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18화 (618/1,270)

프랜차이즈 갓 618화

154장 농사와 선박 사이 (2)

한두철 상무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현재 조선소 상황을 보면, 하수영의 주문 선박은 12척 동시건조 수행이 가능하다.

건조 기간이 12개월이니, 9년은 잡아야 한다.

총 기간을 1년 정도는 어떻게 단축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8개월 안에 100척을 인도 하라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말도 안 되는…… 흡!"

한두철이 입을 열려고 하자, 백진택이 조용히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가라앉은 눈으로 하수영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희열마저 깃들어 있었다.

"1년 단축 시마다 500억 원, 18개 월 안에 모두 인도할 시에는 2조원이라고 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9년에서 2년으로 줄이면 3,500억원.

하지만 거기서 6개월을 더 줄이면 2조 원.

비교할 수 없이 큰 차이다.

"달러로 달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미국에 쌓아두고 있는 달러도 좀 있어서요."

알다마다.

나노소프트가 수영라면으로 미국인들 입맛을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회사에 지급하는 겁니까, 아니면……."

백진택의 눈에 깃든 욕망을 확인한 하수영은 피식 웃었다.

자본가들이란 어찌 저렇게 다 똑같은지.

"당연히 백두중공업에 합법적으로, 투명하게 지급하는 인수대금이 되어야지요. 단!"

"……."

"보너스 중 10%는 귀 사장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처분하겠습니다. 합법적인 영역 하에서요."

10%라고 해도 2,000억 원이다.

그것을 개인 호주머니에 당당히 넣을 수 있다면, 큰 힘이 된다.

"옵션 충족하면 이득, 못 해도 손해는 없군요."

백진택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하수영은 키득거렸다.

"너무 쉬워서 별로 열의가 불붙지 않나 봅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좋아요. 그럼 페널티를 한 번 부여해 볼까요?"

백진택은 황급히 부정하려 했으나, 이어지는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대신 금액은 높이고요. 어떤가요?"

"변경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페널티. 듣는 순간부터 돌아올 수 없습니다."

"……."

"아니면 변경 옵션 말고 원래 옵션으로 가셔도 되고요. 선택하시죠."

"들어보겠습니다."

페널티가 있어도 상관없다.

백진택의 귀에는 금액을 더 올린다는 말만 들렸다.

더 많은 돈에 대한 탐욕.

그것을 가졌기에 재벌가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전진하는 것이다.

탐욕이 없는 이는 이 복마전 같은 백두일가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될 뿐이다.

"기간 단축 보너스는 18개월 전량인도에 상금 3조 원으로 끝. 수혜배분 역시 사장님 뜻대로 하시죠."

백진택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 말대로라면, 3조 원 전액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어도 된다는 뜻이다.

법적으로도 문제없다.

발주사가 빨리 인도해 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회사 사장에게 따로 주는 보너스이니까.

그에 대한 소득세만 잘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 대신 18개월 전량 인도를 지키지 못하면, 일체의 단축 보너스가 없다.

딱 수주금액만 받는 것이다.

"그리고 18개월 인도 실패 시, 사장님의 능력으로 처분 가능한 모든 청담동 부동산을 공시지가로 저한테 넘기셔야 합니다."

하수영이 청담동 부동산 수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조건은 놀랍지 않았다.

페널티라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1년 단위 단축 보너스가 사라지는 게 페널티인가. 좋아, 내가 손해 볼것은 전혀 없어.'

손해는 없다.

1년 단위 단축 보너스만 없어질 뿐.

이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18개 월 전량 인도라는 옵션을 충족해야 한다.

"제 능력으로 처분 가능한, 이게 정확히 어떤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사장님 소유가 아니더라도 사장님이 손을 쓰면 거래 가능한 모든 청담동 부동산을 넘기시면 됩니다. 공시지가로."

"예를 들면 제 가족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같은 걸 말하는 거군요."

"사장님이 경영하는 회사가 가진 부동산도 포함되겠지요?"

