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92화 (592/1,270)

프랜차이즈 갓 592화

148장 어느 기초의원의 기념회 (1)

위대한 태왕 제작은 결국 엎어졌다.

적토마 스튜디오는 국내 방영은 포기하고 해외 수출을 생각해서 제작을 강행했으나.

촬영 인력이 없으면 그것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새로 사람을 모으려고 해도, 촬영 인력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이 짓으로 평생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왜 내 밥그릇 깨는 짓을 해?"

"시청자들하고 척지면서까지 촬영할 필요는 전혀 없지."

"내가 고 씨인데 어떻게 조상님 혈통 욕보이는 짓을 할 수 있겠어?"

평소 급여의 수십 배를 불러도 오지 않을 기세였으니.

그렇다고 중국이나 동남아 등 해외에서 인력을 모아올 수도 없었다.

말도 안 통하고, 손발도 안 맞고, 무엇보다 생태계 자체가 다른 이들을 데려다가 무슨 재주로 드라마를 찍겠는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찍는데 인력의 90%를 동남아 촬영진으로 채우면, 영화가 제대로 뽑혀 나오기나 할까?

"KI스튜디오가 애국자네."

"새 드라마 제작 인력 빼오기는 핑계고, 위대한 태왕 제작 못 시키게 하려고 강행한 거라던데."

"이런 게 바로 현대판 독립운동이지. KI스튜디오 칭찬하자."

긍정적인 평가 외에 걱정도 뒤따랐다.

"그나저나 소송은 아무래도 KI스튜디오 쪽이 힘들겠지?"

"조직적 인력 빼오기가 입증되면 엄연한 업무방해니까 피해배상은 해줘야 할 거야."

"고주환 사장이 그런 거 각오 안하고 이 일을 밀어붙였겠냐? 나름출혈도 각오했겠지."

"그러고 보니 고주환 사장도 고씨…… 어 정말 고구려 왕실 후손일 수도 있겠는데?"

"캬, 내가 배상금을 물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가문 혈통 욕보이는 드라마가 세상에 나오는 꼴은 못 본다, 이거 아니야?"

"회사가 잘나가니까 자신감이 아주 그냥 하늘을 찌르고, 참 보기 좋아."

"이번에 부활의 이순신 시즌 2, TV 광고 수익만 벌써 엄청나게 긁어모았다던데."

"첫 주 TV 광고 매출만 100억 원이라는 말이 있어."

"첫 주에 100억 원? 와, 이대로 가면 잘만 하면 TV 광고만 2,000억넘는 거 아니야?"

"수영그룹에서 작정하고 광고 밀어주기 하니까 장난 없더라."

"무엇보다 드라마가 너무 재밌게 잘 빠졌어."

"그래서 큰일이야. 다른 드라마들은 이제 봐도 재미가 없어."

"거북선 함대 한복판에서 사랑 타령하는 거 보다가 호텔 로비에서 사랑 타령하는 거 보니 영 시시해서……."

위대한 태왕이 엎어진 가운데.

부활의 이순신 2 국내 방영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잘 나갔다.

국내의 폭발적인 반응을 본 해외방송사들은 얼른 자국에도 방영을 시작하자고 쏘아댔다.

KI스튜디오, 그리고 국내 드라마판은 여러모로 즐거운 몸살에 시달리고 있었다.

***

청담동 하수영의 저택.

초대를 받은 고주환과 장기석은 잔뜩 긴장한 채 정원을 들어서고 있었다.

잘 꾸며진 넓은 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나무 한옥이 뿜어내는 청량한 기운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종로도 아니고, 강남구 한복판에 이런 전통적인 저택이 있을 줄이야."

"오래된 양반 명문가 본가 같습니다."

"그나저나 의원님은 그새 어디를……. 아, 저기 오시는군."

하수영이 편안한 차림으로 나와서 둘을 맞이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다른 분들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의원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부 풍경은 과연 어떨까?

응접실은 딱 그들의 예상대로였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련된 대부호의 느낌이 물씬 났다.

"장 실장, 저 티비 그거 아냐? 한 대에 거의 2억 가까이 한다는……."

"맞습니다. 와, 저런 걸 사서 집에 들이는 개인이 있긴 있었군요."

