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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624화 (624/1,270)

프랜차이즈 갓 624화

155장 누가 내 앞에 치즈를 놓았을까? (5)

이장은 일부러 수영리 마을회관간판의 불을 꺼두었다.

하수영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간판이 꺼져 있으면 마을회관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가 없었으니까.

이게 외관만 보면 초특급 호텔이지, 어딜 봐서 마을회관이겠는가.

그런데 하수영의 반응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오, 마을회관 깔끔하게 잘 지었네요. 역시 교수님 취향은 계측기준점이라니까."

"으응? 하 회장님, 이게 마을회관인 걸 어찌 아셨는가?"

"딱 보면 알잖아요. 건물이 골조부터 외장 마감재까지 한 입으로 외치고 있네요. 나 마을회관 건물이에요, 하고 말이죠."

"……."

"제 본업이 농업, 임대사업, 요식업입니다. 작물과 부동산과 음식은 딱 보기만 해도 알아요."

이장은 대번에 말문이 막혔다.

회관 입구에는 면장 일행이 미리 나와 있다가 반갑게 하수영을 맞이 했다.

"아이쿠, 회장님. 다시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혹시 급하게 서울 올라 가시면 어쩌나 하고 내심 초조했습니다."

"뭐, 이왕 내려온 거 주민들 얼굴도 한 번씩 보고 가면 좋지요. 그래도 제 아버지 고향이잖아요."

"하 회장 자네 고향이기도 하잖은가."

"뭐, 그렇습니다."

이장의 급한 말보탬에 하수영은 그러려니 하고 끄덕였다.

좋은 게 좋은 거다.

회관에 들어서니 로비에는 벌써 잔칫상을 벌여놓은 상태였다.

특급호텔 로비 같은 공간에 돗자리와 신문지를 깔았다.

그 위에 낡고 낮은 나무식탁을 다 닥다닥 붙여놓은 모습이, 의외로 자연스럽다.

시골 잔칫상과 특급호텔.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것들이지만, 의외로 묘한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수십 명의 촌부들.

여기서 손주 없는 주민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런 이들이 주름진 얼굴에 반가운 기색을 가득 띤 채 하수영을 바라봤다.

"아이구, 버드나무집 총각 왔네그려."

"하원석 사장이 자식 농사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지었다니까."

"사과 농사는 그렇게 잘 못 짓는 친구가 자식 농사는 정말 대성이여, 대성."

수영리 주민들에게 안살린은 마을을 떠받치는 터주신의 재림이었다.

조그만 깡촌 마을은 안살린 덕분에 상상할 수 없는 활기를 띠었고, 덕분에 도시에 나간 자녀들은 이전보다 더욱 자주 드나들었다.

심지어 안살린 연구소를 상대로 장사를 하겠다며, 아예 고향집으로 다시 돌아와 눌러앉은 장성한 자식도 있었으니.

그리고 하수영은 그런 안살린을 마을에 눌러 앉힌 영웅이었다.

게다가 서울에서 크게 성공했으며, 전국의 농민들 중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지 않은가.

수영리 주민들도 대부분 농사로 먹고사는 데다가, 하수영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많이 받아왔던 것이다.

"수영아. 나 대밭집 아저씨다. 나 기억하냐?"

"아, 기억나요. 근데 저 본가 떠난지 아직 2년도 안 지났어요. 그리고 간간이 들렀는데."

"서울에서 2년은 시골에서 20년이라며? 혹시나 나 까먹었을까 봐 걱정했다."

"네가 매년 보내주는 비료하고 기름 잘 쓰고 있다."

"저번에 빌려준 경운기 고맙다. 정말 잘 쓰고 있어."

"철채가 혹시 면장이랍시고 거들먹거리지 않던? 언제든 말만 혀. 우리가 혼내줄 테니까."

잔칫상에는 아직 피부가 뽀얀 편인 2, 30대 젊은이들도 있었다.

한쪽 구석에 밀려 앉은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섞여서 앉아 있었다.

남녀 비율은 9:1로, 남자가 훨씬 많았다.

"혹시 이분들은 귀농민들인가요?"

"응, 맞아. 인사혀. 이봐 김씨 총각, 여기 이분이 바로 우리 수영리가 낳은 불세출의 재벌 농민 하수영회장님이여. 자네가 대표로 인사하."

