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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589화 (589/1,270)

프랜차이즈 갓 589화

147장 엔터계의 황제 (5)

주효정은 드라마 하차 이후, 칩거생활을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자신과 관련된 기사나 글, SNS 반응 따위는 일절 찾아보지 않았다.

인스타에 게시글 하나만 남겼을 뿐이다.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놀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댓글은 일부러 막아두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댓글창을 열어서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았다.

게시글을 올린 뒤 아예 인스타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폰 알림도 꺼버렸다.

"이유라도 밝히는 게 낫지 않아?"

장효주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헐렁한 티에 짧은 핫팬츠 차림으로 편안히 앉은 채, 주효정이 어깨를 으쓱했다. 얼굴에는 팩을 붙인 채였다.

"뭐하러, 지금?"

"나중에는 밝히겠다는 뜻이야?"

"지금 밝혀서 적토마가 앗 뜨거라하고 시나리오 전면 수정하면? 나만 바보 되는 거야."

"수정할 일은 없어 보이는데, 언니 말 들어보면 그대로 밀어붙일 거 같애."

"그래도 여론에 불붙음 혹시 몰라. 나중에 그게 문제 됐을 때 가서 당당하게 밝히면 돼. 그럼 한순간에 개념녀, 애국녀로 등극하는 거야."

"차라리 위약금을 낼지언정 매국왜곡 드라마에는 참여하지 않은 여배우로?"

"그렇지.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칩거 중인 거라구."

"언니는 다 생각이 있었네. 몰랐어, 미안."

"그럼, 언니는 다 생각이 있단다."

주효정은 그러면서 깔깔 웃었다.

인터넷에서 온갖 욕설과 음해가 판치고 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도다.

멘탈이 단단한 것도 있지만, 준재벌 집안 딸이라는 자신감도 한몫했으리라.

"당분간 쉬면서 식품 사업 돌아가는 거나 살펴보면 되지. 그냥 휴가 얻은 셈 치려고."

"일을 하는데 무슨 휴가?"

"여배우 주효정으로서는 휴가인 셈이지. 기업인 주효정으로서는 아니지만."

"언니가 묻지 마 하차까지 했는데, 제작진에서 그 시나리오 설정대로 갈까?"

"내가 공론화를 한 건 아니니까 갈거야. 그냥 내가 별난 애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가겠지."

"참…… 요즘 중국 자본이 국산 미디어 콘텐츠 싹쓸이 쇼핑한다고 난리더니, 이런 일까지 터질 줄은 몰랐어."

"그래도 아랍 펀드 자본으로 위장해서 들어올 줄은 몰랐어.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겨우 드라마 하나 촬영하는데?"

주효정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아, 이번에 느낌 좋았는데. 대사도 좋고 연출도 좋고, 진짜 그것만 아니면 대작이 될 드라마였어."

"그래서 더 안타깝겠어, 언니."

"그러니까."

"어쩐지 내가 그 드라마 죽어도 영하기 싫더라고. 난 장편은 안 한다고 핑계 대고 안 했지."

"기집애, 나도 그렇게 좀 말려주지."

"내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절한 거 알면서도 섭외 수락한 건 언니야. 안 그래?"

"니년 말이 맞어. 전부 내 선택이고, 내 잘못이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주효정의 표정에는 홀가분함이 가득했다.

침몰하는 배에서 가장 먼저 안전하게 탈출한 사람의 표정이다.

"어떡해. 당분간 백조 신세라서."

"기업인 주효정으로서는 바쁘다니까?"

"회사 주주인 거지, 경영자는 아니잖아. 기업인은 무슨."

장효주는 편하게 양반다리로 고쳐 앉았다.

"식품 회사는 요즘 어때? 재미 많이 봐?"

"한동안 동남아에서 재미 엄청 보다가 요즘은 조금 시들해."

"왜?"

"중국에서 사 가는 물량이 있었거든? 근데 그게 어느 순간 뚝 끊기 다시피 했어."

"밀수가 어려워졌나 보네."

"그런가 봐. 중국 업자들이 아무래도 공산당 몰래 황비 라면 밀수하는 게 요즘 부담스러운 거 같애."

현재 중국은 한국산 황비 버섯 라면 수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효원 식품이 프라임 컴퍼니를 대신해서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황비 라면을 제조한 후, 현지에서 중국 업자들한테 팔고 있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요즘 뚝 끊어졌다.

