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15화
153장 맨 프롬 콜롬비아 (6)
백두그룹과 하수영.
양측 사이는 반반이다.
백현진의 백두백화점 측은 하수영과 친밀하다.
백현진이 프라임컴퍼니 부사장 정서희와 친하기도 하고.
VIP고객에 제공하는 머쉬룸 서비스 덕분에 백화점이 톡톡히 잘 나가는 덕분이다.
백두백화점 역시 입점한 수영레스토랑, 수영오세안 등에 최대한의 편의를 봐준다.
입점 수수료는 아예 받지도 않고, 오히려 전기수도 기타 관리유지비용을 일체 부담한다.
머쉬룸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만 해도 백두백화점은 크나큰 이익이었으니.
그러나 자동차는 달랐다.
백두그룹의 장손, 백동원 사장은하수영한테 좋은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백두자동차는 끝내 프리덤 자율주행기능을 도입하지 못했으니.
백두자동차는 하수영이 프리덤에 관한 중요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실비아컴퍼니가 프리덤 로열티를 버젓이 지급하고 있었으니.
다만 하수영이 개발자라고 생각하진 않고, 서진파운드리처럼 투자자로서 소유권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백두자동차 사장 백동원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보고를 듣고 있었다.
"중공업을 탐방했다고?"
"네, 중공업 직원들이 목격했답니다. 한두철 상무가 에스코트했다고 합니다."
한두철 상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자기 회사도 아니고, 동생 회사 일개 상무의 이름까지 일일이 기억할 리가 없잖은가.
"경상도 내려간 김에 그냥 구경하러 갔을 리는 없을 테고."
"한두철 상무가 꽤나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면, 아마도 선박 발주인게 틀림없습니다."
"개인 호화요트라고 발주하려고? 그런데 우리 백두중공업이 그런 경험이 있나?"
"개인 요트 제조 경험은 부족하지요. 특히 부자들을 위한 호화요트는 어렵습니다."
당장 백동원 사장도 고급 개인 요트가 있지만, 유럽에서 사온 것이다.
백두중공업은 산업, 상업, 군용 선박은 잘 만들지만, 사치용 선박은 경험이 없다시피 하다.
"하수영 농민회장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아마 개인 요트는 아닐 겁니다. 분명히 상업 선박일 겁니다."
백동원은 얼굴을 찡그렸다.
사실 프리덤 자율주행 도입을 못한 것은 실비아컴퍼니 박덕준 회장 때문이다.
하지만 백동원은 내심 하수영이 개입하지 않았나 의심했다.
일전에 하수영이 했다는 발언 때문이다.
바로 수영병원 구급차 및 업무용 차량 도입 때 나온 말이었다.
-백두자동차? 그 위험하기만 한 차를 뭐하러 씁니까? 당장 전부 교체하세요.
그 말이 나오고 수영병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를 전부 볼보차로 바꿨다.
뿐만 아니라 업무용 차량까지 전부.
알아보니 병원뿐만 아니라 직접 운영하는 모든 사업체에서 백두자동차를 퇴출시켰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백동원은 프리덤 자율주행 도입 실패를 하수영의 의도로 의심했다.
'에릭 로한…….'
국내에서 프리덤의 개발자로 알음알음 알려진, 신비의 인물.
하수영한테 막대한 돈을 받고 프리덤 사업권을 넘긴 천재 개발자.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억만금을 줘서라도 섭외를 할 텐데.
하지만 그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처럼 이름 외에는 알려진 게 없었다.
"상업 선박이면 화물선? 해운업이라도 종사할 생각인가?"
"미국인 축산재벌 비프스 캘론과 비즈니스 제휴를 맺었습니다. 수영목장 육류 수출을 염두에 두고 구매할지도 모릅니다."
"육류 컨테이너라고 해봐야 얼마나 된다고 화물선까지 산단 말이야? 그냥 해운사 통해서 배송하는 게 낫지."
서해전자가 스마트폰 온라인 판매를 위해서 택배회사를 직접 차린다고 생각해 보자.
배보다 배꼽이 큰, 말도 안 되는 결정이다.
배송비 주고 전문택배회사에 맡기는 게 몇천 배는 이익 아닌가.
