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01화
150장 광고계의 큰손 (3)
도문규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이름으로 기사를 내지 않았다.
자신의 영향력이 닿는 기자들을 이용해서 그들 이름으로 기사를 냈다.
자신과 김상범의 존재감을 숨기기 위해서다.
그런데 돌아가는 게 심상치가 않았다.
'저쪽이 자꾸 헛발질을 하네?'
3대 지상파에까지 광고를 넣는 것을 보고, 이건 안 되겠다 싶었다.
왜 신문사에는 연락을 안 하고, 엉뚱한 곳에 돈을 퍼붓는단 말인가?
'신문 기사를 TV 광고로 상쇄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수영 그 친구는 밑에 머리 잘 돌아가는 부하도 없나?'
당연히 신문사에 먼저 연락을 해서 정정기사 협상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자꾸 엉뚱한 짓을 하지?
혹시 협상이 아예 안 될 거라고 지레 겁을 먹고, 저렇게 엉뚱한 곳에 열심히 돈을 쓰는 건가?
그걸 바로잡아야 했다.
더 이상 그렇게 허투루 돈을 쓰지 말라고 해야 했다.
그 돈을 우리한테 쓰는 게 훨씬 더 유익하고 미래지향적임을 알려줘야 했다.
아무래도 저쪽이 스스로 생각을 해내지 못하니, 결국 나설 수밖에.
그래서 연락을 한 것이다.
물론 김상범과 자신의 주도하에 그런 기사들이 나갔다는 것은 철저히 숨긴다.
어디까지나 홍일일보 내에서 수영레스토랑에 호의적인 진영으로 인지 시킨다.
중재자인 척 하고 나서서 광고를 끌어온다.
그런데…….
'날 어떻게 알고?'
택시를 타고 달리는 동안, 도문규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마누라 고깃집 주방장이 요즘에 바뀐 건 또 어떻게 알았어?'
자신조차도 모르던 사실이었다.
마누라 가게에서 직원 한 명 바뀐것까지 시시콜콜 파악할 리가 없잖은가.
하수영과 전화를 끊고 마누라한테 톡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더욱 소름이 끼친다.
'이미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거 아냐?'
김상범 주필과 자신이 홍일일보 내에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을.
우리 회사에 광고비를 갖다 바치도록 만들기 위해서 한 일이라는 것을.
상대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혀 연락이 없었던 것이라면,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대체 날 언제부터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파악하고 있던 거지?'
미칠 것만 같았다.
자신에 관해서 얼마만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도 반드시 알아야 했다.
특히 회사나 김상범 주필, 아내가 알면 안 되는 비밀들도 알고 있는지…….
택시를 타니, 정말 40분 만에 청담휴민트타워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이야 내비게이션 기능이 잘 발달했으니 알 수 있겠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날 24시간 감시하나?'
도문규는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별다를 거 없는 행인들 사이 어딘가에 자신을 지켜보는 감시자가 있나?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그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안에 들어섰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체격 좋은 젊은 경비원 둘이 다가와서 형식적으로 인사하며 안내했다.
건장한 경비원 둘이 좌우에 서 있으니, 가슴이 위축되는 듯하다.
'어쩌면 내가 잘못한 걸 수도…….'
그제야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바보처럼 혼자서 바로 후다닥 달려오지 말았어야 했나?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사무실 입구가 드러났다.
그러고 보니 이 빌딩에 실비아컴퍼니가 대부분 입주해 있다고 들은 것 같다.
하지만 사무실 복도에는 실비아컴퍼니와 관련된 명패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을 들어선 순간 도문규는 흠칫 놀랐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응접실 상석에는 하수영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쪽 휴식 공간 소파에는 틀림없는 여배우 장효주가 시크한 표정으로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의 미팅을 관람하는 듯한 포지션.
무엇보다 장효주가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불렀다는 점이, 그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도문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꾸벅 인사했다.
"도문규 기자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분은…… 혹시 제가 아는 그분이 맞습니까?"
"여배우 장효주가 맞습니다. 굳이 떠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거 안좋아합니다."
"……죄송합니다. 조금 놀랐습니다. 설마 그 기사가 사실이었을 줄이야……."
"제가 장효주 배우와 사귄다는 기사? 아니면 스폰을 한다는 기사? 섹스파트너라는 기사? 어느 걸 말씀하시는 거죠?"
"……."
"좋은 비즈니스 관계고 개인적인 사교 친분 관계인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사들은 잡소리 루머만 늘어놓고 있더군요. 뭐, 연예란이 언제는 안 그랬겠습니까만은."
목소리 톤은 가라앉아 있지만, 분노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도문규는 상대가 자신의 상상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와, X발. 나 정말 잘못 건드린 거 아냐? 회사라면 몰라도 나 같은 중견 기자 한 명 따위 슥삭하는 건…….'
"그, 그런데 저를 만나는 자리에서 장효주 배우를 굳이 동석할 필요는 없지 않으셨나요? 제가 홍일일보에서 회장님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한 기자인데……."
"……."
하수영은 지그시 쳐다보기만 했고, 그 눈빛이 도문규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니아니,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 전 걱정이 돼서 한 말입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장효주 씨를 봤다는 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음, 마침 같이 있었거든요. 굳이 감출 이유를 못 느꼈습니다."
감출 이유가 없었다니?
도문규는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혹시 '금발의 마약왕'이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유명한 헐리우드 영화였고, 도문규도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 엘 루비안이라는 콜럼비아마약상 한 명이 나오죠."
"네, 인상 깊은 배역이었습니다."
"주의회 정치인을 초대해서 압력을 넣는 장면, 기억하십니까?"
"네, 기억이 납니다."
