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04화 (604/1,270)

프랜차이즈 갓 604화

151장 펜의 것은 펜에게로 (2)

'이대로 가면 김상범 선배가 날 죽이려고 들 텐데, 회사도 마찬가지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하수영한테 일가족이 전부 죽을 뻔한 위기를 벗어나니, 이제 새로운 걱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래도 성의껏 수행했는데, 자그마한 보상이라도 주어지지 않을까?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지금으로써는…….'

그는 하수영의 눈치를 살폈다.

보호장치 역할을 해줄 이는 하수영뿐이었다.

그런 눈치를 알아차린 하수영이 피식 웃었다.

"하여튼 염치없기는, 버러지들이 원래 다 그렇지. 안 그래?"

"회, 회장님. 살려만 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발……."

"날 건드린 건 이걸로 끝내겠다고 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전 죽습니다!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될 겁니다!"

"혼자 죽겠나, 일족이 다 같이 죽겠나?"

하수영은 손을 뻗어 인터폰을 눌렀다.

기다렸다는 듯이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나온다.

-예, 회장님.

"김 실장, 감시는 잘 하고 있나?"

-물론입니다. 도 기자 처와 아이들, 그리고 노부모와 장인장모도 철통같이 감시 중입니다.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바로 청소할 수 있습니다.

청소.

그 단어에 도문규는 사시나무 떨듯이 몸이 떨리며, 온몸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자신을 24시간 감시하는 줄은 알았지만, 가족들까지 실시간 감시 중이었을 줄이야.

하수영은 도문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외로운 게 좋나, 다 함께가 좋나?"

정신이 번쩍 드는 것만 같았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미친 듯이 살길을 찾아 헤매지 않았던가.

잘했다는 한 마디에 그저 공포심이 눈 녹듯이 없어져, 그에게 무심코 기대고 싶어 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던 것.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는 안다.

하지만 굳어버린 혀가 쉽사리 내뱉어주지 않는다.

"김 실장, 도 기자가 외로운 게 싫은가 보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죄송했습니다! 회장님! 용서해 주십시오!"

그 순간, 도문규는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치며 바닥에 엎드렸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시는 회장님 앞에 얼씬거리지 않겠습니다. 죄송했습니다, 정말!"

"김 실장, 잠시 멈춰."

-네, 회장님.

그 짧은 문답이, 도문규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도 기자."

"네! 회장님!"

"자네가 어떻게 행동하든, 자네 자유다. 선택이고, 그리고 결과는 자네가 받게 될 거다."

"죽을 때까지 명심하겠습니다!"

"잘 살게."

하수영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난 도문규는 그제야 장효주를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긴장했으면, 지금까지 그녀가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녀는 다리를 꼬고 앉은 채 태연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장효주는 알고 있었구나. 회장님이 어떤 사람인 것을…….'

그런데 스캔들 따위로 뒤흔들었으니,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흔들림 없는 태연한 표정을 보니, 장효주도 절대 보통 여배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김 실장은 누구예요?"

"합성 음성입니다.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실 프리덤이 맞연기를 해준 것이다.

"수영 씨. 정말 어디서 마약 팔고 사람 묻고 그랬던 거 아니죠?"

"최근 22년간은 그런 적 없습니다."

"이건 메소드 연기를 넘어섰어요. 그냥 마약상 그 자체 같아요. 표정 눈빛이 특히…… 어휴, 이걸 카메라로 찍어서 우리 감독님 보여드려야 하는데."

"나중에 오디션 볼 때 직접 보라고 하세요."

"어, 그럼 진짜 하는 거죠?"

"우리 KI스튜디오에서 제작하겠다고 하면 오디션 정도는 볼 용의가 있습니다. 출연한다고는 장담 못 합니다."

"에이, 남자가 왜 그렇게 자꾸 빼고 그래요. 자꾸 나 매달리게 할 거예요?"

"효주 씨도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매달려 봅니까?"

하수영은 도문규가 작성한 기사 내용을 확인했다.

김상범의 이름으로 작성된 기사는 캡처나 내용 설명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언론재벌의 질펀한 일탈!]

"근데 그거 정말 홍일일보 회장 불륜 비디오예요? 그런 걸 진짜 용케 구했네요. 김 주필이란 사람은 대체 뭔 깡으로 그런 걸 몰래 찍은 거 죠?"

"절대 깨지지 않을 든든한 보험을 하나 들어두고 싶었던 거겠죠.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하수영은 타이핑으로 프리덤한테 지시를 내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 보험이 이제 자기를 죽이겠지만요."

