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57화
164장 추진 샤프트가 무릎 꿇었던건 (2)
조타장은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시험 항해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최고 속력이 24노트 이상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추진 터빈에 원천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 났고, 폐선까지 고려했던 항공모함이다.
병원선으로 다시 살아난 것만 해도 미 해군과 군수업체는 한시름을 돌렸었고, 그런데 지금 항공모함 추진 샤프트가 다시 살아났다!
"32노트! 32노트입니다!"
"33노트를 돌파했습니다!"
최대속력이 30노트 이상만 나오면 군함으로 운용할 수 있다.
애초에 미 해군이 요구한 스펙도 최소 30노트 이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미호'는 계속해서 최고속력을 갱신하고 있었다.
"40노트를 돌파했습니다!"
"미친! 항모가 40노트 이상이라고!"
이건 이미 항모의 수준을 뛰어넘은 속력이었다.
가볍고 날렵한 고속정 구축함에 달하는 속력이 아닌가.
미 해군이 알면 뒤집어질 일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45노트입니다! 더 이상 속력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추진 샤프트는? 과열은 이상 없나?"
"전혀 이상 없습니다! 현재 부하 상태 90%! 최고전술기동성을 보이는 중입니다!"
조타장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10만 톤급 이상 항공모함이 45노트라는 속력을 낼 수 있다니.
조금의 과장 없이, 해군 전력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이벤트 아닌가.
제사 때문에 갑판에 있던 함장 등 지휘부도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배 속도가 평소보다 빠른 거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봐도 30노트 이상인데……."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미해군에서 시험 항해로 몇 번이나 확인을 했습니다. 추진 터빈의 불량은 교체 말고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무전기를 통해 보고가 들어왔다.
-함장님께 보고 드립니다. 현재 항모의 속력이 45노트를 달성했습니다.
"뭐? 45노트라고!"
함장은 기겁해서 부관으로부터 무전기를 뺏다시피 집어 들었다.
"그게 사실인가! 지금 항모 속력이 45노트라고?"
-네, 틀림없습니다.
"지금 바로 올라가겠다!"
함장은 즉시 함교로 향했다.
조타장이 벌떡 일어서서 군례로 맞이했다.
"속도계측기가 고장 났을 가능성은 없나?"
"모든 계측기가 동일한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해수면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도, 45노트에 얼추 들어맞습니다."
"GPS 계측은?"
"이제 곧 최고 속력 기동 10분을 달성합니다."
함장은 초조해져서 디스플레이를 바라봤다.
GPS 좌표 계산으로 측정한 속도만큼 정확한 것은 없을 것이다.
[09:58]
[09:59]
[10:00]
[이동 거리 14.092km]
"미친! 정말 45노트를 찍었어!"
"이, 이건 항모의 속도가 아닙니다. 이건 최고급 고속정 수준의 속도입니다!"
말도 안 되는 기동성이다.
초도 불량으로 폐선하려고 했던 항모가 병원선으로 개조한 후, 이런 속력을 보일 줄이야.
실시간으로 항모를 모니터링 중인 미 국방부에서 곧바로 연락이 왔다.
"함장님! 장관님 연락입니다!"
"이리 주게."
함장은 얼른 연락을 받았고, 장관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내가 지금 이상한 긴급 보고를 받았는데, 나미호가 지금 45노트의 속력으로 항해 중이라고 말이야.
"사실입니다, 장관님."
-아니, 그 사실을 왜 지금까지 비밀로 한 건가!
"저도 지금 막 보고받은 참입니다. 함에서 그걸 숨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정말인가? 지금 정말로 포드 항모 2번함이 45노트로 순항 중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항모를 넘어선, 최고급 고속정 수준의 속력.
펜타곤은 지금 벌컥 뒤집어졌으리라.
-이런…… 이제 와서 반품해 달라고 하는 것은 안 되겠지?
"……반품 요청이군요."
반품이라고 하니 뭔가 이상하다.
