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78화
144장 양파가 죽었어 (2)
맥날드 본사.
최고경영자 크리스탄 에바스틴 사장은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양파와 당근 공급이 위험하다고?"
"예, 올해 전미 농사는 박살 났습니다. 수확량이 매우 처참합니다."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되겠는데."
경영진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맥날드는 글로벌 패스트푸드 회사.
시가총액이 1,800억 달러(약 180조 원)에 달하며, 연 매출이 약 300억 달러에 이른다.
글로벌 패스트푸드 업종의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음식의 균형적인 품질 유지.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안정적인 식자재 공급망이 필수다.
때문에 맥날드는 패스트푸드 업종이지만, 동시에 회사 수익의 일부를 작물 등 식량 선물옵션 시장에서 운용하기도 한다.
투자 수익이 목적이 아니라 안정적인 식자재 확보를 위해서다.
"양파와 당근을 포함한 여러 식자재에서 폭발적인 수익을 냈습니다. 하루아침에 10억 달러가 넘는 투자 이익을 냈습니다."
재무이사의 말에 아무도 기뻐하는 이가 없었다.
투자 수익의 원인은 바로 갑작스러운 식자재 부족이었으니까.
돈은 벌었지만, 제대로 장사는 하지 못할 상황 아닌가.
햄버거 회사가 햄버거 만들 재료가 없어서 휴업을 해야 한다면, 이보다 더한 악재가 없다.
"당근과 양파가 망했다고 했지?"
"네, 사장님."
"좋아, 그럼 지금부터 닥치는 대로 당근과 양파를 사들인다. 가격은 상관없어. 최대한 많은 물량을, 국가와 지역 구분 없이 전부 사들여."
당장 미국에서 햄버거 장사를 하기 위해 해외에서 당근과 양파를 수입해야 할 판이다.
"저, 사장님. 그런데 지금 양파와 당근 가격이 20배 이상으로 폭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까?"
크리스탄 사장은 말을 꺼낸 임원을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지금 가격이 중요한가?
정말 뭐가 중요한지 아직도 가슴에 제대로 와 닿지 않는 건가?
"햄버거 가게가 햄버거 만들지 않는 순간 수명은 끝난 거야. 허리케인이 오든 아마겟돈이 오든, 우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햄버거를 만들어야 하네."
"……."
"아니면 햄버거 장사 접고 투자 회사로 본격적으로 업종 전환이라도 할 셈인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크리스탄 사장은 그제야 표정을 조금 풀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햄버거만드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네."
"……"
"가격에서 다소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햄버거 기계가 정지하는 일은 없어야 해. 다행히 작물 시장에서 얻은 수익이 조금 있지 않나?
그걸로 폭등가를 커버하면 되겠군."
"10억 달러 넘는 투자수익을 내긴 했지만, 전 세계 시장을 생각하면 오히려 부족합니다. 손해는 필연적입니다."
"그래서?"
"아니…… 햄버거 만들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재무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염두에 두시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손해를 두려워해야 할 때가 아니야."
크리스탄 사장은 어느 때보다도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손님들이 달라는 만큼 햄버거를 충분히 만들지 못하는 걸세."
***
치킨 푸드로 유명한 글로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KCF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양파와 당근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십시오. 맛이 떨어져도 상관없으니 냉동 물량도 가리지 말고 긁어모아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맥날드 분위기는 어떤가요?"
"거기도 비상 모드입니다. 가진 돈을 다 털어서 양파와 당근을 긁어모으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크리스탄 사장 스타일은 내가 잘 알아요. 그 사람은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햄버거 물량이 끊이지 않게 할 사람입니다."
그리고 KCF 사장 로이드 이튼 역시 같은 유형의 인물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선 매장에서 절대로 재료가 없어서 장사를 못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로이드 이튼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치킨 튀겨서 먹고 사는 회사가 치킨 튀기지 못하면 문 닫아야 합니다. 그 점을 모두 명심해 주십시오."
"예, 사장님."
맥날드와 KCF뿐만이 아니었다.
