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03화 (603/1,270)

프랜차이즈 갓 603화

151장 펜의 것은 펜에게로 (1)

홍일일보는 여전히 기사로 건드리고 있었다.

건드리는 분야는 딱 두 가지였다.

수영레스토랑과 여배우 장효주와의 관계.

치킨, 참치, 펜션, 부동산 등 건드릴 게 무궁무진하지만, 일단은 그 둘만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차후 건드릴 게 없어지면 안 되니, 미리 아껴두는 것이리라.

하지만 하수영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김상범 주필은 나날이 갑갑했다.

"왜 여태 연락이 안 오는 거지? 문규야, 너한테는 연락 안 갔냐?"

"네,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선배님."

"근데 너 요즘 안색이 왜 그렇게 안 좋아?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 아닙니다."

"오늘 간만에 술 한 잔 할까?"

"네, 따르겠습니다."

그날 밤, 김상범과 도문규는 항상 술을 마시던 바로 이동했다.

바 사장 홍윤주가 오늘은 홀에 있었고, 그녀를 발견하자 김상범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역시…….'

그 표정을 자세히 보고 도문규는 확신했다.

김상범 주필은 홍윤주 사장한테 마음이 있다.

하수영이 말한 그대로였던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니, 홍윤주를 어떻게든 갖고 싶어 안달 난 김상범의 태도가 잘 보인다.

그것을 눈치채고, 요리조리 능숙하게 요리하는 홍윤주의 모습도.

그리고 자신을 감시하듯 쳐다보는 바 직원 예담의 눈빛도.

'엿 될 뻔했네…….'

어느덧 김상범은 크게 취했다.

하지만 술 마실 기분이 아니었던 도문규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김 기자님, 주필 님 좀 모셔다 드릴 수 있죠?"

"그럼. 내가 해야지."

"그럼 잘 좀 부탁해요."

김상범을 뒷좌석에 앉힌 후, 대리를 불렀다.

그때 김상범이 잠꼬대하듯이 말했다.

"문규야. 도곡동, 가자 도곡동, 도곡동……."

"네, 선배님. 알겠습니다."

도곡동은 김상범의 본가가 아닌, 개인 오피스텔을 뜻했다.

주로 여자를 부를 때 사용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은 모양이다.

'홍윤주가 오나?'

그런 생각도 잠시 해봤다.

어느덧 오피스텔에 도착하자 도문규는 김상범을 부축해서 침대에 눕혔다.

그는 차량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깨지 않은 채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이마를 닦으며 나가려던 순간, 도문규의 눈에 김상범의 PC가 눈에 띄었다.

'어, 씨. 잠깐, 혹시?'

순간 퍼뜩 생각이 났다.

언젠가 김상범이 정말 만취했을 때, 자랑하듯이 떠들어댄 말들.

-내 컴퓨터에 뭐가 있는지 알아? 폭탄이 들었어, 폭탄.

-내가 그 폭탄 꺼내면 우리 회사 휘청거린다고. 하하.

-우리 사장님이 알면 큰일 나지. 그런데 어쩌겠어? 나도 안전장치 하나 정도는 있어야 든든~하게 직장생활할 거 아냐?

-문규, 너한테도 나중에 요령 알려 주마.

도문규는 후다닥 컴퓨터 앞에 앉았다.

뒤에서 김상범이 코를 고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지만,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로그인 암호, 암호…… 역시 우리 선배님이셔. 암호 따위는 안 걸어두시지.'

심지어 켜자마자 바탕화면에 친절하게 눈에 띄는 폴더까지 만들어뒀다.

폴더 안에 들어가서 재빠르게 자료를 훑어보자 수백 개가 넘어가는 영상 파일이 나왔다.

'……!'

가슴이 세차게 쿵쾅거린다.

그중 눈에 띄는 파일명을 찾아서 실행하는 순간, 그가 잘 알고 있는 얼굴이 나왔다.

바로 홍일일보 하태석 회장이었다.

그 뒤에는 술에 취해 박수를 치고 있는 알몸의 젊은 여자들도 있었다.

'와씨, 우리 선배님. 진짜 대단해. 어떻게 사주 술판 영상을 몰래 찍어서 암호도 없이 보관을 해둘 배짱을…….'