판매자가 구매자한테 '제발 반품해 주세요'라고 하는 경우가 있나?
-속력 45노트짜리 최신예 항공모함이야. 그 전략, 전술적 가치가 무궁무진하단 말이지.
"그런데 어차피 호위함들이 그 속력을 못 내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호위 이지스함들을 놔두고 항모 혼자서 유유히 앞서 나갈 수는 없으니.
-추진 샤프트를 뜯어서 연구를…… 아니, 아니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야. 아무튼 조금의 이상한 점도 놓치지 말고 전부 캐치하게.
"네, 장관님."
함장은 통화를 종료했다.
그는 조타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원래 보름 정도면 부산항에 입항할 수 있을 거라고 했었던가?"
"네, 그랬습니다."
"지금은?"
"지금 이 속도가 유지된다면……. 8일이면 입항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 거대한 항공모함이 겨우 8일만에 태평양을 돌파할 수 있다는 거군."
"……."
묘한 침묵이 함교를 휩쓸었다.
병사들은 사실 나미호 파견을 크게 반기지 않았다.
전투함이 아니라 민간 병원선 파견임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몸이야 편하겠지만, 충분한 훈련커리어를 쌓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타고 보니, 전 세계에서 가장 기동성이 좋은 항모로 변했다.
"펜타곤에서 탐을 낼 겁니다."
"그렇겠지."
"언질은 주지 못하더라도, 배의 최고 속력이 45노트를 찍었다는 것은 보고해야 할 거 같습니다. 어쨌든 선주 아닙니까."
"그래야지. 내가 직접 이야기하겠네."
***
하수영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래요? 45노트가 빠른 건가요?"
"엄청나게 빠른 겁니다. 보통 항모의 속력은 최고 30노트 이상…… 45노트면 최고급 고속정에 맞먹는 속력입니다."
"24노트나 45노트나 도토리 키재기 같긴 한데. 아무튼 알았습니다. 어쨌든 원래 속력을 되찾았으니 다행이군요."
함장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원래 속력을 되찾은 게 아닌데요?
이건 설계자들의 예상을 훌쩍 넘어선 오버 스펙이라고 말이다.
"반도체도 그런 게 종종 있습니다. 4Ghz 정도로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막상 8, 16Ghz리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죠. 다행히 이번에 저한테 그런 운이 터졌군요."
"사실 병원선으로 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기동력이긴 합니다."
"펜타곤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거래 계약 자체를 취소할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요?"
하수영이 대번에 핵심을 짚어내자 함장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군인된 입장에서 그 사실을 먼저 고해바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숨기자니 선주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
"가능성은 염두에 두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에이, 이미 쌀이 익어서 밥이 됐는데 이제 와서 없던 걸로 하자고 하면 안 되죠. 펜타곤은 제가 알아서 잘 말할 테니, 함장님은 나미호 함장으로서 역할 수행에 충실해 주세요."
"Yes, sir."
하수영은 엄연한 민간인이다.
하지만 나미호의 법적 소유자이자 선주.
그래서 미 해군은 그를 '제독'에 준하는 예우로 대하라고 지침을 정한 상태였다.
앞으로 그는 함대 사령관에 준하는 예우와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국방 부장관이 나미호로 찾아왔다.
수송기를 타고 항모 갑판에 내린 그는 곧바로 하수영을 찾았다.
"국방 부장관입니다. 데이비드라고 불러주십시오."
"펜타곤의 2인자께서 이렇게 찾아 오실 줄이야. 이거 배 다시 뺏기는거 아닌지 바짝 긴장해야겠네요."
"하하,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대해주시면 됩니다."
간단한 신변잡기로 분위기를 띄운 후, 데이비드 부장관은 곧바로 승부 수를 던졌다.
"정중히 요청합니다. 포드 항모를 미군이 다시 돌려받고 싶습니다. 위약금은 전부 부담하겠습니다."
"위약금이라면, 얼마나요?"
"대금, 인테리어 비용, 기타 부수비용 등 모든 손실금 전액, 추가로 2억 달러의 위약금을 포함해서 지급하겠습니다."