김씨라 불린 30대 청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씩씩하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저는 김운재라고 합니다. 작년에 귀농해서 수영리에 자리를 잡고 정착했습니다."

"반가워요. 하수영이에요. 귀농 생활을 하면서 혹시 불편한 건 없었나요?"

"전혀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지원금도 받았고 마을 어르신들도 자식처럼 맞아주셨습니다! 안살린 연구소에서도 크게 지원을 해준 덕분에 일 년 만에 금방 자리를 잡았습니다."

"안살린 연구소에서 지원을요?"

하수영이 의아해하자 이장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우리가 키운 작물, 안살린 연구소에서 몽땅 사주거든."

"네! 좋은 가격으로 일괄적으로 수매해 주십니다. 덕분에 작년 수해에도 아무런 걱정 없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전국 농사 쫄딱 망했잖어. 그래서 상추, 정구지 같은 밭작물이나 겨우 조금 건졌는데, 그걸 진짜 후하게 사주셨거든."

"네! 상추를 진짜 금 가격으로 사주셨습니다!"

다른 청년이 얼른 끼어 들었다.

"운재야, 그렇게 말하면 정확한 설명이 아니지. 그냥 일괄적으로 일년 치 이윤 5,000만 원 떨어지게 가격 쳐서 매입해 주셨습니다!"

"그랬어요?"

"네, 정 팔 게 없으면 지금부터 수박이라도 키워서 가져오면 된다고 돈부터 쥐여주셨습니다!"

"귀농하자마자 수해 터져서 눈앞이 캄캄했는데, 농사대출 원금이자 어떻게 해야 하나 절망적이었는데, 왕자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음, 일단 앉죠. 그리고 술부터 깝시다. 아, 갑자기 술이 확 땅기네요."

"어여 앉아, 어여."

회관에 모인 이는 토착주민 80여 명과 귀농주민 30여 명이 전부였다.

수영리에 주민등록을 한 주민들만 자리에 부른 것이다.

"저기, 윤정원이다?"

"저놈 저거, 회장님보다 늦고 말이야."

"구회관으로 잘못 찾아갔다가 길잃은 거 아니야? 쟤, 신축 회관은 오늘이 처음일걸?"

"그러네. 표정이 딱 우리가 신축회관 처음 왔을 때 그 표정이야."

"정원아, 인마! 여기 회장님한테 인사드려야지!"

얼이 빠진 윤정원이 다가와서 하수영 앞에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리저리 둘러보는 게, 신회관의 위용에 적응이 안 되는 표정이었다.

"회장님 지원도 컸습니다. 농협에서 대출이자를 계속 면제해 줬거든요."

"유예인 줄 알았는데 아예 납입 처리를 해주더라고요. 회장님이 쌀 판돈 예치한 것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으로 해주는 거라고 들어서, 정말 회장님께 감사했습니다."

"다들 대출이 있나 보군요."

"네, 귀농하려면 대출을 안 받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자가 낮고 지원금도 받아서 걱정 없었습니다."

"솔직히 지금은 도시에서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절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하루하루 집주인과 회사 사장을 위해서 일하는 노예 생활이라면서요."

"회장님께서 비료 같은 소모성 농사물품 지원을 많이 해주셔서 돈을 엄청 아꼈습니다."

술과 음식이 돌자 분위기가 더 밝아졌다.

하수영은 토착민과 귀농민의 입을 통해, 안살린이 구체적으로 수영리에 뭘 베풀었는지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교수님이 수영리 전체를 그냥 먹여살리다시피 했군요."

"너무 고맙지. 고맙고 감사하지. 진짜 매일 자기 전에 물 떠놓고 왕자님 건강만 빌고 있지."

"상수도 깔아줘, 가스관 깔아줘, 무선 인터넷 공짜로 깔아줘, 생산물좋은 가격에 전부 사 줘, 진짜 조선 시대 세종대왕님 밑에서 누리던 태평성대가 이랬을까 싶다."

"무선 인터넷 속도는 괜찮은가요?"

"네! 엄청 빠르고 범위도 넓습니다! 와이파이는 아닌 거 같은데, 진짜 1기가 유선 랜 부럽지 않은 속도입니다. 지연도 거의 없어요."

하수영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기 살점을 뜯으며 말했다.

"그거 원래 '스타링크'에 들어갈 뻔한 장비라서 그래요."

"네? 스타링크요?"