"수영 씨가 생각보다 냉정하게 쳐내서 조금 놀랐어요. 그래도 약간은 봐줄 줄 알았거든요. 원체 착한 분이잖아요."

"저는 착하게 대해줘도 되는 사람한테만 착하게 굽니다."

"그럼 오늘은 나한테 착하게 대해줄래요?"

"이번 생은 여유로운 싱글을 즐기고 싶네요."

"수영 씨 같은 사람이 독신으로 지내는 건 죄를 짓는 거라고요."

"저 아직 이십 대 초반인데요."

프리덤이 실행을 완료했다는 보고를 띄웠다.

이제 홍일일보는 사주의 날것 추태를 스스로 세상에 퍼뜨릴 것이다.

김상범과 도문규는 배반자로 찍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고.

그들이 안타깝지는 않다.

펜의 힘을 멋대로 남용해서 무고한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이들이니.

괘씸하다는 이유로 기사를 휘갈겨 사업을 망하게 하고, 스스로 목숨까지 끊게 된 이들만 두 자릿수에 달하지만, 그들은 정작 기억조차 못 한다.

그런 이들에게 베풀 자비는 없다.

***

새벽 7시.

홍일일보 하태석 회장은 내연녀의 집에서 곤히 자고 있다가, 요란하게 진동하는 전화벨 소리에 선잠이 깼다.

눈을 뜬 30대 젊은 내연녀가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급한 일 아니에요?"

"병욱이가 이 시간에 전화할 놈이 아닌데……."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전화를 받자 다급한 이병욱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오늘 조간지 2, 3면 인쇄가, 인쇄가!

"무슨 일이야? 인쇄가 뭐 잘못됐어?"

-회, 회장님 약주하실 때 얼굴 사진을 쓴 기사인데, 그 내용이 참으로 참담합니다!

"내 얼굴? 약주? 기사? 참담? 그게 무슨 말이야?"

하태석 회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늘 발행된 조간지에 자기 얼굴이 나왔다니?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던 것이다.

"너, 똑바로 이야기해. 무슨 상황이냐, 지금?"

-그게…….

"처맞고 싶냐? 똑바로 제대로 말안 해?"

-회장님께서 안가에서 아가씨들 불러서 노시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그게 너무 적나라하게 여러 장이 실렸고, 또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비판하는 기사가 붙었습니다.

하태석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날 까는 사진과 기사가 실렸다?"

-예.

"내 회사에서 발행하는 조간지에 그런 기사가 실렸다? 그것도 2, 3면에?"

-예, 회장님…….

"X발, 말 같은 소리를 처해라! 데스크 놈들은 대체 뭐한 거냐! 김 주필이는 그런 첩자질도 제대로 커트못 하고 뭐한 거냐!"

-기, 김상범 주필 이름으로 실린 기사입니다!

"뭐라고?"

두개골 속의 혈관들이 다닥다닥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몇 초 동안 굳어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신문 가지고 여기로 튀어와."

-네! 지금 바로 앞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잠시 후 집 밖에서 무한대기 중이던 이병욱 실장이 들어왔다.

신문을 펼치고 내용을 확인하는 하태석 회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물들었다.

"이, 이 X발…… 개병신 같은…… 김상범이 그놈 지금 어딨어?"

"연락이 안 됩니다! 폰이 꺼져 있습니다!"

"잠적이냐?"

"아직 모릅니다만, 그럴 가능성도…… 김상범 주필이 아니고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인쇄 전 최종 검토권을 가진 인물중 하나이니.

물론 교차 검토를 하긴 하지만, 매일 쉬지 않고 찍어내는 신문이다.

몇십 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김상범 주필이 작정하고 작업을 했다면 이런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김상범이 그놈 찾아내. 찾아내서 내 앞으로 조용히 끌고 와."

"네, 회장님."

"이거…… 인쇄소 한 군데에서만 퍼진 거냐? 아니면……."

"전국의 모든 인쇄소에서 똑같이 찍혀 나왔습니다. 작정하고 벌인 일입니다."

"작정했으니까 이런 사진도 따고기사도 썼겠지. 병신 같은 소리 그만 처해라."

하태석은 스마트폰을 열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대검 소속 부장검사였다.

"어, 차 부장. 이른 아침에 미안한데, 내가 워낙 급해서 말이야."

-아닙니다. 회장님. 말씀하십시오.

잠에서 깬 목소리지만, 상대는 한껏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우리 회사에 김상범 주필이라고, 기억하지?"

-그럼요. 그 친구는 왜 그러십니까?

"털어. 사돈의 팔촌까지 죄다 탈탈 털어서 약점 될 만한 거 다 긁어서 나한테 가져오게."

