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12화 (612/1,270)

프랜차이즈 갓 612화

153장 맨 프롬 콜롬비아 (3)

CR필름 임직원들은 서해호텔 연회장을 빌려서 진탕 마시고 놀았다.

연회장 마감 시간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서해호텔은 하수영 일행을 위해서 무제한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연회장은 새벽이 되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얼큰하게 술에 취해서 즐거워하던 형우철 대표는 불현듯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술이 확 깨는 느낌이 들었다.

"석만아. 석만아."

"왜요, 대표님?"

"저기, 저거. 누구야? 못 보던 얼굴인데?"

"신인 배우인가? 나도 첨 보는데. 와, 진짜 잘생기긴 했네요."

1년 365일 연예인들만 보면서 사는 최석만 총감독이 보기에도, 빨려들어 갈 것처럼 잘생긴 남자였다.

키와 비율은 말할 것도 없고, 피부는 백옥처럼 매끈했으며, 이목구비는 동서양의 장점만을 합쳐 놓은 듯이 완벽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생길 수가 있지, 하고 혼란이 들 정도로 완벽한 외모였다.

그는 혼자 연회장 뷔페를 돌고 있었다.

사방에서 그를 향해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것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주변이 나를 의식하고, 쳐다보고, 시선을 빼앗기는 건은 중력과도 같다는 듯이.

타고 난 미모를 지닌 자만이 몸에 배일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어? 효주가 다가가는데요?"

"둘이 이야기하네? 효주가 부른 사람인가?"

"와, 저렇게 둘을 세워놓으니 정말 그림의 한 쌍처럼 잘 어울……."

"쉿, 제작자님 들으면 너 어쩌려고 그래?"

"아차차, 퉤퉤퉤."

총감독은 기겁을 해서, 방금 자신이 입에 담은 말을 뱉는 시늉을 했다.

짧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장효주가 이쪽을 지나치자, 형우철 대표가 얼른 말을 걸었다.

"장효주, 장효주, 저기 저 엄청 잘생긴 남자는 누구야? 신인 배우인가?"

"아니, 대체 언제 왔대? 처음부터 있었으면 절대 저 존재감을 몰랐을 텐데."

"방금 왔대요. 밥 먹으러."

"바, 밥 먹으러?"

"네."

"둘이 친해? 어떻게 아는 사이야?"

장효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친한 건 아니고, 그렇게 잘 알지도 않아요. 그냥 전에 한 번 인사가볍게 한 게 전부죠."

"으응? 효주 씨가 부른 거 아니었어?"

"수영 씨 지인이에요."

"제, 제작자님 지인이라고?"

최석만 총감독은 술에 취해 얼굴이빨개진 채 얼빠진 표정을 보였다.

"역시, 통장이 잘생긴 만큼 얼굴이 잘생긴 친구를 옆에 두는군………."

"수영 씨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래요.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

"……."

최석만 감독은 순간 형우철 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기겁을 해서 낮게 말했다.

"안 됩니다, 대표님. 안 돼요, 형. 형, 안 돼? 알지?"

"나 아무 말도 안 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내가 모를 줄 알고? 지금 조은후 까고 그 자리에 저 친구 넣으려는 거잖아? 내가 형을 몰라? 일이 년 봐왔어?"

"야, 솔직히 저 비주얼이면 그냥 가만히 세워두기만 해도 연기가 된다. 알잖아?"

"효주 씨 비주얼에 안 밀릴 남배우 오랜만에 봐서 신난 건 알겠는데, 안 되는 건 안 돼, 형."

"안 될 이유는 대체 뭔데? 하수영제작자님 밑에서 일하는 친구면 상관없잖아? 설마 은후 소속사가 무서워서 그러냐?"

"이미 주연급 출연도 확정됐고 기사도 다 나갔는데 이제 와서 갈아치운다고? 평판도 생각해야지. 그리고 아무리 얼굴이 연기한다지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최석만은 술이 깬 얼굴로 열심히 설득했다.

"평생 연기 한 번 안 해본 친구를 주연으로 쓰겠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제발."

"……."

"절대 안 돼. 난 결사반대야."

"안 되겠어. 말이라도 해봐야지."

"혀, 형? 어디 가? 아니, 말이라도 해본다면서 찾아가는 곳은 왜 하수영 제작자님이야!"