"내가 듣기로도 중국이 사가는 황비 라면 물량이 정말 어마어마했대. 근데 그게 뚝 끊어져서 프라임 컴퍼니 수익도 많이 줄었데."

"혹시 중국이 우리 수영 씨 콕 집어서 저격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닐걸? 지금 중국이 이런저런 걸로 우리나라에 무역 제재 많이 걸고 있고, 식품도 그중 하나니까."

"그렇구나."

"당분간은 황비 버섯이고 황비 라면이고 중국 업자한테 팔기 어려워.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동남아에서 잘 나가고 있지?"

"그럼. 현지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는데. 지금 황비 버섯이 얼마나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데."

효원 식품이 얻은 것은 정확히 황비 버섯 동남아, 중국 유통권.

여기에 프라임 컴퍼니의 허락을 받아, 현지 라면 공장을 인수해서 황비 버섯 라면을 제조해서 팔고 있다.

"알고 보면 언니가 효원그룹에서 가장 잘 나가는 거 아니야?"

"비밀이야."

"친척 어른들은 전혀 모르시지?"

"이번에 수출 대금 국내로 들여와서 공시하면 알게 될 수밖에 없지."

"경영진이 그룹 본사에 따로 보고 안 해?"

"내가 경영권 버젓이 쥐고 있는데 그랬다가는 큰일 나지."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어느덧 술병도 갔다.

"근데 효주야, 그거 사실이야?"

"뭐가?"

"수영 씨가 KI 스튜디오 인수한다는 거. 소문 쫙 퍼졌던데."

"응, 사실이야."

이제 숨길 것도 없는지라 장효주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얼마에 인수하는 거야?"

"그건 나중에 발표하면 직접 봐.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치사해. 알았어, 나중에 직접 보지, 뭐."

"원래 더 일찍 발표하려고 했는데 위대한 태왕 때문에 늦어진 걸로 알아."

"그래?"

"응, 시즌 2 방영도 지금 지연되고 있잖아. 아마 내 생각에는…… 언니 가 말한 그 동북 공정 설정 윤곽이 드러나서 난리 나면, 그때쯤에 짠하고 발표하지 않을까?"

***

고주환은 예전보다 더욱 밀려드는 연예계 공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유명 작가는 물론이고 데뷔를 꿈꾸는 작가들의 시나리오와 대본이 쏟아져 들어온다.

천만 감독으로 유명한 이가 먼저 회사를 찾아와서 자기가 촬영할 만한 작품이 있는지 묻는다.

내로라하는 톱 클래스 배우를 거느린 기획사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접대 제안이 온다.

그것들을 전부 기분 나쁘지 않게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의원님이 인수한다는 소문이 나니까 사람들이 더 몰려드는 거 같네."

"제가 그 말도 흘렸습니다. 부활의 이순신에 밀어 넣은 제작비, 어떤 경우에도 회수할 일은 없을 거라고요."

"정 실장, 자네가 흘린 거였어?"

"네, 효주도 열심히 연예계에 소문퍼뜨리고 있을 겁니다. 너무 자세히 알고 있으면 이상하니까 회사 인수가 사실이라는 정도만 확인시켜 주라고 제가 말을 해놨어요."

"나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정보전이 오가고 있었군 그래."

고주환은 기분이 좋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

"이번에 시즌 2로 못해도 조 단위수입을 기대할 수 있잖습니까."

물론 순수익은 아니고, 전 세계에서 발생할 총매출을 말하는 것이다.

"그 돈을 회수하는 게 아니고 다시 드라마 영화 제작에 재투자한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몸이 달아올랐어요."

"단일 제작사가 굴리기에는 역대급 제작 자본이지."

"이 정도면 감히 CZ 엔터에 비벼볼 만한 덩치가 됐으니까요."

CZ 엔터테인먼트.

서해그룹에서 갈라져 나온, 국내에서 제일가는 미디어 재벌이다.

KI 스튜디오도 한때 CZ 엔터 밑에서 하청을 받아 드라마 제작에 열심히 일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부활의 이순신 이후, KI 스튜디오는 이제 당당히 자기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부활의 이순신 2가 평타만 내줘도, KI 스튜디오는 조 단위의 제작자본이 생긴다.

방송국이나 케이블 채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원하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나중에 하수영 의원님 일대기를 한 번 영화로 제작해 볼까?"

