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05화
151장 펜의 것은 펜에게로 (3)
'하루 30억 원이라고? 미쳤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VIP실에 입원한다고 반드시 낫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스틱스강의 기적이라니, 개소리도 적당히 해야 들어줄 만하지. 그냥 우연이 여러 번 겹친 거 가지고 다들 호들갑을 떨기는.'
하태석의 장남, 하기범은 수영병원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못하는 이들이 꾸며낸 미몽이라고 생각했다.
절대 죽지 않는 병원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냥 곧 죽을 환자를 귀신같이 퇴원시켜서 그런 것뿐이지.'
퇴원한 직후에 죽은 환자 이야기는 여럿 들었다.
뻔한 것 아니겠는가.
병원의 기적을 포장하기 위해서 곧 죽을 환자를 재빨리 퇴원시킨 것.
물론 수영병원이 국내 제일 수준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의료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현대에서 큰 의미는 없다는 게 하기범의 생각이었다.
하루 30억 원이나 되는 입원료를 내가면서까지 입원할 필요는 절대 없는,
"김상범 주필은 어떻게 됐습니까?"
"김 주필이 일을 벌인 건 아니고, 그 친구도 당한 모양입니다."
"그러니 머리 깨져서 저리 중환자 실에 누워 있는 거겠죠. 누가 그런 짓을 했답니까?"
"일단 검찰이 수사 중입니다. 아무 래도 연락이 안 되는 도문규 기자가 의심이 갑니다."
"그게 누굽니까?"
"김 주필이 오른팔처럼 거느리고 있던 친구입니다. 우리 회사 베테랑 기자인데,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홍일일보는 기자들을 고를 때 무엇보다 사주 일가에 대한 충성심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채용 단계부터 싹이 노란 놈들은 쳐내고,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시키면서 점차적으로 사상을 주입한다.
웬만한 이익 제시로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회사가 얼마나 집요하고 처절하게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태석 회장의 알몸 비디오를 캡처해서 홍일일보 신문에 몰래 싣는다?
100억 정도는, 그리고 선금으로 받아야 실행에 옮길 것이다.
더 이상 이 나라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 테니까.
"적어도 도문규 기자 한 명이 한 짓은 아닙니다. 도 기자 혼자서는 그만 한 일을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어디서 찍힌 겁니까?"
"회장님 시내 개인 별장에서 찍힌 거 같습니다."
"……."
사진인지, 동영상 캡처인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태였다.
"구도와 각도를 보면 꽤 근접에서 찍힌 거 같은데, 아무래도 함께 놀았던 이들을 상대로 조사해야 할 거 같습니다."
"언제 찍은 건지는 알고요?"
그게 문제였다.
정확히 언제, 몇 시인지 신문에 나온 사진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하태석 회장 외에는 모두 얼굴에 모자이크가 되어 있었고.
"인터넷에 사진 퍼지는 건 다 잡았나요?"
"네, 그 부분은 깨끗하게 해결했습니다. 포털사이트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어서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미 퍼진 것은 어쩔 수 없다.
개인 톡 메시지로 공유하는 것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대대적인 공유와 대놓고 퍼지는 것은 막을 수 있으리라.
그래도 망신살이 제대로 뻗친 것은 변하지 않지만,
"천하의 홍일일보 회장이 알몸으로 술집년들과 놀아나는 사진이 홍일일보에 떡하니 올라왔으니…… 이래서야 이제 아버지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회장 업무를 볼 수 있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저희 잘못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아버지가 깨어나면 그 앞에 가서 하세요."
하기범은 내심 부친이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품었다.
그렇다면 홍일일보라는 거대한 언론재벌사가 오롯한 자신의 것이 된다.
역시 권력이라는 것은 차세대보다는 현직이 더 좋지 않겠는가?
'정말 이대로만 된다면…… 담당교수하고 이야기를 한번 해봐야겠는데. 잘만 하면…….'
수영병원 입원을 거부한 것은 그런 이유도 있었다.
기적을 믿지 않지만, 그게 사실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니.
하루에 30억씩 써가면서 그럴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검찰에 이야기해서 철저히 조사하세요. 참, 그리고 이번 일 맡은 부장검사를 내가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인쇄 배포 보안 시스템도 전면 검토하세요."
"네, 상무님."
아직은 상무.
하지만 하기범은 마치 회장이라도 된 것처럼 임원들을 상대로 지시를 내렸다.
임원들 역시 그런 태도에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허리를 깊이 숙여 받들었다.
'회장님 연세에 뇌출혈은 너무 위험해.'
