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21화
155 장 누가 내 앞에 치즈를 놓았을까? (2)
류이엔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식품유통재벌이었다.
농장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중국전역에서 유통되는 식품의 20% 이상은 그의 손을 거친다고 보면 될 정도라고 한다.
상류층을 위한 값비싼 식재료를 취급하기도 하지만, 그는 주로 일반대중이 일상에서 섭취하는 식품유통을 다뤘다.
대화는 겉보기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중국에서 황비라면, 황비버섯이 얼마나 큰 인기를 끌고 있는지 아시면 아마 놀라실 겁니다."
"당장 설비 챙겨 들고 중국 달려가서 말뚝 박고 공장 세우고 싶을 정도겠죠?"
"하하, 아마도 그런 충동이 강하게 드실 겁니다. 만약 생각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을 주십시오."
류이엔은 아까 하수영에게 명함을 건넨 상태.
하수영도 미소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류이엔 사장님 덕분에 효원식품이 동남아에서 그렇게 많은 매출을 올렸군요. 어느 날 갑자기 매출이 팍 깎여서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유감스럽게 됐습니다. 당국에서 어떻게 알고 은근히 제재가 들어와서요."
"왠지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직접 수입이 막히고, 동남아 우회 수입도 막히고, 지금 중국 소비자들은 황비버섯라면과 황비버섯을 구경할 수도 없어서 난리가 났습니다."
중국에 황비버섯이 없는 게 아니다.
재배 비용이 비싸서 일반 서민들이 마음 편하게 사먹을 수 없는, 값비싼 식재료라서 그렇지.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든다.
"돈 많은 부자들이야 상관없지요. 황비버섯이 킬로당 600위안을 받든, 6,000위안을 받든 간에 그냥 사 먹으면 그만이니까요."
"한국에서 한창 비쌀 때도 킬로당 100만 원까지는 안 갔습니다. 킬로 당 10만 원 정도였죠."
국물요리에 절대 빠져선 안 될, 국물요리의 황제라 불리는 식재료, 이 값비싼 식재료가 한국에서 국민재료 취급을 받게 된 것은, 모두 프라임컴퍼니 덕분이다.
지금도 국내 황비라면 절반 이상은 국물요리에 넣을 황비버섯 확보를 위해서 팔린다.
청담수영마트에서 황비버섯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팔고 있긴 하지만.
매일 정해진 수량이 있다 보니, 청담동 혹은 근처, 아니면 멀리서 찾아와 새벽부터 줄을 선 사람들에게만 돌아간다.
"황비버섯을 해외에는 많이 수출하지만 국내에는 잘 풀지 않으시던데, 이유라도?"
"가격 문제 때문이죠. 황비라면의 매출 문제도 있고요. 하지만 해외에서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해외 수출 가격은 청담수영마트 판매가보다 월등히 높고, 킬로당 10만 원이던 예전 국내 가격보다는 훨씬 싸다.
그 뒤로도 황비버섯을 비롯하여 수영농장 작물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러나 류이엔은 좀처럼 자신이 원하는 바를 드러내지 않았다.
다양한 방법으로 돌아가면서 수영농장을 칭찬하고 부추겨 세우기만 했다.
"수영라면은 저도 애용하는 요리입니다.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반드시 매장을 찾곤 한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맛과 위생관리에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수영레스토랑도 중국에 진출하면 좋을 텐데요. 북경이나 상하이에 매장을 낸다면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가게를 운영해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겁니다."
"오, 그럴까요?"
"사실 라면 요리는 미국인보다는 중국인들의 입맛에 더 잘 맞죠. 인구수에서도 비교할 바가 못 됩니다.
지금 북미에서 월 매출이 80억 달러 정도 나오던가요?"
"그 정도 될 겁니다."
"중국에서 자리만 잡는다면 그 두세 배 이상은 거뜬할 거라고 감히 장담합니다."
"오, 돈은 많이 벌겠군요."
이런 식으로 레스토랑 진출의 장점을 은근슬쩍 어필했고,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 참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걸 아십니까?"
"그런가요? 처음 듣습니다."
"중국 내에서 일식당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죠. 어디에서도 스시 가게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답니다. 이미 중국인의 전체 참치 소비량은 일본을 넘어섰습니다."
