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41화
160장 플랜S (2)
플랜S.
화물선을 자침시켜서 일본 세관을 곤경에 빠뜨린다는 계획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본이 먼저 선을 넘을 경우를 대비한, 비장의 한 수였다.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
"난 이 최후의 카드를 꺼내고 싶지 않았지. 하지만 일본 세관이 먼저 선을 넘었으니, 정당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3,000억 엔 상당의 화물이 실린(어디까지나 일본 정부 입장에서) 화물선을 압류했고, 돌려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세계 10대 악성 침입 외래종.
붉은불개미가 발견되었다는 핑계로 쌀을 전부 폐기할 생각이다.
정부기관에서 그런 대담한 조작질을 하다니.
'역시 일본 정부야. 변하지 않지.'
-마스터의 표정, 목소리 톤, 눈빛으로 계산해 보건대 일본 정부가 이렇게 나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린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제가 잘못되었습니까?
"응, 잘못됐어. 세상 어느 화물주가 자기 화물을 심해 바다에 처박기를 바라겠냐?"
-해당 항만은 심해라고 하기에는 육지 바로 옆이고 수심 또한 매우 낮습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해?"
-…….
"그리고 덫을 놓았다고 무조건 상대가 덫에 걸려 발버둥 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발 이대로 지나가 달라는 마음이 오히려 간절했지."
프리덤은 생각했다.
그러기에 하수영은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하지 않은가?
-일본 정부가 이런 극단적인 술수를 부릴 거라고 '예상을' 하셨던 걸까?
-아니면 일본 정부가 이런 극단적인 술수를 부릴 거라고 기대를 하셨던 걸까?
어쨌거나 플랜S는 현재로써 최선의 수다.
당장 일본 정부는 아침에 붉은불개미를 화물선에서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연기를 할 것이다.
그러려고 미리 야밤을 틈타 붉은불개미 여왕개미와 일벌들을 뿌려놓은 것이니.
그리고 이렇게 사방팔방 외쳐대겠지.
'조선인이 곡물에 붉은불개미를 탔다!'
그때가 되면 모든 대응은 의미가 없다.
너무 강력한 선빵이기에, 그것을 반박하고 입증하느라 세월을 허비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이곳은 일본, 하수영이 할 수 있는 것은 극도로 제한된다.
프리덤 역시 플랜S의 효율성에 수긍했다.
다만 여전히 남는 의문점 하나가 있을 뿐.
-마스터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화물선을 자침시킬 경우까지 상정을 했을까?
***
전성렬은 급히 하수영을 찾아왔다.
냉동컨테이너에 이어 곡물 화물선마저 일본 세관에 압류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하 사장! 하 사장!"
냉동컨테이너와 달리, 곡물 화물선은 대금 조건이 하수영에 불리했다.
자칫하다가는 3조 원어치 화물이 묶이게 생겼다.
전성렬은 자기 돈도 아니지만 배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감히 우리 대주주의 돈을! 어디서 전범의 후예 정치인 따위가!'
전성렬은 현 내각의 수장인 일본 총리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런데 하수영이 뭔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
"하 사장, 지금 뭐 하는 건가?"
"아, 동해의 신께 기도드리려고 합니다. 제사 지내려고요."
"동해의 신께?"
산더미 같은 제사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접시 개수만 적어도 몇천 개는 되어 보인다.
말 그대로 고대 중국 황제들이 만한전석을 연상케 하는 코스 요리의 향연이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요리들은 전부 모아놓은 것만 같다.
"하 사장, 자네 복장이……."
"제사를 지낼 거니까 프리스트 코스프레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수영은 흰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천주교 등 기존 종교에서 입는 사제복과는 전혀 달랐다.
길고 정갈하며 소매 등 옷의 폭이 넓은 디자인은 비슷한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황금색으로 번쩍거리고 있는 게, 전혀 다른 점이었다.
심지어 금색으로 반짝거리는 관까지 머리에 당당히 쓰고 있었다.
"하 사장. 혹시 지금 머리에 쓴 왕관 말인데……."
"왕관이 아닙니다. 전 지금 프리스트로서 제사를 지내려는 거라고요."
"아무튼 왕관이든 뭐든 간에, 그거 진짜 금으로 만든 건가?"
"그럼요. 부정 타게 그럼 가짜 금이나 도금한 관을 쓰겠어요? 이런 중요한 제사를 지내려는 마당인데."
"대체 무슨 제사를?"
