡한 항모까지 주고 다시 사오다니요."
물론 국방부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히 일시적인 문제일 거라 생각하고 어떻게든 테스트를 진행하며 해결에 매달렸다.
하지만 1주, 2주, 3주 시간은 흘렀고…….
결국 국방부는 두 손 두 발을 들어야만 했다.
"나미호는 애초에 실패작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나미호와 1번함을 교체해야 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애원을 해서 교체했는데, 그걸 또 뒤집어야 하는 민망한 상황.
하지만 미 국방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병원 재단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무슨 소리입니까? 인테리어 다 끝내고, 지금 의료장비 한창 세팅중인데요.
"예? 벌써요?"
-항모 교체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둘렀습니다. 이제 이 배는 전투함으로 못 써요. 전투 관련 내부 설비는 죄다 들어냈으니까.
"……."
-외부 페인트칠도 다 끝내서 이젠 누가 봐도 병원선이라고요.
"그래도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미 국방부는 애처롭게 매달렸다.
사실 최후의 경우에는 힘으로 집행하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하수영이라는 VIP의 신뢰를 잃게 된다.
그에게 이것저것 군사장비를 팔면서 얼마나 짭짤했는데.
***
"나, 재단 부이사장 왕세경이라고 하오."
"예, 부이사장님, 저희의 제안은 어떻게……."
"허허, 미군이 지금 난처한 입장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어요. 24노트밖에 안 나오는 전투 부적격 항공모함은 떠다니는 고철덩어리나 마찬가지지."
재단을 찾아온 미군 협상팀의 안색이 환해졌다.
"그래서 우리 재단이 이번 건에 관해서 최후의 배려를 해드리리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항모 교체를……."
"우리가 나미호를 130억 달러에 다시 사주겠소."
"예?"
"물론 나디아호와 교환하면서 약속한 군납가격 우대 조건, 호위함 서비스 10년 무상 같은 조건은 두 항모 모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오."
"병원 항모를 두 척이나 운용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기왕이면 원 플러스 원이라고 하더군. 우리 이사장이 말이오."
"그, 그런……."
"최후의 배려요. 물론 나디아호를 다시 가져가겠다면, 그리 해도 됩니다. 대신!"
왕세경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나미호 구매도 없던 걸로 하고, 그간 우리가 들인 모든 돈을 전부 돌려주시오."
"……!"
협상팀은 생략된 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일체의 선박 거래를 하지 않겠지.
거래를 여러 번이나 뒤집은 끝에 모자라, 원천적으로 파토까지 낸 상대와 누가 더 거래하겠는가.
"우리가 제시한 최후의 배려를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그만이오. 어떡하시겠소?"
***
펜타곤에서 행복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포드 1번함 말이야. 사실 좀 구리지 않았어? 아무래도 시험제작함이잖아."
"듀얼 밴드 레이더가 동시에 작동안 되는 경우도 많았고, 탄약고 엘리베이터도 종종 고장 났고, 캐터펄트도 200번에 한 번은 말썽이었지?"
"속력은 괜찮은데, 뭔가 이것저것 구리긴 했던 거 같습니다."
행복회로는 부지런히 돌아가며, 펜타곤 관계자들을 현실에서 회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