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37화
159장 중고 거래 (3)
베글턴 해군대장은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미친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분 만에 그는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의외로 말이 된다.
아무도 손해 보는 이가 없고, 모두가 이익을 보며, 심지어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모든 딜이 끝나면?
항모의 소유권자는 하수영이 되지만, 항모 국적은 여전히 미합중국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소유주가 하수영이지만, 빌딩이 한국의 빌딩은 아닌 것처럼.
즉 포드 항모의 국적은 여전히 미합중국이며, 항모 내부는 미국의 영토로 취급된다.
항모 건조기술 기밀이 새어나갈 염려는 전혀 없다.
헌팅턴 인걸스 인더스트리즈 이사회에서는 당연히 옳다구나 하고 전 격 지지하고 나섰다.
기업 입장에서 공중분해 될 뻔한 130억 달러의 건조비를 건질 수 있는데, 어떻게 감히 다른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사회 멤버들은 하수영을 아예 신처럼 모실 기세였다.
"인테리어에서 최상급 대우로 해드릴 테니,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 위드너 부사장은 하수영이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아예 개인비서처럼 24시간을 붙어 다녔다.
호텔 펜트하우스 스위트룸의 수행 비서용 침실에서 생활을 할 정도였다.
물론 객실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했다.
감사하게도 130억 달러짜리 고물을 사주시는 분인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잘 부탁합니다. 전 최고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코즈펠트 이사님에게 한 번 물어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안 그래도 퀸 스텔리온을 어떤 식으로 개조했는지 자세한 견적을 받았습니다. 그걸 전격 참고해서 개조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사는 군용 병원함을 건조한 경험도 다수 있다.
그래서 조 위드너도 병원함에 대기본적인 시야는 트여 있었다.
그런 그도 퀸 스텔리온의 '닥터헬기 스펙'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퀸 스텔리온은 말 그대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특급 수술실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요. 30기의 닥터헬기들이 드디어 어미를 찾았으니까요."
"앗! 그렇군요! 병원 항모를 닥터헬기 모함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어요!"
대형헬기라고 하나, 겨우 30기의 헬기 정도는 너끈히 수용하고도 남는다.
최대 90기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는 대형 항모였으니까.
전국의 수영병원 분원에 배치된 헬기를 제외한, 나머지 헬기들은 이제 모함 격납고에서 아늑하게 쉴 수 있으리라.
회사와 베글턴 해군대장이 힘을 합쳐 전격적으로 나선 결과, 마침내 백악관의 승인을 얻어낼 수 있었다.
조마조마해서 결과를 기다리던 조위드너 부사장은 승인이 떨어지자 뛸 듯이 기뻐했다.
"아직 미 의회의 승인이 남았지만, 9부 능선은 넘은 셈입니다!"
"의회 승인은 문제없을 겁니다! 의회도 130억짜리 항모가 고철덩이로 해체해야 하는 것에 걱정을 안고 있었으니까요."
"애초에 철저히 우리 미국의 이익인데, 이걸 반대하면 정말 돈 개념이 없는 겁니다!"
의회를 물밑 접촉한 결과, 정식 승인을 얻어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법적 관문은 거의 다 넘었지만, 본격적인 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일단 슈퍼호넷과 라이트닝 2 전투기, 전자전기는 전부 해군기지로 옮겼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전투용 함재기를 격납고에서 먼저 싹 비웠다.
물론 시험운용 중이라서 함재기가 격납고를 꽉 채운 것은 아니었다.
이착함 및 운용 테스트를 위해서 종류별로 1, 2기 정도만 갖다 놓은 상태였다.
그때 하수영이 개입했다.
"C-2 그레이하운드는 옮기셔도 되는데, V-23 우스프리는 남겨두시죠."
"음, 하긴 환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매번 닥터헬기를 이용해서 항모를 드나들 순 없겠죠. 우스프리는 남겨두는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우스프리 같은 수직이착륙 수송기에 제가 애착이 좀 있어서요."
