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25화
155장 누가 내 앞에 치즈를 놓았을까? (6)
법적계약 절차는 박호진 변호사를 통해서 진행했다.
박호진은 중국 사정에 해박한 변호사 지인을 수소문해서 하수영 앞에 대령했다.
하수영은 그의 도움을 받아 꼼꼼하게 계약서 내용을 검토했다.
"계약서 내용은 거의 문제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문제는 있다는 거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개인 사업가가 중국에 투자해서 최종적으로 이익을 보고 나온 경우는 열에 둘정도밖에 못 봤습니다. 넷은 현지 파트너한테 모두 다 빼앗기고 파산했죠."
"나머지 넷은요?"
"아직 회사가 중국에 묶여 있습니다. 철수하고 싶어도 현재 회수가 안 되는 상태입니다."
"걱정이 되시나 보네요."
"그래도 의원님은 대기업 수준의 개인사업자이시니 크게 걱정은 안됩니다만……."
"류이엔 회장이 알아주는 식품유통재벌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하수영은 중국 담당 변호사 엄석하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밝히지 않았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엄석하는 류이엔 회장과 함께 법적 절차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중국으로 떠났다.
앞으로 엄석하는 중국 내에서 하수영의 대리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경영은 류이엔이 맡아서 할 테니, 엄석하는 법률회계 부분을 감시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 농장 세팅은 어렵지 않게 끝났다.
무인로봇 농경 시스템을 사용할 게 아니라, 콘크리트 벽을 세울 필요가 없다.
그저 버섯을 경작할 넓은 땅과 일을 할 인부만 있으면 된다.
류이엔이 미리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았기에, 법인설립 허가가 나오기도 전에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법인 허가도 대단히 빠르게 나왔다.
현지 출장 중인 엄석하 변호사가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이 감탄을 전해왔다.
-류이엔 회장님의 인맥이 대단합니다. 뭐든지 그분의 이름만 대면 척척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 행정부의 일 처리가 이렇게 빠른 걸 저는 처음 봅니다.
"그 정도인가요?"
-네, 이 정도 꽌시를 지닌 분이라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웬만한 비바람은 끄떡도 없이 튕겨낼 테니까요.
꽌시.
중국 고유의 문화로, 간단히 비유하자면 '인맥 능력'이라고 빗댈 수 있다.(간단히 빗댄 것일 뿐, 실제로는 더 복잡한 의미를 지녔다) 류이엔이 유감없이 인맥을 발휘하자 모든 일정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농장과 일을 할 농부, 유통판매 루트까지 모든 세팅이 끝나자, 이제 하수영이 나설 차례였다.
"잘 다녀오세요, 주 사장님."
"네. 실수 없이 잘 하고 오겠습니다."
프라임유통 주성철 사장은 중국 출장에 앞서 단단한 각오를 내비쳤다.
엄석하가 사무대리인이라면, 주성철은 농장 대리인이다.
물론 그는 황비버섯 재배비법 따위는 모른다.
"매뉴얼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그럼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엄석하 변호사님에게 말씀하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중국에서 잘못되신다면 사장님 가족에게 100억 원의 일시불 보상금과 사모님 평생 동안 매달 500만 원을 지급하겠습니다."
"네? 그 정도로 위험한 일입니까, 이게?"
주성철이 당황해서 놀랐고, 하수영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게 아니라 저 때문에 외국으로 출장 가시는 거잖아요. 보험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망 위험 때문에 사망보험 드는 거 아니잖아요. 만약 죽으면 남겨질 가족들 생각해서 드는거죠."
"아, 그런 의미셨습니까. 전 또 뭐라고."
"네, 마음 편히 다녀오시라는 의미에서 약속드리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정말 100억 원이나 주시는 건가요? 어떻게 그런 큰돈을……."
"수영농장 연 수입이 조 단위인데 그 정도야 별거 아니죠."
주성철은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우리 회장님이 언제 이렇게 커지셨지.'
생각해 보면 겨우 2년 전이다.
하수영이 황비버섯 샘플 박스 들고, 터덜터덜 찾아와서 전성렬한테 사업을 제안했던 것이.