"X발. 너, 지금 뭐 하냐?"

우당탕!

퍽! 퍽! 퍽!

"끄, 끄어어……."

***

나노소프트는 수영향신료(엘릭서 고춧가루) 진열 판매를 보류한 채, 고객들을 수영라면에 빠져들게 하는데 애쓰고 있었다.

원래는 수영향신료를 소비자 대상으로 판매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머스틴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기적 같은 향신료를 팔면, 다른 음식들도 경쟁력이 생기는 거 아니야?"

"저희가 또 그런 꼴은 못 보죠."

"차라리 우리가 요식업 사업을 더 확장한 다음, 그 매장에서 조리할 때 사용하는 게 훨씬 수익이 낫지 않겠나?"

"역시 악마의 상술이십니다. 존경합니다. 발머 본부장님."

컴퓨터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노소프트를 한층 더 성장시킨 전직 CEO다웠다.

"문제는 이 기적의 향신료가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있군."

"우리가 본사에 향신료 많이 팔아서 수입 올려주겠다고 해서 유통권을 얻었는데, 우리 장삿속만 차리고 있다면 기분이 나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향신료 공급을 끊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렇다면 끊지 못하도록 돈맛을 듬뿍 보여주면 되겠습니다."

"다른 요식업에서 나오는 수익의 절반을 본사에 나눠준다고 하면 어떤가?"

"찬성하지 않을까요?"

나노소프트는 수영향신료를 놓고 사업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일반 소비자 판매 계획은 철회.

수영레스토랑 외의 다른 요식업을 시작하고, 수영향신료를 킬러 아이 템 삼아서 매출을 폭발적으로 늘린다.

수영레스토랑과는 무관한 사업이지만, 그 수익의 절반을 수영향신료 로열티 겸해서 한국 본사와 나눈다.

본사에 이렇게 제안을 했더니, 3분도 지나지 않아서 대답이 돌아왔다.

-OK.

발머 스틴과 임직원들은 그 시원한 대답을 보고 껄껄 웃었다.

"역시 본사 사업 스타일이 참 시원시원합니다. 이런 큰 결정을 3분도안 지나서 내려주다니요."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하자고, 어떤 업종이 좋을까?"

"우리 수영라면과 많은 면에서 겹치지 않는 업종을 선택해야 할 겁니다."

"근데 수영라면은 패스트푸드와 패밀리외식의 성격을 둘 다 가지고 있어서요."

"가공식품이 좋겠습니다.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고, 집으로 배송도 받을 수 있는 것들이요."

"수영라면은 매장까지 나와야 먹을 수 있지만, 집에서도 편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역시 좋겠군."

"아예 바닥부터 새로 런칭할까요? 아니면 인수할 만한 업체를 알아볼까요?"

"나노소프트라면 뭐다?"

"둘 다입니다. 동시에 추진하겠습니다."

발머 스틴은 흡족한 웃음을 띠고 승인했다.

유능한 임직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를 들고 찾아왔다.

"본부장님, 이걸 보시죠."

"마침 매물로 나온 간편조리식품 제조업체가 있습니다."

"북미 전역에 제조공장 60개가 있어서 규모도 적당합니다."

"6,000만 달러면 지분을 100% 인수할 수 있습니다."

"주로 가정에서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간편조리식품을 만들어서 파는 업체입니다."

전자보고서를 이미 훑어본 발머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결론을 내렸다.

"이 회사 사자."

곧바로 인수협상에 들어갔고, 5,000만 달러에 깔끔하게 회사를 살수 있었다.

간편조리식품업은 나노소프트 요식업 프랜차이즈 사업부에 소속된다.

수영레스토랑 본사는 당연히 어떤 지분도 없다.

하지만 수영향신료 제공을 대가로, 모든 수익의 절반을 나눠 갖는다.

업체 운영, 투자 등 일체의 비용은 모두 나노소프트 요식업 프랜차이즈사업부가 부담한다.

"지금 북미 간편조리식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지?"

"작년에 연 350억 달러 정도 됐습니다."

"미국인들이 일 년 동안 350억 달러어치 간편조리식을 사먹었다는 뜻이군. 좋아, 이걸 깔끔하게 1,000억달러까지 한 번 늘려보자."