"중공업 애들은 뭐라고 해?"
"절대 함구하고 있습니다. 구두발주라도 했는지, 그냥 찔러만 본 건지, 무슨 선박을 원하는지조차도 일절 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
"백진택이가 많이 컸어. 이 큰형을 우습게 알고 말이야. 그렇지?"
"……."
"자동차 운반선인지 아닌지, 그것조차 안 밝힌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똑, 똑, 똑, 똑…….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백동원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실비아컴퍼니는 백두자동차를 버리고 헤슬라자동차에만 자율운행기능을 주었다.
왜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
국내 시장에서 헤슬라와 손을 잡고 백두자동차를 몰아내려는 목적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
'지금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운반선이 부족한 편이지. 지금 당장 대량으로 발주를 한다 해도, 최소 5년 간은 자동차 해운수송이 벅차.'
자동차 운반선 발주.
백동원은 하수영의 의도를 그렇게 의심하고 있었다.
국제자원투자회사와 손을 잡고 국내 정유시장을 집어삼켰듯이.
헤슬라와 손을 잡고 국내 자동차 시장까지 먹어치우려는 건지도 모른다.
자동차 운반선을 발주한 거라면 그 의도가 명확해진다.
"진택이 비서실, 계속 약속 미루고만 있지?"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자동차 운반선 발주가 들어오는 거라면 그 의도가 뻔해지니까 말이야. 나는 물론이고 아버지 반대를 뚫기가 쉽지 않을 테니."
백영호 회장은 당연히 장남의 자동차 산업에 해가 되는 일을 막을 것이다.
그러나 백진택 입장에서는 노는 조선소 인력을 돌려서 자동차 운반선을 만들면 좋은 일.
그래서 연락을 회피하는 게 아닐까?
"절대 눈 떼지 말고, 철저히 감시해."
"예, 사장님."
백동원은 작게 이를 갈았다.
둘째 동생이고 셋째 동생이고,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
맨 프롬 콜롬비아.
영화 타이틀까지 변경한 CR필름은 드디어 정식 제작 설명회를 열었다.
"이제껏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하고 웅장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물론 재미는 기본으로 잡고 갑니다."
최석만 감독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신감을 표출했다.
"오랜만의 복귀작이니만큼,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조은후는 비장하면서도 담백하게 자신의 각오를 나타냈고,
"팬분들이 절대 실망하지 않을 재미있고 좋은 영화를 보여드릴게요."
장효주는 여전히 남성팬들을 심쿵하게 만들 만큼 예뻤으며,
"어려운 악역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50대 중년 배우 배영한도 나름 비장하게 자신의 각오를 드러냈다.
그리고 하수영의 발언 차례였다.
원래 준조연급 배역은 참석할 레벨이 아니지만, 제작팀 어느 누구도 하수영의 불참을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제작사 대표부터 감독까지 열과 성을 다해 하수영의 참석을 설득했으니.
연예계 기자들도 엔터계의 황제이자 광고계의 큰손인 하수영의 제작발표회 참석을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생방 보도로 나가면 더 좋았을 텐데…….'
'하다못해 유튜브로 올리기만 할 수 있어도…….'
'그냥 사진과 기사로만 내보내야 하다니.'
아쉬운 점은 영상 보도가 불가능하다는 점.
제작진은 제작발표회가 널리 퍼지면서도 신비한 이미지를 갖길 원했고, 그래서 영상 보도는 애초에 금지했다.
하수영이라는 이름값에 짓눌린 기자들은 감히 항의할 마음도 품지 못했고,
"콜롬비아 마약상인 배역을 맡은 신인 무명배우 하수영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하수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고, 장내의 모든 눈과 귀가 그를 주목했다.
"먼저 영화 타이틀이 제 배역을 뜻하는지 아닌지 소문이 많았는데, 이 자리에서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맨 프롬 콜롬비아는 그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정적 가운데 정신없이 눌리는 셔터음 소리만 울려 퍼졌다.
조은후는 자신이 발언할 때보다 더 쉴 새 없이 울리는 셔터음과 플래쉬세례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꼭 내가 주연이 아니라, 하수영배우님이 주연인 것만 같은…….'