당시 (주)성렬유통의 고참 직원이었던 주성철은 하수영을 곁눈질만 하고 넘어갔었고, 그리고 2년 만에, 이제 자신은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할 고용주가 되었다.(성렬유통은 하수영에게 넘어와 프라임유통이 되었다)
"그럼 중국에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중국에 도착한 주성철은 공항에서부터 마중 나온 엄석하를 볼 수 있었다.
"곧바로 농장으로 가실까요?"
"예, 농장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주성철은 농부는 아니지만, 농산물유통업에만 수십 년 몸을 담았다.
현지 농장 관리만큼은 하수영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농장을 방문한 주성철은 과연 끝도 없이 펼쳐진 비옥한 대지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중국은 황폐한 산 투성이인 줄만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군요."
"내륙이야 그렇지, 남쪽 지방은 원래 옛날부터 유명한 곡창지대였습니다. 14억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식량을 수출하는 것은 보통 곡창지대로는 어림도 없죠."
동행한 류이엔 회장도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주성철을 위해서 농장 고용인사열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인부들을 고용하셨단 말입니까?"
"단순 잡부도 있고, 전문자격을 갖춘 농사꾼들도 있습니다. 농사장비역시 필요한 것은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일단 궤도형 대형 트랙터와 파종기가 많이, 엄청 많이 필요합니다."
"그 정도야 이미 갖춰놓았습니다. 농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니까요."
"그 다음으로는……."
주성철은 매뉴얼대로 열심히 설명했고, 류이엔은 매우 신중한 표정으로 통역을 귀담아들었다.
"종자로 쓸 황비버섯도 대량으로 필요하겠지요?"
"아, 혹시 이미 구하셨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종자로 뿌려야 하니 아무래도 수영농장이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다행입니다. 종자용 버섯을 따로 구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황비버섯은 씨앗이 없기에, 버섯갓 부위를 잘라서 아주 잘게 잘라 가루로 만들어 뿌리는 방식으로 번식시킨다.
"포자로 쓸 버섯은 한국에서 충분히 가져왔습니다."
"음, 그렇군요. 한국에서 충분히 가져오셨군요."
***
류이엔은 뒷짐을 진 채, 측근들과 함께 대농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수의 파종기가 담당구역을 돌아다니면서 가루가 된 버섯 포자를 뿌려댄다.
한참이나 바라보던 류이엔이 물었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저런 식으로 파종하는 것은 처음 보는데."
"네, 저도 기겁했습니다. 그냥 무식하게 갓을 따서 가루로 갈아서 뿌린다니, 저래서야 과연 버섯머리가 몇 개나 올라오겠습니까?"
황비버섯 포자는 눈에 보일 듯 말듯한 미세한 알갱이로, 하나하나가 새로운 버섯으로 자라날 종자나 다름없다.
황비버섯을 인위적으로 재배하기 위해서는 포자를 대량으로 뭉쳐서 조심스레 심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버섯이 제대로 자라날가능성은 얼마 되지 않는다.
들인 품에 비해 수율이 매우 낮기에, 황비버섯가격이 그렇게 비싼 것이다.
그런데 수영농장에서는 포자를 마구 갈아서 그냥 뿌려대고 있다.
"우리가 저런 식으로 파종하면 많아 봐야 버섯 백 개 정도나 겨우 자라겠군."
"반대로 말하면, 저런 식으로 파종을 해서 대부분 버섯이 자라나기에 재배단가를 그렇게 낮출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방법이 특별한 건 아닐 테고, 버섯 종자 자체가 특별한 것인가……."
이쪽에서 파종할 버섯을 구하겠다고 했지만, 주성철은 단칼에 잘랐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수영농장산 버섯으로만 포자를 뿌렸다.
"그리고 저게 전부가 아니었지."
"네, 그 황금색 비료가 수상합니다."
"정말 사금처럼 깔끔하고 선명한 황금색이었어. 금 알갱이라고 해도 믿었을 거야, 아마."
주성철이 가져온 또 하나는 황금색 비료, 그는 다른 비료는 일체 거부하며, 오로지 이 비료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섯 포자와 비료…… 둘 중 어느게 비법의 키를 쥐고 있는 거 같은가?"
"둘 다가 아닐까요?"
"둘 다라."