당근과 양파를 필수 식재료로 사용하는, 미국의 초대형 프랜차이즈 요식업체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식자재확보에 나섰다.
***
마이애미.
버거킹 최고경영자 다니엘 슈츠 역시 당근과 양파 확보를 위해 어느 때보다 정신이 없었다.
이미 미국의 대형 요식업 프랜차이즈는 당근과 양파 확보전에 들어간 상황이었으니.
총만 안 들었지, 전면전 수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안감에서 촉진한 그런 경쟁심리가 전 세계 당근과 양파 가격을 더욱 상승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북미 전역에서 올해 당근과 양파 농사가 망한 이유가 대체 뭔가?"
다니엘 슈츠는 이해가 안 갔다.
딱히 흉작의 요인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그런데 아몬드, 당근, 양파 농사만 시원하게 말아먹었으니.
"다른 나라들은 괜찮아 보이던데, 왜 그런 거지?"
"랩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랩터? 미 공군 F-22 스텔스 전투기 말하는 건가?"
랩터라고 하면 보통은 공룡, 아니면 미 공군이 자랑하는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를 떠올린다.
"그 랩터가 아니고, 아시아 거대 말벌이라는 말벌 종입니다. 랩터는 별명입니다."
"말벌? 말벌 때문에 당근 양파 농사가 망했다고? 설마 그 랩터라는 말벌이 당근과 양파를 환장해서 먹어치우기라도 했나?"
다니엘 슈츠는 불현듯 메뚜기떼를 떠올렸다.
수억, 수십억 마리의 메뚜기떼가 한 번 먹이 비행을 시작하면, 들판에는 남아도는 초목이 없다.
밀이며 옥수수며 모조리 갉아 먹히고, 들판은 깨끗해진다.
말벌도 설마 그런 게 있나?
"그게 아니라, 랩터 말벌들은 꿀벌의 천적입니다."
"꿀벌의 천적?"
"네, 원래 아메리카에는 없던 종인데 아시아에서 건너오면서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아메리카 꿀벌들은 랩터 말벌에 대한 대응 능력도 전무하고요."
"으음……."
"랩터 말벌 한 마리가 혼자서 수백마리의 꿀벌들을 몇 분 만에 사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혀 상대가 안되는 거죠."
"아무튼 랩터 말벌이라는 종이 기승을 부렸다 치고, 그게 당근과 양파와 무슨 상관인가?"
"아몬드와 함께 그 두 작물은 대부 분의 수분 작용을 꿀벌에 의지합니다."
"뭐야? 그럼……."
다니엘 슈츠의 표정이 그제야 심각하게 변했다.
돌아가는 밑그림이 비로소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네, 꿀벌집이 너무 큰 피해를 입으니까 당근밭과 양파밭에서 충분한 수분 작용이 이뤄지지 못했고, 당연히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시아에서 건너온 말벌들이 꿀벌들을 초토화시켜서, 꿀벌에 수분 작용을 의지하는 아몬드, 당근, 양파 농사가 망했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허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설마 꿀벌들이 멸종한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니지만, 꿀벌 숫자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양봉 농가는 지금 랩터 말벌 때문에 거의 죽는소리를 내고 있고요."
"그럼 내년에는? 내년에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게 랩터 말벌을 제대로 퇴치하지 않으면 꿀벌 피해가 더 커질 것은 분명한데, 인간의 힘으로 퇴치한다는 것이 엄연한 한계가 있어서……."
장수말벌만 죽이는 살충제를 개발해서 융단폭격을 하면 좋겠지만, 어디 그런 게 존재할 수 있겠나.
"이게 또 꿀벌들이 둥지 보호 본능이 워낙 강합니다."
"그게 나쁜 건가? 좋은 거 아니야?"
"덩치 큰 랩터 말벌이 꿀벌통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드를 쳐놔도, 꿀벌들이 알아서 기어 나와서 죽이겠답시고 덤벼들다가 죽어주고 있어서요."
"……."