"알겠습니다. 이 거래, 받겠습니다."

하수영은 가늘게 웃었다.

"이미 변경 조건을 들으셨을 때부터, 이 거래는 시작된 겁니다."

매서운 눈빛에 백진택은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마치 자신을 질책하는 아버지의 앞에 선 듯한 착각이 순간 들었다.

그는 정신을 다잡았다.

"계약하시죠."

"변경 옵션은 우리 둘 사이에 따로 계약서를 쓰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배려 감사합니다."

이미 작성한 수주계약서 외에, 두 사람 간의 계약서를 따로 작성해서 체결했다.

백진택은 변호사단 검토도 없이 그 자리에서 슥 읽어보고 서명하는 그의 배포에 놀랐다.

물론 양측에 전혀 문제가 없도록 최대한 합리적으로 작성한 계약서다.

이메일로 사전에 이미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변호사 동석도 없이, 그냥 한 번 읽어보고 서명하다니.

***

한두철 상무는 어쩌자고 그런 옵션을 받아들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지키지 못하더라도 회사가 손해 볼 것은 없다.

기껏해야 백진택이 조금 손해 보고 말겠지.

팔 수 있는 청담동 부동산을 공시지가로 넘기는 것이니까.

그의 자산, 그리고 판돈을 생각하면 사실 손해라고 할 것도 없는 수준이다.

'그래도 회사 체면이라는 게 있는데.'

18개월 전량 인도를 덥석 받고, 140개월 만에 모든 인도를 끝낸다.

고 생각해 보라.

금전적인 손해는 없겠지만, 하수영이 회사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얘네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딜을 받은 거지? 그냥 손해 볼거 없으니 막 질러보자 이건가? 어이없네.'

라고 한심하게 여길 것 아닌가?

금전적 손해 볼 것은 없다지만, 그래도 지키지도 못할 장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저런 초대형 바이어 앞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회사의 이미지라는 것도 결국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니.

"한 상무. 한 척 건조하는 데 12개 월이 걸린다고?"

"예, 예전 같았으면 26개월은 걸렸겠지만 공법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이제는 12개월…… 아니, 11개월이면 됩니다."

"확실해?"

"대신에 건조비용이 좀 더 들어갑니다. 척당 1,580억 원이니…… 우리가 본래 생각했던 것보다 마진이 더 떨어집니다."

"건조 마진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 손해를 보더라도 무조건 기간을 단축시켜. 11개월이 아니라 10개월로 단축시켜도 돼."

사실 조선소는 작업 스케일이 클뿐, 본질적으로는 수작업이다.

사람이 하나하나 직접 정성을 들여 만든다.

다만 뼈와 살로 된 손이 아니라, 기계로 된 손을 사용할 뿐이지.

거대한 선체 모듈을 움직여서 붙이는 골리앗 크레인은 결국 기사가 손으로 직접 조종한다.

'이거 큰일인데.'

백진택은 손해가 나더라도 무조건 기한을 압축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18개월을 지키지 못하면, 오히려 회사가 적자가 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 건조 중인 모든 선박을 일시 중지하고, 모든 생산라인을 이 계약으로 돌려도 18개월은 절대 못 지킵니다."

애당초 메가 컨테이너선 100척을 동시 건조에 들어갈 만한 시설이 없었으니까.

"배를 지을 장소가 부족해? 그럼 빌리면 되지."

"비, 빌린다고요?"

"다른 조선소들, 지금 한창 놀고 있는 데 많잖아. 딱 12개월만 빌리면 돼."

"그래도 부족합니다. 다른 조선소들이 마냥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는 도크는 있을 수 있지만, 모든 도크가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군산조선소도 다시 가동시켜."

"군산조선소까지……."

한두철 상무는 마른침을 삼켰다.

백두중공업은 재정 악화 문제로 군산에 있는 자가 조선소를 폐쇄했다.