"겨우 2억 달러라니. 병원선 도입이 이제 와서 취소되면 우리 병원이 입을 이미지 손실이 얼마나 클지 아세요?"
"그 역시 우리 국방부의 책임이라고 공표해서 명예손상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와서 새로 병원선을 세팅하려면 어느 세월이 걸릴지 모르는데, 안 됩니다."
"정중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미 해군의 전력증강은 중국 견제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부장관은 시종일관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수영에 대해 일체의 압박감을 내보이지 않았다.
'아, 이 자식들. 내가 정중한 거에 마음 약한 건 또 어떻게 알아서…….'
국방부에 자신을 잘 파악하는 협상전문가라도 있는 것인가?
"부장관님, 제가 겨우 2억 달러를 아쉬워할 사람이 아닌 것은 아시잖습니까. 요즘 곡물값이 얼마나 올랐는데요."
"그것은……."
"그리고 전 미 해군에 충분한 호의를 보여드렸습니다. 저 아니었으면 폐선 처리했어야 할 항모를 좋은 값으로 선뜻 구매해 드렸죠. 그 은혜를 이런 식으로 돌려받는다면, 앞으로 제가 미 해군을 어떻게 생각할 거 같습니까?"
조곤조곤한 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매우 단단한 뼈였다.
부장관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앞으로 내가 너희를 나쁘게 생각해도 되지?
라고 묻고 있는데, 거기에 답할 말이 선뜻 생각나지 않았다.
"진짜 그렇게 절실하게 필요하시다면 계약 취소하고 돌려드릴 수도 있어요."
전혀 기쁘게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한참 고수가 하수를 상대로 엄청나게 봐주는 듯한 뉘앙스다.
데이비드 부장관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펜타곤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미군이 진심으로 마음먹으면 다시 돌려받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저 역시 끝까지 반대할 마음은 없어요. 어쨌거나 미국의 전략 군함이니까요."
끝까지 반대할 마음은 없다.
부장관은 그런 말이 진짜 무서운 협박으로 들릴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
미 군수업체 입장에서 하수영은 좋은 고객이다.
미군 역시 신두 납품 거래로 인해, 하수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45노트짜리 최신예 항모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기분 좋게 포드 2번함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국방부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결국 그들은 답을 찾아냈다.
본국의 지령을 받은 데이비드 부장 관은 화색을 띤 채 다시 하수영을 찾았다.
"포드 1번함과 맞바꾸자고요?"
"네! 어차피 99.9% 이상 동일한 설계 스펙을 가졌고, 3년 이상 항해 하면서 함 운용에 문제가 없다는 안정성도 완벽하게 입증했습니다. 병원선으로는 오히려 1번함이 더 좋을 겁니다."
"흠, 그렇긴 하네요."
"아예 1번함을 한국 조선소에 입항시켜서 내부 인테리어 개조를 진행하겠습니다. 비용은 전부 저희가 부담할 것이며, 향후 10년간 호위함서비스 비용을 일체 청구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그럴 리가요. 앞으로 귀 농장에서 미군에 납품하는 식품은 다른 업체에 비해서 20% 이상 할증된 가격으로 구매하겠습니다."
어차피 똑같은 배다. 서로 바꿔만 달라.
병원선인데 30노트면 충분하지 않느냐.
인테리어 비용, 호위함 비용 10년 간 면제, 군납 품목 20% 이상 할증, 등등…….
미군은 온갖 혜택을 약속했고, 하수영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승낙했다.
"좋습니다. 1번함과 2번함을 바꾸기로 하지요. 대신 1번함은 이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제 겁니다?"
"당연하지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뇨, 오히려 제가 고맙죠."
부장관은 이런저런 혜택 때문에 하수영이 고마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수영은 부장관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병원선 2척 운용하게 생겼네."
힘들게 배를 바꿨는데, 다시 24노트 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미군은 어떤 기분이 들까.
"1+1이 대세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