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49화
162장 전투식량 프랜차이즈 (3)
신두는 식도락의 가치가 전혀 없다.
하수영도 영양가 충분한 전투식량으로만 생각했다.
만찬이 아니면 밥을 먹은 것 같지 않다는 사고방식.
라면 하나로 대충 때우더라도 고춧가루와 계란, 만두는 꼭 풀어 넣어야 하는 식습관.
'세계대전을 몇 년씩 질질 끌더라도 병사들 밥 하나만큼은 제대로 해서 먹였는데.'
그렇게 살아왔기에, 하수영은 신두를 '주식'으로 보는 사고방식에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는 깨달았다.
신두를 주식으로 환영할 만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한번 해봐야겠네."
"네? 무엇을요?"
"신두를 주식 메뉴로 일반 대중에 공급하는 거요."
"어, 음……."
수영병원 의료진들은 그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인력 안 갈아 넣기로 유명한 저희 병원이야 다르지만, 대부분의 대형병원은 의료진이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밥 먹다가도 응급 콜 오면 식판 던지고, 아니, 그냥 그 자리에 두고 바로 뛰어가는 게 다반사죠."
"맛있는 성찬을 차려놓고 먹는 즐거움도 좋지만, 바쁠 때 몇 초 만에 대충 끼니를 때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 같습니다."
"적어도 식사 옵션이 하나 더 추가 되는 거잖아요? 전혀 나쁠 게 없죠."
"가끔 그럴 때 있어요. 배는 고프고 뭘 먹긴 해야겠는데 움직이기도 귀찮은…… 요리는커녕 배달앱 켜서 주문하고 그거 기다리고 받고 먹고, 그리고 남은 음식물하고 쓰레기 뒤처리하는 게 귀찮아서 아예 굶어버릴까? 하는 경우도 심심찮죠."
"학업과 직장에 치이는 요즘 세대라면 더욱 그런 생각 많이 할걸요?"
"이사…… 아니, 총무님. 신두를 일반 식품으로 팔아도 인기 많이 끌거 같습니다."
"저도 한 100개씩 사서 쟁여뒀다가 밥은 먹어야겠고 귀찮을 때 하나씩 꺼내먹을 거 같은데요?"
충분한 의견을 수렴한 하수영은 그 자리에서 JM식품 정재민 사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네, 이사장님.
"정 사장님, 신두를 일반 식품으로 만들어서 팔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반 식품이요?
"네, 군용 전투식량으로도 팔고, 일반 식품으로도 따로 팔까 해서요."
-아, 음. 잠시만요.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정재민의 음성에 놀라운 기색이 어렸다.
정재민은 누군가와 잠깐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가 곧바로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을 거 같은데요? 시간과 귀찮음에 쫓기는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습니다.
"생산라인 증설 가능합니까? 지금보다 백 배 이상으로요."
-배, 백 배나 말입니까?
"네, 백 배 이상이요. 이상."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 장담은 못하지만, 일단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발주 물량 확보에 대한 어떤 확약도 없지만, 정재민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당장 딸인 정서희가 프라임컴퍼니 부사장이자 지분 5%를 가진 주주다.
끈끈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런 소소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계약서부터 작성하고 진행할 필요는 없으니.
***
중앙캠프에서 신두는 의료진만 먹는 게 아니었다.
의료진은 상태가 위중하거나 영양실조가 심각한 환자들에게 신두를 급여하고 있었다.
"신두는 최고의 환자 식단입니다."
"여기 성분표를 보니 인간에게 필요한 필수영양소는 모두 모아놨더군요."
"약간의 식이섬유와 물, 신두만 있으면 인간은 평생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신두에도 식이섬유는 있지만, 그 양이 그리 충분하진 않다. 아무래도 부피가 작다 보니.
"병마와의 싸움으로 체력이 고갈된 환자들에게, 신두는 최고의 회복제입니다."
"소화시키는 데에도 전혀 부담이 없어서 너무 좋습니다."
수영병원 어느 의사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위장 절제 환자들에게 정말 최고의 식품으로 팔리겠는데요?"
"아, 그게 또 그렇게 되네요?"
위암 등으로 위를 절제한 환자는 매끼를 조심해서 취해야 한다.
