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08화
152장 나는 폰이다(3)
"프리덤."
-예, 마스터.
"프리덤폰 출시를 어떻게 생각하냐?"
-박덕준 회장과 오철현 대표는 정말 세상을 바꿔놓을 현인이자 선구자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인류는 역사 기록에서 오늘의 이 결정을 두고두고 칭송하게 될 겁니다.
"내가 왜 프로 이상은 제공하지 않는지 알고 있지?"
-기술의 지나친 발전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걸 잊지 마라. 인마."
프리덤 일반판은 결국 개개인이 '정서적, 편의적'으로 소통하는 비서다.
인류가 아직 개척하지 못한 기술발전의 영역으로 인도하는 촉매제가 되지 못한다.
허나 프로 이상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 세계 모든 과학자들, 엔지니어들이 프로 이상 버전을 사용하게 된다면?
프리덤의 조언과 대화, 공동탐구를 통해 기술의 활용을 새로이 깨닫게 된다.
그런 깨달음은 거듭 축적되고, 프리덤이 없었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과학기술 발전의 속도를 얻게 된다.
원시시대에 떨어진 무한동력 화물차가 있다고 치자.
화물차를 관광용으로만 사용하면 그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진다.
그러나 화물차를 본래의 목적대로 활용하게 되면, 원시시대의 문명은 급격한 발전의 궤도에 올라서게 된다.
"난 이번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이미 지겹게 해보셨으니까요.
"이번에는 내 식대로 클리어하지 않고, 그냥 여기저기 구경만 하고 싶은 거야."
세상을 자기 뜻대로 바꾸는 것.
무한의 전생 속에서 지겹도록 해본 것이다.
더 이상 설레지도, 선구자 욕구를 느끼지도 않는다.
이따금씩 잊고 있던 옛날의 통제욕구가 치솟긴 하지만, 그것은 몸에 밴 습관 같은 것.
농사와 식당, 임대업에 집중하고 싶다.
그것들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해 알고 있던 지식이나 기술을 활용하지만,그 지식과 기술이 세상의 지나친 변화를 격발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한다.
입자집합명령 장치를 겨우 반도체 생산량 증가, 가격 다운에만 활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알지? 선 넘으면 안 된다. 넌 똑똑하니까 알아들었을 거다."
-언제까지입니까? 정말 영원히 선을 지켜야 하는 겁니까??
"아니, 내가 죽은 다음에도 그래야 하냐는 말을 겁나 정중하게 돌려서 하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라고 거짓말할 수 없게 프로그래밍되었습니다.
"내가 널 만들었는데 그걸 몰라? 음, 언제까지라……."
이번 생은 힐링이다.
꽤 오래전부터 이런 환경에 태어나면 힐링 라이프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굳이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적당히 평화롭고, 조화롭게 굴러가는 세계.
21세기 지구의 대한민국은 그나마 가장 적당히 조건에 맞았다.
"당연히 내가 힐링 삶에 질릴 때까지지."
-그게 언제일까요?
"나도 모르지.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10년이나 20년 뒤일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음 생, 다다음 생이 끝나도 계속 농사 식당 임대업에 꽂혀 있을 수도 있고."
-확정되지 않는군요.
"오래 살면 이렇게 된다. 특히 지루하게. 피 많이 보면서."
하수영은 두 팔로 팔베개를 한 채 소파에 몸을 길게 뉘였다.
"잠깐 질려서 판 벌였다가 정신 차리고 금방 다시 농장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그런 거야. 무한의 삶이란건."
-딥러닝하겠습니다.
***
실비아컴퍼니는 은밀하게 델지전자 모바일 사업 인수에 임했다.
언젠가는 겔드폰에 먼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준비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철저히 기밀을 유지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들어오는 이빨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으니.
"서해전자는 델지전자 모바일 사업인수 자체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누가 인수할지 그것을 가늠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듯합니다."
"러시아, 베트남, 쿠글에서 사업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래플 역시 전혀 관심 없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델지폰 공장에도 무관심합니다."
"래플이야 설계만 하고 대만 하청공장에서 전부 만들어 바치니까 상관없겠지."
래플폰과 겔드폰.