"헤슬라 전 지구적 위성인터넷 프로젝트요. 거기 들어갈 뻔한 인터넷장비인데 아쉽게도 탈락했죠. 수영리에 그거 설치했다고 들었습니다."

"왜 탈락한 거죠? 무선 인터넷 우리 엄청 만족하고 있는데요."

"비쌉니다."

"……아."

"교수님이 오지 연구기지에서 인터넷 통신 잘 되게 하려고 가성비 생각 않고 개발한 장비니까, 당연히 엄청 비싸죠."

"와, 왕자님이 지질학 말고 통신공학도 연구하셨던 건가요?"

"아니죠. 당연히 교수님이 거느린 회사 중 한 곳에서 만들었죠."

"아!"

이번엔 진정한 감탄의 '아' 였다.

수영리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들으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현재 수영리는 전국의 농촌에서 유일하게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귀농 희망자도 끊임없이 늘어나서, 지금은 세 자릿수에 달하는 희망자들이 심사대기 중이라고 했다.

문제는 땅이었다.

수영리의 농지는 이미 대부분 임자가 있었다.

귀농을 하려면 농지를 얻어야 하는 데, 농지를 얻지 못하니 희망자들이 애가 타고 있는 것이다.

"저는 수영리 출신으로서, 제 고향이 외부 유입을 배척하는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지역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걱정 마시게. 우리는 절대 그러지 않아."

"프리덤이 잘 중재해 줘서 오해 같은 것도 안 쌓입니다. 정말 프리덤개발자는 천재 같아요, 천재."

"제 이름이 수영입니다. 수영리 이름값을 떨어뜨려선 안 됩니다. 당장 농지 매물이 없어서 더는 귀농인 유입이 힘들더라도, 그 이유로 지역사회 문을 잠그지 않기를 바래요."

"걱정 마시게. 우리도 더 많은 주민들을 받아들이려고 고민하고 있어. 농지를 팔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냥 와서 살겠다는 사람들은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고 있어."

"음, 저도 수영리 발전을 위해서 한 번 방법을 고민해 보죠."

흥겨운 잔치는 새벽까지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

다음 날.

하수영은 캠핑카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번에 4시간 안 되게 알바하고 받은 시급 말이야. 수영리 발전에 쓸까? 아니면 전국 농촌 지원? 어차피 공돈이니까 좀 재미있게 썼으면 하는데."

-8조 원이면 수영리를 면이나 군으로 격상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직접적인 지원은 안 됩니다.

"그냥 주면 여기저기서 퍼먹어서 남는 게 없어. 원래 지원과 기부는 직접 지출내역 관리해야 돼. 감시만 한다고 다가 아니거든."

그때 프라임유통 주성철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장님, 지금 우리 회사 창고에 웬 비료가 도착했는데요?

"아, 중국에 가져갈 것들입니다. 컨테이너 빌려서 넣어두세요. 어차피 나중에 한 번에 컨테이너선에 실어야 합니다."

안살린이 보내준 차세대 비료, '구루마'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지금 보내준 것은 일단 시험 삼아 생산한 재고분이었다.

-알겠습니다. 근데 컨테이너 하나로는…….

"저도 지금 가는 중입니다. 도착해서 직접 이야기하지요."

-네, 알겠습니다.

하수영은 서울 외곽의 프라임유통본사 창고에 도착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줄줄이 대기 중인 대형 화물차 수십 대의 행렬을.

프라임유통 직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단 창고 안으로 비료 포대를 옮기는 중이었다.

하수영도 놀랐다.

"시제품이라서 양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무슨 시제품으로 우리나라 농가들이 일 년 내내 쓰고도 남겠네."

-양산 능력을 테스트한 거라 그렇습니다. 대량의 비료를 안정적으로 생산 가능한지 가늠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럼 앞으로 쭉 보내준다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계속 생산하는 거냐?"

-확인했습니다. 한국 화학공장단지 전역에 안살린 연구소 사무소가 입주했습니다. 생산량은 얼마가 됐든간에 문제가 없을 겁니다.

"조만간 화학 기업들이 수영리에 지사 내러 들어오겠군."

-이미 사무실이나 사옥을 지을 만한 땅을 알아보러 다니는 업체 관계 자들이 매일 보인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진짜 이러다가 나중에 수영리가 수영시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위장으로 쓸 구루마 비료가 대량생산 체제를 갖출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바로 덫잡이 사냥하러 갈…… 아니, 중국 진출하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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