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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611화 (611/1,270)

프랜차이즈 갓 611화

153장 맨 프롬 콜롬비아 (2)

오디션 분위기가 변했다.

하수영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다들 그렇게 앉아 있지 마시고, 여기 오셔서 함께 이야기합시다. 어차피 다 함께 촬영하실 건데 한 번에 큰 그림 듣고 가는 게 낫잖아요?"

그렇게 해서 오디션장에 있던 이들이 모두 하수영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옹기종기 앉은 것이다.

"프리덤, 참치집에 전화해서 오늘 새벽 들어온 참치 세 마리만 가져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형우철 대표, 감독 및 스태프, 그리고 조은후를 포함한 출연자들은 하수영의 참치 해체 솜씨까지 구경하게 되었다.

게임 아이템 같은 커다란 칼을 능숙하게 써는 모습에, 하나같이 입을 쩍 벌렸다.

"칼 다루는 솜씨가 아주……."

"콜롬비아 마약상은 역시 저 정도는 기본으로 할 수 있는 거겠죠?"

"무술 지도는 따로 필요가 없겠는데요? 중심부터 동작까지, 한두 해무술 하신 분이 아닙니다."

무술감독의 감탄이 섞인 평이었다.

그렇게 스태프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고급 참치회와 음료수를 곁들인 채 '마약상의 방향성' 이야기를 들었다.

길고 긴 이야기였지만, 지루함을 느끼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의 이야기는 사람의 혼을 정신없이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한다, 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과 성질이 달랐다.

"……이 정도는 해줘야, 아, 얘가 남미에서 마약 좀 팔다가 효심 때문에 한국에 온 마약상이구나, 하고 관객들이 납득할 겁니다."

"저희는 이미 완벽하게 납득되었습니다. 관객들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겠지요."

"지금 제작비가 80억이라고 했나요?"

"총 추정소요치입니다. 아직 외부 투자가 전부 완료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총 2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왔습니다."

아직 제작만 확정되었을 뿐, 촬영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으니.

"그럼 외부 투자는 이제 중지하셔도 됩니다. 제가 전부 책임지죠."

형우철 대표는 심장을 입 밖으로 꺼낼 듯한 기세로 기뻐했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직접 확답을 받으니 마음이 사르르 놓였다.

"마약상은 이 정도면 재정 설정 개연성은 된 거 같은데…… 주연은 왜 이 모양이에요?"

그 말에 조은후가 저도 모르게 철렁했다.

주연배우가 왜 이 모양이냐고 자신을 탓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전직 국정원 요원이 겨우 얼마 되지 않는 전 동료 몇몇의 지원과 권총 한 자루 달랑 들고 복수를 한다고요? 그리고 성공한다고요?"

"그것이……."

내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조은후는 지옥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끄집어 올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정도로는 중간보스 마약상도 못 당합니다. 또 최종보스 포스는 왜 이렇게 약합니까? 관객들이 보면 마약상이 더 일찍 나온 최종보스인 줄 알겠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전체 밸런스를 맞춰야지요. 주연 전직 요원도 배경빨 장비빨 강화하고, 최종보스인 재벌 2세 부회장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음……."

하수영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이 보였다.

다들 숨을 죽인 채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떨어질지를 기대했다.

특히 최종보스 역할을 맡은 50세 베테랑 남자 배우는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그는 뒤늦게 연락을 받고 급히 오디션장으로 달려온 상태였다.

'설마 내 배역을 흡수해 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막말로 형우철 대표와 감독은 아예 마약상을 최종보스로 해버릴까, 하는 표정이었으니.

그렇게 되면 자신의 역할은 아예 없어지거나, 최소한 축소되고 만다.

어떤 식이든 자신에게는 손해였다.

그렇다고 불만을 말할 수도 없으니, 벙어리 냉가슴 끙끙 앓는 수밖에.

"아예 마약상을 최종보스로 하는 게 어떨까요?"

형우철 대표가 조심스럽게 제안했고, 다들 공감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재벌2세 부회장 역 중년 배우는 속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아뇨, 일개 준조연이 시나리오 자체를 건드리는 것은 달갑지 않아요. 영화 망한다는 징조입니다."