어차피 미군이 운용할 거니까 남겨 둬도 오케이.
하수영이 지불할 유지비가 커지는 것 외에는 달라지는 게 없다.
"항모가 잡아먹는 물자도 엄청나지. 필요물자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V-23 우스프리가 충분히 갖춰져 있어야 할 겁니다."
물자보급, 인원 이동을 위한 수직이착륙기 편대가 그렇게 항모에 남게 되었고,
"MQ-25도 남겨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MQ-25.
좌우로 긴 이등변삼각형처럼 생긴, 무인 함상 공중급유기.
"프로브 방식을 채택한 MQ-25무인 함상 공중급유기가 있으면, 원양에서 작전할 때 닥터헬기들의 배고픔을 달래줄 수 있을 겁니다."
"작전이라니요. 이거 군함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민간 병원선이에요."
"아차차, 제가 말을 실수했습니다."
전투기의 뒤를 따르지 않고, 항모에 살아남은 함재기가 또 있었다.
"시호크 대잠헬기는 남겨야 합니다. 가상적국이 수면 아래에서 항모를 노리는 경우를 대비해야만 해요."
물론 미국과 전쟁을 벌일 참이 아니라면, '병원 항모'를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24시간 빈틈없이 호위함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가 뭔가?
전투기를 싣진 않았어도 그래도 최신 기술이 적용된 항모이기 때문이다.
"대잠헬기는 오케이. 당연히 실어야 합니다."
"하는 김에 호크아이 조기경보기도 남겨두죠. 항모를 노리는 해적선이 멀리서 다가오는지를 하늘에서 지켜 볼 필요는 있습니다."
"어디서 항모가 조기경보기도 없이 혼자 다닌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투기는 퇴출되었지만.
수직이착륙 수송기는 물자보급을 위해, 무인 함상 공중급유기는 닥터헬기 보급을 위해.
대잠헬기는 근접 탐지를 위해.
조기경보기는 원거리 탐지를 위해.
이렇게 항모에 남게 되었다.
"그냥 저한테 파시죠."
"헉, 안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엄연한 군사무기인데, 민간인한테 소유권을 넘길 수는……."
"퀸 스텔리온도 기관총 그대로 있고 기관총탄도 싣고 다니는데요?"
"……하, 하지만."
"닥터헬기나 항모와 똑같은 조건으로 사면 아무 문제 없지 않아요? 그냥 파세요. 그래야 깔끔하게 제 배라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요."
베글턴은 고심 끝에 결재를 올렸고, 백악관은 이것도 승인해 주었다.
닥터헬기와 마찬가지로 미군이 모든 운용과 관리, 감시를 하게 되며, 쓸모나 효용이 다해서 폐기처분해야 할 때에도 미군이 관할한다.
미 언론이 냄새를 맡고 취재에 나섰지만, 시원한 결과를 얻진 못했다.
미 정부가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포드급 항모 2번함, 기관 추진력 저하 문제로 실전배치 마땅치 않다.]
[미 해군, 포드 항모를 병원선으로 동맹국에 제공하기로 결정.]
[과감한 실험 정신, 모든 비용은 해당 병원에서 부담, 미 해군의 손해는 일절 없다.]
[적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항모, 환자를 살리는 병원선 되다?]
미국 매스컴에 굵직한 기사가 실렸지만, 대중의 관심은 빈약했다.
이래서야 한국에서는 포드 항모가 병원선으로 자기 나라 국민한테 팔렸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
행정적 절차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나노소프트에서 하수영을 찾아왔다.
"저번 뉴욕 방문 때에 뉴욕 주정부에 독과점 소송이 걸린 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어떻게 됐습니까?"
"아직 진행 중입니다.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노소프트의 수영레스토랑은 현재 뉴욕의 외식업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주정부는 지역 외식업자들을 살리기 위해 독과점 소송을 제기했고, 나노소프트 역시 맞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우리는 패소해 봤자 영업시간 단축이라는 제한 정도나 받겠지요."
