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43화
160장 플랜S (4)
한 장의 보고서가 일본 정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선박에서 붉은불개미가 발견이 되어…… 붉은불개미의 독이 선박의 철판을 부식시켜서 낸 구멍으로 물이 스며든 것으로 추정…… 따라서 세관의 책임은 전무한 것으로 보이며…….]
보고서는 붉은불개미가 지닌 독이 동물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로 인해서 미국에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지를 낱낱이 정리했다.
붉은불개미가 오래 서식하는 곳에서는 콘크리트와 철근이 부식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는 근거도 덧붙였다.
[괜히 세계 10대 악성 외래 침입종으로 지정된 것이 아닌 해충으로…….]
보고서는 붉은불개미가 얼마나 대단하게 강력한지를, 과장된 표현을 아낌없이 써가면서 강조하고 있었다.
내각에 올라간 보고서는 일본 총리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붉은불개미가 이렇게나 위험한 종이란 말인가?"
"총리 각하, 사실 저는 그런 해충의 이름은 처음 듣습니다."
"농림수산성은 농작물을 공격하는 해충에 대한 전문지식이 가득한 곳이니, 보고서 내용이 틀리진 않을 것입니다."
총리는 포드 항모로 인한 질투심을 풀기 위해 하수영이 일본에 수출한 물품을 건드리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단까지 지시하진 않았다.
그래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수영의 화물선이 침몰했지만 인명 피해는 전혀 없고, 수습 중이라는 보고만 받았을 뿐이다.
이 와중에 농림수산성이 올린 보고서였으니, 총리는 당연히 그 내용을 믿었다.
'붉은불개미는 농림수산성에서 작업을 한 건가? 아니면 원래 한국에서부터 묻어온 거라서 운 좋게 가라 앉은 건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한국에서 묻어온 것으로 공표가 될 것이다.
"허 참,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그런 해충이 방역망을 뚫고 우리 일본에 터를 잡았으면,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을 뻔했어."
"그래도 항만에서 철저히 막아내서 다행입니다."
"세관이 정말 일을 잘해줬군."
"네, 철판도 부식시키는 독을 가진 개미라니…… 정말 남미는 무시무시한 곳이군요."
"음, 아마존 우림에는 아직도 인간이 모르는 미지의 생물들이 우글거린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해충이 서식하고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
총리실은 농림수산성 보고를 철석같이 믿었다.
***
10억 엔의 사나이, 하시야마.
그는 장관을 건너뛰고 총리실로 직통으로 올린, 자신이 작성한 거짓보고서를 읽으며 만족해하고 있었다.
"음, 내가 생각해도 정말 근사한 보고서야. 전문 곤충학자가 아니라면 철석같이 믿을 수밖에 없겠어."
합금판을 녹이는 독을 가진 개미라니.
당연히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온갖 그래프와 수치.
전혀 무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논문 제목들.
그럴싸한 증거들을 꾸며주는 휘황찬란한 근거들을 보면, 누구라도 믿을 것이다.
"총리실에서 설마 이 논문들을 다 찾아보겠어?"
언젠가는 들통이 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선동은 한 장의 보고서로 충분하지만, 해명과 반박에는 수백 장의 근거와 설득이 필요하지."
그마저도 '붉은불개미가 정말 그런 독을 지녔나요?'라고 의문을 품는 누군가가 나와야 한다.
"하시야마! 장관님이 찾으신다!"
"음, 올 게 왔군."
하시야마는 느긋하게 일어났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가츠모토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추궁했다.
"자네, 미쳤어? 대체 왜 장관님 승인도 건너뛰고 그런 보고서를 총리 실에 직통으로 올린 거야?"
"가츠모토, 무슨 소리야? 장관님이 나더러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하셨는데?"
"뭐?"
"구두로 지시를 내리셨다고. 난 지시를 따랐을 뿐인데, 자네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자네 그게 무슨……."
가츠모토는 어처구니없어하다가, 갑자기 깨달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이거 설마, 장관님이 우리한테 책임을 덮어씌우시려는 것은……?"
"나도 지금 그런 생각이 들었어. 항만에는 붉은불개미가 화물선에서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더라고."
"젠장! 대체 어디서 그 말이 샌 거야!"
가츠모토는 이를 갈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붉은불개미 말이 새어나가니까 장관님이 우리를 희생시키려는 게 틀림없어!"
