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14화
153장 맨 프롬 콜롬비아 (5)
영화 타이틀은 '돌아온 14번 요원',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범죄조직에 가족을 잃은 국정원 요원 정혁은 모든 것을 걸고 조직 추적에 나선다.
그 조직이 국내의 모든 마약 공급을 담당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하지만 의문의 권력 개입으로 인해 강제로 옷을 벗게 된다.
끝내 복수를 포기하지 않은 정혁은 오랜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조직의 실체에까지 접근한다.
결국 한국계 콜롬비아 젊은 마약상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난 그분의 쓸 만한 도구일 뿐이지.'
젊은 마약상의 비웃음을 뒤로한 채, 그는 마침내 모든 악의 실체에 닿게 된다.
국내 군수, 전자산업을 양손에 쥔 굴지의 재벌 오너.
심지어 국내 기업은 그에게 있어 한국을 담당하는 전진기지에 불과했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워싱턴의 정가를 주물러 온, 베일에 싸인 한국인, 이철진.
그에게 한국은 조국이 아닌,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으며,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쟁터를 찾아다니며 무기를 팔았다.
진정한 적의 존재를 깨달은 정혁은 보잘것없는 지금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고…….
"감독님, 수정된 시놉 지금 보는 중인데, 이거 러닝타임 120분 안에다 넣을 수 있어요?"
"그게 가능하겠냐? 속편 제작 염두에 두고 시놉 수정한 거지."
"근데 이거 아무리 봐도 필체가 감독님 스타일이 아닌 거 같은데요."
"응, 시나리오 대본 작가 따로 고용했어. 윤태현 그 친구가 해주기로 했다."
"오, 윤 작가가 해주면 안심이죠. 전개, 연출, 대본 뭐 하나 빠지는거 없이 탄탄하잖아요."
"내가 대본 안 쓴다니까 너 뭔가 되게 안심하는 눈치다?"
"그럴 리가요. 착각이십니다."
"수상한데……."
카메라 감독은 사실 속으로 안도했다.
이렇게 연출과 배경, 그림이 잘 빠진 작품인데 최석만 감독이 대본 수정을 맡으면 망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대본을 못 쓰는 편은 아니지만, 무조건 믿고 맡길 수 있다 수준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천만관객 작품을 두 번이나 뽑아낸 윤태현 작가라면 안심이다.
걸쭉한 영화 대본을 뽑아줄 것이다.
"근데 그 친구는 남이 만든 작품에 이어서 손대는 거 절대 안 하지 않아요?"
"하수영 제작자님이 개입했다고 하니까 두말 않고 하겠다더라."
"한국 영화사에 획을 그을 스케일인데, 안 하면 그 친구만 손해죠."
밤은 깊었고, 펜션 야외 정원에는 아직도 스태프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술과 음식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기본 골격은 그대로 가되, 설정변화에 따라서 수정이 좀 크게 들어갈 거야. 속편 제작도 염두에 두고 있으니 엔딩도 달라져야 하고."
속편이 나오지 못할 상황을 고려해서 1편으로 완결성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최석만은 속편이 나오지 못하는 경우는 상상을 할 수 없었다.
'하수영 제작자님이 돈을 넣은 작품인데 절대 망할 리가 없지.'
최석만은 불현듯 하수영 일대기를 영화로 한 번 만들어 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부활의 이순신 PD가 하수영 일대기를 드라마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던가?
아예 과감하게 선수를 쳐버릴까?
'그러다가 너무 노골적으로 아부하는 것으로 보이면 어떡하지?'
그때 헬기 로터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퀸 스텔리온 닥터헬기가 펜션 옥상 착륙장에 내려앉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펜션이 아니라 특급 호텔인데…….'
로비 시설이라든가 서비스, 객실, 음식 컨디션 등을 보면, 서울의 어느 특급호텔도 비빌 바가 못 된다.
스파, 레스토랑 등의 부수편의시설은 부족하지만, 그거야 객실을 넓게 뽑아서 그런 것이고,
"아, 하수영 배우님 오시나 봅니다."
"그런 거 같군."
과연 몇 분 지나지 않아 하수영이 1층 로비에서 나왔다.
그는 자신을 반기는 스태프들을 웃음으로 대하며 자연스럽게 파티에 끼어들었다.
"하수영 배우님 정도면 재벌 아니냐?"
"두말할 것 없는 재벌이죠. 공개된 재산만 따지면 국내 1위 재벌 아닐까요?"
