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29화
157장 언더커버 군납(1)
"오늘 이 날이, 기어이 오고 말았군."
눈을 뜬 하수영은 어느 때보다도 결연한 표정으로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하고, 속옷을 새로 꺼내어 입었다.
"프리덤."
-예, 마스터.
"생존 컨테이너 물자 상태는 어떻지?"
-늘 그렇듯이 완벽합니다.
"좋아, 그럼 트랙터에 연결해라."
-예, 마스터.
"시간에 맞춰서 집 앞에 주차해 놔."
-알겠습니다.
하수영은 옷장 가장 깊숙한 곳에 봉인된 옷을 꺼냈다.
일 년에 단 몇 번만 입을 수 있는, 봉인된 금지의 옷.
바로 군복이다.
디지털 위장무늬가 그려진 군복을 입고, 전투화를 신었다.
마지막으로 베레모를 쓰고 거울을 바라보자, 완벽한 병사로 돌아간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마스터, 그 12개의 별은 무슨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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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개구리마크(예비군 마크)가 붙어 있어야 할 베레모 정면에는 상하로 별 6개씩, 총 12개의 별이 붙어 있었다.
"프리덤, 군대에는 이런 말이 있지. 한 번 포스타는 영원한 포스타다."
-어느 나라 군대는 그렇지요. 앗, 그럼 설마 그 열두 개의 별의 의미는?
"그래. 한 번 트웰브스타는 영원한 트웰브스타지. 차원과 시간축, 공간을 넘어서 말이야."
-마스터의 전생 중 최고의 계급이 바로 트웰브 스타였군요. 계급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별 1개는 준장, 2개는 소장, 3개는 중장, 4개는 대장.(한국군 기준) 아마 언어는 다르겠지만, 12개의 별은 뭐라고 불릴까?
"지구어로 표현하면 은장? 그 정도쯤 되겠군."
-그럼 동장과 금장도 있습니까?
"야이! 그런 뜻이 아니야! 어디서 금동은을 갖다 비벼!"
하수영은 벌컥 화를 내며 설명했다.
"초은하단 12개를 최초로 정복한 군주가 되었을 때 기념으로 만든 계급이다."
-아아, 12개의 별은 정복한 초은하단 12개를 뜻하는 거였군요.
"그래서 별 11개, 별 10개 계급은 없지. 오로지 군주만이 쓸 수 있는 계급이었으니까."
-근데 초은하단 12개를 정복한 상태면 추가로 얼마든지 더 정복할 수 있었을 텐데요.
"그리고 바로 전역했거든. 나중에 대규모 구조 넘어서서 다른 우주 진출까지 준비했는데, 그때 내가 죽어서 그 뒤는 모르겠네."
-아아, 그렇군요.
"로한한테 나중에 물어봐라. 그놈이 여기까지 찾아온 거 보면 다른 우주 진출이 성공한 건 확실하니까."
-로한은 요즘 맨 오브 콜롬비아 찍느라고 바쁩니다.
"내 오른팔이 나도 없이 혼자 촬영씬이 있단 말이야?"
하수영은 만족스러운 듯 별 12개를 확인하고는 등을 돌렸다.
뜰로 나오니, 정원의 한옥에서 최우석 부의장이 마루에 앉아 한가롭게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하 의원, 예비군 훈련 가는가?"
"네, 부의장님."
"예비군 훈련 가는 구의원은 아마 자네밖에 없을 거야."
일단 구의원을 할 만한 이들은 나 이상 대부분 예비군 훈련을 오래전에 마쳤다.
"근데 모자에 계급장이 그게 뭔가? 아무리 예비군이라 해도 계급 사칭은 안 될 텐데."
"별 4개 이하로 달면 사칭이지만, 12개를 달면 그냥 멋이죠."
"아, 그렇군. 별 12개짜리 계급은 없으니."
"여기 가슴하고 어깨에 예비군 마크도 있어서 문제없습니다."
"잘 다녀오게."
"쉬십시오."
"쉬긴 무슨, 이제 곧 구의회에 출근해야지. 아, 맞군. 저번 석 달 전에 후원회 들어온 장씨 사장 친구들 다섯, 탈퇴하기로 했네."
최우석은 강남구 부의장이자, 하수영 후원회장이기도 했다.
"가치관이 안 맞는 분들은 빨리빨리 갈라서는 게 좋지요."
"전혀 동요가 없구먼."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영영 갈라서기도 하고, 그런 줄 알았다가 또 얽혀서 지지고 볶고, 그러는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말하는 거만 보면 자네가 나보다 더 오래 산 거 같아. 허허."