'깨어나더라도 업무 복귀는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언제 회복이 될지 알 수 없다. 회복이 되더라도 이미 기력은 훨씬 더 떨어져 있을 테니…….'
'세대교체가 우리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
원래는 적어도 10년, 20년은 지나야 세대교체가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 법이니.
하태석은 관에 들어갈 때까지 회사를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그리고 임원들은 변하는 상황에 재빨리 자신들을 맞추려고 했다.
***
수영레스토랑과 하수영을 음해하는 기사들은 어느 순간부터 찾아보기 힘들었다.
홍일일보 회장의 알몸 스캔들 기사가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똥이 된장을 탓해도 유분수지.
-지들 회장 저러고 놀아나는 동안, 그렇게 열심히 남 탓을 하고 다니셨나?
-3대 일간지의 권위 따위는 그냥 똥에 비벼서 똥개밥으로 줘버리셨네.
-니네 벌레다리 라면 기사는 그만 써라. 이제 지겹지도 않냐?
냉소적인 반응이 줄을 이었고, 홍일일보는 슬그머니 전선에서 빠졌으며, 뒤따랐던 다른 중소형 언론사들도 허겁지겁 기사를 내리고 있었다.
기사 자체를 아예 삭제해 버렸기에, 이제는 검색으로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온라인 디지털 세상에서 잊힐권리 따위는 없다.
-음해기사 전부를 기록, 저장했습니다. 작성 날짜, 작성자, 언론사 등 관련 정보도 함께 기록했습니다.
"모든 우대서비스에서 제외시켜 버려."
대표적인 것으로 수영병원 진료비지원이 있다.
수영병원은 병원비가 환자의 가처분 소득의 19%를 넘어가면, 초과분은 얼마가 됐든 간에 재단에서 부담한다.
음해기사에 가담했던 이들은 수영병원에 입원하더라도 그런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입원 자체를 막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므로 손댈 수 없지만.
-프리덤 구독 계약 갱신을 거절할까요?
"놔둬. 그럼 우리 무기를 적한테 대놓고 알려주는 꼴이잖아."
대놓고 프리덤 구독을 끊어버리면, 저들이 눈치를 채게 된다.
"프리덤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리면 안 돼. 서해전자가 이현덕 부회장 욕하는 사람들 찾아다니면서 핸드폰 안 파는 거 봤냐?"
-알겠습니다. 대신 앞으로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개인비서 기능만 제공하겠습니다. 가급적 울화통이 터지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래야지. 그쪽에서 알아서 서비스 해지하도록 불량하게 대해."
프리덤은 개인비서이지만, 사용자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외로워하는 사용자와 밤새 이야기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것은 엄연히 말해서 약관에 규정되지 않은 과잉 서비스였다.
예를 들어…….
'프리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프리덤은 사실에 근거하여 대답을 한다.
거기서 파생된 각종 흥미로운 질문이나 이야깃거리를 함께 제공하면서 사용자의 지적 호기심 충족을 양껏 돕는다.
하지만 음해에 가담한 언론기자들은 이제 이런 대답만 듣게 될 것이다.
'만유인력을 깨달았습니다.'
'……그게 끝이야? 더 없어?'
'네, 그게 전부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질문하면 더 자세히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했었잖아?'
'이게 전부입니다.'
이렇게 칼같이 단답으로만 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약관 위배는 아니므로.
약관을 지키는 선에서 상대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어, '이 돈 주고 쓸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이쪽이 아니라 저쪽에서 스스로 갱신을 포기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마스터, 서비스 상태를 계속 유지 하면서 그들의 약점을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야, 그건 개인정보보호 위반이잖아. 농부 하수영은 법을 철저히 지킨다고."
-홍일일보 신문 내용을 조작한 것은 엄연한 디지털 불법 접근…….
"자력구제, 정당방위 모르냐? 어차피 법원은 이거 해결 안 해줬을 테니까 내가 내 힘으로 마무리 지은 거야."
-논리가 이상합니다. 모순이 보입니다.
"아무튼 가급적 지킬 수 있으면 지키는 게 맞지. 또 세상 내 마음대로 뒤집어엎을 거 아니면 말이야."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의 여유입니까?
"이번 생은 절대 안 뒤집을 건데? 그냥 농사와 식당 장사로 마음의 힐링을 얻다가 마치는 게 내 목표라고."
사회에 관해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한 번 손을 댄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번이 되고, 그게 결국 세상을 발아래 두게 되고……
무한전생의 삶을 살면서 그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농부로 남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는 철저히 농부로 남아야 한다.
-마스터, 속보입니다.
"무슨 속보?"
-홍일일보 하태석 회장이 사망했습니다.
