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56화
164장 추진 샤프트가 무릎 꿇었던건 (1)
포드 항모처럼 거대한 선박치고, 진수식의 규모는 매우 조촐한 편이었다.
일단 모인 인원이 100명도 채 안됐으니까.
"뭐야, 저게 다야?"
조선소 엔지니어 마이콜이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투함의 진수식인데, 겨우 저거밖에 안 왔다고?"
"그러게. 우리 포드 항모가 서운하겠다."
"아무리 '재혼' 이라고 해도, 하객이 이리 없어서야 결혼 생활을 제대로 할 맘이 나겠냐고."
2번 포드 항모는 이미 성대한 진수식을 치르긴 했다.
배는 흔히 여성으로 비유되며, 진수식은 종종 결혼식에 빗대기도 한다.
하지만 포드 항모는 첫 진수식을 마치고 시험 항해에서 바다한테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조선소 입장에서 힘들게 먹이고 키워서 시집을 보냈는데, 소박을 맞아서 돌아온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선소의 모든 엔지니어들이 칼을 갈았다.
다시는 우리 소중한 딸아이가 어디가서 구박받으면서 지내는 일이 없도록 하리라!
"적어도 국방부 장관 정도는 올 줄 알았는데, 뭐 이렇게 조촐한 거야."
"들어보니까 병원재단 관계자들만 왔다고 하더라고, 자기들끼리 조용히 즐기고 싶다나 뭐라나."
"그래도 한국에 입항해서 파티 거하게 한다니까 그걸로 위안을 삼자구."
기술자들은 온통 새하얗게 도색이 된 포드 항모를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역사상 저렇게 눈에 띄는 백색, 그리고 적십자 마크로 도색이 된 항모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또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 살아생전 항공모함에서 스텔스도료 긁어내고 백색 페인트를 칠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었네."
"병원선은 병원선답게 눈에 띄어야 오폭을 당하지 않으니까."
"설마 중국에서 항모 기술을 훔치려고 다른 나라인 척 위장해서 항모를 탈취하지는 않겠지?"
"어느 바다에 있는 미 해군이 24시간 밀착 경호를 한다고 하니까, 그런 걱정은 접어둬도 돼."
몰래 항모만 탈취한다면 모를까, 미 군함의 경호를 뚫고 공격을 한다면, 그것은 곧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중국이 전면전을 원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하지는 않으리라.
기술자, 페인트공, 말단 잡부.
조선소 인원들은 직급에 구분 없이, 다들 복잡하면서도 개운한 마음으로 진수식을 지켜봤다.
"나미야! 어딜 가든 사랑받고! 많은 병자들을 구원하길 바랄게!"
"나미야! 굿바이!"
"행복해야 돼! 나미야!"
우현에 크게 써져 있는 포드수영병원.
그리고 좌현에는 '나미호'라는 배의 애칭이 크게 써져 있다.
"근데 나미가 무슨 나미야? 원피스의 그 나미?"
"뭐라더라? 선주가 아주 옛날옛날에 키웠던 애완용 앵무조개 이름이라고 들은 거 같은데."
"아, 앵무조개. 그렇군. 자기 애완용 앵무조개 이름을 병원선에 붙인 거구나."
조선소 직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나미호의 항해에 행복과 평화만이 있기를 기원했다.
"사람 죽이는 항공모함이 사람 치료하는 병원선으로 탈바꿈할 줄, 누가 알았겠어?"
***
"보름이면 부산에 입항할 수 있을 겁니다."
함장이 하수영을 향해 정중히 보고 했다.
"경제속도가 아니라 최고속도로 달리는데 열흘이라는 거지요?"
"네, 그렇습니다."
"으음, 확실히 군함으로서는 추진력이 별로네요. 최고 속력인데도 한국까지 보름이나 걸리다니."
"그렇기 때문에 병원선으로 판매가 가능했던 게 아니겠습니까."
장효주, 정서희, 그리고 의료진은 항모 나미호를 타고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특히 두 여자는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항모 여행을 해보겠느냐며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최윤석 병원장 일행은 항모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병원선으로 부족한 것은 없는지 면밀히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병원선으로 적합한 인테리어는 마쳤지만, 수술실 세팅 및 의료장비설치 같은 것은 이제 병원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것은 군함 조선소의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보름 남짓한 항해 경험은 앞으로 의료시설 세팅에 있어 귀중한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미군 승조원은 약 1,200명 남짓한 수준이었다.