"동해의 신께 빌려고요. 지금 제가 처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하수영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미친놈 소리가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수영을 잘 아는 사람이라도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성렬은 그 누구하고도 달랐다.
그는 목격한 적이 있었다.
'기청제……!'
2년 전, 겨울태풍 때문에 전국적으로 난리가 났었던 그때.
하수영은 갑자기 라면공장 직원들을 비 오는 공장 마당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본인도 우비를 입고, 기이한 주문을 읊으며 하늘에 비가 그치게 해달라고, 기청제를 열었었다.
당시 직원들 대부분은 날씨가 너무 안 좋으니까 사주가 오죽하면 저런 짓까지 할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기청제를 마치자마자 태풍과 강우가 딱 그친 것을 보고 놀라워하긴 했지만,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태풍이 너무 오래 유지됐으니, 이제 멈출 때도 됐다면서.
전성렬은 지금 저 모습을 보고, 바로 2년 전 그 기청제가 생각났던 것이다.
"동해의 신인지 용왕인지 간에, 자네는 무얼 빌 셈인가?"
"일본 내각에 즐거운 빅엿을…… 아니아니, 제가 이 시련을 무사히 넘기고 일본 식품 시장을 장악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려고요."
"나도 같이 빌어도 되겠나?"
"안 됩니다. 집중 깨져요. 정 하고 싶으시면 따로 제사상 차려서 하세요."
하수영은 그만 가라는 듯이 전성렬을 밀었다.
"자, 저는 동해신께 빌어야 하니, 사장님도 얼른 돌아가셔서 일보세요."
"아니, 하 사장. 화물선이 압류당했는데 동해신한테 빌어서 뭘 어쩌려고……."
"그 화물선이 정박된 항만이 동해와 연결되어 있으니 당연히 동해신께 빌어야죠."
그렇게 전성렬을 내보낸 뒤, 하수영은 소매를 털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신언은 다 좋은데 그놈의 '진정성'을 목소리에 담아야 한다는 게 귀찮네."
부친이라도 있으면 빨리 속성으로 레벨업 좀 시켜달라고 닦달하겠지만,지금 부친은 저 멀리 새로운 후계자를 찾아 떠났고, 부친의 아바타도 휴가인지 뭔지 요상한 이유로 연락이 안 된다.
"자, 시작해 보자."
하수영은 목청을 가다듬고, 산더미처럼 놓인 제사상 앞에 섰다.
자신이 얼마나 간절한 진정성을 품고 기원하는지, 부디 이 요리들이 입증해 주기를 바라면서.
"한반도를 수호하는 동해바다의 신이시여!"
"저는 한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 밑에서 무명소졸로 일하며! 이 땅을 유린한 왜구들을 용감히 토벌한…… 그때 내가 무슨 이름이었더라? 맞다, 개복이! 개복이라고 하옵니다!"
"지금 그 왜구들이 저의 소중한 곡물을 약탈하여 돌려주려 하지 않고 있으니!"
"이 나라 종묘사직 수호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이로써, 저의 귀중한 곡물이 왜구들의 군량미로 쓰이는 것을 어찌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저의 곡물들을 차라리 동해바다의 신께서 고이 회수하시어!"
"단 한 톨의 쌀도 약탈을 행한 왜 구들의 입에 들어가는 일이 없게 하소서!"
한참을 헥헥거리며 외치던 하수영은 자리에 뻗은 채 심호흡을 토했다.
"신언…… 내 진정성이 느껴지냐? 느껴져야 하는데, 안 그러면 플랜A로 갈 수밖에 없단 말이다."
-마스터,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배 하부에 구멍이 난 모양입니다.
"오, 그래? 다행히 내 신언이 아직 1렙짜리 쩌리지만 그럭저럭 효과가 있나 보군."
-언제 봐도 신기합니다. 마스터는 그런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째서 세상에 대한 영향력 투사를 자제할 수 있는 겁니까?
인간은 힘을 가질수록 그 힘을 어떻게든 주변에 쓰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프리덤이 딥러닝을 통해 학습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하수영은 가지고 있는 힘의 자원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같은 게임 한 100회차쯤 반복해 봐라. 그것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
"한 번씩 그냥 막 대충하는 회차도 있는 법이야. 이 마스터는 지금 메인 퀘스트보다 서브 오브 서브 퀘스트가 더 재미있다고."
너무 쉽게 깨버려도 재미가 없고 말이다.