소량씩 오래 씹어서 하루에 조금씩 여러 번 먹어야 하며, 음식의 종류도 가려야 하고, 먹고 나서도 충분히 소화를 시켜야 한다.
"그런데 신두는 그럴 필요가 없을 거 같아서요. 자세한 건 임상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위 절제 환자들의 영양 공급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질 거 같습니다."
동료 의사는 그에 질세라,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만성 소화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을 거 같지 않습니까?"
"아, 그러네요. 소화 잘 안 되는 사람들한테도 딱일 거 같은데."
"우리나라 소화제 시장 규모가 얼마나 되지? 정제, 액상 다 합쳐서 연간 천억쯤 되지 않으려나?"
소화제 매출을 신두로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고기와 술 등 한껏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소화가 안 돼서 소화제를 먹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
다만 그만큼 일상에서 소화 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고, 그 사람들을 상대로 신두는 강력한 어필을 할 수 있다.
"소화제가 전혀 필요 없는 식품, 이렇게 홍보하면 좋을 거 같지 않아?"
"치아 약하거나 내장 기능 떨어져서 힘들어하는 노인들한테도 좋을 거 같은데요?"
"이거 우리나라에서만 팔릴 그런 음식이 아닌데? 어떤 의미에서는 수영라면 이상으로 전 세계로 팔려나 갈 거 같지 않아?"
하수영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야전용으로 싸 가지고 다니던 비상식량에…… 그런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을 줄이야. 난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그렇게 많은 삶을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참 먼 거 같다.
***
하수영은 중앙캠프 외에,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멀티캠프도 돌았다.
중앙캠프와 달리 작은 멀티캠프들은 시설이 열악한 편이었다.
전기가 부족해서 의료진은 이동식 발전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전신방호복은 어림도 없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더워서 픽픽 쓰러져 나갈 거 같은데, 그런 걸 입었다가는 몇 초도 안 돼서 쳐 죽을 것이다.
중앙전체 에어컨 덕분에 쾌적한 중앙캠프 실내와는 전혀 달랐다.
"마스크나 장갑 같은 걸로 최대한 예방하지만, 그래도 재수 없이 에볼라에 걸리는 의사들도 간혹 나옵니다."
"저런, 설마 그것 때문에 잘못된 의료진은 없겠지요?"
"지난 1년 동안 제가 알기로만 두분 정도가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그래도 에볼라는 공기 감염 가능성이 낮은 편이라서 다행이지요. 안그러면 어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 특징 때문에 에볼라가 아프리 카 밖에서는 좀처럼 악명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지만, 약 일주일 정도 그렇게 돌아다닌하수영은 병원에서 데려온 의료진들에게 물었다.
"유익한 경험이 되었나요?"
"네, 항모 병원선을 운영하기에 무엇이 필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항모 병원선을 청담수영병원처럼 생각했던 게 어리석었습니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항모 병원선이라면 오히려 여기 같은 상황을 커버하는 경우가 더 많을 텐데요."
안전한 서울 중심지에서 환자들이 몰리는 병원.
전 세계 곳곳을 떠다니며 움직이는 항모 병원.
후자가 더 압도적으로 다양한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항모 병동 내에 입원한 환자들 외에, 항모 밖 열악한 오지에서 신음하는 환자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출장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바로 그런 관찰력이 제가 이번 출장에서 여러분들에게 원하던 겁니다."
하수영이 기분 좋게 가리키자, 발언을 한 의사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의사들은 '쳇, 내가 말할 수 있었는데.' 라며 부러운 눈빛을 보였다.
"이사장님, 닥터헬기 말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지금 이 자리에는 수영병원 인력만 있다 보니, 의료진은 이사장이라고 불렀다.
"지금 닥터헬기는 다 똑같은 세팅을 갖추고 있습니다. 날아다니는 수술실이죠."
하수영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경청했다.
"사회적 인프라가 열악한 가난한 나라에서 활동할 때에는, 다른 플랫폼 세팅 헬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거죠?"
"저는 지원헬기를 몇 기 정도 추가 했으면 좋겠습니다. 강력한 발전기를 탑재해서 현장에서 풍부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간이건물에 파이프 같은 것으로 냉기를 불어넣어서 에어컨 역할도 해줄 수 있는, 그런 종합지원 헬기요."
