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02화
150장 광고계의 큰손 (4)
도문규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하지만 지옥에서 살아난 사람의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자리에 앉은 하수영은 전투용 대검을 꺼내서 천으로 슥슥 닦고 있었다.
칼날의 광택을 이리저리 훑어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정말 사람 여럿을, 직접 죽여 본 눈빛 같다.
"문규야."
"네, 회장님."
"잘해라. 날 위해서가 아니라 너와네 가족들을 위해서."
"무, 무조건 잘하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래, 지켜본다. 가라."
그는 후들거리는 자리로 사무실을 떠났다.
문 밖에 대기하던 경비원들이 그를 빌딩 정문까지 안내했다.
장효주가 얼른 일어나서 하수영 옆으로 다가와서 앉았다.
흥분했는지, 그녀의 안색은 홍조로 물들어 있었다.
"연기력 죽이던데요? 저 진짜 어디서 마약 팔고 사람 묻고 그러다가 손 씻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랬나요?"
"네! 특히 눈빛 연기가 아주 일품이었어요. 와, 카메라가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근질근질했다고요."
"제가 감정 몰입을 잘했나 봅니다."
"진짜 연기한 적 전혀 없어요? 중 고등학교 때 연극부 활동 같은 거 안 했어요?"
"안 했는데요."
"그럼 이거는 타고난 거 아니면 진짜 경험이라는 이야기인데, 진짜 경험일 리는 없으니 역시……."
장효주는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생각에 빠져들었다.
무한전생자인 그가 실제로는 그보다 더한 삶을 수도 없이 거쳤다는 것을, 그녀가 알 리가 없었다.
원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기야말로 진짜가 아니겠는가.
"수영 씨, 작품 하나 출연 안 할래요?"
"작품 출연이요?"
"네, 너무 연기력이 아까워서요. 배우로 전향하라고는 안 할 테니까 한번 재미삼아 찍어보지 않을래요?"
"귀농민 배역이라면 진지하게 고려 해보죠.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 무슨 농가 배경 스릴러물찍을 일 있어요? 저 시나리오 검토중인 거 하나 있는데 여기 같이 참여해요, 네?"
"연기 같은 건 한 번도 안 해본 초짜인데 제가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방금 보여준 그 모습이면 딱이에요. 수영 씨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아서 그래요."
"무슨 배역인지 궁금하긴 하네요."
"영화구요, 배역은 마약상이에요. 정확히는 마약상의 젊은 후계자죠. 반란을 일으켜서 그 자리를 차지해요."
"흠……."
"등장 장면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그만큼 강렬한 캐릭터와 연기력이 중요해서요. 수영 씨가 하면 정말 딱일 거 같은데, 한 번 감독 오디션이나 보지 않을래요?"
"긍정적으로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제가 농장 일에 바빠서 얼마나 시간을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꼭 내요. 제발요. 나 수영 씨 영화에서 연기하는 거 꼭 보고 싶어요."
***
도문규는 정신없이 회사로 돌아갔다.
머릿속이 팽글팽글 돌았고, 구토가 나올 듯이 속이 메슥거렸다.
이렇게 극심한 스트레스는 오랜만이었다.
사주 일가가 압박을 가할 때에도 이 정도로 부담이 들지는 않았다.
'홍일일보 뒤집을 만한 큰 거 하나…….'
그 큰 거라는 것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
만약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안 된다.
사람 많이 죽여 본 듯한 눈빛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광경만이 섬뜩한 초조함을 남긴다.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정신없이 하수영에 관해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자산만 추정 10조 원 이상……. 대부분이 청담동에 몰려 있다.'
2, 3조 원 정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확히 알아보니 10조 원이상이다.
대부분은 강남구 및 청담동에 몰려있고, 해운대 (구)누리마루 펜션과 청담동 강 맞은편의 광진구 아파트 재건축 부지.
'수영농장의 작물소득이…… 연 1조 원 이상? 식량작물이라서 전부 비과세라고?'
작물 팔아서 매달 1,000억 원대 이상의 실수령액이 통장에 꽂힌다고?
'프라임컴퍼니 분기 수익이 4,000억원?'
월 10억 개 이상의 라면을 파는 식품회사다웠다.
무슨 식품회사가 3개월에 4,000억원의 순이익을 낸단 말인가.