중년 배우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한 것은 시나리오를 건드린 게 아니고?

하지만 다른 이들의 하수영의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맞아. 시나리오 자체를 건드리진 않으셨지.'

'개연성 오류라고 설정만 손보신 거지, 시나리오를 건드린 건 하나도 없으시잖아?'

'이러니까 부활의 이순신이 그렇게 초대박이 날 수밖에 없었구나.'

'우리 영화판에도 이런 투자제작자가 필요하다.'

'아아, 우리 CR필름도 정녕 KI스튜디오의 뒤를 따르는 건가?'

"대본에 보면, 최종보스인 재벌2세 부회장의 저택은 한남동 쓰리룸이잖아요?"

"쓰, 쓰리룸이요? 그래도 나름 단독 대저택인데……."

"건축면적 4만 제곱미터도 안 되는 3층이니까 빌딩이니까 쓰리룸이죠.

재벌한테 이 정도는 그냥 쓰리룸 수준입니다. 다들 현실을 모르시네."

"……."

"본가 배경을 좀 큰 곳으로 잡는 게 어떨까요?"

"아! 유원지나 미술관, 공원 같은 곳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런 데는 딱 봐도 집이 아니라 유원지, 미술과 같은 티가 나서 안됩니다."

저렴한 섭외비용으로 집이 이렇게 크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정말 집이야? 라는 느낌을 주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실제로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대저택을 섭외하던가,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집을 섭외해야 하는데…… 아니, 잠깐. 여기, 최종보스 재벌 부회장이 왜 마약상 외국인 부하들을 만날 때마다 교외별장을 이용하죠?"

그게 비용이 적게 드니까.

이제 이런 말은 더 이상 나올 면목조차 없었다.

"세상에 무서울 게 전혀 없는 인물이 뭐하러 교외별장에서 부하의 직원들을 만나서 지시합니까? 무슨 범죄모의 해요? 이 사람에게는 그냥 사업일 뿐이에요, 사업."

"그렇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외국인 말단 직원들이니까 미국이 적당하겠네요. 아! 마침 제가 뉴욕에 좀 높은 빌딩 한 채 있으니까 그걸 장소로 쓰면 좋을 거 같습니다."

해외 촬영비가 늘어나겠지만, 이미 비용 따위는 화제에서 탈락한 지 오래였다.

'뉴욕에 있는 좀 높은 빌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이 자리에서 장효주뿐이었지만.

"뉴욕 빌딩 나오는 김에 진짜 본가는 미국에 있다고 하면 한남동 쓰리 룸 개연성이 어느 정도 상쇄가 될 거 같네요."

최종보스 재벌 부회장 역을 맡은 중년 배우는 어느덧 걱정을 깡그리 잊었다.

그는 이미 정신없이 하수영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가면 자신의 배역이 정말 호화롭고 멋지게 그려질 게 분명했다.

"프리덤, 미국에 뭐 적당한 주택없냐? 급한 대로 하나 사서 쓰자."

-뉴욕 근처에 총 8채의 적당한 매물이 있습니다. 기준치를 가까스로 충족한 매물입니다만, 마스터의 마음에 드실지는 의문입니다.

몇몇은 의아함을 품었다.

'왜 마스터라고 하지? 주인님이라고 안 하고?'

-그중 가장 넓은 저택이 1,200만 달러입니다. 사진을 띄우겠습니다.

프리덤은 노트북에 연결된 빔 프로 젝터를 통해, 모두가 볼 수 있게 사진을 띄웠다.

한눈에 보기에도 공원을 연상케 하는 대저택.

땅이 좁은 한국, 특히 서울에서는 재벌도 가질 수 없는 저택이었다.

"너무 작은데. 섬 주택 매물 하나 나온 건 없어?"

-아쉽게도 없습니다. 다만 방안이 있습니다.

"뭔데?"

-나노소프트 전대 CEO 발머 스틴이 최근에 사들인 별장이 있습니다. 섬 전체를 저택으로 꾸며놓았습니다.

"오, 그래?"