***
화물선 침몰에 항만 세관은 발칵뒤집어졌다.
"멀쩡한 배가 대체 왜 침몰했다는 겁니까?"
"피해자는? 피해자는 얼마나 됩니까?"
다행히도 피해자는 전혀 없었다.
다른 배에 피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곡물 화물선은 그저 조용히 자기 혼자서 항만에 가라앉은 것이다.
물론 피해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필 침몰을 해도 그게 대형 화물선이라니……."
"항만에서 가라앉은 배를 들어내려면 여간 큰일이 아니겠는데."
"이거 하필…… 인양선이 들어오기에도 애매한 폭이라서 더 큰일입니다."
화물선이 침몰했으니, 당분간 이쪽 항만은 비우고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
수심이 그리 깊지 않은 까닭에, 항만을 드나들다가 선체 하부가 급힐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가 가라앉은 지점만 피해가면 되지 않느냐고?
물에서는 도로처럼 장애물을 정확히 피해가기가 불가능하다.
물살이나 바람 때문에 자칫 배 조타가 뒤틀어지면, 선체 바닥이 긁힐수 있다.
아예 항만 자체를 쓰지 않는 게 답이다.
"우리 항구가 선박 이동량이 얼마인데, 이쪽 항만을 전혀 못 쓰게 되면 그 피해가 대체……."
"이거, 혹시 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항구관리 공무원들은 처음에는 배의 문제로 책임 가닥을 잡았다.
"그게…… 일본 배입니다."
"뭐라고요?"
"일본 조선소에서 건조한 지 3년된 화물선입니다."
"……."
"선주도, 해운사도 모두 일본입니다."
"이거, 함부로 배 문제로 몰아가서는 안 될 거 같은데."
외부 개입이 아니라면, 배에 균열 같은 게 있어서 물이 스며들어서 자침했을 가능성이 현재로써는 유력하다.
그런데 배 문제로 몰아간다?
자칫 하다가는 전 세계적으로 일본 산 선박에 대한 불신만 증폭시킬 따름이다.
'안 그래도 불과 얼마 전에 취항한 지 몇 년 안 된 화물선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두 동강이 나서 난리가 났었는데.'
그런데 또다시 일본산 화물선이 제 절로 배에 물이 들어와서 가라앉았다고?
그것도 일본 항만에서?
해운사도 선주도 모두 일본 국적인, 취항한 지 3년밖에 안 된 배가?
국제해운계에서 일본산 선박에 대한 퇴출 운동이 들고 일어날 게 뻔하다.
관리국장은 얼른 상부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국토교통성 장관은 신신당부했다.
"절대로, 절대로 배 결함 이야기는 끄집어내서도 안 되네. 설령 진짜 배 결함으로 보인다고 해도 부정해야 해."
국토교통성.
해양분야도 관할하는 행정조직이다.
당연히 일본산 선박의 자존심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곳이다.
"일단 현장은 전면 통제해. 아직은 이 일이 외부로 새어나가선 안 돼."
"이미 전면 통제를 실시했습니다. 다만 주변에 정박한 선박들 선장들의 항의를 해결해야 할 거 같습니다."
"묵살해.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농림수산성 장관은 마른침을 삼키며 확인했다.
"작업 치러 탔던 그 두 놈이 뭐 잘못 건드린 건 아니겠지?"
직원은 펄쩍 뛰고 싶은 마음이었다.
"개미만 살짝 뿌리러 몰래 탄 친구들이 무슨 재주로 그 거대한 선박에 물이 들어올 만한 구멍을 내겠습니까?"
"빌어먹을."
붉은불개미를 이제 짠 하고 공개해서 곡물을 전량 폐기하면 그만인데, 그전에 배가 가라앉아 버리다니.
기껏 준비한 붉은불개미 카드가 쓸모가 없어졌다.
아니, 혹시라도 작업을 친 직원들이 배에 탄 광경이 이제는 절대로 알려져선 안 된다.
"그 두 놈들 입 철저히 막고."
"설마 자기들이 배에 탔다고 어디가서 말하고 다니진 않을 겁니다."
몰래 배에 탔다는 사실 자체가 밝혀지는 순간, 농림수산성이 용의자가 되는 것이다.
"무조건 배 결함 문제로 몰아간다. 배에 문제가 있어서 침수로 침몰한 걸세."
"네, 장관님. 그렇게 짜겠습니다."
국가행정조직 간의 관할알력은, 현대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