라면 외의 다른 식품들이 흑자 폭에 접어들면, 수익은 더욱 껑충 뛰어오를 게 뻔했다.
'뭐야, 엘릭서 드링크도 이 사람 거였어?'
자세히 찾아보니, 일본의 한국 교포이자 부동산 재벌인 마케미야와 하수영이 3:7의 비율로 지분을 갖고 있었다.
'수영레스토랑으로 버는 돈이…… 한 달에 800억 원 이상이라고?'
본점의 장사, 그리고 가맹점을 상대로 버는 돈을 합친 것이다.
그것도 기자가 임의로 추정한 것이기에, 실제로는 더 많을 수도 있다고 한다.
수영레스토랑 미국 시장은 더 가관이었다.
'연간 기대 매출이 1,000억 달러이상이라면, 본사는 대체 얼마나 가져가는 거야?'
주요 식재료도 팔고, 수익 로열티도 가져가니.
심지어 달러화다.
미국에서는 대체 얼마나 벌지 가늠이 안 된다.
'이렇게 돈이 썩어나니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10억 불이나 주고 샀구나.'
도문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구매한 것을 지금 조사하면서 겨우 알았다.
'수영치킨은…… 본사가 월 300억정도 가져가는군.'
치킨 팔아서 월 수익 300억 원이라니.
매출이 아니라 본사 수익이다.
이것도 엄청난 수준이지만, 다른 것들을 보고 나니 오히려 하찮게만 보인다.
'프라임오일은…… 아예 넘사벽이네.'
국내 1위 정유업체는 이제 JS칼텍스다.
프라임오일은 2위 정도.
하지만 실질적인 1위는 프라임오일로, JS칼텍스는 자회사나 마찬가지 신세였다.
프라임오일은 JS칼텍스 지분 5%만 갖고 있지만, JS칼텍스가 국내에 유통하는 모든 원유를 프라임오일에서부터 받기 때문이다.
프라임오일은 아부다비의 국제자원투사회사로부터 원유를 무상으로 공급받는다.
JS칼텍스는 그 원유를 국내 수입가 보다 싸게 넘겨받은 덕분에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한때 압도적인 1위였던 SC이노베이션은 3위로 추락했고, 만년 4위인 프리젠트오일과 함께 산소호흡기를 매달고 허덕이고 있는 중이다.
비상장회사라서 그런지, 프라임오일의 수익이 얼마인지는 기사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조 단위인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 많은 원유를 무상으로 받고 있으니.
'종합소매유통 시장도 완전히 먹어 치웠군.'
손이 부르르 떨린다.
뉴월드마트와 하우스플러스는 수영마트의 자회사나 다름없었다.
언뜻 손을 잡았다고 듣긴 했는데, 아예 회사 자체가 넘어갔다니.
'서진파운드리.'
화룡정점은 반도체였다.
정서진이라는 천재 과학자가 하수영과 담판을 벌여 막대한 투자를 받았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듣긴 했다.
10조 원의 자본을 가진 유한회사.
윈텔, 마이크론, ADM 등 세계적인 회사들이 앞을 다투어 선금을 집어놓고 위탁생산을 맡기고 있다.
설립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발생한 매출이 수백억 달러가 넘어간다.
한때 전 세계 파운드리 최강이었던 TSMC는 서진파운드리의 하청업체로 겨우 살아남았다.
"왜 이런 것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
꼭꼭 숨긴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뿐.
조각으로 따로 접할 땐 잘 몰랐는 데, 한데 모아놓고 보니 '수영그룹' 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났다.
이 정도면 매출 규모만으로 5대 재벌 안에는 가볍게 들어가지 않을까?
물론 국내 매출수익만 한정했을 때 이야기다.
"이건 미친 짓이야."
이런 사람을 상대로 작업을 치려 했다니.
대형 신문사는 물론 여론을 호도해서 이길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직접 실행에 나선 자신은?
회사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슥삭이다.
그리고 자신과 김상범은 이미 단단히 찍힌 상태.
'김 주필 레벨에서 덤빌 상대가 아니었어. 적어도 사주 일가에서 상대를 했어야…….'
그랬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수도.