수영레스토랑이 면류 시장을 폭발적으로 늘렸듯이.

간편조리식 시장도 폭발적인 확장을 거듭할 것이다.

"으하하! 수영향신료, 이거 가지고 우리가 미국 식품 시장을 전부 한번 집어삼켜 보자고!"

"맞습니다. 언제까지 라면에만 안주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 프랜차이즈 사업부 매출로만, 미국 내 래플 전체 매출을 한번 뛰어넘어 보자고요!"

***

늦은 시간.

청담동 저택에서 자던 하수영은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

CCTV를 확인하니 도문규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그의 안색이 심상치 않아서, 하수영은 얼른 문을 열어 주었다.

"붕대? 어디 다쳤나?"

"네, 조금…… 괜찮습니다. 찰과상일 뿐입니다."

도문규는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붕대 곳곳에는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적지 않게 피를 흘린 모양이다.

"회장님, 제가 지시를 이행한 거 같습니다."

"틀어 봐. 한 번."

"예."

도문규는 노트북을 꺼내어 영상을 재생했다.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 여럿을 끼고 질펀하게 노는 광경이 나타났다.

"저거 홍일일보 하태석 회장 아냐?"

"네, 맞습니다. 하태석 회장입니다."

"용케 이런 걸 구했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도문규는 가슴에서 설움이 북받치는 듯했다.

어떤 격려도 담기지 않은 무관심한 평이지만, 마치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따스함을 느끼고 말았다.

"어디서 구했지?"

"그게, 실은……."

도문규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걸 구했는지 낱낱이 설명했다.

"들키자마자 바로 김 주필을 때려 눕히고 디스크부터 빼냈다는 거군."

"네, 지금 오피스텔에 쓰러져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응급실에 갔을지도 모릅니다."

찾아올 여자가 있으니 오피스텔로 갔을 것이다.

내연녀든 스폰녀든 간에, 그 여자가 김상범을 응급실로 데려갔으리라.

도문규는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넜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냉정하게 바라보던 하수영이 입을 열었다.

"잘했다."

"가, 감사합니다……."

"지금 네가 네 가족하고 일가친척들 전부 살린 거야. 인마."

작게 머금어진 웃음.

하지만 더 이상 그가 무섭지 않았다.

실패했으면 일가가 멸족했을 거라는 협박이지만, 한없이 자애로워 보였다.

"이제 유종의 미를 거둬야지?"

"예?"

"이걸로 다 끝났다고 생각하냐?"

"아, 아닙니다! 뭐든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영상에서 임팩트 있는 걸로 캡처 몇 개 따고, 그걸로 기사 좀 써봐."

"기, 기사를 말입니까?"

홍일일보 사주를 저격하는 기사를 쓰라고?

도문규는 눈앞에 노래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일단 끝장이다.

아마 차디찬 한강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하수영은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김 주필 이름으로 써라. 그래도 구멍 정도는 있어야지."

"김 주필 이름으로요?"

"어디 보자. 이제 좀 있으면 내일 자 조간신문 인쇄 들어가지? 거기 2면이나 3면 정도에 크게 끼워 넣어야지. 1면에 넣으면 바로 티가 나니까."

"흐억!"

"이거까지만 하면 넌 자유다."

"제, 제가 최종 편집 통과한 기사 내용에 손을 댈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전국의 모든 인쇄기를 하룻밤동안 건드릴 수도……."

"넌 기사만 써서 가져와. 그거 할 놈은 따로 있으니까."

도문규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최종 인쇄가 확정된 신문기사 내용에 개입할 수 있다니.

이미 그 정도로 홍일일보 내부에 손을 써놨으니,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버러지로 보였을까.

"30분이면 충분할 거다. 지금 바로 작성해."

"네, 알겠습니다!"

도문규는 허겁지겁 노트북 문서 파일을 열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영상에서 기사에 첨부할 사진도 큼지막하게 캡처를 땄다.

하태석 회장의 얼굴과 흉하게 살찐 몸, 그리고 여자들도 잘 나오게끔 땄다.

여자들 얼굴에 모자이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 다 됐습니다!"

"그럼 가봐."

"……."

이대로 끝인가?

도문규는 선뜻 일어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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