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35화
159장 중고 거래(1)
하수영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강습상륙함이나 헬기 모함 가지고 흥미로운 중고라고 하지 않을 거 같아서요. 제가 코즈펠트 이사님을 모르겠어요?"
-…….
코즈펠트 이사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하수영을 놀라게 해줄 자신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상상도 여러 번 했다.
'짠! 중고 항모가 시중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허억, 정말요!'
'그럼요! 그것도 미 해군이 오랫동안 운용한, 품질과 성능, 안정성 면에서 전혀 흠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보증상품이지요!'
'그걸 일반인도 살 수 있나요?'
'돈만 있다면 안 되는 게 뭐가 있겠어요?'
대충 이런 흐름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했는데, 초장에 들킬 줄이야.
'내가 미스터 하수영을 너무 과소평가했군.'
코즈펠트는 그렇게 깊은 자아고찰을 하며, 통화를 이었다.
-네, 맞습니다. 겨우 이지스 순양함이나 강습함 중고 따위를 가지고 흥미로운 매물이라고, 제가 그렇게 말할 리가 없지요.
"왠지 니미츠급 항모는 아닐 거 같은 예감이 듭니다."
니미츠급 항모.
1975년 출시된 핵추진 항모로, 2차대전 전쟁영웅인 니미츠 제독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건 너무 오래됐어요. 이제는 세련되지 않았요."
-맞습니다. 겨우 그걸 가지고 제가 흥미롭다는 표현을 하진 않죠.
"그럼 역시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코즈펠트 이사는 감탄했다.
아니, 어떻게 거기까지 예상할 수 있지?
적어도 이것만큼은 하수영도 맞추지 못하리라고 자신했었는데.
-2017년에 최초로 취역된, 가장 세련된 최신예 항공모함이죠. 미 해군도 이제 겨우 한 척만 갖고 있을 뿐입니다.
"건조 비용이 비싸긴 하죠. 천조국이라는 미군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안 그래요?"
-맞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4척을 추가 건조할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전면 보류된 상태죠.
"설마 취역한 지 이제 겨우 4년된 포드급 항모 1번함을 중고로 내놓는다는 건가요?"
-정확히는 2번함입니다.
"2번함이 있었나요?"
-네, 건조를 완료하고 시험항해 중이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초기불량이 발생했군요."
-네, 수리를 해서 쓰기에는 너무 치명적인 문제라서요.
"그럼 폐선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군함으로서 치명적인 문제이지, 그 외는 괜찮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원래 기대 속력은 30노트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 만재상태에서 최대 속력이 24노트로 나왔습니다. 추진 터빈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해군에서도 이 문제로 골머리가 썩는 모양입니다. 일단 지금 이 상태로는 실전투입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당연하죠. 군함이 원하는 속력이 안 나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정비 결과 눈에 띄는 문제는 없었습니다. 결국 도크로 올려서 전면 해체하고 점검을 해야 한다는 건데…… 만약 그렇게 해서도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하면 리스크가…….
"배보다 배꼽이 크겠네요."
-여러모로 애물단지입니다. 현재 1척만 보유한 상황에서 추가 도입이 무기한 보류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샅샅이 점검했는데 특별한 문제가 안 보일 때 기술자들은 환장한다.
결국 추진 터빈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러려면 도크로 올려서 배를 해체하다시피 뜯어내야 한다.
배를 만든 조선소는 미치고 펄쩍 뛸 지경일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미스터가 생각이 났습니다. 미스터라면 분명히 흥미를 보일 것 같아서…….
"당연하죠. 저, 엄청 흥미 있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지금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는 거죠?"
-물론입니다. 미 해군은 포드급 항모 2번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 골머리를 썩힐 뿐이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주세요."
-굿.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가겠습니다.
하수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미국으로 갑니다. 뉴욕에서 뵙지요."
***
헌팅턴 인걸스 인더스트리즈.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미국 최대의 군수조선회사.
미 해군 항모의 유일한 설계, 건설, 급유를 담당하는 이 회사의 부사장, 조 위드너는 이제 막 취역한 포드급 항모 2번함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데 추진력이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원자로도, 추진용 증기터빈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만재배수 상태에서 최대속력이 24노트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기대 속력이 30노트 이상인 이상, 군사용으로는 절대 쓸 수가 없다.
군함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미사일도, 함포도, 레이더도 아니다.
바로 기동력이다.
바다를 항행하는 군함이 제대로 기동하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록히드마틴의 코즈펠트 이사의 연락을 받았다.
-자네 회사의 제품을 가지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바이어가 한 명 있네만, 한 번 만나보지 않을 텐가?
"코즈펠트, 우리 회사가 미 군수조선업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사람 한 명 잘못 만났다가는 곧바로 NSA에 체포당할 수도 있다고."
-스파이와는 전혀 무관한, 떳떳하고 합법적인 자리이니 안심하게. 아, 베글턴 장군도 초대했으니 그렇게 알고 있게.
"베글턴 장군도? 그럼 가야지."
미 해군대장 베글턴.
그는 이번에 취역한 포드급 항모의 문제점 때문에 매번 자신에게 두통을 불러일으켜 주는 당사자이기도 했다.
약속 장소는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최고층 레스토랑이었다.
VIP룸으로 안내받은 조 위드너 부사장은 수행원을 데리고 먼저 와 있는 베글턴 미 해군대장을 볼 수 있었다.
"제너럴 베글턴, 이렇게 뵙는군요."
"자네도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그나저나 포드급 2번함 문제점은 찾았나?"