하수영은 저택 정문을 나섰다.
정문 앞의 길은 주택가 골목길이라고 하기에는 폭이 매우 넓었다.
거의 왕복 4차선 도로 수준이다.
물론 저 중에서 진짜 지자체 소유도로는 절반 정도.
나머지 절반은 도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유지다.
맞은편에 있는 상가 빌딩의 주인들이 지상주차장으로 쓰기 위해서 도로처럼 만들어둔 것.
"아, 의원님, 출근하십… 어? 혹시 예비군 훈련 가십니까?"
1층 카페 주인이 하수영한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다가 복장을 보고 놀라워했다.
"네, 예비군 훈련 갑니다."
"허어, 그런데 이렇게 일찍 가시나요? 아직 아침 6시밖에 안 됐는데요."
"훈련장이 좀 멀어서요. 전방이거든요."
"아니, 병무청 놈들은 일 처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랍니까? 당연히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훈련장을 배치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일부러 최전방에서 훈련받고 싶다고 따로 신청을 했습니다. 일을 잘한 거지요."
"아, 그렇군요. 역시 하수영 의원님 이십니다. 의원들 병역 보면 말도 안 되는 사유로 면제받고 그러는데, 하 의원님은 달라요."
그때 신형 볼보트럭(트레일러 트랙터)이 천천히 진입해 들어왔다.
카페 주인은 볼보트럭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설마 하수영 의원님 차입니까?"
"네, 이거 타고 훈련받으러 가려고요."
카페 주인은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다시 볼보트럭을 보았다.
청담동, 아니, 강남구에서는 한평생 보기 힘든 특수트럭의 번쩍거리는 웅장함이, 그의 시선을 놓아주지를 않았다.
"컨테이너는 왜 주렁주렁 달고 가시는 겁니까? 뭐에 쓰시려고요?"
"안에 생존물자가 들어 있거든요."
"……예?"
"기왕 전시대비 훈련받는 거, 저의 완벽한 전투태세능력을 보여줘야 우수 예비군 점수 받고 조기퇴소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카페 주인은 얼이 빠진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냥 애초에 전방에서 훈련받는다고 신청을 안 하셨으면 됐을 거 같은데……."
***
전방 XX사단.
이른 아침부터 승용차들이 부지런하게 위병소를 드나들고 있었다.
연병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 예비군들의 얼굴에는 험악한 표정이 가득했다.
"젠장, 내가 살아생전 다시는 이 부대를 찾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 X발. 올해부터 복무했던 부대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으라니. 대체 어떤 군알못 미필 정치인 새끼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낸 거야?"
"전 집이 제주도라 어제 비행기 타고 부랴부랴 올라왔습니다."
"엿 같네. 진짜 총 한 번 안 잡아 본 면제미필 새끼들은 병무청 쪽은 얼씬도 못 하게 해야 한다니까."
올해 갑작스럽게 바뀐 예비군 훈련방침에 그들은 불만이 태산 같았다.
복무했던 부대가 하필이면 최전방이었으니.
그때였다.
빵! 빵!
엄청난 출력의 경적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방향은 위병소 쪽이었다.
담배를 물고 불만을 터뜨리던 예비군들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뭐야, 뭐야?"
"경적 소리가 뭐 저렇게 커? 탱크라도 들어온 거야?"
"설마 사단장이라도 온 건가?"
"아씨. 사단장 오면 훈련 또 개빡쎄게 굴리겠네."
투스타라고 해봐야 예비군 입장에서는 동네 아저씨보다 못한 존재.
하지만 훈련 일정이 빡빡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간에 그들은 오늘 하루만큼은 교관들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
퇴소 조치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
'다음에 이 먼 길을 또 오라고?'
'절대 그럴 순 없지.
'최대한 사려야겠다.'
그렇게 저마다 생각하고 있는데, 경적의 주인공이 우렁찬 엔진음을 내며 위병소를 통과해 연병장으로 들어왔다.
예비군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저게 뭐야?"
"트레일러가 왜 여기로 와? 설마 예비군이 타고 온 차인가?"
"아니, 누가 저런 트레일러를 타고 예비군 훈련을 온단 말이야?"
중소형 트럭을 타고 오는 예비군들은 가끔 있다.
하지만 덤프트럭을 타고 오는 예비군은 없다.
하물며 저런 초대형 트럭트레일러라니.
볼보트럭은 운전석 뒤에 큼지막한 컨테이너를 싣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컨테이너 트레일러 2칸을 추가로 매달고 있었다.
즉 총 3칸의 컨테이너를 뒤에 싣거나 매달고 있었던 것이다.