"역시 중국의 덩치는 대단한 것 같네요."
"14억 인구수라는 시장에서 나오는 저력은 어느 나라도 감히 따라갈 수 없죠."
류이엔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사실 인당 소비량에서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을 뛰어넘는 부분이 별로 없다.
1인당 라면 섭취량은 한국이, 1인 당 생선 섭취량은 일본이 훨씬 높다.
하지만 14억 인구빨이 있다.
그래서 전체 시장으로 보면 한국과 일본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윤홍식 차관도 맞장구를 쳤다.
"역시 중국 시장은 거대합니다. 괜히 전 세계의 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진출하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니군요."
하수영은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2시간이 지났다.
'4조 원 벌었군. 짭짤하네. 근데 설마 위안화로 주려고 하진 않겠지?'
"아십니까? 중금속 제로의 무공해 수영참치는 중국 부호들 사이에서 인기입니다."
"그랬나요?"
"부자들은 얼마의 돈이 들든 간에 어떻게든 비행기로 공수해서 먹고 있죠. 냉동 상태로 운송하면 기한은 상관없으니까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거 다 가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
류이엔이 의아해서 바라보자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수영참치는 일본의 도우야 초밥에만 팔고 있습니다. 그 밖의 나라에는 수출하지 않아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유통업자들이 한국에 직접 들어와서 가져갑니다. 수출이 아니라 개인이 섭취할 거라고 하면 통관에 문제없으니까요."
"큼지막한 냉동 토막 살점 형태로 통관되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만……."
"국내에서 그런 형태로 팔지를 않거든요. 전부 매장 메뉴로만 팔고 있습니다. 한 점, 한 점 썬 형태로만 판다는 거죠."
"……."
"그런데 큼지막한 참치살 덩이로 들어간다면, 수영참치가 아닐 가능성이 높죠. 중금속 검사는 한 번 하고 드시는 게 좋을 겁니다.
류이엔의 안색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수영의 말을 듣고 뭔가 찜찜해진 게 생각난 모양이다.
'식품유통 회장이라면서 그런 건 또 몰랐나? 뭐, 말단 실무까지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닐 테니.'
류이엔은 밑바닥에서부터 맨손으로 모든 것을 쌓아 올린 게 아니라, 선대가 쌓아 올린 부를 물려받은 이였으니까.
"그리고 또……."
유통참치 진위성 의심도 잠시.
류이엔은 평정을 되찾고 다시금 대화를 능숙하게 이끌었다.
결국 요지는 이거였다.
우리 중국 시장은 무척 크다.
'수영식품그룹'이 진출하면 어마어 마한 돈을 벌 수 있을 거다.
한번 해볼 생각이 없느냐.
'황비라면 유통업자 이야기를 흘려 넘겼더니, 결국 보스가 애간장이 달아서 직접 찾아왔군. 아니, 정말 보스가 맞기는 한 건지 모르겠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영농장산 식품 중에서 완전히 막히지 않고 밀수 형태로 유통되는 것은 엘릭서 드링크 정도였다.
(참치는 가짜로 의심되므로)
하수영은 평온한 얼굴로 맞장구만 칠 뿐이었다.
중국 시장의 거대함을 칭찬하긴 했지만, 빈말로도 진출한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했는지, 류이엔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와 손을 잡고 황비버섯농장을 중국에 세울 의향이 없으십니까?"
"음, 황비버섯농장이라고요?"
웃으며 지켜보던 윤홍식은 내심 속으로 놀랐다.
당연히 식품공장 진출을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황비버섯농장이라니.
"그 말씀은, 아예 중국에 밭을 일궈서 거기에서 황비버섯을 키워 팔자는 뜻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농장에서 나오는 황비버섯을 유통도 하고, 각종 식품도 제조해서 파는 겁니다. 중국판 황비버섯라면을 만들어서 유통하는 거지요."
"흐음."
"수영마트에서 킬로당 만 원 정도로 팔고 있다고 했던가요? 그 정도 가격이면 충분합니다. 14억 중국인 전부가 매일 세 끼마다 황비버섯을 찾을 겁니다. 중국의 모든 음식점,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파는 라면에서도 황비버섯을 찾을 테고요."
"하지만 황비버섯은 100% 무인화농법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로봇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은 노동력을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인건비는 매우 쌉니다."