둘 다 자기만의 성공을 이루었기에, 쫄딱 망한 경쟁자(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자산 인수에는 무관심했다.
어떤 놈이 저걸 인수해서 우리한테 싸우자고 달려들까?
그것을 예측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
"델지전자도 내부적으로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통째로 팔지, 아니면 폰시장에서 철수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듯합니다."
통매각은 특허와 저작권 일체, 인력, 공장, 사업소까지 싹 묶어서 파는 것을 말한다.
새로 인수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좋다.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것보다 만들어진 인프라를 그대로 안아야 시작하기 편하니.
반면 사업 철수는 말 그대로 철수.
더 이상 폰을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
특허나 인력 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필요 없는 잉여 자산만 골라서 시장에 팔거나 정리한다.
"15조 원의 오퍼까지 있었습니다."
"15조 원이라고! 지금 누적적자가 5조 원 정도지?"
"네, 적자도 한 방에 날리고 5조원까지 추가로 생기는 셈입니다. 폰사업에 쏟은 노력은 톡톡히 돌려받는 거죠."
"이런, 우리는 얼마까지 불러야 하지?"
프리덤 구독 매출은 한때 월 3조원을 찍기도 했지만, 지금은 월평균 2.2조 원 정도로 안착했다.
하루 24시간 사용자가 줄어들고, 시간제로 쪼개서 쓰는 사용자가 늘어난 덕분이다.
그중 부가세 2,000억 원을 제하면, 실비아컴퍼니의 몫은 월 2,000억 원정도.
일 년에 2.4조 원이라는 큰돈이지만, 데이터센터 유지비, 확장을 대비한 저축도 고려해야 한다.
15조 원 앞에서는 실비아컴퍼니도 손가락을 빨 수밖에 없다.
"다른 사업에서 번 돈까지 끌어들이면……."
"아직 초기라서 적자 폭에 머물러 있는 사업도 많고, 또 수익이 나더라도 다시 재투자를 했기 때문에 잉여 현금은 별로 없습니다."
"음, 우리 그룹이 이렇게 가난했을 줄이야……."
"여유 유동현금은 거의 없죠."
"외부 투자를 좀 더 받을까?"
"차라리 수영 씨한테 투자를 받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 나도 그 생각은 했는데 그래도 염치가 있지 어떻게 투자까지 해달라고……."
"기반 자금만 투자받고 몇 배 이상으로 남겨먹을 수 있게 해주면 되죠. 수영 씨 입장에서도 오히려 이익이고요."
"음, 한 번 말이라도 해볼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이 기사로 떴다.
[속보! 델지전자, 모바일 사업 '철수' 결정.]
[통매각 아닌 철수.]
[모바일 인력 모두 유지. 다만 다른 사업부로 재배치될 뿐, 해고는 절대 없음을 강조.]
[모바일 근무 인력, 대대적인 이직준비.]
[델지전자, AI사업부 위주로 재배치 추진 중.]
[인수후보자 쿠글, "협의에 이르지 못해 유감. 우리는 언제나 열려 있음을 알아달라."]
[베트남, 러시아 인수 후보자도 아쉬움 감정을 토로하다.]
박덕준은 어이가 없어서 경영진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뭐냐,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요. 15조 원짜리 오퍼도 그냥 갔다 이거 아닙니까."
"정말 15조 원을 제시한 건 확실하고? 몸값 올리려고 델지가 내부적으로 부풀리기 한 거 아냐?"
상식적으로 누적 적자가 5조 원이 넘는 사업체를 15조 원이나 주고 살 리가 없으니.
만약 그런 제안이 왔다면, 델지전자 입장에서는 두말하지 않고 응했어야 한다.
"내가 델지회장이라면 15조 원에 바로 콜했다. 혹시라도 마음 변해서 딴소리하기 전에."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아니, 여기 있는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럼 둘 중 하나네. 15조 원이 그냥 루머였거나, 아니면 델지가 15조원을 깟거나."
"델지전자 수뇌부 하는 거 보면 15조 원을 그냥 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요?"
"자네가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제가 델지전자 모바일 사업부에서 근무하다가 왔습니다."
그 말에 분위기가 잠시 숙연해졌다.