"사람들이 헛소리하지 말라고, 말도 안 된다고 안 믿을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얼마나 더 재미있겠어?

이것만큼 현실 같지 않은 현실 이야기가 또 있겠나?"

"나중에 한 번 허락 구해보시죠, 그럼."

고주환은 즐거운 상상에 젖었다가, 문득 주효정이 생각나서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나저나 효정이 걔는 왜 갑자기 그렇게 하차했는지 모르겠네."

"혹시 정말 하수영 의원님하고 비밀 연애하다가 결혼이라도 하게 된건……."

"에이, 그럴 리가 없지. 효주가 저렇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말이 돼?"

둘은 주효정의 하차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적토마 스튜디오에 돈을 댄 진짜 투자자가 중국 대형 미디어 기업이라는 사실.

주효정이 장효주에게만 말을 했기 때문이다.

소속사 대표 정재필도 전혀 모른다.

"정 대표가 완전히 앓아누웠다던데."

"위약금만 180억을 청구받았으니, 저라도 화병 날 거 같습니다. 효정이가 벌어놓은 돈이라도 많아서 다행이야. 180억이나 되는 돈을 물어주고도 끄떡없으니."

"정 대표님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이죠. 회삿돈 물어주지 않아도 되게 생겼으니. 효정이가 돈 없었으면 얄짤없이 싹 물어주고 안 팔리는 효정이 굴려서 충당해야 했을 텐데요."

그런 큰 사고를 쳤으니, 주효정은 이제 규모 있는 영화나 드라마에는 얼굴을 내비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독립 영화 판이나 전진하다가 그렇게 잊혀질지도 모른다.

두 사람 입장에서는 괜히 안타까웠다.

"대타로 들어간 세희 연기도 제법 괜찮던데."

"요즘 세희가 아주 살판났더라고요. 어깨에 힘이 가득 들어갔어요."

"위태(위대한 태왕) 종영하고 나면 세희 급이 껑충 뛰어오르겠네. 진작에 좀 더 친해져 놓을 걸 그랬나?"

"아이구, 지금은 우리 회사 급이 더 올랐습니다. 케이블 회사를 인수하니 마니 하는 판인데요, 무슨."

"에이, 그래도 케이블 회사 인수는 아니지. 그거 하고 나면 다른 드라 마는 무슨 돈으로 제작해?"

고주환은 한숨을 쉬었다.

"효정이는 왜 위태를 버리고 나가서 위태위태해졌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라임 맞추신 거죠? 못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라임 진짜 별로였냐?"

"……."

***

위대한 태왕은 방영을 거듭함에 따라 점점 인기가 높아졌다.

다시보기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인터넷 스트리밍에서도 국내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실시간 해외 스트리밍에서도 언제나 3위 안에 반드시 들었다.

덕분에 고주환은 조바심이 났다.

"선빵 제대로 뺏겼더니 우리 드라마 방영할 타이밍을 못 잡겠네."

"진짜 이러다가 80화 다 끝나고 방영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지금 확 방영해서 맞불 질러버려?"

"안 됩니다. 고래끼리 서로 싸워봤자 남는 게 없어요. 파이는 한정돼있잖아요."

"에이, 적토마 새끼들은 촬영 세팅도 전혀 안 되어 있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방영을 시작한 거지? 오디션이고 뭐고 다 쇼고, 진짜 미리미리 찍어둔 거 아냐?"

어느덧 위대한 태왕은 13화 방영일을 맞이했다.

경쟁 콘텐츠이다 보니 고주환과 정기석도 언제나 본방 사수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13화가 방영된 날도 둘은 회사에서 맥주와 땅콩을 마시며 시청하고 있었다.

평소 선빵 맞은 것 때문에 욕을 하면서도 일단 재밌게 봤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

"……."

"지금 쟤들이 뭐라고 한 거냐?"

"고구려 왕실이 한나라 핏줄이라고 한 거 같은데요. 바, 반전이 있지 않을까요? 설마 저대로……."

"너 같으면 저런 설정, 납득이 가냐? 무리수 아니냐? 아니, 무리수라고 하는 것도 너무 점잖은 거 같다. 나 지금 쌍욕 나오려고 하는데?"

흥분해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 하수영으로부터 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제 우리 환생 제독님께서 세상에 나설 때가 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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