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31화
157장 언더커버 군납 (3)
"그래도 명색이 농장인데 이제는 군납 하나 정도는 해야지."
하수영은 멀어지는 부대 위병소를 사이드미러로 응시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남겨놓은 컨테이너와 트레일러를 합치면 그래도 꽤 나간다.
그에게는 먼지와 같은 돈이지만, 부대 입장에서는 은근히 짭짤한 득템이다.
또 컨테이너에 실린 밀봉전투식량은 좋은 홍보 샘플이 되어줄 것이다.
"역시 신제품 홍보는 이렇게 없는듯이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거야."
-마스터, 그런데 달러박스는 왜 회수하지 않고 남겨두신 겁니까?
달러가 담긴 황금색 박스는 컨테이너칸에 각 1개씩 들어 있었다.
즉 부대에 남겨놓은 3칸 컨테이너에는 1개의 달러박스와 전투식량박스로 가득 차 있었다.
"바보냐? 돈을 남겨둬야지 나중에 돌려주려고 군에서 자연스럽게 연락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아, 그런 의미가 있군요. 이것도 딥러닝을 해두겠습니다.
"군에서 부담 없이 나한테 연락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줘야지. 드라마에서 잘생긴 남자들이 왜 카드지갑 잃어버린 척 흘리고 떠나는데."
그렇게 하수영은 하루 만에 청담동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군에서는…….
"이게 수영농장에서 만들었다는 비상전투식량이라고?"
"네, 식수정화약제와 의약품키트는 시중 제품을 구매해서 패키징한 거지만, 이 전투식량은 농장에서 직접 만든 거라고 합니다."
"이 계란 노른자만 한 게 어떻게 2,500 kCal의 열량을 낼 수 있다는 거지?"
"음식을 압축해서 부피를 줄인 게 아닐까요?"
"그렇다기에는 무게가 너무 가벼운데."
하수영이 놓고 간 컨테이너는 수송헬기로 계룡대 육군본부로 옮겨졌다.
오준형 육군참모총장은 밀봉을 뜯은, 계란 노른자만 한 환단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다가 수저로 뚝 잘랐다.
"쉽게 잘리는군. 압축음식은 아닌 모양이야."
음식을 압축했다면 꽤 단단하고, 외부력에 대한 저항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단은 부드럽게 갈라졌다.
수저 끝으로 단면을 살살 긁자 가루가 쉽게 떨어져 나간다.
"억지로 강하게 압축한 건 아니야."
열량만 생각한 전투식량은 수분을 최대한 제거하고, 또 압축해서 부피를 극단적으로 줄인다.
지나치게 압축을 하면 병사가 씹어 먹기 힘드니, 딱 씹을 수 있을 정도로만 압축한다.
그 이상 압축하면 물에 녹여 불려서 먹어야 하기에, 긴급한 상황에서 입에 툭 털어 넣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특수전투식량은 주로 특전사 부대에서 실전 투입할 때나 지급된다.
"이 쬐끄만 게 2,500 kCal라고?"
신기한 눈으로 이리저리 훑어보던 오준형 참모총장은 쪼개진 환단을 전부 입에 털어 넣었다.
환단은 혀에 닿자마자 침에 녹듯이, 부드럽게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일단 먹는 것은 굉장히 간편하다. 그리고…….
"맛있는데?"
"맛있습니까?"
"그래, 자네들도 한 번 먹어봐. 이거 생각보다 맛있어."
신기하게 바라보던 3스타, 4스타장성들도 밀봉을 하나씩 뜯어서 환단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들은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 넘김에 놀랐고, 정말 맛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진짜 맛있는데요?"
"이게 무슨 맛이지? 고기 맛 같기도 하고, 계란 맛 같기도 하고, 채소 맛 같기도 하고……."
"대체 뭐로 만들었을까요?"
전시를 대비해 비상전투식량을 개인적으로 비축하고 있다는 말에 처음에는 그저, 대단하구나 하고 놀랐을 뿐이다.
컨테이너를 육군본부로 가져온 것도, 하수영이 '하사한' 물품을 감히 이리저리 흩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험악하게 쓰다가 나중에 하수영이 알게 되면 군에 얼마나 유감을 품겠는가.
그래서 육군본부에 소중히 모셔두기 위해 헬기로 실어서 가져왔다.