항모로서 운용하는 게 아니다 보니, 4,000명이 넘는 승조원을 태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차후에는 유동적으로 승조원 숫자가 늘어날 수도 있으리라.
항모에 투입할 신병들의 훈련 장소로 적격이었으니까.
"근데 기대 추진력 저하는 아직 원인을 밝혀내진 못한 거지요?"
"증기 터빈의 23번 모듈의 설계 미스일 것이라고 추정은 하고 있습니다."
함장은 하수영 앞에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1번함보다 더 높은 추진력을 내기 위해서 추진 터빈의 설계 일부를 변경했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원인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딱 하나 부품 설계를 바꿨는데 문제가 생겼다.
그렇다면 그 설계가 잘못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리라.
"수리개조는 어차피 무의미합니다. 그러려면 배 전체를 다시 뜯어내야 해서 그렇습니다."
"터빈의 부품 하나만 슬쩍 교체해서 가능한 게 아니었군요."
"예, 그렇습니다. 저 거대한 터빈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배를 싹 뜯어내야죠."
그렇기에 미 해군과 건조사도 그렇게 골치를 썩혔던 것이고,
"선주께서 병원선으로 구매해 주시지 않았다면 미 해군은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을 겁니다. 추가적으로 계획 중이던 포드 항모들도 타격을 입었을 겁니다. 선주께서 미 해군 항모전력을 구원해 주신 겁니다."
"한국말로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아, 정말 좋은 표현이군요."
"혹시 그 문제가 된다는 추진 터빈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이 배는 선주의 것이니까요."
적국에 팔아넘기거나, 기술을 유출하는 것만 아니라면 완전한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함장은 하수영을 직접 배의 중심부, 추진 터빈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하수영은 터빈을 훑어보고는 말했다.
"확실히 내부 압력이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해 보이는군요. 무리해서 출력을 올렸다가는 추진 샤프트와의 연결부위가 오히려 망가질 수도 있겠어요."
"오, 원자력 추진함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원래 제가 배 설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함장 말씀대로 터빈이 문제인데…… 배를 뜯어내고 교체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군요."
원래 기대 추진 속도는 30노트 이상.
하지만 현재 최대 속력은 24노트.
전투기를 실어 날라야 할 항모의 기동력이 문제여서야, 군함으로서는 자격 상실이다.
"원자로를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함장은 하수영한테 원자로도 보여주었다.
물론 방사능 노출 위험 때문에 근접까지 접근하지는 못했다.
"저기 보이는 차폐벽 안에 이 배의 심장인 원자로가 있습니다. 더 이상은 함장인 저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여기까지는 안전하다, 이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차폐벽은 아예 배에서 자동과 수동으로 동시에 통제하고 있었다.
그만큼 중요하고 위험한 설비이기 때문이리라.
하수영은 어딘가로 전화해서 말했다.
"자, 다들 들고 나와서 갑판에 세팅하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하수영은 전화를 끊고, 함장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이제 갑판으로 가시죠."
넓은 갑판에는 수영병원 일행들이 저마다 짐을 잔뜩 지고 우르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이는 돗자리를, 어떤 이는 카트를 끌고 있었다.
정서희와 장효주도 양손에 큰 바구니를 잔뜩 들고 있었다.
"자, 돗자리 이리 가져오세요."
"네! 갑니다!"
몇몇 의료진이 서둘러 돗자리를 들고 하수영이 시키는 대로 줄을 맞춰 넓게 깔기 시작했다.
함장이 당황해서 물었다.
"써?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제사 지내려고요."
"제사요?"
"네, 앞으로 퇴역하는 그 날까지 작은 사고 한 번 없이 무사히 항해 하길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려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지휘부의 안색에서 당황함이 지워졌다.
미국에는 없는 문화이지만, 그런 뜻이 담긴 예식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자, 음식 여기에 세팅합시다. 다들 빨리빨리 움직이자고요."
"네! 이사장님!"
큰 돗자리를 여러 개 넓게 이어서 깔고, 음식도 접시에 담아서 가지런하게 늘어놓았다.
제사상의 중심에는 큼지막한 돼지 머리가 놓였다.
어느덧 미군 일행도 하나둘씩 늘어나서, 제사 준비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예식을 지내는 거래. 배가 앞으로 퇴역하는 그 날까지 사고 없도록 기원하는 그런 거래."