"그냥 상대 안 하면 어차피 랩터말벌들은 꿀벌통 침투 못 하니까 무시하고 자기들 할 일 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 옆에서 랩터 말벌들이 서성대면 족족 달려들다가 죽는다, 이거지?"
"네, 전략을 좀 이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니엘이 듣기에 너무 황당한 이유였다.
당근과 양파 물량 가격 파동이, 아시아에서 건너온 말벌 포식자 때문이었다니.
***
신논현 르주블랑 호텔.
프라임컴퍼니가 인수한 이 호텔은 잠시 영업을 멈추고 리모델링에 한 창이었다.
이택진 쉐프는 수영레스토랑 르주블랑 호텔점 입주를 위해 한창 내부 공사를 감독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가, 그것도 특급호텔 로열홀에 당당히 생긴다는 기쁨에 그는 하루하루 살 맛이 넘쳐 흘렀다.
점심시간을 틈타 그는 하수영을 만나고 있었다.
"내가 저번에 미국 갔을 때 딱 알아봤다고요. 아, 장수말벌 저것들이 언젠가 큰일을 내겠구나 하고 말이죠."
"그럼 당근과 양파 가격 폭등이 모두 장수말벌 때문이라는 겁니까?"
"근본 원인은 그렇다는 거죠. 물론 최종 원인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미자본제국주의의 첨병, 맥날드와 KCF, 버거킹 같은 업체들 때문이지만요."
"미국 패스트푸드 회사들이 전 세계에서 미친 듯이 당근과 양파를 긁어모은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당근과 양파가 지금보다 더 올라도 그놈들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음식점은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결국 죽고 만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통양파 한 개에 2만 원 이상……. 햄버거 가격도 무시무시하게 올라가겠군요."
"놉놉, 그렇지 않아요. 가격은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네? 그러면 적자 아닙니까?"
"그게 바로 놈들의 무서운 점이죠.
당장 적자를 보더라도 장기적으로 회사와 브랜드가 장수할 수 있는 길을 가고 있으니까요."
"어쩐지 시중에서 당근과 양파를 구경하기도 힘들더라더니."
가격이 폭등한 것은 둘째치고, 물량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오죽하면 가격 폭등 자체가 거대한 음모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아우성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진실은 간단했다.
그렇게 미친 가격에도 불구하고, 더 미친 듯이 사들이는 놈들이 있다는 것.
이택진은 가만히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무서운 일입니다. 난리는 미국에서 났는데, 그 피해는 우리나라가 고스란히 보고 있다니요."
"우리나라만 피해 보는 거 아니에요. 다른 나라들도 지금 당근과 양파 없어서 요리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겁니다."
"그런……."
"제가 어제 이야기 들었습니다. 세상에, 인천공항 B-747 화물기 여러기에 우리나라 통양파와 당근만 가득 채워서 미국으로 출발했다네요."
"정말입니까?"
"안 믿어지시죠? 저도 황당했습니다. 아무리 당장 재료가 부족하다지만, 반도체도 아니고 고작해야 당근과 양파를 그 비싼 항공 수송으로 날린다는 게 말이 되나요?"
"역시 맥날드…… 미국 패스트푸드 1위의 위엄을 보여주는군요."
이택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작해야 식재료를 항공 수송으로 보낸다고?
미국 업체가 아니고서는 실행할 수 없는 과감한 행동력 아닌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영업을 꾸준히 이어나가며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마음가짐.
'나도 작게나마 그걸 본받아야…….'
"아, 사장님. 방금 말씀하신 그 기사가 여기 있네요. 미국으로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국산 통양파와 통당근."
"그렇죠?"
"수입 업체가 말씀하신 대로 역시…… 어? 나노소프트인데요?"
"네? 뭐라고요?"
"화물기로 당근과 양파 날린 게 나노소프트 요식업 프랜차이즈 사업부라고 하는데요? 맥날드와 KCF가 화물기를 동원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
"설마 가격 폭등의 최종 보스가 사장님이었습니까?"
"이게 무슨 일이죠?"