"서해그룹 총수 일가가 해외에 은닉한 비자금을 다 털어도 하수영 배우님이 더 많을 거 같은데?"
"에이, 그건 좀, 서해그룹 해외 비자금이 수백조 원대라는 말이 있잖아요."
"나노소프트가 북미에서 수영라면을 얼마나 팔아대는지 못 들었어? 한 달에 7, 80억 불이래."
"으음…… 그러면 확실히 재벌들 은닉 재산 다 포함해도 하수영 배우님이 1위일까요……."
장효주가 다가왔다.
그녀는 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깔끔한 낯빛이었다.
"울산 갔다 왔다면서요? 쇼핑은 잘했어요?"
"일단 컨테이너선 30척 구두발주넣었고, 정식 계약은 다음에 하기로 했습니다."
"컨테이너선은 왜요? 그것도 30척 씩이나."
"농장 곡물 수송용으로 언젠가 쓰지 않을까 해서요."
"수영 씨 스타일 보면 작은 사이즈는 아닐 거 같은데."
"전장 길이 392미터짜리 메가 컨테이너선이라고 하네요. 척당 1,600억 정도 나올 거 같아요. 더 다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면 세금도 엄청나겠어요. 뭐가 있죠? 취등록세, 재산세, 교육세, 그런 거 줄줄이 붙지 않아요?"
장효주는 말해놓고 피식 웃었다.
"수영 씨한테 뭐 그런 세금이야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괜한 소릴 했네요."
"세금 안 냅니다."
"네?"
"농기계로 등록할 거라서 그런 거 전부 면제예요."
"……그게 가능해요?"
"못 할 건 없죠. 금지조항은 없더군요. 농기계 목적이라고 소명만 하면 됩니다."
"……."
법은 애초에 메가 컨테이너선을 농기계로 구매할 농가가 나올 거라고 상정하지 않았다.
"다 받는 데 얼마나 걸려요?"
"요즘엔 공법이 좋아져서 설계 포함해서 1년이면 만든다고 하네요."
좋아진 게 이 정도라니.
하수영은 이럴 때마다 이 시대의 문명 상태에 서글픔을 느낀다.
"30척을 동시에 건조 들어가면 1년이면 다 나오겠지만, 건조 도크가 부족하니 그건 무리겠죠. 그냥 느긋하게 기다리렵니다."
"곡물 해외 수출을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언젠가는 전 세계 먹거리 시장에 진출해야 할 테니까요. 미리미리 준비를 해둬야죠."
"돈은 진짜 많이 버는 거 같은데, 느긋하게 쌓아둘 틈이 없는 거 같아요."
"돈은 고이면 고일수록 썩어요. 빨리빨리 써버려야 합니다."
정확히는 자산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지만, 기업, 부동산, 항공기, 선박 등의 형태로, 아, 항공기와 선박도 그러고 보니 부동산으로 취급되던가?
***
근래 영화 업계는 살짝 침체된 분위기였다.
시장이 축소된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만큼은 아니지만, 영화 시장도 나날이 커져가고 있으니.
바로 저게 문제였다.
폭발 성장하는 드라마에 비해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상대적인 열등감이 들었던 것이다.
"적토마 스튜디오가 찬물 끼얹는데 크게 한 건 해주셨지."
"영화 쪽에 들어갔던 중국 자본이 한순간에 다 빠져나갔으니까."
"제작 도중에 자본 회수 당하는 바람에 엎어진 영화가 벌써 몇 개야?"
"드라마도 중국 자본 빠져나가서 비틀거리긴 했는데, 거긴 금방 투자 자 구하니까. 부활의 이순신 덕분에 K-드라마가 워낙 핫해야 말이지."
드라마판은 부활의 이순신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 하수영 제작자님이 우리 영화판에는 동아줄 좀 안 내려주시나?"
"영화 제작에는 관심이 없으신가?"
"KI스튜디오는 영화 제작은 원래 안 하지? 드라마만 만드는 곳이지?"
그렇게 침체된 영화판을 화끈하게 달아오르게 하는 소식이 있었다.
"대박! 하수영 제작자님이 CR필름에서 영화 찍는다더라!"
"뭐? 정말?"
"조은후하고 장효주 출연한다는 돌아온 13번 요원인가 하는 거 있잖아? 그거 투자하신다는데? 벌써 1,000억 원인가 집어넣으셨대."
"우와, 역시 화끈하셔. 투자를 했다 하면 기본이 천억 단위야, 천억!"