"뉴욕이 캘리포니아의 악수를 반복하려고 할까요?"
캘리포니아에서 독과점 비난 때문에 나노소프트는 직장 점심시간을 피해서 영업을 시작했고, 다른 음식점 매출이 늘어나기는커녕,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같이 늦춰버렸다.
발머 스틴이 말했다.
"그리고 조만간 우리가 나노소프트 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예정입니다."
"소송이요?"
"네, 요식업 프랜차이즈 사업부를 나노소프트에서 분리한다는 내용의 소송입니다."
"흠, 이유가 뭔가요?"
"아아, 사티아 아델 CEO와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냥 주주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하, 주주들이 선을 넘었나 보군요."
"네, 윈드밀 배당금이나 받아먹으면 그만이지, 이것들이 지금 라면 판 돈에 군침을 흘리고 있지 뭡니까. 그래서 아델과 의논해서 소송쇼를 벌이기로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소식 듣더라도 놀라거나 걱정하지 않을게요."
"내년도 매출은 확실하게 1,00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좋은 소식이군요. 발머 스틴 씨가 열심히 일해주신 덕분에 이번 미국출장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어요."
"회장님이 기가 막힌 식재료로 너무 훌륭한 메뉴를 빚어낸 덕분이죠. 제가 아니라 누가 했어도 지금의 나 노소프트 요식업 프랜차이즈 사업부를 일궜을 겁니다."
발머 스틴의 표정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병원선 구매에도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배만 사고 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것저것 필수적인 부수물품이 줄줄이 있지 뭐예요? 그렇다고 깡통 배만 달랑 사면 의미가 없고."
"원래 그렇죠. 디지털 캠코더를 하나 사더라도 이것저것 사야 하는 부수기재들이 많죠. 메모리카드, 보조배터리, 보관백, 삼각대, 외장 마이 크, 외장 플래쉬, 리모컨……."
"캠코더 하나만 사려 해도 그런데, 배는 훨씬 더 심하죠."
"그 심정 이해합니다. 그래도 필요한 부수물품은 전부 갖추셨겠지요?"
"네, 필요한 건 다 갖췄습니다."
"그래도 남이 쓰던 중고라서 조금 찝찝하지는 않으실까 걱정입니다. 심지어 AS도 안 되는 공장 초도불량 아닙니까."
발머 스틴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고, 하수영은 유쾌하게 웃었다.
"중고 초도불량 아니면 애초에 살수가 없는 매물이니까요. 괜찮습니다. 조금 느린 거 말고는 다 멀쩡하게 돌아가요."
"그래도 배가 기동력이 생명인데, 속도가 24노트밖에 안 돼서야……."
"그만큼 닥터헬기가 커버할 테니까 괜찮습니다."
***
포드 항모를 병원선으로 개조하는 데에는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일단 내부는 싹 뜯어고쳐야 한다.
군사작전 관련 시설은 대부분 진료실, 수술실, 처치실, 입원병동으로 개조될 것이다.
입원병동은 주거공간 일부, 그리고 격납고를 개조해서 만들기로 했다.
함재기들은 갑판에 보관해도 충분하니까.
포드항모는 떠다니는 거대 주상복합센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헬스장, 식당, 쇼핑센터, 영화관 등 대부분의 편의시설을 다 갖추고 있었으니까.
"인테리어 시간이 꽤 걸릴 테니, 전 그동안 한국에 가 있겠습니다."
"네, 완벽하게 감독할 테니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개조 다 끝나면 연락 주세요. 그때 미국 다시 오던가, 아니면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하던가 결정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수영은 일정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고 보니 전용기도 하나 사진해야겠다."
-전용기는 역시 A380이죠.
"그래, 보잉은 요즘 문제가 많으니까 일단 거르는 게 답이지."
***
그 시각, 한국 국방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하수영 의원님이 미국 가신 게 포드 항모 구매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