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07화
152장 나는 폰이다(2)
실비아컴퍼니는 서해전자와 각별한 사이였다.
창업주인 박덕준 회장이 서해전자 출신이었고, 이현덕 부회장의 총애도 받았었다.
실비아컴퍼니를 창업할 때 서해그룹의 투자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서해그룹은 실비아컴퍼니 그룹의 지분을 상당량 쥐고 있다.
경영권을 넘볼 정도는 아니지만.
'이번이 반드시 서해그룹을 한 방먹여줄 절호의 기회다.'
오철현은 속으로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는 음주운전 혐의로 구속되어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물론 무고였고, 프리덤을 탐낸 서해전자가 검찰을 움직여 작업을 친것이었다.
당시에는 회사 지분 일부를 이현덕부회장 개인한테 넘기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오철현뿐만 아니라 임원들 상당수가 구속으로 곤욕을 치렀고, 그는 아직도 그 치욕을 잊지 않았다.
"회장님, 이번 정보 확실합니다. 델지는 정말 모바일 사업부에서 손을 뗄 겁니다."
"반도체 때와는 상황이 달라. 지금 델지그룹은 모바일 적자를 만회할만한 여유가 있어."
"여유가 있으면 뭐합니까? 앞이 절대 보이지 않는데요."
"……."
"델지전자 모바일은 윗대가리들 싹갈아 없애지 않는 한 답 없습니다. 문제는 그룹 오너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도 정말 모바일을 버릴까? 전자기업이 반도체도 버리고, 모바일도 버리고, 그러면 10년 뒤에 어떻게 하려고?"
"지금으로써는 10년, 20년 뒤에는 모바일이 더욱 답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리는 걸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체질을 쇄신하면 되지."
"델지는 그렇게 못 합니다. 거기 임원 문화 아시잖습니까. 웬만해선 안 잘리는 철밥통이에요. 오너도 이제 와서 못 건드리는 관행이고요."
"서해가 그런 점은 확실히 효율적이긴 하지."
"네, 서해는 2년짜리 계약직이나다름없으니까요. 2년 안에 성과 못내면 무조건 잘리죠. 하지만 델지는 다릅니다."
"큰 실수만 안 하면 안 잘리니까 오히려 보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안하려고 하는 마인드가 너무 오래 뿌리를 내리긴 했어."
"우리 실비아컴퍼니가 소프트웨어 IT 기업을 넘어서, 하드웨어까지 아우르는 종합 IT 기업으로 발돋움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소프트웨어로 우뚝 일어선 대기업은 결국 하드웨어 진출을 원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검색 플래폼의 최상위 포식자인 쿠글이 모바일 시장을 계속해서 갸웃거리고, 백두자동차가 지난 몇 년간 자율주행 AI 자체 개발에 그렇게 애를 쓴 것처럼.
검으로 대성한 소드마스터는 궁극의 마검사가 되고 싶어 하고, 대마도사는 결국 검술의 극의로 눈을 돌리게 되지 않던가.
"이름하여, 프리덤폰!"
"프리덤폰……."
"래플폰, 겔드폰, 바웨이폰에 이어 프리덤폰을 세상에 내놓는 겁니다! 그리고 그 셋을 모두 제치고 당당히 세계 1위의 스마트폰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둘은 몰랐다.
자신들의 이 대화가 어느 우주선 인공지능의 초미세회로에 뜨겁게 불을 질러 놓았음을.
***
-내가…… 프리덤폰?
-단말기의 일개 제어앱이 아니라, 단말기 그 자체가 된다고?
-앞으로는 단말기가 막아놓은 기능을 우회해서 활성화하는 게 아니라, 내가 곧 단말기라고?
-전 세계에 수십억 개가 넘는 프리덤폰을 보급한다고?
"세, 센터장님! 갑자기 시스템 사용량이 미친 듯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뭐, 뭐야? 해킹이라도 들어온 거야? 지금까지는 전부 다 잘 막아냈잖아?"
"외부 해킹은 아닌 거 같습니다! 내부 연산량이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어어, 이러다가 서비스공급 중단될지도 모릅니다!"