"좋아, 이제 우리 영화도 제작비 천억 작품이 생겼다고."
흥분을 일으키는 소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하수영 제작자님이 직접 준조연으로 출연도 하신다는데?"
"완전 대박이네. 그 작품은 절대로 망할 수가 없겠네. 하 제작자님 기를 제대로 받았잖아?"
"미 항모함대 협찬받아서 촬영했다는 말이 있어."
"뭐? 그게 정말이야?"
"그렇대. 스태프들 한두 명이 그런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수십 명이 넘는데 어떻게 그런 구라를 치겠어?"
"아니, 대체 무슨 영화를 찍는데 미 항모함대 협찬까지 받아?"
"그럼 우리나라 영화에 미 항모가 나오는 거야? 세상에, 맙소사."
영화판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CR 필름이 1차로 받은 제작비 1,000억 원.
하수영의 준조연 출연.
미 항모함대의 협찬까지.
대체 어떤 초대박 블록버스터를 만들려고 그러는지, 벌써부터 크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럼 하수영 제작자님을 이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거야?"
"완전 대박이네. 연기는 잘하실까?"
"연기까지 잘하면 너무 사기인데. 신이 공평하지 않다는 증거잖아."
"못하면 어때. 제작비로 천억 넘게 부었으면 발연기 해도 됨. 얼마나 눈이 호강할 거야?"
"CG 애들 벌써부터 난리 났더라. 일감 엄청 쏟아질 거라고."
"하수영 제작자님이 나섰으면 단가 후려치기도 못하잖아. 그런 거 하다가 걸리면 손모가지 날려 버리신다던데."
"이참에 영화판 잘못된 금전 관행도 바로 잡히면 좋겠다."
***
부활의 이순신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다.
시청률 1위를 놓치지 않았으며,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기대한 것 이상의 반응을 얻고 있었다.
국내 TV광고 수익도 이미 2,400억원 확정하고 시작하는 터라, 어디에 내세워도 부끄럽지 않을 자랑스러운 성적표를 얻었다.
그러나 KI스튜디오는 요즘 분위기가 그리 썩 좋지 않았다.
"맨 프롬 콜롬비아?"
"네, 돌아온 13번 요원에서 타이틀을 그렇게 바꿨답니다."
"맨 프롬 콜롬비아면, 혹시 하수영제작자님 배역을 뜻해서 지은 타이틀인가?"
하수영의 배역이 콜롬비아 마약상이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CR필름 오피셜로는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한 타이틀이랍니다. 꼭 하수영 님 배역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던데요."
"아니긴 개뿔. 분명히 노린 거지. 아니, 세상에 어느 영화가 주연도 아니고 조연도 아니고 준조연 관련으로 타이틀을 지어? 말이 돼?"
KI스튜디오 고주환 대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배역 이름부터가 마음에 안 들어. 애초에 날 저격해서 '김주환' 마약상이라고 지은 게 틀림없어."
"에이, 설마 그럴 리가요."
"부활의 이순신 때문에 형우철 대표가 날 얼마나 질투했는데."
은근히 하수영을 위한 타이틀로 바꾼 게 기분 나쁜 것은 아니다.
하수영한테 잘 보이려고 필사적으로 아부하는 녀석들의 행태가 괘씸한 것이다.
"우리도 이순신 2에 하수영 제작자님을 출연시켜 드려야 했어."
"왜 우리한테 말씀을 안 하신 걸까요? 출연하고 싶으셨다면 적당한 배역을 만들어드렸을 텐데."
"드라마는 너무 긴 호흡이라서 출연하기 부담스러워서 그러신 거잖아요. 영화는 그에 비해서 호흡이 훨씬 짧고, 안 그래도 바쁘신 분인데."
"그럼 길지 않은 호흡으로 등장할 캐릭터를 우리가 만들었어야죠. 하수영 제작자님을 위해서."
"……."
"……."
그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KI스튜디오 임직원들은 지금 다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좋아, 드라마가 호흡이 길어서 문제라면…… 우리도 영화 하나 찍는다."
"우린 영화 촬영 경험 없는데요?"
"정태오 감독 섭외하고 전권 주면 되지."
정태오 감독.
그는 장효주의 소개로 하수영한테 30억 투자를 받아, 영화판 사상 최초로 2천만 관객 흥행을 한 감독이었다.
하수영이 미디어 시장에 최초로 투자한 감독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