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20화
155장 누가 내 앞에 치즈를 놓았을까? (1)
[조선소에 부는 훈훈한 온풍!]
[백두중공업, 22,000TEU급 메가 컨테이너선 100척 수주!]
[이제 조선소도 내수시장? 발주사는 국내 농업기업!]
[수영농장, 메가 컨테이너선 100척을 국내 조선소에 발주!]
[백두중공업, 정확한 가격은 밝힐수 없어. 매출 밀어내기식 수주는 절대 아니다.]
[척당 1,600억 원? 도합 16조 원짜리 선박 건조 계약?]
갑작스럽게 백두중공업 관련 기사가 떴다.
백두자동차 임원들은 아침부터 정신없이 전화를 돌리며 기사 내용을 확인했다.
언론사는 물론이고 정부 고위 공직자들한테까지 전화해서 기사의 진위를 확인했다.
"사실이랍니다. 김창운 차관이 계약 내용 직접 확인했답니다."
"컨테이너선 100척 수주라고?"
"네, 확실합니다."
모든 게 사실로 드러났고, 그제야 백두자동차 임원들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드디어 까칠한 백동원 사장의 히스테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자동차 운반선 발주가 아니었습니다."
"하긴, 만약 발주를 했다면 실비아컴퍼니에서 해야 맞지요. 하수영 농민회장은 농사와 식당, 임대업에만 치중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사장님도 마음 편히 놓으실 수 있게 됐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백동원은 한결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그래도 다들 방심하지는 말게. 컨테이너선도 마음만 먹으면 자동차 운송을 할 수 있으니."
물론 자동차운반선에 비하면 효율이 나쁘다.
헤슬라자동차를 국내에 대대적으로 풀어놓을 작정이라면, 자동차 운반선을 발주하는 게 맞다.
백동원의 노파심은 말 그대로 0.01%의 가능성을 대비한 것일 뿐이다.
"근데 100척이나 되는 컨테이너선을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해운업에 뛰어드려는 게 아닐까요?"
"그 레드 오션 시장에 갑자기 뛰어 든다고?"
"……."
사실 임원들도 하수영이 메가 컨테이너선 100척을 어디에 쓰려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혹시 해운업이 아니라 자사 상품을 직접 운송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예를 들면 곡물 같은 ……."
"그럼 벌크선을 발주해야지, 뭐 하러 컨테이너선을 발주한단 말인가?"
벌크선은 광석, 곡물 등 원자재를 포장 없이 신는 배를 말한다.
내부에 커다란 탱크가 여럿 있고, 그 안에 그냥 때려 붓는 식으로 싣는다.
그에 비해 컨테이너선은 완제품이 탑재된 다수의 컨테이너를 차곡차곡 정돈해서 싣는다.
곡물을 수송할 거면 당연히 벌크선을 발주하는 게 효율적이다.
"음…… 범용성을 위해 운송 효율을 희생한 걸 수도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김 상무?"
"곡물을 컨테이너에 담아 수송하면 운송 효과는 조금 떨어집니다. 대신 육류를 실은 냉동 컨테이너 같은 것을 실을 수도 있지요."
"아, 그렇군. 그 친구가 목장 사업도 하고 있었지, 참."
"하수영 농민회장 스타일을 보면 효율의 극대화에 크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1원의 마진율에 목숨을 거는 일반 기업과는 마인드 자체가 다릅니다."
정답이나 마찬가지인 추측이었다.
다른 임원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럼 효율을 포기하고 자동차 운반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겠군요."
"……."
"……."
자동차를 실은 컨테이너를 적재하면 되니까.
물론 자동차 운반선에 비해서 효율은 그만큼 바닥을 치겠지만.
"곡물과 냉동 컨테이너를 싣고 동남아를 거쳐 중국에 하역을 완료한 다음, 중국에서 헤슬라 자동차를 싣고 귀국할 거라면 효율이 아주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헤슬라자동차는 아시아 공장은 중국에서만 운영한다.
한국, 일본에 유통되는 자동차는 바로 중국에서 조립된 완제품이다.
당연히 편안했던 백동원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그때 다른 임원이 서둘러 끼어들었다.
"그 왕복 코스는 말이 안 됩니다."
"어째서?"
