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84화
146장 랩터 킬러 (3)
장수말벌의 가장 큰 천적.
두꺼비도, 오소리도, 곰도 아니고, 분노한 양봉 사장님의 불토치 공격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 그 천적은 최첨단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미국에 상륙했다.
바로 랩터 킬러, 대당 수백만 불이 우스운 초소형 레이저 드론이다.
나노소프트는 계약을 맺은 양봉가에 랩터 킬러를 지원했다.
벌통 주변에서 랩터 킬러 순찰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양봉 농민들은 반신반의했다.
"이게 장수말벌만 골라서 죽인다고? 이 쪼끄만 게 어떻게?"
"에이, 그래도 장수말벌보다는 월등히 크지."
"드론이 원래 몇 시간 못 날지 않나? 이래서야 20, 30분 날고 방전되겠는데."
"자동으로 충전할 수 있어서 우리가 신경 쓸 건 없다고 하던데."
그렇게 반신반의했지만, 결과는 곧 빨리 알 수 있었다.
"랩터다! 랩터가 나타났어!"
"저 개벌레 같은 자식들! 아이고, 우리 꿀벌들 다 죽는다!"
"이놈들아! 우리 불쌍한 꿀벌들 그만 좀 괴롭혀라!"
양봉 농민들은 얼른 가스토치와 라이터, 말벌채를 들고 나타났다.
한 마리라도 더 많은 장수말벌들을 죽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할 것은 없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순찰 중이던 랩터 킬러가 득달같이 날아들었다.
3기의 랩터 킬러가 편대 진형을 이루어, 서른 마리가 넘는 장수말벌들의 날개를 레이저로 지지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날개가 열에 그을리는 소리와 함께, 서른이 넘는 장수말벌들이 일제히 땅에 투두둑 떨어졌다.
랩터 킬러 편대는 꿈틀거리는 장수말벌들의 모든 다리까지 확실하게 지져서 기동성을 삭제했다.
죽을 각오로 나섰던 꿀벌들은 주변을 서성거렸다.
돌아가는 상황이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이내 장수말벌들이 위협이 되지 못함을 깨닫고, 꿀벌들은 다시 흩어졌다.
원래 할 일을 하기 위해 돌아간 것이다.
양봉 농민들은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
"봤어? 랩터를 순식간에 죽여 버렸어."
"저 조그만 몸체에 레이저 무기를 달았다고? 맙소사! 콘솔 게임 회사가 어떻게 이런?"
나노소프트 CEO 사티아 아델이 들으면 매우 슬퍼할 말이리라.
콘솔게임도 만들긴 하지만, 그래도 PC 운영체제로 가장 유명한 회사인데…….
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한 동료들이 흘린 SOS 페로몬을 맡은 장수말벌들이 추가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는 자그마치 100마리가 넘어 보였다.
장수말벌이 이 지역에서 엄청나게 증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초식동물이 급격히 늘어나면 풀과 나무가 초토화되듯이, 포식자가 갑자기 늘어나면 피식자는 큰 피해를 입는다.
"맙소사, 대체 근처에 랩터 퀸이 알을 몇 개를 깐 거야?"
그러나 습격은 무의미했다.
한국 양봉 사장의 분노를 품은 랩터 킬러는 추가 지원 병력을 사정없이 지져 버렸다.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피지컬이 커진 장수말벌들이지만, 최첨단 레이 저와 광학 센서로 무장한 랩터 킬러앞에서는 어림없었다.
21세기 대한해군 이순신급 구축함에 덤벼드는 임진왜란 왜구들처럼, 뭣에 당하는지도 모르고 팍팍 쓰러져 나갔다.
위협을 느꼈는지 장수말벌들은 더 이상 지원을 오지 않았다.
그제야 세레모니 처럼, 랩터 킬러스피커에서 우렁찬 포효가 흘러나왔다.
-보아라, 중국산 아메리칸 장수말벌들아! 이것이 수영양봉 하수영 사장님의 분노다!
바로 하수영의 목소리였다.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전투가 끝난 뒤 승리의 함성을 미 대륙에 퍼뜨린 것이다.
한국어를 모르는 양봉 농민들과 나 노소프트 직원들은 깜짝 놀라서 수군거렸다.
"뭐야? 이게 무슨 소리지?"
"상황 종료를 알리는 시스템 음성, 뭐 그런 게 아닐까?"