윤홍식이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끼어들었다.
"류이엔 씨, 그런데 황비버섯 재배단가는 수영농장만의 비법 덕분에 낮춘 겁니다. 그 비법을 농장 밖으로 함부로 돌리는 것은……."
"농장 밖이라니, 중국에 농장을 지어도 그것은 오롯이 하수영 회장님의 것인데,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됩니까?"
류이엔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지그시 바라보자 윤홍식은 말문이 막혔다.
"하수영 회장님이 결심만 하신다면 제가 중국 내 파트너로서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초기 자본금도 제가 전부, 최소 200억 달러 이상 출자하겠습니다."
윤홍식은 입을 벌리고 말았다.
하수영 자산이 어찌 되었든 간에 200억 달러는 매우 큰 돈이다.
20조 원이니까.
"중국 내 사업이니 경영은 제가 하는 게 맞겠지만, 회장님 지분은 51%로 해드리겠습니다. 만약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갈아치우시면 됩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과반의 지분을 가질 수 있나요? 무조건 지분을 현지인에 유리하도록 분할해야 한다던데."
"아, 옛날 악법투자 시절 이야기를 말씀하시는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업종은 외국인 투자자도 얼마든지 지분 100%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음, 일단 좋습니다."
하수영이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하자 윤홍식의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니, 그러다가 황비버섯 재배비법이 중국에 흘러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자신이 사적인 인연으로 류이엔을 소개해주긴 했지만, 이런 전개는 상상도 못 했다.
류이엔은 기쁨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나타냈다.
너무 쉽게 승낙을 받아서 오히려 놀란 것일까.
"윤 차관님, 잠시만 비켜주시죠."
이제부터 둘만의 이야기 타임이라는 뜻이다.
윤홍식은 머뭇거리면서 자리를 비켜 주었고, 룸에는 둘만 남았다.
하수영의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중국의 투자시장이 예전보다 개방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수익의 국외 인출이 매우 까다롭다고 알고 있습니다."
"매달, 아니, 원하신다면 매주 단위로 영업이익을 실시간 정산해서 한국 계좌에 꽂히도록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류이엔은 흔쾌히 말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준비한 듯,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재배 비법을 공유하진 않습니다. 특허도 안 내고, 당연히 공개도 안합니다."
"물론 그래야지요. 저도 염치없는 요구를 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동업하라고 배운 적도 없습니다."
"오늘 제가 내드린 시간이 3시간이 넘었습니다."
"수영농장산 쌀 4천만 톤을 구매하지요. 대금은 먼저 치를 테니, 인도는 10년에 걸쳐 천천히 해주셔도 됩니다."
정말 시원시원한 반응이었다.
같이 동업하는 사람이 일할 맛이 날 정도로, 깔끔한 대답.
하수영은 실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류이엔도 호탕하게 웃으며 악수를 받았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
-마스터, 중국 땅에서 재배하게 되면 엘릭서 비료의 존재가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내가 설마 그걸 모르겠냐?"
-혹시 류이엔이 수작을 부린 겁니까? 그걸 미리 아시고 함정을 파신 겁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저 사람, 나도 오늘 처음 봤는데."
-…….
"근데 류이엔이 어떤 사람인지는 상관없어. 전혀 안 중요해. 황비버섯을 중국에서 재배하면, 누군가는 비법을 훔치려고 시도할 거라는 거지."
그게 류이엔인지 아니면 제삼자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누군가는 반드시 시도할 거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럼 어째서 승낙하신 겁니까?
"3시간 넘게 알바했잖아. 막판에 시급 안 준다고 할까 봐 그랬지. 봐, 이렇게 칼같이 시급 들어왔잖아?"
계좌에는 류이엔이 입금한 80억달러가 당당히 찍혀 있었다.
-정말 중국에 황비버섯농장을 지으실 겁니까? 평소 믿을 수 없다고 누누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류이엔은 그런 의도가 없어도, 결국 덫에 물린 치즈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넌 누가 앞에다가 치즈 덫을 놓으면, 그냥 어이구야 무서워하고 돌아가냐?"
-마스터?
"당연히 치즈 빼먹고 덫도 망가뜨려 놔야지. 그게 날 위해 덫을 준비한 상대의 정성에 보답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