"비록 등장 비중은 낮지만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설마 정치인이 마약상 연기를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은 없으시겠죠? 모든 것은 '팩션' 입니다, 팩션."
'지금 팩션이라고 했어? 픽션이 아니라?'
'설마, 말을 잘못한 거겠지?'
팩션,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이야기에 허구적 이야기를 섞은 것.
100% 지어낸 픽션과는 엄밀히 다른 의미인데?
"무명신인이지만 최대한 실감 나는 연기를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기초정치인 업무에도 충실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달에도 벌써 30건 이상의 조례를 성실처리했습니다."
아무도 웃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폭탄이 터지기 전처럼 다들 지극히 긴장하고 있었다.
"자, 혹시 질문 있으신 분? 아, 물론 영화 관련 질문만 받겠습니다. 다른 주제 질문은 여기서는 받지 않을게요."
보통의 준조연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
지금 하수영은 영화감독이라도 된 것처럼 분위기를 이끌어나가고 있지만, 누구도 언짢음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신인배우이기 이전에 제작자였으니까.
"하수영 배우님…… 아니, 제작자님께서 맨 프롬 콜롬비아에 상당한 투자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얼마를 투자했으며, 총 얼마까지 투자할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1차로 천억을 투자했고요, 제가 얼마까지 투자할지를 묻는 것보다는 감독님께 얼마까지 지출할 거냐고 묻는 게 나을 거 같군요. 감독님?"
"예? 예!"
최석만 감독은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고, 그의 마이크가 켜졌다.
"이 영화, 얼마까지 생각하고 계세요?"
"그, 그것이…… 일단은 천억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방영 중인 모 드라마는 5,000억 넘게 썼습니다. 그 드라마를 뛰어넘는 게 포부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근데 제작비부터 지고 들어가면 감독님 한 분만 바라보는 출연진과 제작진, 스태프와 관객들이 아쉬워하지 않을까요?"
"그, 그렇습니다. 물론 천억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만, 제작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죠.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5,000억 원 이상을 넘길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설마 속편 포함한 시리즈 전편을 통틀어서 5,000억이라고 말씀하신건 아니시죠? 그렇다면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로서 저부터 가장 먼저 실망할 거 같습니다."
"아, 아닙니다. 아직 본편 제작도안 했는데 벌써 속편을 염두에 두고 있진 않습니다. 본편만으로도 그만한 제작비를 지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본편이라고 하신 걸 보면, 속편 제작을 염두에 두고 계신가 봅니다?"
"그, 그것은……."
"이런, 제가 감독님을 너무 곤란하게 해드렸나 봅니다. 자, 제작비는 이 정도면 됐고, 또 다른 질문은 없으신가요?"
"……."
"……."
다들 잠시 혼이 빠진 표정이었다.
질문을 던지는 게 자연스럽고 능숙한 것도 그런데.
방금 하수영이 자기들 몫을 뺏어서 감독 인터뷰를 하지 않았나?
"없습니까? 없어요?"
한 기자가 용기를 내어 다소 짓궂은 질문을 꺼냈다.
"미디어 컨텐츠뿐만 아니라 연기 자체에도 깊은 관심이 있는, 소위 말하는 골수팬인 거 같은데 주연 배역에는 욕심이 없으셨나요?"
"주연 배역이라."
"제작자 겸 배우로 참여하는 젊은 인물 대부분은 자기 연기력이 부족하더라도 주연 자리에 욕심을 냅니다. 다른 배우들도 그것을 받아들이 고요."
조은후는 딸꾹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지금 저 기자, 마치 자신을 엿 먹이려고 저런 질문을 한 것처럼 생각 되었다.
"주연 배역에는 별로 흥미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마약상 배역이 더 재미있어 보였거든요."
"그래도 주연 배역은 주연이라는 이름만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그 점이 아쉽지 않으신가요?"
"인생의 주연으로 너무 많이 살아봤더니 꽤 피곤하더라고요. 저는 준 조연이 편합니다. 일단 이번 생은 그렇게 살기로 했습니다."
"……저, 그 말씀은, 지금 실제 인생도 준조연이라는 뜻이신지……."
"네, 현재 제 실제 삶의 배역도 준 조연급이지만 그래도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
"……."
제작발표회장은 설명 불가능한 정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