"아, 그런 거군. 좋은 행사네."
"근데 저런 의미의 제사라면 우리도 거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함장님께 건의를 해보자고."
장교들이 함장에게 건의했고, 함장도 흔쾌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써, 우리 미 해군도 같은 마음으로 의식에 참여하고 싶습니다만, 가능합니까?"
"아, 물론이지요. 우리와 같이 절을 하셔도 되고, 그냥 경례를 하셔도 됩니다. 각자 원하시는 대로 마음을 표현만 해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함의 선두 부위에 제사상이 넓게 차려졌다.
하수영은 제사상 바로 앞에 혼자 섰다.
그 뒤에는 정서희, 장효주가 자리했고, 그 다음에는 수영병원 의료진이 자리를 잡았으며, 맨 뒤, 그리고 갑판의 사방에는 필수운용인력을 제외한 미 해군 병사들 전원이 자리를 잡았다.
모처럼 깨끗한 정복으로 갈아입은 미 해군 병사들은 언제 제사가 시작되나 고개를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선주…… 복장이 왜 저래?"
"설마 저렇게 번쩍거리는 옷을 입고 제사를 지내는 거야?"
"쉿, 조용히. 저거 실제로 금을 아주 가늘게 뽑아서 만든 실로 짠 옷이라고 알려져 있어."
"뭐? 그게 정말이야? 그냥 금색으로 염색을 한 게 아니고?"
"금실로 짠 옷이래."
하수영은 치렁치렁한 황금색 도포를 입은 채 제사상 앞에 경건하게 서 있었다.
왼손에는 금으로 만든 듯한 부채를 들었고, 오른손에도 금으로 짠 것 같은 긴 천을 쥐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돗자리, 접시도, 촛대도, 술잔도, 모두 금색이다.
하수영이 배 정면을 바라보며 양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대양을 관장하는 신이시여! 저는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콰광!
"뭐, 뭐야?"
"갑자기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이……!"
"구름 한 점 없는데 벼락이 친다고?"
"나미호는 병마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제가 쌈짓돈을 털어 어렵게 장만한 귀중한 병원선입니다!"
콰광! 콰과광!
"또! 또 벼락이!"
"으아아! 이거 우리 들어가야 하는거 아닙니까!"
자리를 잡은 함 지휘부도 갈팡질팡했다.
왜 갑자기 하수영이 의식을 시작하자마자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기 시작하는가?
어딜 둘러봐도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데?
"나미호에 거룩한 축복을 내려주시어, 100년이 지나도 사고 없이 무사히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제 요청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제 아버지께 모두 낱낱이 일러바칠 것입니다!"
쿠르르르릉……!
"구름, 구름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바다가 거칠어지고 있어요! 서둘러 의식을 마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아직은 배 움직임이 괜찮다.
하지만 폭풍이라도 몰아치면,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들은 선실 내부에 들어가 있는 게 안전하리라.
"저의 절을 받으시고, 제가 아버지께 일러바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그리고 하수영은 돼지머리를 향해 크게 절을 올렸다.
정서희, 장효주, 병원 일행도 일제히 그를 따라 절을 올렸다.
함장이 있는 힘껏 외쳤다.
"전군 차렷! 경례!"
척! 척! 척! 척! 척! 척! 척!
"바로!"
척! 척! 척! 척! 척! 척! 척!
거짓말처럼 우르릉거리던 천둥이 멎고, 몰려오던 먹구름이 물러갔다.
순식간에 맑아진 하늘을 보고 미장병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 선주가 정말 큰 사람이기는 한가 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무사항해를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데 하늘과 바다가 이렇게 반응을 할 줄이야."
"에이, 그냥 전부 우연이지.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나?"
"우연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원래 뱃사람치고 미신 안 믿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 말대로였다.
노련한 해군 병사들은 새삼 하수영을 달리 보게 되었다.
아마도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하늘과 바다가 그의 정성에 반응을 보여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이가 소유한 배라면, 앞으로 큰 탈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함교,
"어,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뭔데 그래? 배에 이상이 생겼나?"
"이럴 리가 없는데…… 배 속력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뭐? 아니, 이미 최대 속력 아니었어? 거기서 더 오르고 있다고?"
"29노트! 29노트를 넘었…… 아! 30노트를 넘어섰습니다! 31노트입니다!"
함교 분위기는 기절초풍했다.
"31노트 돌파라고!"
"더! 더더 올라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