하수영이 기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바로 그런 아이디어가 제가 원하던 겁니다. 잠시만요."
그리고 하수영은 그 자리에서 코즈펠트 이사한테 전화를 걸어서, 방금들은 내용 그대로를 전달했다.
아니, 아예 한술 더 떴다.
"……그리고 담수 정화 장치도 꼭 넣어야 합니다. 깨끗한 물을 구하기 힘든 경우도 많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헬기에서 줄 달린 조명을 뽑아서 높은 곳에 여러 개 설치해서 밤에도 대낮처럼 마을을 밝힐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것도 반드시 넣지요.
"그리고 또……."
그렇게 하수영은, 의료기능을 완전히 제거한 다용도 지원 목적의 퀸스텔리온 헬기를 추가로 10기를 그 자리에서 발주했다.
-생산해 놓은 물량이 있으니, 부분개조만 거치고 나면…… 아마 항모병원선 인테리어가 끝날 때쯤에는 갑판에 실어서 보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오, 그거 좋은데요."
-나중에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전화를 끊자, 동료의 활약에 입이 근질근질해진 남자 간호사가 입을 열었다.
"이사장님, 아예 전신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도입하면 어떨까요?"
"전신우주복?"
"네, 그리고 헬멧 전체를 아예 투명한 구슬처럼 만들어서 시야를 더 넓게 만드는 겁니다. 보조외골격을 장착해서 사용자의 체력을 아끼고 힘을 증폭시켜 주고, 또 냉각 기능도 장착하죠."
"냉각 기능?"
"등에 냉각장치를 달아서 방호복안을 시원하게 유지한다면, 이런 뜨거운 아프리카 야외에서도 문제가 없을 거 같습니다."
하수영은 손가락으로 발언한 남자 간호사를 정확히 가리키며 말했다.
"합격입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예요."
간호사의 안색이 더없이 환해졌다.
하수영은 바쁜 듯이 중얼거렸다.
"어디 보자. 그런 방호복을 만들려면 어디에 주문을 해야 하나. 나사에 발주하면 그 친구들이 잘 만들어줄 수 있으려나?"
"나, 나사요?"
"걔들이 우주복 만들던 짬이 있는 데, 걔들만 한 적임자는 없을 거 같아서요. 나사 전화번호가 뭐더라? 그러고 보니 이번 생은 나사에 아는 사람 한 명 안 만들어뒀네."
-코즈펠트 이사라면 나사 관계자들에 인맥을 터줄 수 있을 겁니다.
"하여튼 코즈펠트 이사가 복덩이야, 복덩이. 발을 안 걸치고 있는 데가 없어."
그렇게 하수영은 뉴타입 의료방호복에 넣어야 할 기능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사장님, 저기서 뭔가 먼지가 커지고 있는 거 같은데요?"
탁 트인 지평선 너머를 가리키던 의료진이 얼른 보고했다.
다른 의료진들은 얼른 쌍안경을 꺼내어 지평선의 먼지를 확인했다.
중앙캠프에서 알려준 지침이었다.
이런 경우에 맞닥뜨리면, 반드시 그게 뭔지 확인하라는 것.
맹수면 차라리 낫다.
하지만 맹수가 아니라 사람, 그것도 수단 군대라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간에.
"수, 수단 군인 같습니다! 무장했습니다! 아, 이쪽 방향으로 오고 있는데요?"
"설마 우리를 본 걸까요?"
"일단 피해야 해요!"
그들은 얼른 차를 버리고, 가능한 멀리 떨어진 바위 더미로 몸을 숨겼다.
수단군들은 차를 발견해서 다가와서 포위했다.
차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반응이 갈렸다.
일부는 차에 뭐가 실렸는지를 확인했고, 일부는 차에 탔던 이들을 찾으려는 듯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의료진들은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와 긴장감 속에서, 무사히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이사장님, 저희 괜찮겠지요? 수단 반군도 유엔 의료팀이라면 건드리지는 않는다고 들었……."
"……라."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의료진은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하수영은 수단군을 지그시 쳐다보며, 그들에게 말을 걸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냥 얌전히 가라. 출장 온 김에 수단 정벌하고 싶진 않단 말이다."
"이사장님?"
"켠 김에 얼떨결에 왕까지 가는 건지겹다고, 그냥 좀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