"그럴 가능성이 높아. 가츠모토,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해."
"어떻게? 위에서 책임을 지라고 하면, 잠자코 덮어쓰는 게 아랫사람 역할이라고."
"난 시킨 대로 했을 뿐인데 책임을 덮어쓸 마음은 없어."
"뭘 어떻게 하려는 건가?"
"두고 보면 알 거야."
***
과연 둘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농림수산성 장관은 자신을 건너뛰고 총리실로 직통 보고를 올린 것에 노발대발했다.
"이건 하극상이야! 자네들이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 해결하기 전에는 내 앞에 얼씬할 생각도 하질 말어!"
장관 입장에서는 자신을 건너뛰고 총리실에 보고를 올린 게 화가 났을 뿐이다.
하지만 가츠모토 눈에는 장관이 자신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윗사람의 잘못을 아랫사람이 대신 덮어쓰고 희생하는 것.
바로 일본 공직사회의 오랜 관행아닌가.
주군을 잘못 모셨다는 명분으로 부하가 책임을 지는 경우가 미담으로 퍼질 정도니.
국토교통성에서는 옳다구나 하고 덥석 물었다.
"붉은불개미! 하하! 바로 이거였어!"
"이거라면 절대로 우리 일본의 책임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붉은불개미가 어디서 왔겠습니까?"
"한국에서 곡물을 싣고 출발했으니, 바로 한국에서 묻어온 것이지요."
"이대로 널리 공표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음, 농림수산성 놈들은 쟁기질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꽤 유능하네. 이런 답을 바로바로 찾아내고 말이지."
꿈보다 해몽이다.
국토교통성은 밥만 축내는 농림수산성 녀석들이 모처럼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조선인들이 곡물에 붉은불개미를 탔다!'
이제 이런 명분을 바탕으로 한국에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면 된다.
국토교통성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장관님! 영국 로이즈 계열 IFS보험이 우리 일본 정부에 구상권을 청구했습니다!"
"뭐? 구상권?"
"네! 한국에 지불한 보험금을 우리 일본 정부한테 구상한다는 겁니다!"
"아니, 배가 침몰한 게 우리 일본 책임이 아닌데 왜 우리한테 구상권을 청구해?"
"선박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침몰이 일어났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
"우리 책임을 회피하려고 거짓말을 지어내서 퍼뜨렸다는 겁니다."
"거짓말?"
이미 일본 정부는 붉은불개미의 독으로 인해 선박이 침몰했다고 정식 발표를 한 상황이었다.
"여기 구상권 청구 내용을 보면…… 붉은불개미는 현재 한국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고, 선박에서 발견되었다는 물증도 없으며, 철판을 녹일 만한 독을 갖고 있지도 않다는 겁니다."
"뭐? 하지만 농림수산성에서 그렇게 총리실에 보고를 올렸잖아?"
"IFS보험 말로는 그게 거짓이랍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국토교통성은 당황했다.
비단 국토교통성뿐만 아니라, 농림수산성도, 총리실도 덩달아 당황했다.
"하시야마! 하시야마! 그 친구 어디 갔어! 빨리 찾아서 내 앞으로 데려와!"
"그게…… 오늘 출근을 하지 않았고, 지금 연락도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럼 집에 가서라도 끌고 와!"
"네! 장관님!"
그러나 농림수산성 장관은 원하는 보고를 들을 수 없었다.
"집에 찾아가 봤지만, 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웃 주민 말로는 며칠전에 이미 이사를 갔답니다!"
"뭐? 이사?"
농림수산성 장관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의 앞에는 IFS보험에서 보낸 반박 공문 번역문이 놓여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붉은불개미가 아주 몹쓸 해충은 맞는데, 배 아래를 녹일 만한 독은 없거든? 자꾸 개소리할래?
-니네 관리 소홀로 침몰한 걸 둘러대려고 지금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지어내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확신범이다. 선박 침몰은 니네 일본 정부 잘못이야.
-우리가 지불한 보험금, 물어내.
"장관님, 출입국 관리소에 알아보니, 하시야마가 미국으로 출국했는데요?"
"뭐!"
농림수산성 장관은 머릿속이 완전히 헝클어져 버렸다.
***
총리실 분위기는 살벌했다.
IFS가 청구한 금액은 30억 달러.