하수영은 입장부터 하차하는 순간까지 전 부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뭐야, 저 예비군, 모자 계급장이 왜 저래?"
"개구리 대신에 별 12개를 잔뜩 달아놨는데? 특이하네?"
"예비군이라고 해도 계급 사칭은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별 12개가 무슨 계급이야. 그냥 모자에 장식해 놓은 거지."
"저거 근데 품위위반으로 입소거절될 수도 있을 텐데."
하수영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TV에서 늘 얼굴을 보는 유명인이 아닌 이상, 직접 만나본 적도 없으면 이런 상황에서 알아보는 게 어려운 법.
이윽고 입소 절차가 시작되었다.
"에…… 하수영 예비군님?"
다이아 1개가 달린 소위가 버벅거리면서 하수영의 모자를 살폈다.
이 부대는 올해 예비군 훈련이 처음이라서 버벅거리는 모양이다.
"그, 모자 계급장을 그런 식으로 다시면 입소가 어려울 수……."
"아, 모자 장식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맙시다. 정식 군모 제대로 썼잖아요. 여기 가슴하고 어깨에 예비군 마크도 제대로 있고."
"하, 하지만……."
"모자에 개구리 마크 안 달았다고 입소 안 된다는 규정 있어요? 계급장 아예 없는 군복 입고 훈련받는 예비군들도 있는데."
"드, 들어오십시오."
그렇게 하수영은 입소 절차를 간단히 통과했고, 총기를 지급받았다.
훈련은 빡쎈 편이었다.
아무래도 복무부대 예비군 훈련 정책을 처음 시행하다 보니, 위에서 단단히 기합을 넣은 모양이었다.
예비군들한테는 그게 고역이었지만,오전 쉬는 시간에 예비군들은 땀에 절은 채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 짓을 이틀이나 해야 하다니……."
"두 번 오라 가라 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죠. 올해 훈련은 이거 한 번으로 다 묶어서 퉁 친다고 하니."
"이 부대를 일 년에 두세 번 당일치기로 오라고 하면 병무청에 불 질러야죠."
"근데 오늘 국방부 높으신 분들이 참관한다고 하더니, 코빼기도 안 보이네?"
"그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뺑뺑이 치고 있는데, 역시 높으신 분들이 그럴 리가 없지. 뭐 하러 피곤하게 이런 최전방까지 외근 오겠어요?"
"그냥 우리 같은 일반 평민 예비군들만 힘든 거지."
"아니, 왜 훈련을 이딴 식으로 한 거야?"
하수영은 그런 투덜거림을 들으며 안됐다는 생각을 품었다.
자신이야 심심해서 최전방으로 지원해 온 거라지만, 이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 아닌가.
'제주도에서 여기까지 오게 하다니…… 하여튼 군대는 어느 나라, 어느 문명이든 간에 다 똑같아. 바뀌는 게 없어.'
"조교야, 장군님들 안 오는 거 같은데 그냥 좀 훈련 널널하게 하자?"
"그럴 수 없습니다. 언제 어느 때 든 최선의 전투태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본 훈련은 그것을 가다듬기 위한 절차입니다."
"아니, 너 빠릿빠릿한 거 아는데 우리는 지금 새벽 기차 타고 여기까지 끌려온 거라고."
투덜거림과 불만 속에서, 어느덧 점심시간을 맞이했다.
군대 밥을 다시 먹지 않겠다고 투덜거리던 이들이지만, PX가 산 아래 있다는 말에 다들 군말 없이 병사식당으로 향했다.
"내가 전역하고 나면 그래도 PX를 막사 옆으로 올려줄 줄 알았는데, 여전하네."
"변한 게 없다, 변한 게."
하수영도 줄을 서서 식판을 받고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그의 식판에는 다른 이들과 달리 밥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거의 10인분은 되어 보이는 밥이다.
수저를 막 들려고 하는데, 옆에 누가 식판을 내려놓으며 앉았다.
"우리 예비군 전우님은 식성이 아주 왕성하군요. 그래요, 전투력 유지를 위해서는 많이 먹어야지요. 허허, 현역 장병들도 이런 모습을 본받으면……."
"참모총장님?"
"으, 으어억! 의, 의원님! 아니, 의원님이 왜 여기에!"
육군 참모총장 오준형 대장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식판을 엎을 뻔했다.
"왜긴요. 예비군 훈련 받으러 왔지요. 근데 총장님 모자에 웬 개구리 마크가…… 아아, 지금 '예비군 교관'인 척하고 훈련 잘하나 점검하는 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