"……저런."
하수영은 잠시 동안 눈을 감았다.
"그러게 조금만 착하게 살지. 보아 하니 명부 차사들이 쇠바늘 철조망으로 온몸을 꽁꽁 묶어서 끌고 갈팔자 같던데."
-홍일일보 전산실 시스템 공격 계획은 어떻게 할까요?
"언제 그런 걸 준비했어? 난 지시한 적 없는데."
-마스터가 지시할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말 한마디면 즉각 실행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본의 아니게 원수지간이 됐지만 초상집과 이렇게 얽히면 농작물에 부정 탈까 봐 무섭구나. 일단은 놔둬. 쟤들도 지금 나 공격 안 하고 있지?"
-네, 음해 기사는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당분간 지켜보자. 더 때릴 맛도 안 나네. 좀 이 악물면서 버티고 바락바락 대들고 그래야 하는데, 무슨 잽 한 방에 떡실신이 돼버렸대."
***
하태석 회장의 장례식은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러졌다.
3대 언론재벌 회장의 죽음이다 보니, 사회 각계층에서 유명한 인사들이 조문을 왔다.
홍일일보는 물론이고, 국내 언론사들은 앞을 다투어 하태석 회장의 죽음을 추모했다.
하수영도 장례식장에 갔다.
조문을 하지는 않고, 장례식장 입구 밖을 조용히 배회했다.
다른 이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낀 채로.
혼자는 아니고, 왕세경 부이사장과 함께였다.
-마스터, 조문을 할 게 아니면 왜 오신 겁니까?
"졸지에 원한 관계 됐는데 뭐하러 조문을 하냐. 내가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야."
-전 마스터가 조문 행위로서 오히려 홍일일보를 더욱 조롱할 줄 알았습니다.
"무서워서 짖지도 못하는 개들을 더 도발해서 무슨 재미가 있다고. 그냥 오랜만에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왔다."
-무슨 구경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때였다.
건장한 남자들한테 들린 관이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었다.
하태석 회장의 영정 사진이 가장 먼저 앞을 나서며 리무진 운구차를 향한다.
하수영은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서 통찰안을 발동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는 하태석 회장의 영혼이 보였다.
'네놈! 네놈 때문에 내가 죽었어!'
'네놈 죽는 거 끝까지 지켜보려고 악귀가 돼서까지 이승에 남았다! 오늘 이제 여한이 없다! 꺄하하하하!'
'영원히 고통받아라, 하태석!'
무수한 망혼들이 하태석을 물고 늘어진 채 괴롭히고 있었다.
하태석은 그들에게 물어뜯겨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관을 따라 끌려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온통 쇠바늘이 박힌 철조망을 든 명부 차사들이 대기하듯이 따르고 있었다.
왕세경은 그 광경을 보고 부르르떨었다.
"참 끔찍하군. 저렇게 지독하게 끌려가는 모습은 처음 봤어."
원래 왕세경은 병원을 벗어나면 혼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
하지만 워낙 원념이 짙게 쌓인 광경이기에, 그 제약을 뚫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왕세경이 인간을 벗어났기에 가능한 것.
"저들이 전부 하 회장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인가?"
"그럴 리가요. 혼을 저렇게 이승에 오래 남겨두지 않습니다. 명부 차사들이 얼마나 빠릿빠릿하게 일하는데요."
"그럼?"
"혼이 남긴 미련 같은 겁니다. 자기가 여전히 생전의 본인이라고 믿고 있는, 음과 양의 무수한 결합으로 구성된 사념이죠. 영혼의 데이터라고 보셔도 되고요."
어느덧 원혼들의 모습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망혼을 구성한 정보들이 흩어지며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그제야 명부 차사들은 철조망으로 하태석 회장의 혼을 칭칭 묶었다.
온몸을 파고드는 날카로움에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응? 지금 저승차사가 절 본 거 같은데요?"
"자네를 왜 쳐다봐?"
"근데 왠지 낯이 익네요. 아, 벌써 사라져 버렸네. 가까이 가서 아는 척 말이나 걸어볼까 했는데."
"이만 돌아가세나. 병원을 20분이나 벗어나 있었더니 기분이 좋지가 않아."
"헉헉…… 큰일 날 뻔했어요. 하마터면 눈이 딱 마주쳐 가지고."
"대왕님 말씀 잊었어? 절대 성주신 황제와 눈이 마주쳐서는 안 돼."
"멀리 떨어진 병원이라서 안심하고 출장 왔는데 왜 여기서 맞닥뜨리는 거예요?"
차사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하태석을 데리고 명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