-전용기 활주로와 격납고, 그리고 F1 레이싱 경주를 즐길 수 있는 주행도로도 있습니다.

"나중에 정중히 부탁해 봐야겠다.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흔쾌히 해줄 겁니다. 되팔라고 해도 기뻐하면서 할 걸요.

형우철 대표는 눈물이 왈칵할 것 같아서 입을 가렸다.

우리 영화, 대체 어느 정도까지 호화스러워지려는 것일까?

그뿐만 아니라 스태프, 출연자들도 이미 눈에 감동이 그렁그렁했다.

"적당하네. 그래요, 최종보스 재벌부회장인데 미국에 저 정도 본가는 있어야 관객들이 납득해요."

"과연 저런 마약상을 수족으로 부릴 만하다, 라는 설득력을 주는 거군요."

"그렇죠."

"그런데 나노소프트 전 CEO가 최근에 마련한 별장을 쉽게 빌려줄까요?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애착이 깊을 텐데요."

조은후가 궁금하다는 듯이 질문했고, 조용한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뭔가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에 조은후는 말을 잘못했나 하고 당황했다.

매니저가 얼른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은후가 연기만 죽자고 파느라고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몰라요. 제가 나중에 단단히 세상 물정 좀 교육시키겠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자신이 말을 잘못했음을 깨달은 조은후는 일단 사과부터 하고 봤다.

하수영은 처음부터 개의치 않았고, 다른 이들도 시선을 거두었다.

그제야 조은후가 매니저에게 조용히 물었다.

"형, 왜 그래? 내가 틀린 말 했어?"

"너, 하 제작자님하고 발머 스틴이 무슨 사이인지 몰라?"

"친분 있는 건 알겠는데, 아끼는 별장을 촬영소로 빌려주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잖아."

"발머 스턴 그 사람, 북미 수영레스토랑 총지배인 같은 사람이야."

"뭐?"

"하 제작자님 덕분에 나노소프트가 얼마나 많은 돈을 쓸어 담고 있는 데, 겨우 별장 하나 협조 안 해주겠냐?"

"그, 그 정도야?"

"세상 물정 공부 좀 해라. 나노소프트가 수영라면으로만 올리는 매출이 한 달에 80억 불 정도 된다고."

"와, 진짜?"

조은후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까맣게 몰랐다.

"……이 정도면 될 거 같네요."

길고 긴 '오디션'이 끝났다.

하지만 누구도 지루하다는 불평을 품지 않았다.

참치는 맛있었고, 이야기는 재미있었으며, 영화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말단 스태프들 또한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을지, 벌써부터 설레고 있었다.

"자, 그럼 우리 잘해 봐요. 저도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하수영 제작자님."

"그냥 촬영장에서는 수영 씨라고 불러주세요. 카메라 앞에서 저는 준 조연 출연자일 뿐이니까요."

"그, 그래도 어떻게 그런……."

"원칙은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촬영장이 잡음 없이 돌아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벌써 저녁이네요. 다들 식사 안하셨으면 제가 밥 한 끼 사도 될까요?"

스태프들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가, 형우철 대표의 눈치를 보고 수그러들었다가, 다시 하수영의 말에 기뻐했다.

"다들 기뻐하는 걸 보니 맛있는 거 대접해 드려야겠네. 프리덤, 서해호텔에 예약 좀 해놔. 연회장 하나 치워놓으라고."

-이미 예약해 두었습니다. 호텔 리무진도 불러두었습니다.

"잘했어. 자, 다들 갑시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할 일이 더 남아 있었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퇴근 분위기.

조은후 매니저도 신이 나서 재촉했다.

"은후야, 우리도 얼른 가자. 아, 마음 같아서는 대표님도 부르고 싶은데 그건 너무 눈치 보이겠지?"

"근데 형, 제작자님 연기는 안 봐도 괜찮은 거예요? 그래도 마약상오디션인데……."

"이미 영혼의 아이덴티티 자체가 콜롬비아 마약상이신데, 뭘 더 볼필요 있냐?"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뭐가?"

"나도 형하고 같은 생각이 들어서 물어본 건데, 나만 그리 생각한 게 아니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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