"아, 그럴 수 있겠군. 랩터들이 이제 더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3기 편대 정도면 기본적으로 충분하군."
"고장이 날 경우를 대비해서 예비대도 운용해야지."
"그럼 3기 편대를 2개씩 운용해서, 한 지역에 총 6기 정도를 투입하면 되겠어."
"양파 농가에도 갖다놔야지. 올해 씨앗을 제대로 채집해야 내년에 충분히 파종할 수 있을 테니까."
랩터 킬러의 성능에 만족한 나노소프트는 역시 돈값을 한다고 생각했다.
꽃이 피는 시기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장수말벌이 꿀벌통을 습격하는 것에는 정해진 시기가 없다.
겨울 말고는 내내 털린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랩터 킬러는 나노소프트의지원을 받는 양봉장에 상시 실전 배치되었다.
만족한 양봉농민들은 동종업계에 자랑하면서 소문을 냈다.
양봉을 접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양봉 농가들도 반신반의했다.
"정말이야? 랩터 킬러라는 놈 성능이 그렇게 대단해?"
"그렇다니까. 아주 랩터 말벌들이 뭘 해보지도 못하고 우수수 죽어나가더라고."
"밤낮 구분 없이 24시간 순찰하면서 감시하니까 우리가 뭘 할 것도 없지."
"실수로 꿀벌을 공격하거나 그러진 않고?"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하던데."
"잠자리하고 두꺼비도 쫓아내더라고, 거미줄도 다 치워 버리고."
"저번에는 오소리가 벌통 털러 오는 것도 레이저로 지져서 쫓아내던데. 오소리가 앗 뜨거라 하고 도망가는 영상 봤어?"
양봉 농가들은 랩터 킬러가 빈틈없이 꿀벌통을 지키는 영상을 녹화해서 유튜브에 올렸다.
폐업을 준비하던 양봉농민들은 그 영상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이게 가능하다고?"
"랩터를 이렇게 물리칠 수 있었다고?"
"비디오 게임기나 만드는 회사가 이런 위대한 살충 도구를 만들었다고?"
유튜브 영상에는 사티아 아델이 우울증에 걸릴 만한 댓글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전직 양봉업자인데 진짜 놀랍다. 이런 게 진작 개발되었으면 나도 소중한 꿀벌들을 방생하지 않았을 텐데.
-평생 양봉만 해왔다 보니 이제와서 다른 일을 찾기가 쉽지가 않은데, 이걸 보고 희망이 생겼다.
-어딜 가면 구매할 수 있음? 근데 엄청 비쌀 거 같은데.
-구매 가능한 물건이 아니고, 나노소프트하고 계약을 하면 퇴치 지원을 해주는 식이라더라.
-그래도 돈은 내야 할 거 아니야?
-개화기에 수분 지원 해주고 얻는 수입의 10%를 내면 된다는데? 그거 말고는 따로 내야 하는 돈은 없는 거 같아.
-수입의 10%라…… 그 정도면 할 만하다.
-30%, 50%가 아닌 게 어디야. 래플스토어하고는 비교도 안 되네. 역시 비디오 게임기 만드는 회사는 달라.
다만 모두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노소프트가 도입한 랩터 킬러는 총 100기.
이것도 수억 불의 돈을 들인 것이다.
수량이 정해져 있으니, 양봉업자들의 신청을 모두 받아줄 수는 없었다.
"안 되겠습니다. 한 개 지역에 투입하는 랩터 킬러를 기존 6기에서 예비기까지 총 4기로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실전 운용 3기, 예비 1기.
그럼 총 25개 편대를 꾸려서 운용 할 수 있다.
그래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양봉농가는 총 25개 지역이다.
"교차 투입은 의미가 없습니다. 꿀벌통은 24시간 내내 지켜야 합니다."
막말로 비어 있는 틈을 타서 장수말벌들이 죄다 털고 갈 수도 있으니.
"일단 서로 가까운 양봉 농가들끼리는 묶어서 1개 그룹으로 랩터 편대를 투입하면 되겠고……."
나노소프트에서는 아예 전직 미 공군 고문단까지 구성해서 랩터 킬러운용전술을 연구했다.
100기밖에 안 되는 랩터 킬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항공군사작전 전문가가 필요했다.
***
전 미 공군작전장교 출신인 샘 브릿버드는 나노소프트 요식업 프랜차이즈 사업부에서 브리핑을 하는 중이었다.
