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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609화 (609/1,270)

프랜차이즈 갓 609화

152장 나는 폰이다(4)

15조 원을 제시했을 때, 정서진은 두말하지 않고 상대가 응할 줄 알았다.

심지어 핵심 인력도 포기하는 조건이었다.

핵심 인력도 필요 없다.

특허와 저작재산권, 일반 인력, 사업장만 넘기면 된다.

델지전자는 지난 누적 적자도 모두 떨치고, 15조 원으로 새 사업을 시작하면 된다.

당연히 받을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거절이 돌아왔을 때 정서진은 충격이 컸다.

"진심이십니까?"

"네, 유감입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윗분의 의지가 워낙 확고하셔서……."

"더 큰 돈을 부른 협상 대상자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절대 아닙니다. 그 점은 제 명예를 걸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협상 담당자로 나온 나이 든 이사는 아들뻘인 정서진 앞에서 연신 굽실거렸다.

"특허와 인력까지 다 정리하면 향후 그룹의 먹거리 미래산업 유지가 버거울 거라는 판단을 하신 모양입니다."

"……."

그럴 거면 그냥 계속 밀어붙여야지, 이렇게 턱없이 철수를 왜 해?

정서진은 그 말이 굴뚝처럼 입안을 맴돌았으나,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더블로 올려 버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자존심이 팍 상했다.

15조 원만 해도 정말 큰마음 먹고 부른 것인데.

돈이야 넘쳐나지만, 전문경영인 입장에서 허투루 쓸 수는 없다.

이미 과분할 금액을 불렀는데, 더 올려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20조? 30조?

차라리 그 돈으로 바닥부터 시작하는 게 낫지.

초반 시간을 절약한다고 해도, 너무 과한 낭비가 아닌가.

"음…… 알겠습니다. 26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좋은 기회가 생겨서 폰 사업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이렇게 유감스러운 결과가 됐군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룹 수뇌부는 저희 회사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나 봅니다."

상대의 궁핍한 부분을 찔러 자존심을 건드릴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강점을 위압적으로 드러내서 압박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나이 든 이사는 과연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흠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보신주의에 물든 인물이긴 하지만, 눈치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치만큼은 출중했기에 그렇게 사업을 말아먹고도 임원 자리를 거듭 유지하는 것이리라.

"그 말씀은 혹시 저희 회사에 반도 체 부품 공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그럴 리가요. 저희 회사가 만들어서 판매하는 반도체는 없습니다."

서진파운드리는 어디까지나 남의 반도체를 돈 받고 만들어주는 일을 할 뿐이다.

'협력업체'인 대만의 TSMC를 통해 판매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해 주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위탁생산이다.

서진파운드리가 만든 반도체 부품중 상당수는 델지전자에도 들어가지만, 그것은 서진파운드리에 위탁한 팹리스 업체에서 델지전자와 거래를 한 것이지, 서진파운드리와 계약을 한 게 아니다.

'원청업체를 은근히 움직여 우리 델지전자 물량을 조절하겠다는 뜻인가?'

나이 든 이사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델지전자가 노트북 완제품 제조에 쓰는 마이크론 메모리칩물량을 줄인다던가.

서진파운드리가 마이크론과 의견을 조율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니.

'에휴, 내가 그래서 서진파운드리에 꼭 폰 사업을 통매각해야 한다고 말씀드렸거늘.'

나이 든 임원은 일이 이렇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일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더 적극적으로 오너를 설득할 자신은 없었다.

그렇다가 눈 밖에 나기라도 하면 더 곤란하니.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살펴 들어가십시오."

정서진은 델지전자 이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그래서 웃음이 났다.

"마이크론, AMD, 윈텔은 모두 우리 회사 소중한 고객인데,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해."

그의 입장에서, 상대의 상상력은 어이가 없었다.

반도체 회사들에 압력을 넣어 델지 전자에 물량을 팔지 못하게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회사들은 서 진파운드리의 고객이다.

소중한 고객의 영업 활동에 어찌 손해를 종용할 수 있는가?

그것도 자신의 감정 때문에.