"저 홈오디오는 내가 알기로 5억이 넘는 걸로 아는데……."

의외로 미술품 같은 것은 눈에 전혀 띄지 않았다.

아마도 집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 이리라.

거실 한쪽의 커다란 진열장을 발견한 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거북선 모형입니다."

"이렇게 크게 만들어서 금색 도색을 해놓으니 아주 그냥 멋지네."

전장이 1미터가 넘어 보이는 커다란 거북선 모형이 그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이게 진짜 금이라면 가격이 어마어마하겠는데요."

"에이, 설마 진짜 금이겠어? 이렇게 큰 모형을 통짜 금으로 만들려면."

-99.99% 순금입니다.

"까, 깜짝이야!"

갑자기 옆에서 울린 기계음에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리 셋에 팔 2개가 달린 원통 몸체.

두 개의 렌즈가 달린 둥그런 머리.

말끔한 합금 표면이 반짝거리는 로봇 한 기가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얇은 부위가 많아 찌그러지기 쉬우므로 눈으로만 감상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이게 진짜 통짜 순금이라고?"

"너는, 아니, 그쪽은 대체 뭡니까?"

-저는 홈케어 로봇 NO.12입니다. 12번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

"……."

-이쪽으로 오시지요.

과연 집안에는 녀석 말고도 다른 로봇들이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로봇들은 물건을 정리하거나, 청소하거나, 소모품을 채워 넣는 등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둘은 순간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빠졌다.

'우리가 지금 시공간의 미로에 휘말려서 미래라도 왔나?'

'부자들은 이미 저런 홈케어 로봇들을 사서 집안일을 시키고 있는 시대가 된 건가?'

딱딱하게 굳은 채로 안내받은 곳은, 바로 방공호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합금문이었다.

둘이 앞에 서자, 문이 저절로 열리며 넓은 실내 공간이 드러났다.

안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 둘은 또 한 번 전율을 일으켰다.

"이건……."

"여, 여기는 대체……."

-커맨드 센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정 좌석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수없이 벽을 채운 초대형 디스플레이.

여기저기서 반짝이는 상황모니터링 불빛.

다양한 작전상황을 한눈에 알아볼수 있는 100% 전자식 계기패널 등.

마치 외계인 침략에 맞서는 지구군 총사령부를 연상케 하는 실내 공간이었다.

"제 꼬북이 조각상에 빠지신 거 같아서 일부러 방해 안 하고 먼저 들어왔습니다. 자, 두 분. 자리에 앉으시죠."

"예, 옛!"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제야 그들은 먼저 온 이들의 존재를 깨달았다.

'장효주, 주효정, 그리고…… 저 고만태 부국장님까지?'

심지어 부활의 이순신 시즌 2가 한창 방영 중인 CVN케이블 고만태부국장까지 와 있었다.

장기석이 광고 수익 정산율 조정을 가지고 옥신각신했었던.

"자, 먼저 상황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적토마 스튜디오가 우리 KI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피해배상금으로 600억 원을 달라고 요구했군요."

말하기가 무섭게 대형 디스플레이에 소장 내용과 관련 상황들이 한눈에 알 수 있게 정리돼서 떠올랐다.

"민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차하면 적토마 본사를 폭파해 버리면 되니까요."

'지금 농담으로 말씀하신 거 맞지?'

'저거, 진담 아니지?'

'설마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할 리는 없을 거야.'

"문제는 우리나라 미디어 산업의상당 부분이 중국 자본에 잠식되어 있다는 거죠. 저도 이번에 조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이 투자한 드라마, 영화 제작사, 송출 플래폼, 연예기획사, 방송국, 케이블 채널 등의 명단과 투자 금액, 지분율이 주르륵 떠올랐다.

영화 엔딩 크레딧처럼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이름과 숫자에, 참석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이 들어와 있었다고요?"

"헐, 미디어 산업이 중국이 넘어간 대만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네."

대만,

한때는 미디어산업 강국이었지만, 중국 자본을 받아들이면서 지금은 산업 자체가 망가져 버렸다.

대만의 미디어 노하우와 기술을 빨아들인 중국은 역으로 대만에 자국컨텐츠를 수출했고, 중국 없이 컨텐츠를 제조할 수 없게 된 대만은 결국 산업기반 자체가 붕괴했다.