"저 둘이 합쳐져서 대량의 황비버섯 재배 비법으로 만들어지는 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포자야 버섯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으니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비료성분이 관건이겠군."
"분자식을 알아내더라도 아마 합성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 자신감이 있으니 기꺼이 해외로 내보낸 게 아니겠습니까?"
"특허도 당연히 문제없겠지?"
"그렇겠지요. 그렇게 큰 농업기업에서 일 처리를 허술히 하지는 않을 겁니다."
류이엔은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당부했다.
"그래도 외부에서 비료를 빼돌리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하게. 인부들이 따로 챙기지 못하게끔 상호감시가 항상 이뤄지도록 하고."
"네, 알겠습니다."
류이엔은 다시금 대농장을 지그시 주시했다.
열심히 일하는 인부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뿌듯함이 묻어나왔다.
'킬로당 120위안(약 2만 원)…….'
그 정도 가격이면 중국의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황비버섯의 강점은 맛이 아니다.
맛 자체는 송이버섯이나 소고기 등등 훨씬 더 뛰어난 식재료가 넘쳐난다.
가장 무서운 점은 국물요리의 풍미를 한층 돋워준다는 것.
황비버섯을 재배하는 자, 모든 국물요리를 지배하게 되리라.
'나, 류이엔은 이제 곧 중국 요리 계의 패왕이 될 것이다.'
"노리는 이들이 앞으로 많아질 걸세. 한시도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네."
"예, 회장님."
"성주와 행정관리들 접대 관리에도 돈과 노력을 아끼지 말고, 중앙정부에도 항상 눈을 떼지 말고, 언제나 긴장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네."
"어느 누가 감히 류이에 회장님의 것에 눈독을 들이겠습니까."
류이엔 역시 중국의 거물 중 하나.
남부럽지 않은 두터운 관시를 갖고 있다.
류이엔을 건드리는 자는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의 분노를 받아낼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거물이기에, 황비버섯농장 중 국 도입이라는 리스크를 기꺼이 감당한 것이다.
"중요한 건 힘이나 계략으로 나를 무너뜨리려는 이들이 아닐세."
"그럼……?"
"나와 수영농장, 둘 사이를 이간질하고 나 대신 이 판에 끼어들려는 자들이 끊임없이 나올 거야. 진정 경계해야 하는 이들은 바로 그런 자들이지."
"항상 잊지 않고 주의하겠습니다."
"우리는 금덩이를 주운 장님이야. 이제 끝없는 어둠 속을 영원히 달려야 해. 언제 어느 때 누군가의 손이 우리가 얻은 금덩이를 뺏으려고 들지 모르는 일이야."
한중 무역분쟁으로 황비버섯라면 수입이 막혔고, 동남아 우회 수입 역시 막히고.
그럼에도 류이엔은 포기하지 않았다.
중국 직접 진출에 관심 없는 수영농장을 필사적으로 설득해서 지금의 성과를 이뤄냈다.
"알겠지만 수영농장은 나를 믿지 않고 있어."
"회장님의 진심을 알아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농장수익을 한국에서 직접 정산받는 것.
황비버섯 재배에 이중삼중으로 안전장치를 걸어놓은 것.
그 모두가 불신에서 나온 방호벽이 리라.
"내 인품을 의심하기보다는, 내 능력을 믿지 않는 것이네."
중국의 농장을 과연 외부로부터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가?
농장사업 수익을 과연 뺏기지 않고 잘 회수할 수 있는가?
수영농장이 보인 불신은 바로 그것에 기인한 것이리라.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거래 자체를 하지 않았을 테니.
"삼고초려보다 힘들게 얻은 씨앗일세. 오랫동안 소중히 가꿔가야 하네."
"네, 회장님,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자쉬안 시장한테 연락하게. 며칠 안으로 크게 대접하겠다고."
"그분이 이번 농업법인 설립에 가장 힘을 크게 써주셨으니, 기대하시는 게 많을 겁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를 생각은 어리석은 이들이나 하는 법.
류이엔의 야망은 크고, 또한 영리했다.
영리한 이는 누군가가 거위를 훔쳐 가거나, 거위가 다른 집으로 날아가건, 혹은 입맛이 떨어져서 알 생산력이 떨어지는 것을 염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