찔러라도 보겠다면 방향이라도 제대로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최석만 감독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듯이 형우철 대표를 뒤따랐다.

하수영은 말을 듣고 단칼에 거절했다.

"안 됩니다. 이제 와서 비합리적인 이유로 주연을 바꿀 순 없어요. 시작부터 그런 불합리한 원한을 먹고 큰 나무가 과연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연기력이 너무 아까워서 그럽니다. 그럼 혹시 다른 배역이라도 맡길 순 없을까요?"

최석만은 속으로 펄쩍 뛰었다.

연기력이 아깝다니, 이게 무슨!

아무리 '얼굴 자체가 연기'라고 하지만, 너무한 표현 아닌가?

하수영은 그 말에는 흥미를 보였다.

"다른 배역이요?"

"네, 너무 아까운 비주얼입니다. 비중이 적어도 좋으니 꼭 출연시키고 싶습니다. 저 친구하고 한 번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그럼 마약상의 행동대장은 어떨까요?"

"행동대장! 오, 그거 좋습니다!"

형우철 대표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결사반대주의였던 최석만 감독도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저 비주얼이…… 잔혹한 콜롬비아마약상의 행동대장?'

머릿속에서 필름이 촤르륵 돌아간다.

초호화 크루즈선을 타고 상류층 바이어들과 마음껏 미팅하며, 제약회사와 종합병원을 위장용 사업으로 굴리는 한국계 콜롬비아 마약상.

언제나 그의 옆에서 과묵하게 경호하는,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남 행동대장.

노련하면서도 아름다운 카지노 딜러로 위장한 잠입 여형사(장효주)와 서로 주고받는 피의 격투.

'생기다 만 주연 남배우는 어디다가 넣지? 에이, 시나리오대로 대충가면 되겠지.'

"오, 정말 그렇네요. 행동대장으로 넣으면 정말 그림 제대로 나올 거 같습니다."

"그렇지? 굳이 말 많을 필요 없고 눈빛과 행동만으로도 연기가 될 테니까 말이야."

"저 친구, 특전사 최정예 비밀부대보다 더 빡센 부대 출신이니까 행동대장으로 딱일 겁니다. 못 다루는 무기가 없어요."

"오, 정말인가요? 이거 또 호재로군요."

"저렇게 보니, 말라 보이는 거지, 속은 꽉 찬 강철근육이에요. 세계 격투기 챔피언도 저 친구 앞에서는 3초 컷이에요."

그건 좀 과장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만큼 무술, 싸움 실력은 흠잡을 데가 없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로한 에릭입니다."

"로한 에릭…… 멋진 이름이군요."

하수영은 로한을 그 자리에 불렀다.

그는 음식이 수북이 쌓인 접시를, 다시 커다란 쟁반에 여러 개 올려놓은 채 다가왔다.

최석만 감독은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더 조각 같은 외모다.

수많은 미남 배우들을 봐왔지만, 이렇게 '잘생긴 존재'는 처음이었다.

사람이 정말 맞나 싶을 정도로.

"처음 뵙겠습니다. 영광입니다. 저는……."

형우철과 최석만이 횡설수설하듯이 섭외 희망을 피력했다.

끝까지 듣고 난 로한은 하수영을 바라봤고, 하수영이 끄덕이자 둘을 향해 대답했다.

"교관님의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교관님?"

"군대물이 아직 덜 빠져서 그렇게 부르는 겁니다. 캐릭터가 그렇거니 하고 넘어가세요."

로한은 끄덕이며 인사하고는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둘은 여전히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번 영화…… 진짜 대박 날 거 같다.'

'대박 나면 하수영 제작자님한테 넌지시 부탁해야지. 우리 회사도 투자 좀 해달라고.'

단순히 영화제작 투자를 받는 것을 넘어서서, KI스튜디오처럼 '수영미디어그룹'에 인수되는 것.

(정식 명칭은 아니다)

둘이 지금 당장 품은, 소박한 꿈이었다.

***

형우철은 다음 날 아침까지 술을 마셨다.

그래서 다음 날은 출근도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잤다.

하루가 더 지나서야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으으으… 하수영 배우님은 술도 정말 잘 드시는군."

사람들을 경악하게 할 정도로 많이 마셔댄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마셨으면서도 눈빛이나 발음에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이다.

보드카와 럼주를 물처럼 마시는 한국계 젊은 콜롬비아 마약상이라니.