서해그룹이 어쨌거나 매년 막대한 광고료를 던져주는 것처럼, 그런 바람직한 사이가 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도문규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전투용 대검을 이리저리 만지며 훑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협박이 아니라 애원과 간청, 굴복으로 다가가야 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원하는 것을 안겨주고, 자비를 바래야 했다.
홍일일보 사주 일가는 절대 못 할 선택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으니.
펜의 힘을 이용해 언제나 남들의 위에 군림한다고 여겨온 이들이다.
서해그룹조차도 자신들이 언제든지 펜 몇 번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난 살아야겠다. 어쨌든 간에."
이제는 돈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자신과 가족들이 살기 위해서.
'수영그룹'을 까는 기사들이 조금씩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재생산은 거듭 이뤄지고 있으나, 새로운 소스 유입이 더뎌진 덕분이었다.
새로운 소스 가공을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할 덕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영그룹 관련 TV 광고는 척척 나가기 시작했다.
CVN케이블은 아예 수영그룹 홍보팀인 것처럼 쉬지 않고 라면, 치킨, 참치, 펜션, 병원, 엘릭서 드링크 등의 광고를 내보냈다.
3대 지상파 채널에서도 방영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반드시 수영그룹관련 광고가 나왔다.
사실 '수영그룹'이라는 단어는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수영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냥 입에 착 들어맞는 그 단어를 선호한다.
"진짜 하수영 회장이 엔터계의 황제네, 황제."
"하 의원이 광고계의 큰손이기도 하지."
"큰돈 들어오니까 요즘 광고업계 제대로 살맛 났다고 하던데."
"CF도 다양하게 찍어서 내보내더라고, 금방 질리면 안 된다나."
"근데 신문 기사들은 대체 평가가 왜 그런 거지? 라면에 벌레 다리 나온 것도 사실 지어낸 리뷰라고 하던데, 정정보도할 생각을 안 하네."
"정정보도 눈에 안 띄게 쥐꼬리만 하게 해서 모르는 걸 수도 있어. 아니면 정말 안 했거나."
지상파 방송국은 하수영의 존재감을 또렷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TV 광고를 통해 들어오는 막대한 자금 덕분이다.
"근데 서진파운드리는 B2B 기업이라서 굳이 대중 광고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뭐 이렇게 광고에 돈을 많이 쓴대?"
"수영사료도 사실상 독점인 데다가 B2B라서 광고 필요 없을 텐데 광고 펑펑 내보내네. 돈이 정말 쌓여 있긴 한가 봐."
"그래도 부자들이 이렇게 돈 꽁꽁 꿍쳐두지 않고 써주니 좋긴 하네."
카아앙! 팍!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온 전투용 대검이 귀를 스치고 지나가, 나무로 된 문에 박혔다.
문에 꽂힌 채 바르르 떨리는 전투용 대검의 진동 소리에, 도문규는 완전히 얼어 있었다.
분명히 봤다.
하수영은 그냥 손목을 가볍게 휘둘러서 칼을 던졌고, 칼은 정확하게 자신의 귀 옆을 스치고 날아가서 문에 박혔다.
저것은 한두 번 칼을 다뤄서 나올 수 있는 솜씨가 아니었다.
'진짜다. 이 사람은 진짜다.'
이미 알고 있는 바를 거듭 중얼거리며, 도문규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했다.
"문규."
"예!"
"장난하고 싶은 건가?"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이따위 걸 소스랍시고 가져와? 와이프가 고깃집 장사 접었으면 싶은가?"
심장이 쉴 새 없이 쿵쾅거렸다.
홍일일보가 하수영 관련해서 선동날조 기사를 써 재낀 물증 자료들을 힘들게 구해서 가져왔다.
이만하면 충분히 제몫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보자마자 칼부터 던지다니.
"이런 쓰레기를 갖고 오면서 어떻게 그리 당당하지? 뻔뻔함이 패시브야? DNA에 그렇게 각인됐나? 오늘을 네놈 DNA 종결일로 만들고 싶나?"
"죄, 죄송합니다!"
"멍청한 놈."
하수영은 주먹을 들어 외장디스크를 내리쳤다.
가볍게 친 것 같은데, 단단한 플라 스틱 커버가 부서지며 디스크가 산산이 부서졌다.
"이따위 걸 어디다 써? 홍일일보회장 불륜 비디오 정도는 가져와야지. 그런 거 없어?"
"죄송합니다!"
"가라. 다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