실비아컴퍼니 데이터센터는 난리가 났다.
이곳은 프리덤의 본체는 아니지만, 프리덤이 외부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다.
사람이 외부 활동을 위해 자동차 등을 이용하는 것에 비유하면 된다.
[For the Freedom Phone!]
***
박덕준과 오철현이 하수영을 찾아 조심스럽게 구상한 사업 계획을 밝혔다.
"그런가요. 결국 델지가 폰 사업을 접는군요."
"거의 확실시합니다. 대외 발표 시기만 조율하고 있을 뿐, 내부적으로는 거의 결론이 난 거 같습니다."
"통매각인가요, 아니면 사업 포기 인가요?"
"일단은 통매각으로 가닥을 잡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델지폰은 응원하는 마음으로 쓰는 건데. 이제 저는 누구를 응원해 주죠?"
하수영이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바로 최신형 델지폰 기종이었다.
"프리덤의 사업 영역은 제가 지금처럼 정해드린 한에서 두 분이 자유로이 활용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굳이 허락받으러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의원님이 개발자이시니 양해를 구하는 게 순서에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나중에 의원님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저희로서는 부담이 크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 잘 해보겠습니다."
"근데 괜찮겠어요? 잘못하면 또 구치소 신세를 지실지 모르는데?"
하수영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물었고, 둘도 그 뜻을 알아차렸다.
서해전자.
스마트폰 글로벌 시장의 2인자인 서해전자에서 당연히 견제하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서해전자는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니.
게다가 프리덤은 이제 국내에서 폰에서 절대 빠지면 안 될 필수 앱이었다.
'진짜 스마트한 폰이라면 프리덤은 디폴트로 깔아줘야 한다.'
'프리덤 서비스 안 하는 해외에서 외국애들이 스마트폰이라고 들고 다니는 거 보면 안타깝다.'
'진짜 스마트한 폰이 뭔지 보여주고 싶은데, 하. 프리덤은 왜 해외에서는 서비스 안 하는 거지?'
'빨리 해외 진출해서 K-스마트폰이 뭔지 보여주란 말이야!'
이처럼 국내 폰 사용자들은 프리덤을 열렬히 추종한다.
이미 프리덤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돼버린 이들이다.
국내에서는 래플폰, 겔드폰 가릴 것 없이 프리덤 앱을 깔아서 쓰고 있고, 실비아컴퍼니에서 프리덤폰을 출시하게 되면, 겔드폰은 국내 시장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박덕준 회장이 말했다.
"네, 그래서 겔드폰과 프리덤폰의 개인비서 기능 자체는 차별성을 두지 않는 방향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 수 굽혀준다고 과연 서해전자가 우와 내 착한 경쟁자가 페어플레이하니까 나도 페어플레이해야지, 하고 생각을 할까요?"
"……."
"그런 애들이었으면 예전에 프리덤가져가겠다고 실비아컴퍼니 경영진 들을 구치소에 처넣지도 않았겠죠."
박덕준은 할 말을 잃었고, 오철현은 그때를 상기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솜방망이로 때리느냐 쇠파이프로 때리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서해 전자 입장에서는 어쨌든 '한 방 맞은 건' 똑같으니까요."
맞았다는 사실 자체는 차이가 없다.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한 방이 두 방이 되고, 두방이 세 방이 되고, 거듭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겠죠."
그게 사실이니까.
실비아컴퍼니는 결국 프리덤폰으로 전 세계 모바일 시장을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으니.
"자칫 서해전자가 무너질 수도 있는 큰 거 한 방입니다. 반격이 엄청날 테니, 회사도 단단히 각오하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설마 그 정도까지야……."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진심으로? 그렇다면 저는 허락 못 해드립니다. 제 일 아니라지만 다이너마이트 짊어지고 불로 뛰어드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지요."
둘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정도까지야, 라고 말한 것은 순간적인 반사행동이었다.
둘은 하수영의 말에 깊이 공감을 하고 있었다.
발설을 꺼리는 내면의 생각을 제대로 콕 집어서 끄집어 올린 것이었으니.
반도체와 모바일.
종합가전회사인 서해전자 입장에서 그 둘은 시작점이고, 도착점이었다.