"기술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배를 조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추진 샤프트를 전면 교체하려면 배를 갑판부터 시작해서 전부 뜯어내야겠지?"
추진용 터빈은 배의 맨 아래, 가장 깊숙한 곳에 있으니까.
추진용 터빈 교체는 차라리 배를 새로 건조하는 게 나을 정도로 대공사가 될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새로 하나 만드는 게 더 낫겠어. 지금 배는 그냥 실전이 아닌, 견습생들 항모 운용법 익히는 교습물로 쓰고 말이야."
"……."
조 위드너는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베글턴 해군대장은 본인의 수행원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미스터 코즈펠트는 왜 이렇게 늦지? 그가 소개시켜 준다는 바이어는 누구고?"
"저도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헌팅턴에 선박 주문을 하는데 왜 나까지 부르는 거지? 미 해군의 양해를 구해야 할 만한 사항인가?"
"인도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 순번을 늦춰 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건지도 모릅니다."
"포드급 항모 도입은 전면 백지화되게 생겼으니, 굳이 해군에까지 읍소할 필요는 없을 텐데."
명백한 빈정거림이었지만, 조 위드너는 웃는 얼굴로 참았다.
이윽고 코즈펠트가 누군가를 에스코트해서 나타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앳되어 보이는, 동양인 청년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너럴 베글턴, 미스터 조 위드너. 소개하겠습니다. 이분은 한국에서 오신 미스터 하수영, 바로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릴 분입니다."
"……베글턴이라고 하오."
"조 위드너입니다."
둘은 일단 인사를 하긴 했으나,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둘 다 하수영을 모르는 눈치이자, 코즈펠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록히드마틴과 시콜스키의 합작품인 퀸 스텔리온 수송헬기 30대와 공중급유기 3기를 구매하신 큰손 고객입니다."
"아! 한국의 그 의료재벌! 기억났소!"
베글턴 해군대장이 그제야 껄껄 웃으며 반가워했다.
해군이 퀸 스텔리온 태평양 수송작전을 수행했기에, 베글턴은 대강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 위드너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경악의 시선으로 하수영을 살폈다.
'이 사람이 그 아시아 최대의 식품재벌?'
나노소프트가 라면 요식업으로 승승장구한다는 이야기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청년은 바로 그 라면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오너였다.
그리고 뭐라고 했지?
퀸 스텔리온 30대와 공중급유기 3기를 주문했다고?
"실례지만 퀸 스텔리온과 공중급유기 주문은 무슨 일인지…… 그런 전략무기의 외국인 개인 판매를, 정부가 승인했단 말입니까?"
"아, 그게 말입니다."
코즈펠트는 자세히 설명했다.
병원에서 닥터헬기로 쓰기 위해 구매했으며, 모든 관리와 운용, 보관까지 전부 주한미군에서 담당하고 있어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한미군이 모두 관리한다고?'
조 위드너의 눈빛이 다시 한번 빛났다.
그 짧은 설명에서, 왠지 모르는 희망의 서광이 내리비쳤다.
하수영이 유창한 영어로 입을 열었다.
"그냥 본론을 말하죠. 애물단지 신세인 포드급 항모를 제가 사고 싶습니다."
"……!"
"……!"
베글턴 해군대장은 눈을 부릅뜨며 입을 쩍 벌렸다.
전혀 상상도 못 한 소리에,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미쳤나 하고 생각했다.
미국의 최신예 항모를 사겠다고?
개인이, 그것도 미국인도 아닌 외국인이?
"아니, 농담도 농담 같은 이야기를 해야지 웃어줄 마음이 생기는 법이오. 개인이 항모를 사겠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허허……."
반면 조 위드너는 베글턴만큼 경악하지 않았다.
어쩌면 닥터헬기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런 류의 대화가 나올 거라고 자신의 무의식이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죠?"
"허어, 일단 포드 항모 건조하는데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시오? 무려 130억 달러가 들었소, 130억 달러!"
"괜찮은 가성비군요. 여러 척 사면 대량구매 할인 같은 거 붙나요?"
"뭐, 뭐라고요?"
코즈펠트 이사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자국 환자 복지를 위해 닥터헬기 시스템 도입에만 7조 원 이상을 쓰신 분입니다. 제가 알기로 미스터하수영은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을 겁니다."
매년 100억 달러 이상.
그 말에 베글터 해군대장은 다시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랐고, 조 위드너의 표정은 더욱 진지해졌다.
'배가 다 만들어진 상황에서 전부 다 뜯어내고 추진터빈을 교체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군함으로는 탈락이다. 하지만…….'
부자 중에는 온갖 별난 사람이 있다.
퇴역한 탱크를 사서 무기를 떼어내고 포신을 납땜으로 막은 다음, 그냥 폼으로 타고 다니는 사람.
스핏파이어 프로펠러 전투기 같은 기체를 비무장으로 복원건조해서 멋으로 타고 비행하는 사람.
심지어 2차대전 전함이나 구축함을 복원해서 취미로 보유하는 부자도 있다.
상대는 아마 포드항모를 유람용으로 쓰려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록히드마틴이 미쳤다고 이런 자리를 만들었겠는가.
"혹시 유람용으로 쓸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베글턴 해군대장은 깨달았다는 듯이 놀란 눈으로 조 위드너와 하수영을 번갈아 보았다.
"아뇨, 병원선으로 쓸 건데요."
"H, Hospital ship?"
조 위드너는 힘이 빠져서 저도 모르게 휘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