"마약상은 정치인 앞에서 얼굴을 굳이 보여주면서 자기가 배후에 있음을 밝혔죠. 얼굴을 드러낸 것에 놀라는 정치인을 향해 이렇게 말하죠."
도문규는 저도 모르게 다음에 이어질 말을 받았다.
"내가 얼굴을 보여주는 건, 보여줘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 정치인이 발설을 하는 순간 가족까지 전부 다 애완 표범 먹이로 만들어 버리면 되니까요. 엘 루비안도, 정치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범인이 피해자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제 죽여 버릴 터이니 얼굴을 봐도 상관없거나.
절대 발설을 못 할 것임이 확실하거나, 도문규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절제된 톤으로 차근차근 말하는 하수영의 모습은, 마치 사업가로 변신한 마약상 같았다.
사업가의 세련된 모습 아래 감춰진 마약왕의 폭군 기질.
그것이 온몸에 느껴지는 듯했다.
"하하, 물론 저는 표범 따위는 안기릅니다. 도 기자님과 가족에게 해코지할 마음도 전혀 없고요. 도 기자님 친인척이라면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 다 알고 있지만요."
장효주에 관해서 발설했다가는 반드시 사돈의 팔촌까지 지워 버리겠다는 말로 들렸다.
"홍일일보 가문에서 어깨들 써서 그렇게 사람들 많이 지웠다면서요? 요즘에도 그런 구식으로 처리하나요?"
"저, 저는 전혀 모릅니다.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거 외에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저는 신사적으로 일을 합니다. 신사적으로, 그러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도 기자님의 무거운 입을 믿습니다."
"저, 그런데 정말 저에 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
"어제 역삼동 H클래스 바에서 김상범 주필과 술 마셨죠? 232만 원 나왔었나요?"
"쿨럭! 쿨럭!"
정말 자신을 24시간 감시하는 게 틀림없다.
도문규는 이제 더 이상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거기 홍윤주 사장을 제가 좀 알아서요."
"두, 두 분이 친하십니까?"
도문규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냐하면…….
"홍윤주 사장한테 들이대는 건 관두는 게 좋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누구 사람인지 몰라 뵙고 제가 감히."
"도 기자 위하는 마음에서 하는 충고예요. 그 가게에서 예담이라는 아가씨 들어앉힌 거 홍 사장이 뻔히 아는데, 거기서 들이대면 홍 사장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숨이 턱턱 막힌다.
머리카락이 돋아난 모공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그리고 김상범 주필도 홍 사장한테 마음이 있어요. 나중에 선후배 간에 칼부림 나는 꼴 안 보려면 접으세요. 아, 예담이라는 아가씨 이야기는 사모님께 말 안 할 테니 안심하시고."
"……예, 감사합니다."
코브라 앞에 개구리가 된 심정이었다.
그저 아프지 않게만 먹어 주십사하고, 온몸을 갖다 바치는 기분이다.
"그리고 나, 홍윤주 사장하고 전혀 친하지 않아요. 이미 지나간 작은 악연이 하나 있습니다만, 홍 사장은 잘 모를 겁니다. 그러니 비밀로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강남에서 그렇게 잘나가던 텐프로 마담이 이제 그런 작은 바 하나만 남았으니, 조금 신세가 처량하긴 하군요."
도문규의 귀에는, 마치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처럼 들렸다.
친하지 않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상대는 다 알고 있다.
홍일일보에서 기사로 작업을 친 것도 무슨 의도인지 진작 꿰뚫어봤으리라.
상황판단을 못 해서 TV 채널에 돈을 쓴 게 아니라.
작정하고 계획된 자금 집행이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김상범이 그 친구가 잘못 판단을 했어요."
김 주필을 어린아이 가리키듯이 말하는 어투에, 도문규는 입안이 바짝 바짝 말랐다.
"정성 담은 선물 가득가득 들고 와서 앞에 무릎 꿇고 머리 아홉 번 정도 박았으면, 그 정성이 갸륵해서라도 광고 몇 개 안 줬을까."
"……죄송합니다. 김 주필이 워낙 욕심이 많고 생각이 짧아서……."
"오항윤이가 잠적한 게 정말 그냥이었다고 생각하나?"
말투가 완전히 달라졌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깔아보는 눈빛이다.
도문규는 저 눈빛을 본 적이 많다.
자신 같은 이들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최고의 자리에 있는 이의 눈빛.
노예, 부품, 벌레.
그저 그런 존재로만 취급하는 눈빛.
언론재벌인 홍일일보 회장이 주로 저런 눈빛으로 자신들을 깔아봤다.
"응? 문규야, 오항윤이가 정말로 이유 없이 잠수 탄 거 같아?"
어느새 일어난 하수영은 도문규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처음 이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잠시나마 느꼈던 밝은 청년의 이미지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도문규의 눈앞에 있는 것은 그저 폭군이었다.
자신 같은 이는 그저 벌레로만 보는, 세상에 아쉬울 게 없는 폭군.
"죄, 죄송합니다!"
도문규는 소파에서 벌떡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그저 빌어야 했다. 빌지 않으면 무사히 오늘을 넘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머리 들어, 이 친구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참. 누가 죽인대? 내가 손 씻은 지가 한참 됐어요. 너 같은 조무래기 피는 이제 성에도 안 차. 머리 들어."
정말로 사람을 많이 죽여 봤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문규는 얼른 머리를 들었고, 하수영은 웃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맑고 밝은 미소.
그러나 도문규의 눈에는 저 밝은 웃음을 받치고 있는 핏물의 바다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너, 나하고 작업 하나만 치자."
"자, 작업 말씀하셨습니까?"
"그래. 홍일일보 뒤집을 수 있는 큰 거 하나만 가져와라. 그럼 네 와이프 고깃집 이제 발길 끊는다."
내용은 분명한 협박이었다.
도문규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