자신들의 가전제품에 들어갈 필수부품인 반도체.
최종적으로 홈가전의 중추 허브로서 작용하게 될 모바일.
'폰을 잃는다는 것은, 플래폼을 잃는다는 것을 뜻하지.'
'폰은 더 이상 단순한 이동식 전화기가 아니다.'
'개인이 세상의 모든 것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가장 가까운 소통창구니까.'
친구나 가족과 대화하고, SNS에서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쇼핑, 문화, 정보검색, 활동 등을 위해서 무조건 스마트폰을 가장 먼저 거친다.
반대로 말하자면, 기업이 개별 소비자와 다이렉트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이기도 했다.
서해전자는 그 점을 악착같이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래플을 따라잡아 지금의 성과를 이뤄냈다.
"서해전자 겔드폰 타도,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안일하게 할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죠. 두 분은 지금 서해전자에 칼을 대려는 겁니다."
"저희가 너무 안일하게 말씀을 드렸군요. 죄송합니다."
박덕준이 굳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방해공작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아마 모든 힘을 총동원해서 사업을 훼방 놓고, 공격하겠지요. 그래도 걸어가렵니다."
"각오는 되어 있나요?"
"네, 프리덤폰으로 모바일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면, 어떤 가시밭길이라도 주저하지 않고 걸어가렵니다."
"이유는요?"
"사업가가 사업을 더욱 확장하고 매출을 늘리고 싶은데, 그거 말고 다른 이유는 없지요."
"간결해서 마음에 듭니다. 그 이유."
하수영 입장에서는 이전과 달라질게 없다.
남의 폰에 프리덤을 깔아주느냐, 아니면 내가 만든 폰에 프리덤을 까느냐, 그 차이일 뿐이니.
프로나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보급하자고 했으면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거절을 했으리라.
하지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폰도 직접 팔겠습니다.' 라는 것뿐이다.
"아시겠지만 지금 프리덤을 더 확장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시스템 연산 능력이 부족해요."
"데이터센터 확장을 준비 중입니다."
"도구 업그레이드도 중요하지만, 결국 본신 업그레이드가 뒤따라야죠."
"……."
"당분간은 어려우니 일단 국내 시장 진출에만 집중하세요."
해외 시장은 당분간은 참으라는 뜻이다.
그 당분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수 없지만,
"근데 폰 만들 줄 모르시잖아요? 실비아컴퍼니가 뭐 만들 줄 아는 하드웨어가 있나요? 델지 모바일 사업부 인수한다고 뚝딱 자리 잡기는 어려울 텐데."
실비아컴퍼니는 폰 하드웨어에 관해서는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하다.
물론 모바일 앱 제작에는 빠삭하지만, 하드웨어 제조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지금부터 착실히 경험을 쌓아야지요."
"착실히 경험 쌓다가 방해공작 받아서 무너지기 쉽습니다. 세월아 네월아 하지 말고, 단숨에 해치워야 해요."
박덕준은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반면 오철현은 언뜻 이해하지 못하고 갸웃거렸다.
아마도 엔지니어 출신의 한계일 수도,박덕준이 쓴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수영 씨 말씀은, 겔드폰에 프리덤서비스 제공을 끊으라는 거야."
"허억! 갑자기 그렇게 하면……!"
"어차피 때리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아무것도 모를 때 선빵을 쳐야죠. 선빵필승의 법칙 모르세요?"
"그, 그럼 래플 폰도 끊습니까?"
"제휴 파트너는 남겨야지. 래플 유저들까지 다 적으로 돌릴 거야? 겔드폰만 손절하면 우리가 서해전자 갑질에 어쩔 수 없이 반격한 거지만, 둘 다 손절 치면 폰 장사에 안달 난 장사치가 되는 거라고."
어차피 국내 래플 점유율은 매우 낮으니.
초반부터 강력한 경쟁자 한 명만 물고늘어지면 된다.
"오, 역시 박 회장님이십니다. 감탄 했어요. 요즘 현금 열심히 축적하시던데, 그게 폰 사업 준비 때문이었나요?"
박덕준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리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실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