"헤슬라자동차는 완벽한 자율주행기능이 생명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에서만 서비스되고 있죠."
"그게 무슨 상관이지?"
"신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차량이 상시 프리덤 중앙서버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 외 다른 지역에서는 서비스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에는 그 부품이 빠져 있습니다."
"맞습니다. 기술유출을 우려한 헤슬라는 프리덤 자율주행모듈은 반드시 미국 공장에서 직접 탑재하고 검수까지 마칩니다."
"한국 소비자들은 프리덤 자율주행기능을 원합니다.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진 차를 거들떠볼 리가 없습니다."
"곡물, 냉동 컨테이너를 중국에 내려놓고 헤슬라 자동차 컨테이너를 한국으로 다시 가져온다는 것은 여러모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듣고 보니 충분히 논리적이었기에, 백동원은 비로소 표정을 풀 수 있었다.
"결국, 미국 공장 자동차를 가져와야 한다는 거군."
"네, 헤슬라가 프리덤 자율주행 기능을 넣은 이후, 한국 소비자들의 헤슬라 자동차 계약 건수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다들 미국 공장이 만들어낸, 완벽한 자율주행 전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프리덤 자율주행차는 지금 북미 수요를 맞추기에도 버겁습니다."
"중국 정부가 프리덤 자율주행차를 자국 공장에서도 생산한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헤슬라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실비아컴퍼니가 프리덤 자율주행차의 중국 생산을 거부하는 조건을 넣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기술 빼가기를 신경 쓰는 겁니다."
백동원이 듣기에 족족 맞는 말이었다.
헤슬라자동차는 북미에서 아직 시범적으로 판매 중이지만, 사용 중인 오너들은 대만족하고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 시민들은 몇 년이 걸려도 상관없다는 듯이, 돈부터 밀어놓고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젠장. 프리덤을 내가 꼭 가져왔어야 했는데.'
그 생각을 하자 백동원은 갑자기 배가 아파 왔다.
어쨌거나 하수영이 발주한 화물선이 자동차 운송용으로 쓰일 일은 없을 것 같다.
***
쌀 1천만 톤 구매 시 1시간.
윤홍식 차관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상대가 받아들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1천만 톤이면, 대한민국 국민의 전체 개인 소비량 2.5년치 물량이다.
(수영농장이 그만한 쌀 생산이 가능한지는 의심하지도 않는다.)
그는 근심하며 요청을 해온 중국사업가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대답은 뜻밖이었다.
"오케이했다고요?
-네, 회장님. 쌀 가격이 얼마냐고 오히려 서두르며 물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 쌀을 얼마에 수입하고 있죠?"
-1톤당 200달러 정도입니다.
국내산 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싸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웃기다.
하수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러니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중국산 쌀을 쓰고 싶은 유혹을 못 버리는 거지.'
가게 입장에서 국산 쌀을 쓰면 식자재비가 너무 차이가 나버리니.
"그 중국 사업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제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젠틀한지 보여줘야겠네요."
-예?
"충분히 외국인 바가지를 씌울 수 있지만 그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저도 톤당 200달러에 팔겠습니다."
20억 달러, 2조 원.
저번 수해로 국내 비축미가 모두 못 쓰게 되었을 때, 정부에 250만 톤을 11조 원 넘게 받고 판 것에 비하면 매우 적다.
그만큼 정부가 국산 쌀을 잘 챙겨 준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그럼 언제 볼까요?"
-언제가 편하십니까? 그분은 오늘 당장에라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아, 그럼 조금 있다가 저녁 식사나 같이하는 걸로 하죠."
-네, 제가 자리를 잡겠습니다.
하수영은 전화를 끊고 일어났다.
나갈 채비를 하자 의원사무실에서 바둑을 두던 후원회 노인들이 물었다.
"하 의원, 누구 중요한 사람 만나러 가나? 전화 내용이 심상치 않던데."
"그건 아니고요, 일용직 알바 뛰러갑니다."
"알바? 시급은 잘 준대? 우리 하의원 몸값이 어디 보통이어야 말이지."
"시급 2조 원 준대요. 이만하면 짭짤하죠."
"뭐? 시급 2조 원이라고?"
후원회 노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만치 멀리 있던 노인들도 하던 것을 멈추고 한달음에 달려와서 하수영을 에워쌌다.