정확히 선적한 화물에 대한 비용만이다.
하수영이 딱 화물 자체에 대한 보험만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 보험사였다면 손쉽게 '협의'를 볼 수 있었겠지만, 영국 보험사를 상대로는 어림도 없다.
총리실은 부랴부랴 농림수산성의 붉은불개미 독으로 인한 침몰 보고서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보고가 올라왔다.
"동경대를 비롯한 저명한 대학 출신 곤충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는 데, 붉은불개미 독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인가?"
"네, 선박에 구멍이 날 정도로 철판을 녹일 만한 독이 있었다면, 진작 남미와 미국의 모든 인간이 멸망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
그렇게 화려한 근거와 타당성을 갖춘 보고서가, 아예 새빨간 거짓말이었다고?
총리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고 말했다.
"농림수산성 장관을 호출해. 지금 당장!"
농림수산성 장관은, 된통 깨졌다.
부하 직원이 단독으로 올린 잘못된 보고라는 변명은 먹히지 않았다.
"책임지고 대신이 이 모든 일을 수습해야 할 거요. 알겠소?"
총리는 그렇게 강력한 경고를 남겼다.
"만약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정치적 할복이라도 해야 할 거요."
윗사람을 잘못 모신 죄를 아랫사람이 대신 책임지는 관행.
그것이 농림수산성 장관에게 돌아갔다.
***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죠."
하수영은 서울로 넘어온 도우야 히데키와 함께 오찬 중이었다.
도우야 히데키는 태연한 하수영을 보면서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설마 선박 침몰 자체를 이 사람이 기획한 것은 아니겠지?'
배가 어떻게 침몰되었는지, 도우야 히데키는 모른다.
다만 침몰 소식을 듣고,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수영이 보험을 들어놓은 것을 알고 있었으니.
이제부터는 보험사가 어떻게든 일본 정부의 관리 소홀 책임을 물어서 구상권을 청구하려고 할 터였다.
그런데 힘든 소송으로 번질 일이, 이상하게 방향이 틀어졌다.
-일본 정부가 선박 관리 소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붉은불개미 핑계를 대고 있다!
라는 명분과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붉은불개미 독으로 철판이 부식했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는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아예 국제통상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조롱 메시지를 내보내며, 일본 정부는 구상금을 물어내야 한다고 압박까지 했다.
'농림수산성 직원 한 명을 매수해서 이렇게 일본 정부가 곤욕을 치르게 만들다니…….'
"지금 국토교통성과 농림수산성은 서로의 책임이라며 손가락질하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서로 죽이는 타이밍이 죠. 누가 승자가 됐든 간에 일본 정부 입장에선 손해고요."
"배가 침몰한 것은 역시 항만의 관리 소홀 때문이었겠지요?"
"저야 모르죠."
도우야 히데키는 농림수산성이 붉은불개미를 살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수영이 영상을 보여주면서 협조를 구했으니까.
때문에 한 가닥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붉은불개미 조작 공격을 당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배를 침몰시켜버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한국에 있는 하수영이 어떻게?
심지어 선박은 선장과 승조원들의 접근도 차단되어 있었는데.
배의 침몰 원인은 도우야 히데키에게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
영국 정부가 작정하고 나서서 외교적 압박을 가했고, 결국 일본 정부는 두 손을 들었다.
일본 정부예산에서 30억 달러의 구상금을 지불한 것이다.
그 책임을 어느 부처가 지느냐를 놓고, 다시 국토교통성과 농림수산성이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배가 침몰하기 직전, 농림수산성직원들이 몰래 배에 탑승했다는 증거 동영상이 국토교통성에 보내졌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성이 배에 무슨 수작을 부려서 침몰한 게 틀림없소! 그렇지 않고서야 왜 몰래 직원들이 배에 탔단 말이오!"
"배에 탄 것은 맞지만, 그것은 곡물 전수조사를 위한 사전작업이지, 어떤 수작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 오. 우리가 왜 그럴 필요가 있소?"
"그런 거라면 정당한 절차를 밟으면 될 일인데, 어째서 한밤중에 몰래 침입했단 말이오!"
국토교통성과 농림수산성.
패자가 자기 부처 예산에서 3,000억 엔을 물어내는 싸움.
누가 이기든 하수영 입장에서 상관없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도우야 초밥은 참치 냉동컨테이너를 조용히 인계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