오죽하면 대만인들도 자국 컨텐츠는 재미없다고 거의 보지 않는다.

"위대한 태왕은 길게 보면 동북공정 작업, 짧게 보면 문화미디어 시장 잠식입니다. 다행히 우리 KI가 초기에 잘 잘라냈지만, 앞으로도 끊임없이 비슷한 시도를 할 겁니다."

"……."

"배우나 촬영 스태프들은 부당한 역사 왜곡을 작품설정에 등장할 경우, 위약금 없이 해지할 수 있는 조항을 반드시 삽입하는 게 좋겠습니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봤던 주효정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효정 씨."

"네, 수영 씨."

"이번에 180억 위약금 물어내신 거, 돌려받을 방법이 있을 거 같긴한데……."

"괜찮아요. 저 위약금 180억 낸 덕분에 국민 개념녀 됐어요. 이미지 마케팅 크게 한 번 집행했다고 생각하죠, 뭐."

그녀를 바라보는 고주환과 장기석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180억 원이라는 돈을 저리 통 크게 포기하다니.

심지어 이미지 광고비로 생각하겠단다.

"앞으로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적들이 언제 어느 때 따뜻한 돈꼭지를 내밀면서 유혹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수영은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KI스튜디오에 제 사비로 1조 원의 미디어 제작비를 추가로 투자하겠습니다."

"오! 정말입니까!"

"부활의 이순신에 넣은 돈처럼, 얼마의 수익이 나든 간에 미디어 산업에 거듭 재투자하겠습니다. 제가 망하기 전에 투자금을 회수할 일은 없을 겁니다."

"천하의 수영그룹이 설마 망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주환과 장기석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고, 장효주와 주효정도 같이 기뻐해 주었다.

한편 고만태 부국장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느닷없는 하수영의 초청을 받아 으리으리한 청담동 저택을 방문하고, 우주기지를 연상케 하는 저택 내 상황실에 지금 앉아 있으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고만태 부국장님."

"예? 아, 예. 회장님."

하수영을 만나는 건 처음이다.

이름은 그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뭐라고 부를지 마땅치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장님이란 호칭이 튀어 나왔다.

"부활의 이순신이 이번에 TV 광고로 정말 많이 벌었어요, 그렇지요?"

"그, 그렇습니다. 단일 작품이 이렇게 많은 광고 수익을 낸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제가 초면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초대한 이유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좋은 마음으로 지켜볼테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제야 고만태 부국장은 깨달았다.

위대한 태왕 같은 드라마를 CVN에서 방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런 압박이었다.

KI스튜디오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부활의 이순신 같은 재미를 이제는 못 보게 될 것이라는.

"걱정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믿겠습니다."

긴장된 분위기가 해소되자 이제 자연스럽게 농담이 서로 간에 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원님, 이곳은 뭐 하는 공간입니까?"

"저는 처음에 펜타곤 지하벙커라도 온 줄 알았습니다."

"외계인 습격 작전 지휘하는 우주군 총사령부 비밀기지 같지 않아요?"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하수영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사업장 관리 아케이드예요."

"아, 아케이드라고요?"

"사업장?"

"네, 제 사업체들 총괄 모니터링및 통제를 하는 장소입니다. 주로 농장 관리를 하죠."

"……."

"……."

"아참, 그리고 초청장 다들 받으시죠. 이걸 깜박할 뻔했네."

하수영은 다섯 명을 상대로 초대 카드를 한 장씩 돌렸다.

[하수영 강남구의원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장소 및 날짜

르주블랑 호텔 강남점, X월 XX일 13:00

-행사 내용

정치인 하수영이 그간 거둔 성과 발표 몇 출판서적기념 행사 진행]

"수영 씨, 출판기념행사도 해요?"

"효정아, 정치인들은 원래 자기 정치적 비전을 담아서 책도 내고 그거 홍보하면서 자기 이미지도 알리고 그러는 거야."

"나도 아는데, 정치 서적 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봐서 그러지."

"제가 책 낸 게 왜 없습니까. 하나 있잖아요."

"……."

"……."

"부활의 이순신요?"

그걸로 정치인 출판서적행사를 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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