나이가 너무 젊긴 하지만, 그런 것은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효주가 복덩이야. 역시 효주한테 시나리오를 주길 잘했어."

이 모든 게 장효주가 하수영을 물어온 덕분 아니던가?

혹시나 하수영과 연결될 가능성을 기대하고 섭외를 한 건 사실이지만, 기대 이상으로 너무 일이 잘 풀렸다.

이쯤 되면 부활의 이순신 제작진이 오히려 배가 아파하지 않을까?

하수영이 부활의 이순신에 출연하진 않았으니까.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주군.

"으, 으어어! 네, 형우철입니다! 전화 받았습니다, 하수영 제작자님!"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네,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혹시 지금 급하게 씬 하나 딸 수 있을까요?

"지금 씬을 딴다고요?"

형우철은 숙취가 확 달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 크랭크인에 들어가려면 한참 남았다.

스태프도 더 모아야 하고 무대와 세트, 소품도 갖춰야 한다.

아직 공백인 준조연, 단역도 모두 세팅을 해야 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씬 하나를 따자니.

-너무 아까운 기회라서 그렇습니다. 영화 초반에 최종보스 재벌 부회장 등장 씬으로 딱일 장면이 될 거 같은데, 기회가 사흘밖에 없어서요.

"어떤 겁니까?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게…….

설명을 다 듣고 난 형우철은 생각할 것도 없이 외쳤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장소와 시간만 찍어서 알려 주십시오!

-네. 그러죠.

전화를 끊자마자 그는 찬물에 연거푸 세수를 한 후, 최석만 감독한테 전화를 걸었다.

"석만아! 석만아! 지금 바로 촬영들어간다! 씬 하나만 따자!"

-형, 미쳤어요? 우리 아직 준비된 거 하나도 없는데?

"그래서 씬 하나만 딸 거야! 급해! 서둘러!"

***

중년 배우 배영한.

최종보스 재벌 부회장 역을 맡은 그는 부산으로 향하는 닥터헬기 안에서 내내 의아함을 품고 있었다.

정식 촬영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부랴부랴 긴급 촬영이라니.

대충 설명을 듣긴 했다.

영화 초반부에 나올, 자신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라고.

'사흘밖에 기회가 없다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것이다.

내심 염려스럽게도 했다.

스태프들도 아직 손발이 안 맞은 상태인데, 갑작스럽게 촬영을 한다고 좋은 장면이 나올까?

일정이 꼬일 뻔했지만, 퀸 스텔리 온 닥터헬기를 동원한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

스태프들도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하수영이라는 이름값 덕분인지, 다들 크게 불만은 없어 보였다.

"배영한 배우님 첫 등장씬 따러 가는 거라고?"

"왜 사흘밖에 시간이 없다는 거지?"

"무슨 좋은 무대를 구했는데, 그게 사흘 지나면 없어지는가 봐."

"그럼 납득."

"하수영 제작자님이 그렇게 급하게 서두르신 거 보면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무대일 거야."

"지금 우리 탄 이 헬기, 기체 가격만 1,400억 원인 건 알고 있어?"

"헉, 진짜?"

"배우 스태프 이동수단으로 이걸 동원할 정도면, 정말 급하면서도 좋은 기회라는 뜻이야. 놓칠 수 없지."

"이거 제대로 긴장해야겠네."

마침내 예정지였던 부산이 나타났다.

그들은 당연히 부산 어디쯤에 내릴 줄 알았다.

하지만 헬기들은 해안을 지나쳐 수평선을 향해 계속해서 날아갔다.

당황해서 전화를 걸려던 배영한은 그때 스태프들의 외침을 들었다.

"미, 미친! 사흘이면 없어진다는 촬영 무대가 바로 저거였어?"

"우리 저기서 촬영하는 거야? 배영한 배우님 저기서 첫등장 하는 거야?"

배영한은 뭔가 해서 얼른 창밖을 내다보고는 그만 입을 틀어막았다.

수면 위에 일사불란한 진형을 그리며 정선해 있는 수십 대의 순양함.

그 중심에 당당히 평행을 그리며 나란히 있는 두 척의 거대한 항공모함.

바로 훈련사열 중인 미 해군 함대였다.

그제야 스태프들은 잊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하수영 제작자님, 그러고 보니 미군 개인 VIP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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