아무리 서진파운드리가 슈퍼을이라고 해도, 서비스 마인드를 잊어서는 안 된다.

"폰 시장을 장악해서 프리덤을 독점으로 가져오려고 했는데, 일이 참아쉽게 됐어."

정말 몇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였다.

바닥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면, 과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정말 아쉽게 됐습니다.

프리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깊은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나도 참 안타깝다.

-반도체 고객사들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인데 말입니다.

반도체 고객사들은 설계도를 주고, 서진파운드리는 그 설계대로 반도체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반도체 '고객회사'들인 것이다.

하지만 서진파운드리가 스마트폰을 만든다면?

그들로부터 다시 반도체 부품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고객이 된다.

반도체 파운드리업체인 동시에, 전자기기 완제품을 만드는 고객이 된다.

윈텔, ADM, 마이크론 등 주력 고객들은 스마트폰을 만들지 않으니 상관없다.

애초에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은, '반도체 설계'까지 하는 종합반도체사업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델지그룹 마음이 이미 확고한 거 같은데, 방법이 있겠어?"

-그렇다고 프리덤폰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음……."

-저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

-한 마리 토끼를 잡는 데 두 마리 사자를 내보낸 게 잘못한 것일까?

프리덤은 어느 때보다 고뇌했다.

실비아컴퍼니, 서진파운드리, 모두 델지전자 모바일사업부 인수에 애를 먹고 있으니.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힘을 하나로 합쳐야 할 때.

프리덤은 이제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비아컴퍼니는 상장기업, 창업주파벌의 지분 장악력은 낮다.

과반의 지분이 일반 시장에 풀려있으니.

프리덤은 설계부터 자신이 장악하게 될 폰 단말기에 다른 이들의 지배력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마스터는 거의 대부분의 사업에서 본인이 소유권을 100% 쥔다.

금맥을 타인과 나누는 이유는, 채굴에 필요한 장비 등을 혼자 조달할 수 없어서다.

전부 혼자 할 수 있다면, 위험이 없다면, 남과 나누지 않고 독식하는 게 정답 아닌가.

***

오랜만에 본가에서 휴식을 취한 정서진은 청담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휴민트타워, 실비아컴퍼니가 입주해 있는 빌딩이었다.

'실비아와 손을 잡으십시오.'

프리덤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비아컴퍼니는 동업자이면서, 잠재적인 경쟁자였다.

정서진은 프리덤 소유권이 자신의 오너인 하수영에게 있음을 안다.

'실비아 창업 멤버들이 그런 대박사업을 순순히 놓으려고 하지 않을 텐데…….'

"어서 오십시오. 대표이사 오철현입니다."

"서진파운드리 대표이사 정서진입니다."

박덕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서진은 복도를 걷는 내내 사원들의 의아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파운드리 황제가 여기는 무슨 일로?'

'우리 회사는 반도체 생산하고는 관련이 없는데?'

'설마 우리 회사에서도 팹리스에 진출하는 건가?'

'경영진이 하드웨어 사업에 눈독을 들인다는 말은 들었는데…….'

아직까지 프리덤폰 사업은 사내에서도 엄중한 기밀이었다.

"실비아컴퍼니, 귀사에서 델지전자 모바일사업 인수에 관심이 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이 바닥에 비밀은 없군요."

오철현은 '그게 벌써?'라며 흠칫 놀랐지만, 표정 관리를 유지했다.

"우리 역시 얼마 전에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으니까요."

"얼마 전이라면, 혹시……?"

"15조 원을 제시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특허와 IP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였지요."

오철현은 화들짝 놀랐다.

차이나 머니, 오일 머니 등등 여러 용의자를 상상했는데, 그게 서진파운드리였어?

"같이 합시다. 스마트폰 사업."

"……."

"프리덤폰은 결국 프리덤 주인에게 넘어오는 게 순리에 맞지 않겠습니까?"

오철현은 정서진의 연락을 받고, 박덕준이 한 말을 떠올렸다.

-그쪽에서 끼고 싶다면 우리는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야. 프리덤이 결국 누구 건지 잊어서는 안돼.