-알겠습니다.

"미안하이, 나중에 이병욱 실장이 설명할 거고, 자네도 이해할 거야."

하태석은 핏발이 선 눈으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다시금 신문을 살폈다.

"회수는?"

"이미 50% 이상은 급히 회수하거나 배포를 중지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촬영본이……."

"포털에 연락해서 죄다 막아. 싹다 고소 처리해서 퍼지지 못하게 눌러."

"그러고 있는 중입니다."

일단 이를 악물고 초동조치는 했다.

하지만 마음이 풀릴 리가 있나.

선명하게 나온 자신의 얼굴과 알몸.

그리고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여자들.

언론재벌 회장의 일탈을 거리낌 없이 꾸짖으며 비아냥거리는 문장 하나하나가 뇌혈관을 확장시킨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이 개 같은 자식아! 일 처리를 대체 어떻게 한 거냐!"

벌떡 일어난 그는 무릎을 꿇고 조아린 이병욱 실장을 사정없이 폭행했다.

한참 실컷 두들겨 패던 중,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으억, 으어억……."

그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흰자가 뒤집힌 채 뒤로 넘어졌다.

"오, 오빠! 회장님! 안 돼!"

"회장님! 회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기겁한 내연녀가 얼른 다가와서 그를 살폈고, 이병욱은 화들짝 놀라서 119에 연락했다.

***

하태석 회장은 전국적인 망신을 떨쳤다.

전국의 모든 인쇄소에서 방탕한 일탈이 고스란히 찍혀 나왔으니.

인터넷에서는 금세 퍼졌고, 오전에 출근한 포털 관계자와 검찰에서 부랴부랴 막아보았지만, 이미 수백만 명이 넘는 네티즌이 내용을 본 뒤였다.

제대로 망신살이 뻗친 것이다.

홍일일보 오너 일가 신하들은 이를 바드득 갈며 김상범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강남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김상범을 찾을 수 있었다.

"의식이 쭉 없다고?"

"네, 그렇습니다."

"언제부터?"

"입원 시각을 보면 그 사건이 터진 그 날 새벽입니다."

"뭐야, 그럼 김상범 주필 짓이 아니었단 말이야?"

머리가 깨진 채 의식불명 상태이니, 김상범도 피해자라는 의미가 된다.

"씨발, 이거 김상범이 깨어날 때까지 그럼 죽치고 기다려야 하는 거냐?"

***

하태석 회장은 청담수영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응급수술이 끝난 뒤, 문제는 병실이었다.

자리가 10인실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가신들은 그를 VIP실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장남이 반대했다.

"하루 입원료가 2.7억이 넘는데 그걸 무슨 재주로 감당합니까?"

"하지만 회장님을 일반 병실에 천한 것들과 함께 모실 수는 없습니다."

"그럼 병실료를 깎아달라고 해봐요. 우리가 수영병원 홍보 제대로 해준다고 하고."

왕세경 부이사장은 단칼에 거절했다.

"허허, 참 양심이 없으시군요. 그쪽 신문사에서 그동안 우리 재단 이사장을 줄기차게 깐 걸 내가 눈을 부릅뜨고 봤는데, 뭐라고요?"

"그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재단 입장에서 원수 환자지만, 응급실로 실려와서 수술도 확실하게 해줬어요. 의료기관이 환자를 가려 받을 순 없으니."

"……."

"하지만 딱 의료법에서 정한 만큼만 해줄 겁니다. 병원비도 법이 정한 전액 그대로 내시오."

수술도 정확하게 의료법이 정한 기준만큼만 했다.

다른 환자들처럼 병원의 부담으로 비급여 시술을 해주진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환자 자체를 아예 안 받고 싶었지만, 병원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법이 그렇다.

하지만 병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10인실에 입원하시던가, 아니면 하루 입원료로 30억씩 내고 VIP실에 입원하시던가."

"사, 삼십억이라고요? 왜 갑자기 그렇게 뛴 겁니까?"

"원래 VIP입원료는 비급여 항목이라서 병원 마음대로요."

물론 하태석의 장남은 그 이야기를 듣고 길길이 날뛰었다.

"하루 30억? 그럴 돈이 어딨어요? 차라리 세브란스로 전원하세요!"

"하지만 청담수영병원은 아직까지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그런 미신에 홀려서 그 많은 돈을 병원비로 내겠다고요? 그렇게 우리 집안이 돈이 썩어납니까? 요즘 발행부수도 적어서 광고도 잘 안 붙으려고 하는 판인데."

결국 돈이 아까웠던 장남의 반대로, 하태석은 의식불명상태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