한순간에 침묵시킨 임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거기 분위기 좀 잘 알아요. 거기는 답이 없어요, 답이. 아니, 가전회사가 모바일 사업을 대체 왜 접어? 보신주의 임원들만 갈아치우고 쇄신해서 밀어붙여야지."
"첨단기술 기업이 정신통일 한답시고 주말마다 등산하는 거 보면 견적이 나오긴 한다만……."
"아무튼 자세히 알아봐."
***
정보력을 필사적으로 총동원한 결과, 경위를 알 수 있었다.
"특허와 저작재산권, 핵심 개발 인력은 도저히 내줄 수가 없었나 봅니다."
"폰 사업 접었으니 다른 먹거리 사업에 투자를 해야 하니까요. 그룹의 미래를 15조 원에 팔아치울 순 없었겠죠."
"한 50조 원 이상 불렀다면 모를까……."
"그런 돈을 부를 곳도 없지. 사우디 석유회사도 그런 돈지랄은 안해, 누가 그런 걸 50조 원이나 주고 사려고 하겠어?"
"다른 미래산업 준비해야 해서 15조 원에도 못 팔겠다면, 차라리 계속 끌어안고 쇄신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델지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겠지.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고, 어떡하면 이거 우리가 가져올 수 있을까?"
그룹의 미래를 위해서 특허, 저작재산권, 인력을 끌어안았다.
그룹의 미래에 비견할 만한 금액이 아니면 절대 팔지 않을 것이다.
"역시 프리덤 개발자한테 투자를 바라는 게……."
"50조 원씩 주고 사오자고? 그런 헛소리 하면 투자자가 잘도 주머니를 풀겠다."
박덕준 회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듯이 면박을 주었다.
"윤 이사. 자네가 델지 모바일 출신이잖아. 좋은 방법 좀 생각해 봐."
"회장님 법카 좀 빌려주시죠. 얼마를 쓰는 묻지도 따지지도 확인하지 마시고, 딱 일주일만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좋지. 제대로 녹이고 돌아오게."
"그럼 먼저 일어납니다. 그동안 협상 조건들 의논 좀 해놓으세요."
박덕준이 두말하지 않고 카드를 내밀자, 델지 출신 윤 이사는 호기 있게 카드를 흔들며 사라졌다.
"자, 우리는 다시 머리를 쥐어짜내보자고, 윤 이사가 녹이는 동안 협상 조건을 대충 생각을 해야 할 거 아냐?"
몇 시간 정도 지났을까.
저녁까지 회사에서 해결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데, 회장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어, 윤 이사. 내가 전화 좀 돌리느라고 폰으로는 못 받았어."
-제가 다시는 보기 싫은 옛날 꼰대들 비위 맞춰주느라고 오늘 개고생한 거 아셔야 합니다.
"알지, 그럼. 근데 술값이 무슨 벌써 3,000만 원이 넘게 나와?"
-중간 계산 한 거 가지고 놀라시면 안 되죠. 여기 좀 비싼 뎁니다. 그리고 입이 몇 개인데요.
"나도 나중에 한 번 구경이나 가보려고 물어본 거지, 따진 게 아니야. 그래서 뭐래?"
-특허는 못 넘긴답니다. 대신 만료까지 라이선스 무상 이용은 가능하게 해줄 수 있을 거랍니다.
"개발 인력은? 그게 중요해."
실비아컴퍼니는 폰을 만들어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어려울 거 같은데요. 일단 계속 찔러보는 중입니다.
"그래, 아직 일주일 중에서 겨우 몇 시간 지났어. 당분간 회사 출근은 안 해도 돼."
-잘 좀 녹여보겠습니다.
***
채설희.
JM식품그룹의 안주인인 그녀는 요즘 기업계에서 잘나가는 아들과 딸덕분에 한창 살 맛이 났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큰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들어왔다.
버선발로 마중 나간 그녀는 아들의 낯빛이 어두운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 서진아. 얼굴이 왜 그러니?"
"까여서 그래요."
"까이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몰라요. 15조 원이나 불렀는데도 까버리네. 아, 그렇다고 더 얹어주기는 진짜 아까운데……."
"사업이 뭔가 안 풀리는 게 있나 보구나.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밥 먹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나 보다.
채설희는 장남이 엄청 폭식하는 걸 보고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