"본 작계의 최우선 목표는 바로 양파 농가입니다."
끄덕끄덕.
양파 농가는 원래 씨앗을 전부 구매해서 농사를 지었으나, 재작년부터는 씨앗의 부족과 가격 상승의 문제로 자영지에서 직접 채집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대형 화면에는 양파 농장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들이 나타났다.
"이 중 붉은 지역이 바로 우리 나노소프트와 계약한 농가입니다."
일부 농가가 다시 붉게 변했다.
"파란 지역을 봐주십시오. 효율적인 작계를 위해서 이 지역도 우리 나노소프트의 계약농가로 편입시키길 제안합니다."
붉은 지역 사이 곳곳이 다시금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발머 스틴이 팔짱을 낀 채 끄덕였다.
"과연…… 지도를 보니 한눈에 알겠어. 우리가 너무 비효율적으로 농가와 계약을 했군. 빈 지역이 너무 많잖은가?"
"저 지역은 양파 농가가 아니라서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느 직원이 변명처럼 말하자 샘브릿버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웃음을 지으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미 조사를 했습니다. 양파 농가는 아닙니다만, 언제든지 손쉽게 양파 농가로 전환을 할 수 있는 농가들입니다."
"그럼 계약해서 업종 전환을 설득해야지. 비용은 우리가 감당하고."
"네, 이렇게 항공보호작전 지역을 넓히면, 같은 전력으로도 더 많은 목표물 획득을 꾀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음."
"다음으로, 양봉 농가를 서로 묶어서 보호 대상 그룹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랩터 킬러의 항공작전 반경이 3km 이내이므로 그 점을 고려하여…… 이로써 현재 나노소프트가 필요로 하는 양파의 지속적인 확보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길고 긴 브리핑이 끝나자, 발머 스틴을 중심으로 다들 박수를 짝짝 쳤다.
"아주 좋은 작전이었네. 잘 들었어. 이대로 진행하면 되겠어."
"영광입니다, 써."
"이 작전의 커맨더는 자네가 맡아 주게."
"예스, 써."
일부 직원들은 브리핑을 지켜보며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우리…… 푸드업체 맞지?'
'여기 펜타곤 아니지?'
'지금 이거 식재료 확보 프로젝트맞는 거지?'
***
미 농무부 장관 톰 빌락은 어느 때보다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장수말벌 피해를 해결해 달라는 지속적인 요구가 올해 제대로 터졌기 때문이었다.
그도 나름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예산을 들여 말벌 퇴치조를 편성해서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땅은 너무 넓었고, 인력으로 일일이 말벌집을 찾아 부수기에는 시간과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예산을 백 배, 천 배 이상씩 들여서 더 많은 퇴치조를 꾸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피해는 꾸준히 누적되었고, 기어이 터져 버렸다.
이런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나노소프트에서 랩터 킬러를 전면적으로 도입을 한 것이다.
"그렇게 효과가 좋단 말이지?"
"예, 장관님. 나노소프트와 계약을 맺은 양봉업자들은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양파 농가들도 올해는 내년을 위한 충분한 양의 씨앗을 채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럼 아몬드 농가가 문제로군."
"예, 당장 올해 피해는 차치하고, 내년 개화기를 위해 충분한 꿀벌 지원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매우 높습니다."
"아몬드 개화기에 꿀벌통을 갖다 놓으려면 랩터 킬러도 같이 배치를 해야 할 텐데."
아몬드 꽃이 피면 농가에서는 양봉업자에 의뢰해 꿀벌통을 밭에 갖다 놓는다.
그럼 꿀벌들이 꿀을 채취하면서 아몬드 꽃이 열매를 맺게 된다.
양봉업자들은 꿀도 챙기고, 돈도 받고 일거양득.
하지만 랩터 킬러를 배치하지 않으면 양봉업자들은 의뢰를 거절할 것이다.
당장 올초에 아몬드 농가로 벌통을 놓았다가 꿀벌을 모두 잃은 양봉업자들이 많았으니까.
"그럼 농무부 이름으로 나노소프트에 의뢰를 해보자고."
"알겠습니다."
농무부는 정중한 제안을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더욱 정중한 거절이었다.
구구절절한 거절 내용을 압축하면 이랬다.
-우리도 빠듯하다. 외부 지역까지 배치할 편대 전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