그것을 다시 돌린다는 것은 여간 의미가 아니다.

조선소에서 일할 수천 명의 직원들을 다시 모집하고, 적어도 향후 10년 이상은 그들을 데리고 가동해야 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1, 2년만 바짝 돌리고 다시 폐쇄한다고?

아무리 백두중공업이 강짜를 부린다 해도,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정치권의 보복을 받을 수도 있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100척 동시 건조할 수 있는 라인 확보해. 앞으로 6개월 동안."

"사장님. 그것은 도저히……."

"못 하겠나? 6개월이란 시간이 있는데? 라인만 확보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아? 그 다음부터는 기술자들이 알아서 배 만들 거고 말이야."

배 지을 장소도 문제지만, 투입될 기술자 확보도 문제였다.

한두철 상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디 땅만 확보한다고 해서 배가 저절로 만들어지나?

100척 라인에 투입해야 할 기술자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

해외 영입도, 다른 경쟁사에서 임대하는 것도 모두 한계가 있다.

"한 상무, 난 자네 능력을 믿는다. 무조건 6개월 안에 라인 확보해 놔. 성공하면 50억 준다."

순간 한두철 상무의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그의 연봉은 3억 남짓한 수준.

그렇게 받기 시작한 것도 아직 5년도 채 되지 않았다.

평생 월급쟁이로 살다가 이제 억대 연봉 임원이 된 그에게, 일시불 50억 원은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이었다.

이 순간, 못 하겠다, 불가능하다.

그런 말은 더 이상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무조건 해내야 한다.

그래서 50억을 쥐어야 한다.

오로지 그런 열망만이 가득했을 뿐이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자네 계좌번호 여기 찍어봐."

백진택 사장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한두철 상무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얼른 계좌번호를 찍어서 공손히 돌려주었다.

잠시 후 그의 스마트폰이 문자가 왔다고 진동했다.

"착수금 5억 넣었어."

"……가, 감사합니다!"

"지금 확인해 봐. 어서."

백진택이 재촉하자 한두철 상무는 얼른 뱅킹을 확인했다.

정말 5억 원이 입금돼 있었다.

"세팅 성공하면 나머지 45억 넣어 준다. 실패하면 당연히 도로 토해내야지?"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자네가 전권자야. 회사의 가용한 자원은 전부 활용해."

"네! 사장님!"

"나도 놀게 하지 말고."

"……예?"

"방금 한 말 못 들었어? 회사의 가용 자원은 모두 활용해. 내가 필요한 영역이 있으면 주저 없이 날 투입하라고, 알았어?"

한두철이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백진택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개인 돈 3조 원이 생기느냐 마느냐 하는 일인데, 내가 그럼 가만히 놀고 있을 줄 알았어?"

"……."

"나도 앞으로 18개월 동안 죽었다. 생각하고, 발에 피가 나도록 뛰어다닐 거다."

한두철은 백진택을 새삼 다시 봤다.

돈에 대한 누군가의 탐욕에 이렇게 눈이 부신 것은, 생소한 경험이다.

"반드시, 무조건 해내겠습니다."

한두철은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무한정 열리는 걸 느끼며,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목례를 했다.

그때 백진택의 비서한테서 연락이 왔다.

-사장님, 성북동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성북동?"

백진택의 안색이 굳어졌다.

성북동은 부친인 백영호 회장의 본가가 있다.

-오늘 저녁 본가에 들르라고 하십니다. 다른 약속은 모두 취소하라고 하셨습니다.

"……알았다."

전화를 끊고, 백진택은 한두철을 바라봤다.

"한 상무, 아버지가 왜 날 부르시는 거 같아?"

"자동차 백동원 사장님 때문일 겁니다. 아마 우리가 자동차 운반선을 수주한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겠지요."

"큰형…… 참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는군."

백진택은 기가 차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큰형이 이렇게 치졸하게 나오면, 정말 자동차 운반선 사은품으로 만들어서 갖다 바치고 싶어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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