그들이 아무리 알아주는 부자라 해도, 2조 원은 상상 밖의 큰돈이다.
당장 이 중에서 수천억 자산가는 있어도, 조 단위 자산가는 없었으니.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난 후원회 노인들은 손뼉을 치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역시 우리 하수영 의원이야! 암, 시급으로 그 정도는 받아야 제맛이지!"
"그런데 이거 하수영 의원이 손해 아닌가? 국내에서 팔며 톤당 20만 원보다는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텐데."
"에이, 어차피 국내에는 풀지도 못할 쌀이야. 벼 농가 전부 망한다고 우리 하 의원이 일부러 쌀 시장은 쳐다도 안 보는 거 알잖나."
"오죽하면 하 의원이 가축사료로 쓰라고 거의 거저 가까이 넘겨주고 있지 않겠어."
"수영목장 소들 먹일 볏짚 만든답시고 나오는 쌀 부산물 때문에 하의원이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데."
"그냥 버리는 데도 돈 들어갈 쓰레기를 돈 주고 사간다는데, 그 정도면 시급 받는 거 맞지."
"나도 그 시급 알바 한 번 뛰고 싶구먼그래."
하수영은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르신들."
"그래, 잘 다녀오게."
"갔다 와서 무슨 일인지 꼭 좀 말해줘. 궁금해서 잠도 안 올 거 같아."
***
윤홍식 차관이 잡은 곳은 서해호텔고급 중식 레스토랑이었다.
서울 야경이 잘 보이는 널찍한 VIP룸에 들어서니, 윤홍식이 40대로 보이는 중국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수영이 들어서자 둘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국인 남자가 웃으면서 손을 내밀고 중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윤홍식이 통역을 해주려는 순간, 하수영이 유창한 중국어로 인사했다.
"하수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원어민이라고 믿어질 정도로 자연스러운 발음과 성조에 둘 다 표정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류이엔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중국어 실력이 대단하시군요!"
"옛날에 중국에서 좀 오래 살았습니다. 의사소통에는 문제없습니다."
"오오, 어디에서 지내셨습니까?"
"그냥 이곳저곳 안 돌아다닌 곳이 없을 거 같네요. 그래서 오히려 콕 집어서 기억하기가 애매합니다."
"그럴 수 있지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중식 코스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동남아에서 효원식품과 거래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황비버섯, 황비라면을 집중적으로 수입해서 중국에 유통했었습니다."
아마도 밀수였으리라.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한국과 중국은 상호무역견제 중이니까.
"아시겠지만 중국과 한국은 지금 몇 가지 수출입 품목에 관해서 서로 제재를 하고 있습니다. 보복 관세, 혹은 수출입 통제도 곁들이고 있지요."
"네. 실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황비라면을 사가던 중국업체가 있었는 데, 그 일 때문에 뚝 끊겼지요."
돈만 내고 가져가지 못하게 된 라면은 하우스플러스에서 사은품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고,
"꽁으로 남은 라면 덕분에 작게 마트 사업하던 거 조금 재미도 봤지요. "
갑자기 류이엔이 크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하수영은 눈빛을 바꾸고 천천히 류이엔을 살폈다.
"혹시?"
"네, 그 수입업체가 바로 접니다. 정확히는 제가 거느린 사업체 중의 하나죠."
19억 개나 되는 라면을 값까지 치르고 쿨하게 떠난 사람.
하수영은 눈에 힘을 풀고, 한없이 따뜻하게 류이엔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객님, 진작 말씀하셨으면 제가 두말 않고 자리를 만들었을 텐데요."
"하하, 중국 진출을 꺼리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내심 걱정했는데, 고객님이라고 불러주시니 기분이 좋군요."
"누구든지 제 가게에 오신 분은 국적, 인종, 성별, 연령, 직업, 취미를 차등하지 않습니다. 제 상품을 사러오신 거잖아요."
류이엔은 기분이 좋다는 듯이 웃었고, 부드러운 분위기에 윤홍식 차관도 같이 웃었다.
윤 차관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류이엔은 하수영의 말에 숨겨진 뼈를 알아차렸다.
'자기 가게에 상품 사러 온 사람은 차등하지 않는다?'
류이엔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날카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