전투식량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한 번 맛도 보고, 훈련에서 사용도 해본 다음에, 나중에 하수영과 연락할 일이 생기면 기다렸다는 듯이 칭찬을 해서 점수를 따겠다는.
그런데 생각보다 효능이 좋은데?
"어, 근데 뭔가 배부릅니다."
"아, 밥 먹은 지 한참 돼서 마침 출출했었는데, 이거 포만감이 엄청 납니다?"
"윽, 배부릅니다. 이거 진짜 칼로리가 2,500 정도 되겠습니다?"
장성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배가 부르다고 호소했다.
오준형 총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늙었지만 여전히 매일 운동을 하고, 근육이 꽉 차 있으며, 활동량도 많다.
그런 자신이 조그만 환단 하나 먹었다고 벌써부터 이렇게 배부름을 느끼다니.
"총장님, 특수전투식량으로 이걸 도입하는 게 어떻습니까?"
"물론 따로 정식으로 테스트는 해봐야겠지만, 한 번 먹어보고 알겠습니다. 이거 특수전투식량으로 아주 딱입니다."
"정말 이거 하루에 두 개만 먹어도 특전사들이 아무 지장 없이 실전 활동할 수 있겠습니다?"
"이 상태에서 좀 더 압축하면 부피를 더 줄일 수 있을 테고, 그럼 개개인이 더 많은 식량을 소지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굳이 더 압축할 필요가 있나? 이정도 크기만 해도 충분한데. 여기서 더 압축하면 괜히 딱딱해지기만 하고 먹는 게 힘들어질 수도 있어."
오준형은 속으로 이거다! 하고 외쳤다.
누군지 몰라도 하수영의 트레일러타이어에 펑크를 낸 이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게 누군가의 소행이든, 아니면 길거리에 재수 없이 굴러다니던 조각이던 간에.
미리 지시한 성분 조사 결과도 나왔다.
"탄수화물이 가장 많으며, 지방, 단백질, 필수 아미노산인 류신, 이소류신, 리신, 메티오닌, 페닐알라닌, 트레오닌, 트립토판, 발린…… 비타민 A, B, C…… .무기염류인 나트륨, 인, 칼륨, 칼슘…… 그리고 약간의식이섬유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
"인체가 필요로 하는 웬만한 영양소는 전부 다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냥 이것만 평생 먹어도 건강하게 살 수 있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
"국방연구소에서 대체 이거 뭐로 만든 거냐고, 이걸로 특수전투식량을 채택했으면 한다고 전해왔습니다."
오준형 참모총장은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의원님이 대체 뭘 만드신 거지?
어처구니없는 분석 결과에 3성, 4성 장군들도 할 말을 잃었다.
그때, 2성 장군 하나가 웬 박스 하나를 품에 안은 채 헐레벌떡 뛰어왔다.
"참모총장님! 컨테이너 가장 깊숙한 곳에 이 금색 박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뭐? 금색 박스라고?"
"네, 열어보니까 안에 든 내용물이 심상치 않아서 바로 닫고 가져왔습니다!"
참모총장은 기억났다.
달러박스!
전장에서 구르다 보면 적군을 매수하거나 결핍 물자를 사야 할 경우도 있으니, 기축화폐인 달러 역시 생존필수템이라고 했던가?
박스를 열어보고 참모총장 이하 장성들은 기겁했다.
"100달러짜리 지폐다발입니다!"
"하나, 둘, 셋, 넷…… 맙소사."
세어보니 100달러짜리 100개 묶음이 총 200묶음이 들어 있었다.
"2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0억원입니다!"
예비군이 부대에서 20억 원을 잃어버리고 갔다.
다른 사람이어도 큰 문제가 되는 데, 하필이면 상대가 하수영이다.
"이거 바로 돌려드려야 합니다!"
"당연하지! 어서, 어서 하수영 의원님 연락처를 찾아와!"
계룡대는 그렇게 발칵 뒤집어졌다.
***
"이상하다. 왜 아직까지 연락이 안오는 거지?"
하수영은 자신의 앞에 놓인, 밀봉된 비상전투식량을 눈으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군대에서 연락이 없었다.
"이 사람들, 설마 컨테이너 열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어디 짱박아둔 거 아니야?"
"군대는 원래 뭐든지 안 보이는 곳에 짱박는 게 특기지. 차라리 하 의원 자네가 먼저 물어보는 게 어떻겠나?"
"에이, 제가 어떻게 군납 좀 받아 볼래, 하고 말을 걸어요?"