실톡의 하위 기능이지만, 이미 사용자들은 실톡을 프리덤의 하위 기능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실비아컴퍼니는 결국 프리덤 서비스를 유통해 주는 도매업자일 뿐이다.

언제든 하수영이 원하면 프리덤 서비스는 실톡에서 빠진다.

오철현은 카드를 빼 들었다.

'고마워, 윤 이사. 자네가 델지 임원들과 술독에 빠져 산 덕분에 할말이 있게 됐어.'

"우리는 지금 델지와 괜찮은 협상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거기에 참여를 하시겠다고요?"

"폰 사업에 실비아컴퍼니의 자본을 투입하시려고요? 그럼 일부 대주주와 대다수의 얼굴도 모르는 투자자들과 지분,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뜻이군요."

"지분 독식을 바라십니까?"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업입니다.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닙니다. 왜 남과 나눠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만……."

"계약 기간이 남은 건 알고 있습니다. 헤슬라 자동차 자율운행 등 이런저런 사업 확장에서 늘 애쓰시는 것도 압니다."

정서진 혼자 있는 서진파운드리에서 그런 영업 능력은 반드시 필요했다.

"저와 같이하시죠. 전 실비아컴퍼니에서 오직 일곱분만 필요로 합니다."

오철현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7명.

실비아에서 델지 폰 사업 인수를 추진하는 임원들의 숫자였다.

'어떻게 그걸 정확히 알고?'

'정말 7명인가? 표정이 확 달라지네.'

오철현은 자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얼마든지요."

양해를 구한 오철현은 박덕준에게 모든 상황을 보고했다.

이윽고 박덕준이 직접 내려왔고,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그림을 말씀해 주십시오."

"프리덤폰 제조사는 실비아그룹 관계사로 하되, 여러분과 저만 투자에 참여하는 게 어떻습니까? 저는 돈은 충분합니다."

"경영권은 그럼……."

"저는 파운드리만 해도 벅차서요. 실비아에 위임하죠."

"하수영 회장님과 스타일이 비슷하시군요."

"그분에게 회사를 배웠습니다."

박덕준은 마음을 열기로 했다.

"델지와 진척이 있었습니다. 특허를 넘겨받는 대신, 폰 제조 관련 특허 일체의 라이선스를 보장받기로 했습니다."

"아, 그런 방법이."

"무조건 다 가지려고만 하면 안 될때도 있는 법이죠. 영업 담당 이사 한 명이 술 마시느라고 고생 좀 했습니다."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5,000억 원 정도에 인수를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정말 파격적인 가격이군요."

"대신 델지가 원하는 개발인력은 무조건 양보해야 합니다. 특허 로열티 역시 별도입니다."

"그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조건입니다."

"신설법인은 겉으로는 실비아그룹관계사로 했으면 합니다. 회사 주가와 주주들 이미지도 고려를 해야 합니다."

"지분만 확실하다면 간판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하루 만에 대략적인 대합의가 이뤄졌다.

프리덤폰 제조법인을 만들고, 박덕준 외 6인과 서진파운드리만 참여한다.

법인은 그룹 관계사 형태로 유지.

지분은 각자 투자하는 자본만큼 하되, 서진파운드리가 최소 8할 이상.

그 대신 시장 개척 및 회사 운영등 일체는 실비아컴퍼니 담당이자, 책임이다.

***

박덕준 회장 등 창업 멤버들은 그룹 지분을 담보로 삼아 대출하는 등 현금을 있는 대로 긁어모았다.

델지전자와 물밑으로 계약을 확정했고, 법인 신설도 마쳤다.

그렇게 '프리덤인더스트리'가 탄생했고, 프리덤은 처음 보는 종류의 전자회로의 신경 엉킴 현상을 경험했다.

'프리덤인더스트리…… 내 이름을 딴 회사에서 내 이름을 딴 폰이 만들어진다…….'

이게 감동과 흡사하다는 것을, 딥러닝을 통해 인지할 수 있었다.

'이제 이용자들에게 내 농장의 특산작물 맞춤형 광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남의 폰에 얹혀사는 입장이라 시도 할 수 없었던 맞춤형 광고.

그 제한이 풀릴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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