"못 할 건 또 뭔가? 아, 항상 주변 접근을 받기만 해서 먼저 다가가는 것은 쑥스러운가?"
"제 사전에 '쑥스럽다' 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하수영은 양반다리로 앉은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좋은 물건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면 꼭 뒤통수를 치려고 해요. 그게 본성이더라고요."
"그렇지."
"먼저 나한테 숙이고 들어오게 만들어야 하더라고요. 살아보니까 세상이 그래요. 아무리 제가 좋은 의도로 뭔가 해주려고 해도 지들이 잘난 줄 알아요."
"근데 자네, 아랫사람들한테는 늘 먼저 베풀어주고 그러지 않았나?"
"제 그늘 아래 있는 사람들은 어차피 제 통제력 안이니까 그래도 됩니다. 제 통제력 밖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죠."
최우석은 부채질을 하면서 끄덕이다가 특수전투식량으로 눈을 돌렸다.
"근데 그건 어떻게 만든 건가?"
"그냥 이거저거 우리 작물에서 나는 몸에 좋은 것들을 섞고 빻아서 만들었습니다."
"흐음, 뭐라고 부르나?"
"신두라고 부릅니다. 신의 콩이라는 뜻이죠. 원래 선두라고 하려다가 신두로 결정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콩이라기보다는 계란 노른자에 가까운데? 신란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아, 콩이 많이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신두라고 지었습니다."
"콩이 몸에 좋지."
"이걸 우리 군에 납품을 해야 미군에도 납품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으잉? 미군 납품까지 노리고 있었어?"
"네. 상비군이 140만 명에, 예비군이 85만 명인 데다가, 돈도 가장 많은 군대죠. 뚫기만 하면 잘 팔릴 겁니다."
"근데 그거 미군에 백날 팔아봤자 미국 수영레스토랑 1개 주 수익도안 나올 거 같은데."
"군납은 브랜드의 자존심입니다. 원래 잘나가는 기업들은 전부 군납을 합니다. 제 수영농장도 이제 군납을 해야 해요."
"그럼 나중에 황비버섯 군납도 다시 추진을 할 건가?"
"그건 가격 떨어지면요. 지금은 때가 아니죠. 부패 군인들이 옳다구나 하고 해처먹을 겁니다."
"신두는 괜찮고?"
"이게 아무리 영양분이 풍부하고 맛이 괜찮아도 결국은 한입에 넣는 비상식량이죠. 이런 건 시장에서 인기 없어요."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맛있는 것을 추구한다.
한입에 털어놓고 배가 부른 음식은, 밥 먹을 시간이나 비용조차도 아까운 사람들 외에는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신두는 기호사치품에 가까운 황비버섯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싼, 기본품목이다.
비싸면 애초에 전투식량 자격 탈락이니.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마스터, 왔습니다!
문자 내용을 먼저 확인한 프리덤이 다급히 말했고, 하수영은 얼른 문자를 확인했다.
[존경하는 하수영 의원님께,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오형준 대장 인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번 예비군 훈련에서 하수영 의원님께서 놓고 가신 컨테이너 안에서 달러지폐가 든 금색 박스가 발견이 되어…….
……중략…
하여, 제가 직접 뵙고 전달을 드리고 싶습니다.]
"뭐야? 신두 이야기는 왜 눈곱만큼도 없어?"
"하 의원, 아직 시식도 안 하고 고이 모셔둔 게 아닐까?"
"아니, 한 번 시식해 보고 좋으면 주문 좀 넣어주라고, 제가 신경 써서 그 먼 최전방까지 트레일러 끌고 갔잖아요. 우리나라 최전방 부대 군기가 왜 이렇게 빠진 거죠?"
"정 뭐하면 내가 우연히 얻은 정보인 척하고 흘려줄 수도 있네. 찾아보면 내 주변 어딘가에 별 두세 개 단 애들이 있을 거네."
"그런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입장에서는 좀…… 응? 문자 또 왔네?"
오형준 참모총장으로부터 온 추가 문자였다.
[조심스럽게 추가 말씀드립니다.
번거로움 때문에 놓고 가신 비상식량이 군 전투식량으로 매우 효율이 좋을 것으로 사료되는 바…….
……중략……
그에 관한 심도 깊은 질의를 해도 될지 감히 조심스럽게 여쭤봅니다.
평안하십시오.]
"아싸! 됐다! 나도 이제 군납농장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